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9-03-14


장미빌라는 낮은 언덕을 깎아 만든 절벽 위에 지어졌다. 멀리서는 밋밋한 직육면체 형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십자 구조로 되어 있다. 지하와 옥탑을 합해 6층. 대략 30여 가구가 산다. 언젠가 녹슨 우편함 개수를 세어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내 발소리가 너무 크다고, 아래층에서 두 번이나 찾아온 총각을 빼고, 이웃을 만난 적은 거의 없다. 일상의 부스러기처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작은 단서로만 각 세대의 사정을 짐작해볼 따름이다. 한번은 아래층에서 이상한 기척이 들려온 적이 있다. 한밤중 경상도 사내가 뭐라뭐라 중얼대는 소리였다. 정신을 집중한 끝에 그가 누군가를 때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직하고 야비한 음성. 철썩, 툭, 퍽 하는 울림. 사내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로 뭔가 반문하고 다그치고 빈정대길 반복했다. 술에 취했거나 분노에 찬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충분한 여유를 갖고 상대를 괴롭히고 있었다. 어깨를 움츠린 채 창가로 가 동정을 살폈다. 밖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을 들어 몸을 기울였다. 4차선 도로의 소음이 사내으 ㅣ말을 자꾸 잡아먹었다. 남편을 깨울까 하다 그만두었다. 정확히 몇 호에서 나는 소린지 알 수 없었고, 괜한 낭패를 당할지 몰라서였다. 사내으 ㅣ웅얼거림은 한 시간가량 계속됐다. 맞는 쪽에서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신음, 단 한 번의 비명, 흐느낌조차 없었다. 마치 그곳에 없는 사람처럼. 애초에 없던 사람인 양. 이부자리로 돌아가 남편 뒤에 달라붙었다. 남편에게서 익숙하고 달콤한 땀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체취에 집중했고, 사내의 목소리가 멎어들 즈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런 일은 아주 가끔 일어났다. 보통 장미빌라를 맴도는 공기는, 저녁 무렵 생선 굽는 냄새나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있는 날 한꺼번에 '와아'하고 터져 나오는 함성, 창가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화분의 고요, 옆집 아기의 울믐과 택배가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는 경쾌한 초인종 소리 같은 것이다. 물론 최근에도 이곳 지하에서 비명이 새어 나온 적이 있다. 새벽 1시쯤이었을까. 누군가 갑자기 악- 하고 절규했다. 억울한 게 있는지 분에 못 이겨 혼자 내지르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는데, 그 뒤로 아무 기척이 나지 않았다. 그는 그날 4시쯤 다시 악, 악, 아악- 하고 연달아 세 번 발악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 중 '벌레들'
문학과 지성사



 
2019-03-13
한국 소설을 많이 읽는다.
여성 작가들이 쓴 소설이 많이 나오고
그 책들이 좋아서 좋다.
외국 소설을 읽을 때는 그렇지 않은데
우리말로 쓰인 한국 소설을 읽을 때는
소설을 쓰는 것에 형태가 불분명하고 격한 감정이 휘몰아친다.
너무 좋다, 이런 것을 쓸 수 있어서 좋겠다, 나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림 없는 글이 가지는 묘사와 힘.
질투와, 나도! 라는 마음이 휘몰아치다가
이제는 잦아들었다.
여전히 한국 소설을 읽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






 
2019-03-13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한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바깥은 여름> 작가의 말.


도서관에 빌려 읽다가
사서 읽기.




 
2019-02-04


이것저것
동시에 뒤섞어 읽고 있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삭책



 
2019-02-02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서효인+박혜진, 난다





 
2019-02-02

요즘 내 습관은
책을 읽으며, 책 소개를 보며
'내 책은 이 책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기'이다.






 
2019-01-23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정유정, 지승호, 은행나무




 
2019-01-17

한국 소설을
많이 읽는다.




 
2019-01-17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낮고 넓은 테이블에, 조각 수가 많은 퍼즐을 쏟아 두고 오래오래 맞추고 싶습니다. 가을도 겨울도 그러기에 좋은 계절인 것 같아요. 그렇게 맞추다보면 거의 백색에 가까운 하늘색 조각들만 끝에 남을 때가 잦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들어 있거나, 물체의 명확한 윤곽선이 보이거나, 강렬한 색이 있는 조각은 제자리를 찾기 쉬운데 희미한 하늘색 조각들은 어렵습니다.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사람 한사람은 미색 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

'작가의 말' 중에서



 
2019-01-17
하지만 무서울 게 뭐야 문득 소리 내어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중얼거렸다.
늑골이 무너지고 옆구리가 부스러지면 어때, 뒤이어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좀 전보다 또렷하게 목소리를 내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그녀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부모는 은퇴 후 버스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바닷가 소도시에 살고 있었다.

한강 '작별'




 
L 1 [2][3][4][5][6][7][8][9][10]..[38]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