말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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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1

밖에 나갔다 집에 오니, 화장실 벽과 천장 몰딩 사이로 녹물이 흘러내려 거울에 여러 개의 긴 갈색 자국을 남기고 변기 위 선반에 고여 있었다.
사실 전날도, 갈색은 아니지만 반투명하게 물이 천장에서 흘러내린 자국이 거울에 남아있었다.
물이 어디에서 왔을까. 물론 위층 화장실 어딘가의 배관에서 물이 새 어딘가를 타고 흘러내려 우리집 천장으로  왔겠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집에 이사한 직후부터 위층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흔한 발자국소리 같은 층간소음이 아니라 드릴 소리가 자주 들리고(벽에 대고 뚫는 것 말고 가구 조립하는 것 같은 비교적 작은 소리) 쿵, 바닥에 무거운 걸 놓거나 끄는 소리.
"또 작업하나봐"
밤에는 TV소리인지 실제 사람들이 내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기이하다는 것은, 크게 내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일상적으로 내는 정도의 목소리가 확성기나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처럼 선명하면서도 울리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몇 번인가는 낮은 코고는 소리도 들렸다. 다행히 코를 자주 골지는 않았다.
하루는 낮에 잘 못 치는 사람이  꽉꽉 눌러서 치는 피아노 소리가 몇 시간 동안 쉼없이 들렸다. 아, 피아노도 치는구나. 뭐하는 사람이지. 위를 향해 생각했다. 악보책을 펼치고 치다가 넘기고 또 쳐보다 또 다음곡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피아노를 계속 쳤다. 이건 이날 하루였다.
그리고 며칠 전에 그 집이 이사를 갔다. 아침부터 심상찮은 발소리(신발 신은 발소리)에 짐작을 했다. 이사가는구나. 아침 산책길에 보니 트럭에 짐이 실리고 있었다. 사방이 막혀있는 이삿짐차가 아니라 바닥만 있는 트럭이었다. 늘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일까, 가정집이 아니라 공방이라도 꾸미고 있는 것일까 생각했었지만 짐은 평범해보였다. 보통 갖춰놓고 사는 부부라고 하기엔 가구나 짐이 별로 없고 물건들이 오래되어 보였다. 끝내 살던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무튼 이사를 갔다. 그리고 바로 인테리어 공사 소리가 났다.
다른 얘기로, 한참 전부터 작은 톱으로 톱질하는 것처럼 슥슥하는 소리가 한 번씩 들렸다. 어쨌든 나는 모든 소리를 바로 위층에서 내는 소리라고 단정지어 생각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소리도 위층에서 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층이 이사간 후에도 그 소리는 계속 났다.
그리고 어느날 거실에 있는데 시끄러운 말소리가 밤늦도록 났다.
"이사왔나봐"
새로 사람들이 이사를 와서 노는가 보다 생각했다.
밤에 마루와 산책을 하러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계단을 몇 개 내려가니 말소리가 선명해졌다. 바로 아래층 현관문 앞에 서니, 위층이 아니라 그 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낮에 산책하고 계단으로 올라오는데 60대 정도의 여자가 아래층 벨을 누르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과 부부가 이야기하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의 목소리였으니까.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였던 것이다. 위층이 이사를 나가고 이제 드릴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무슨 소리가 어느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구나 생각했다.
다시 며칠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가다가 귀를 기울였다.
"이거 봐,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소리야, 슥슥 소리"
톱질하는 소리가 아니라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소리였다. 전에는 안 나다가 최근에 나게 된 소리였다.
그리고 며칠 후 집에서 여러 소리들이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이제는 정말 이사를 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공사를 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사를 들어왔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하고 밖으로 나가 한 층을 올라가 보았다. 위층이 아니라 그 앞집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들리는 거의 모든 소리가 바로 위층에서 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올라가서 보고 온 후에도 집에 있으면 그 공사소리가 내가 보는 천장을 뚫고 내려오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다 물이 샜고 위층 집주인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자신은 집주인이고 이전 세입자가 나가고 도배와 바닥장판을 바꿨다고 했다. 화장실 공사는 안 했고 샤워기만 바꿨는데 그 과정에서 약간 문제가 생겨서 틈으로 물이 샌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공사한 사람이 가서 보기로 했다고 하면서 아직 새 세입자가 들어오지는 않아서 그 사이 물을 쓰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 집은 살던 사람이 이사 나간 후 계속 비어 있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에는 각 동별 엘리베이터 점검 날짜가 붙었다. 몇 일 몇시부터 몇 시까지 엘리베이터 운행이 안 된다는 안내였다. 그리고 그 날짜가 지난 후로는 슥슥 소리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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