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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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1

30년 동안 살던 부모님 집을 나와 2300에 40짜리 원룸을 얻었다.
서울 한복판, 4층짜리 건물에는 지하에 방이 세 개, 2층부터 4층까지는 한 층에 다섯 개의 방이 있었다.
방은 보통의 원룸들보다 컸다. 현관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화장실은 변기와 세면대 앞에 한 사람이 서면 꽉 찰 정도로 작았고 베란다가 있었다.
창문은 모두 나무였고 창 밖으로는 동네의 한옥 지붕들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남산 타워가 보였다.
방바닥은 선명하고 진한 노란색이었다. 창문과 베란다로 나가는 문과 방문, 천장 몰딩은 모두 나무였다.
싱크대는 옥색이었고 화장실의 타일은 진한 파란색이었다.
신발장은 싱크대와 같은 옥색, 현관 바닥은 화장실과 같은 색 타일이었다. 현관문은 희미한 옥색이었다.
관리비는 4만원이었다.
1층 주차장 안쪽에 관리실이 있었고 관리인은 70대의 남자 노인이었다.
깐깐한 성격의 남자는 계단과 건물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관리실에서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읽었다.
건물은 조용했다.
게단을 하루에 몇 번씩 오르내리면서 거의 언제나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창문이 없고 현관문으로만 둘러싸인 계단은 어둡고 공기가 안 좋았다.
천장의 전등이 나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등을 모두 센서등으로 바꾼 언젠가는 다음 센서등이 켜질 때까지
깜깜한채로 계단이 어디서 끝나고 시작되는지 더듬거려야했다.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가끔 마주쳐도
빠르게 지나쳐 현관문에 열쇠를 꽂았다.
어둡고 조용한 계단을 오른 끝에 현관을 열면
환한 나의 방이 열렸다.
방은 창문이 크고 베란다가 있어 햇빛이 많이 들고 바람이 잘 통했다.
방은 컸다.
처음에는 컸다.
작은 붙박이장에 이불과 옷을 넣었고 식탁과 냉장고, 그리고 책상 두개와 책꽂이 몇 개가 있었다.
그 방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누워서 쉬고
책상에 앉아 일을 했다.
방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밤에는 암흑이나 폐허가 된 세계에 내 방만 온전하게
4층 높이에 떠 있다고 생각했다.
여름에는 너무 더웠다.
꼭대기층이었고 베란다는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여름의 지는 해가 머리 위와 큰 베란다 창을 통해 뜨겁게 쏟아졌다.
늦은 저녁이 되도록 달궈진 방이 식지 않았다.
그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했다.
에어컨을 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름 내내 창문과 베란다 문을 모두 열어놓고 살았다.
겨울에는 추웠다.
오래된 건물의 엉성한 샤시는 아귀가 맞지 않아 창문을 닫아도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틈이 벌어져 있었다.
보일러를 틀면 방바닥은 금방 뜨거워졌다.
겨울밤에 누우면 이불 속은 따뜻하고 코에는 찬바람이 느껴졌다.
겨울이 올 때마다 문풍지를 몇 겹씩 붙이고 은박 테잎으로 발라 창문 틈을 막고
창문을 열어놓는 계절이 오면 뜯어냈다.
몇 년이 지났을 때는 그것이 너무 지겹고 귀찮았다.
그 방에서 8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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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2
아파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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