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9-05-07


그리고 그 순간이 찾아왔다.
d는 젖은 얼굴을 닦으려고 수건을 잡았다가 놓았다. 놓쳐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요일 오후 아홉시 직전이었다. 욕실 벽에 걸린 시계가 째각거렸다. 거품 섞인 물이 세면대에 고여 있었고 d는 맨발로 타일을 밟고 있었다. d가 조금 전에 잡았다가 흠칫 놀라 놓아버린 것. 그건 평범한 수건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집에 있던 물건. d는 매일 아무 때나 그걸로 얼굴이며 목을 닦은 뒤 수건걸이에 도로 걸거나 빨래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여러번 빨아 말리길 반복한 탓에 좀 뻣뻣해지고 납작해진 아이보리색 면직물이었다. 무늬도 이니셜도 없어 d로서는 다른 수건과 구별하기도 어려웠다. 그것의 온도가 갑자기 매우 낯설었다. 체온을 가진 것처럼 온기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불을 켜지 않은 부엌을 향해 욕실 문이 열려 있었다. d는 컴컴한 부엌을 가로지르다가 식탁에 놓은 탁상달력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더듬어 그것을 주었을 때 d는 표지까지 열세장인 두꺼운 마분지와 좁은 간격으로 말린 스프링에서 온도를 느꼈다. 달력을 올려두고 식탁을 짚어보니 그것 역시 미지근했다.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가구와 식기, 유리, 각종 손잡이들. d는 그날부터 서서히 그것을 눈치챘다. 공기보다는 싸늘해야 마땅한 사물들이 미묘한 생물처럼 미열을 품고 있었다. 그 미적지근한 온도를 참을 수 없어 d는 사물과의 접촉을 줄였다. 모든 것이 이렇게 될 수는 없으니 변한 것은 내 쪽이라고 d는 생각했다.
내가 차가워졌다,라고.
...

d는 거의 모든 사물에서 온기를 감각하게 된 뒤로 외출하지 않았다.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 머물렀다. 누구와도 통화하지 않고 그다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사물들을 부수고 쪼개고 버렸다. 공들여 그 일을 하다보면 사물들의 온기로 손이 뜨거워졌다. d는 작열감을 줄이려고 머리를 긁거나 몸에 손을 문지러가며 작업했다. 쓰레기를 계속 버려 골목을 지저분하게 만든다고 툴툴거리며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도 했으나 d는 대꾸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상자를 채우고 물건을 버리고 상자를 채웠다. 사물들은 내내 기묘하고도 기괴한 생물들처럼 온기를 띠고 있었고 그것을 만질 때마다 d는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내버려둘 수 없는 이유는, 거짓말을 하니까.  

<디디의 우산>
황정은, 창비



 
2019-04-27


울고 있는 가수

가수는 노래하고 세월은 흐른다
사랑아, 가끔 날 위해 울 수 있었니
그러나 울 수 있었던 날들의 따뜻함
나도 한때 하릴없이 죽지는 않겠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돌담에 기대
햇살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네
맹세는 따뜻함처럼 우리를 배반했으나
우는 철새의 애처러움
우우 애처러움을 타는 마음들
우우 마음들이 가여워라
마음을 빠져나온 마음이 마음에게로 가기 위해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울 수 있음의 따뜻했음
사랑아, 너도 젖었니
감추어두었던 단 하나, 그리움의 입구도 젖었니
잃어버린 사랑조차 나를 떠난다
무정하니 세월아,
저 사랑의 찬가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문학과지성사




 
2019-04-27


그리하여 18세기말경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 내가 만일 역사를 다시 쓴다면 십자군전쟁이나 장미전쟁보다 그것을 더 충실하게 묘사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즉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지요. 만약 <오만과 편견>이 중요하다면, 그리고 <미들마치>와 <빌레트>, <폭풍의 언덕>이 중요한 작품들이라면, 시골 저택에서 아첨꾼들과 사절판책속에 파묻혀 있던 외로운 귀족들만이 아니라 일반 여성들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한 시간의 강연에서 입증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사실일 것입니다. 이런 선두주자가 없었다면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 죠지 엘리어트는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는 말로우가 없었다면, 말로우는 초오서가 없었다면, 초오서는 그 이전에 길을 열고 자연적인 언어의 야만성을 순화시킨 잊혀진 시인들이 없었다면 글을 쓸 수 없었겠지요. 왜냐하면 걸작이란 혼자서 외토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여러 해 동안 일단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경험이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제인 오스틴은 훼니 버니의 무덤에 화환을 놓아야 하고 죠지 엘리어트는 엘리자 카터 - 일찍 일어나서 그리스어를 배우기 위해 침대에 종을 매달았던 용감한 노파 - 의 억센 그림자에 경의를 표했어야 했을 겁니다 .모든 여성들은 다 같이 지금 웨스트민스터사원에 - 세간에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긴 했지만 아주 타당하게도 - 안치되어 있는 에이프러 벤의 무덤에 꽃을 바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 준 사람이 그녀였으니까요. 내가 오늘밤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기지로 일 년에 오백 파운드를 버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완전히 터무니없지 않은 소리로 들리게 한 것도 그녀 - 비록 부정하며 호색적이긴 했지만 - 입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옮김, 도서출판 예문





 
2019-04-10
20세기 후반의 페미니즘까지 고려해도 인간사를 통틀어 남자들의 집단 결속력만큼 가히 막강한 영향력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
남성 집단의 결속은 통제력과 남성 간 경쟁에 전념하는 과정, 즉 억압과 호르몬에 사로잡힌 지배욕에 몰두함으로써 파생된다.
그야말로 놀라운 반전이다. 개인 간 경쟁이라는 파괴적이고 무법적인 에너지와 남을 이기려는 야망이 집단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으로 바뀌며 다소 건설적인 사회적 사업에 힘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집단은 폐쇄적이며 외부인들을 '타인'으로 상정한다.
그들은 제일 먼저 여성들을 배제한다. 그 다음에는 남성들 중에 연령대가 다르거나 성향이 다르거나, 계급 혹은 민족이 다르거나 성취한 업적의 수준이 차이가 나는 이들을 배제한다. 이러한 배척은 그들만의 내부적 담합과 영향력을 강화하게 된다. 어떤 위협을 감지하면 그 '형제애'로 똘똘 뭉쳐 침범할 수 없는 결속을 보여준다.
남성의 담합은 아주 오래된 대부분의 사회적 기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정부, 군대, 교회, 대학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회사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위계적이고 유기적이며 통합적이고도 영속적인 기관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며 권세를 누려왔고 사람들 사이에 거의 보편적으로 통용되기에 이르러 대개 '시국', '세계', '분업', '역사', '신의 뜻'이라는 말만으로 그 존재와 세력을 일컫게 되었다.
...
20세기 후반의 페미니즘을 회상해 보면 여성 결속력의 전형이었다. 나서서 이끄는 사람이 없어도 각자 할 일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게급이 없고 포괄적이며 융통성 있고 서로 협력하고 조직화되지 않은 임시적 단체를 만들려던 당시의 시도는 더 나은 균형을 가진 젠더 간의 연합을 창조해냈다.

3장 이해하려 애쓰기
남자들의 단합, 여자들의 연대 2010년 11월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K. 르귄

작가가 80대에 블로그에 쓴
단편적인 글을 모은 책이다.


나는 요 며칠
서울아트시네마 관련된 이야기(프로그래머 관련)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글들이 눈에 들어온다.



 
2019-04-02


나이를 먹고부터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다.'라는 말에 믿음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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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90세가 되어서 스스로 45세가로 믿는다면 욕조에서 나오려고 애쓰느라 고역을 치르게 될 것이다. 심지어 내가 70을 먹고도 40이라 믿으면 자신을 기만하다 십중팔구 끔찍한 멍청이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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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70 넘은 사람이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다.'라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저 말은 더 젊은 사람들이 용기를 북돋우려고 혼잣말을 하거나 서로 주고받는 말이다. 실제로 나이 든 사람에게 저 말을 할 때면 얼마나 아둔하고 진인한 짓인지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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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노년은 나약한 자들의 것이 아니다.'라는 포스터가 있다. 아마 그 문구도 그 포스터에서 비롯했겠지 싶다. 70대 남녀의 모습이 들어간 광고인데 공군에서 독수리 형상이라고 부르던 자세로 선 채, 꽥 끼는 최소한의 의복만을 걸친 포스터 속 두 사람의 몸이 아주 탄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막 마라톤을 완주하고 와선 숨도 몰아쉬지 않으면서 7킬로그램이 넘는 역기를 들어가며 휴식을 취하는 모양새다. '우리를 봐라.'고 그들은 말한다. '노년은 나약한 자들의 것이 아니다.'
날 봐라 나는 그들에게 호통을 친다. 난 뛰지도 못하고, 역기도 못 들고, 꽉 끼는 천 조각을 걸친 내 모습이라면 상상만 해도 여러모로 질겁한다. 나는 나약한 여자다. 항상 그랬다. 당신네 운동 선수들이 뭔데 노년이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가?
노년은 누구든 거기까지 이르는 자의 것이다. 전사들도 늙는다. 나약한 이들도 늙는다. 사실상 개연성으로 따지면 전사들보다 더 많은 나약한 이들이 늙어가게 된다. 노년은 건강하고, 강인하고, 거칠고, 용감무쌍하고, 병들고, 허약하고, 겁이 많고, 무능한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아침 식사 전에 항상 16킬로미터를 달리는 사람들, 휠체어에 앉아 살아가는 사람들, <런던 타임스> 십자말풀이를 10분 내에 푸는 사람들, 현 대통령이 누군지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의. 노년은 신체 단련이나 용기의 문제라기보다 장수라는 운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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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에 대한 보상이 있다면 결코 신체적인 기량 측면은 아니다. 때문에 그런 것을 강조하는 문구나 포스터는 나를 아주 성가시게 한다. 나약한 이들을 모욕할뿐더라 요점을 빗나가 있다.
등이 구부정하고 관절염에 걸린 손에 연륜의 더께가 쌓인 얼굴을 한 두 노인이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 진지하고도 속깊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터라면 좋겠다. 문구는 이렇게 써야겠지. '노년은 젊은이들의 것이 아니다.'

1장 여든을 넘기며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K. 르 귄, 진서희 옮김, 황금가지



 
2019-03-28
피피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제 나는 피피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 피피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피피의 부모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피피를 잃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피피에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피피가 지금까지 겪지 않았고 앞으로도 겪지 않아야 할 그 모든 일을 지금, 누가, 겪고 있는지.  p45

누가 아젠다를 결정하는가. 무엇이 중하고 경한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시 되는 가치 때문에 희생되는 타자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그것을 결정했던 사람들이 교묘한 방식으로 약자를 배제해온 사람들은 아니었는가. 모든 사람이 획일적인 사안, 획일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믿음이 전체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p50

자신과 타자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강자와 약자, 권력과 착취, 차별과 평등, 폭력과 고통처럼 버성긴 단어에 대해 자기 나름의 해석을 시도하는 일인지 모른다.  p51

모든 타자가 내게 특별해진 존재만큼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그 깨달음과 일치되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감상주의를 넘어서야 했고 내 안의 도덕적 한계를 재설정해야 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튀어나오는 자기 모순을 당혹감에 휩싸여 응시해야 했다.
동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이 모슨에 대해 공격적인 질문을 받는다. "개, 고걍이를 먹지 말자고? 소, 돼지, 닭은?" "모피를 입지 말자고? 가죽 신발과 가죽 가방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쓰자고? 동물실험을 한 의약품은?" 그리고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나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중요한 선택을 한 사람들, 생명윤리에 있어 엄격한 생활을 하는 실천주의자들(나는 아니다)은 극단적인 동물 애호가라는 조롱을 당한다. p52

나는 그 시작점을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어떤 동물에게서, 눈동자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타자에게서, 피피라고 불리는 개별적 존재에게서 찾았다. 어디에선가 시작해야 한다면 나는 여기에서 시작하려 한다.  p54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2019-03-25
미용사 지망생들은 학원에 다니는 동안 200마리 정도의 번식견을 만나고 한번 실습 때마다 네시간에 걸쳐 목욕과 미용을 시켜준다. 이들은 실습 기간만큼은 번식견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번식업자를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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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 문을 열면 개들이 똥오줌 범벅이 된 채 달달 떨고 있어요. 왜 하나같이 이런 꼴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았어요. 어느 날 학원에 좀 일찍 갔는데 건물 앞에 탑차가 서 있더라고요. 아직 케이지를 내리기 전이었고요. 화물차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까 어떤 케이지는 옆으로 누워 있고 어떤 케이지는 뒤집어져 있었어요. 생전 바깥 구경도 못해본 개들이 캄캄한 화물칸 안에서 케이지째 구르고 뒤집히면서 왔으니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겠어요. 겁에 질려 똥오줌을 싸고 그걸 서로 묻히고 그랬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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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실습한 개는 시추였어요, 피부병에 걸려서 진물이 줄줄 흐르던. 본격적인 미용을 배우기 전이라 목욕만 시켰어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면 목욕 정도는 다시킬 줄 알지만 학원에서 가르치는 건 달라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메뉴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순서도 있고 시간제한도 있어요. 숙련되지 않은 초보자는 순서 되새기랴 시간 확인하랴 정신이 없어요.
저도 마음은 급하고 손은 서툴렀어요. 번식장 개들은 대부분 겁이 많고 얌전해요. 그 시추도 그랬어요. 싫은 티도 못 내고 달달 떨기만 했어요.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요. 원장이 왔다 갔다 하면서 오분 남았다, 삼분 남았다, 압박하는데 눈물을 훔칠 새도 없어서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된 채 손만 빨리빨리 움직였어요. 그게 제 첫 실습이었어요.
...
펫숍의 쇼윈도 속에 있는 강아지들 정말 귀엽고 예쁘죠. 하지만 그 강아지들의 부모들은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번시장 개들은 피부병을 기본으로 다 갖고 있어요. 상태가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 그 차이 뿐이죠. 피부병이라고  하면 피부가 좀 안 좋나보다, 하면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보통 사람들은 피부병이라는 말에서 몸 전체가 딱딱한 각질로 뒤덮여서 이게 개인지 거북인지 구분도 안 되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해요. 온몸에서 피고름을 줄줄 쏟아내는 상태를 상상하지도 못하고요. 이건 그야말로 미치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이에요.
그뿐이겠어요? 유산할 때 쏟은 핏덩어리가 털 뭉치와 엉켜서 2차 감염이 된 모견도 흔하고요, 장모견은 털로 갑옷을 두른 것 같은 몰골의 개들도 많아요. 그 털 뭉치 안에서 별의별 게 다 나와요. 구더기나 벌레는 당연하거요, 이게 왜 털 속에 들어가 있을까 싶은 것들, 예를 들면 기계 부품 같은 것. 왜 번식장 케이지에 그런 게 있을까요? 엉킨 털이 철창에 끼어서 꼼짝달싹 못하는 개들도 종종 봤어요. 우리가 발견하면 바로 빼주지만 번식자에선 누가 제때 그 개들을 빼주겠어요.
동료가 털 갑옷을 두른 모견 한마리를 미용한 적이 있었대요. 그런데 클리퍼가 털 속의 뭔가에 걸리는 거예요. 그게 뭐였는지 알아요?
주사기요, 수액 넣을 때 쓰는 주사기. 언제 꽂았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거였어요. 플라스틱 겉통은 털이랑 뒤엉켜 있고, 바늘은 다 녹슬어 있고, 바늘 주변의 피부는 곪아서 썩어문드러져 있고. 어쩌면 그렇게 내버려둘 수 있는 거죠?
...완전히 무뎌져버린 시기에 그 몰티즈를 만났어요. 모견이었는데 미용도 할 수 없었어요. 피부병으로 털이 한올도 남아있지 않았거든요. 맨살이 다 드러나 있는데 그조차도 딱지로 뒤덮여서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어요. 약물목욕이라도 시켜주려고 따뜻한 물에 넣었더니 딱지가 훌렁훌렁 벗져기면서 피고름이 줄줄 흐르더라고요. 특정 부위가 아니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요. 도무지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 모견은 이미 삶을 포기한 상태였어요. 내가 자기를 들어올리든 물속에 집어넣든 아무 반응도 없었어요. 온뭄이 축 처진 채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있기만 했어요. 숨만 붙어 있을 뿐 어떤 움직임도, 최소한의 반응도 없었어요. 시체를 만지는 기분이었어요. 더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나도 명확하게 느껴졌어요. 아, 개도, 동물도 극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고 싶어하는구나, 사람이라면 벌써 자살했을 거예요.
애견 미용사(애견 미용사 김명진씨)

-2. 새끼 빼는 기계들



 
2019-03-25



동물에 대한 연민을 낮잡아보는 사람들이 많잖아. 우리가 구하는 게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이유로, 응원은 고사하고 비난을 받을 때도 있잖아. 나도 인터넷에서 그런 댓글 많이 봐. 개새끼들 도와줄 여력 있으면 사람이나 도와주라고. 불쌍한 사람도 많은데 개새끼가 대수냐고.
하지만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군가를 위해 자기 인생을 걸어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 여기 돕지 말고 저기 도와라, 얘를 구하지 말고 쟤를 구해라, 그런 소리는 누구도 구해본 적 없고 누구도 살려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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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뭐냐. 풍종견은 생산업을 규제하는 쪽으로 가야 하잖아. 믹스견의 핵심은 개식용이야. 시골은 집집마다 개를, 주로 혼종 발바리나 혼종 중대형견을 키우잖아. 그 사람들에게 개는 마당에 묶여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이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개식용 문화가 있기 때문에 키우는 거야. 붙박이로 묶어놨든 유기견마냥 풀어놨든, 짬밥 처리용으로 대충 키우다가 복날 되면 개장수한테 팔아서 노인네들 담뱃값 하는 거야.
(사설 보호소 '행강집' 및 동물보호단체 '행강'의 박운선 대표)
-3. 죄 없는 사형수와 무기수들

동시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식용 개농장이 있는 나라다.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시스템을 통해 식용 개를 조직적으로 사육하고 유통한다. 다른 개식용 나라의 개들이 잡힌 순간부터 수난을 겪는다면 한국 개농장 개들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가지 고통의 연속이다. 내가 만난 개농장 주인 김씨처럼 모든 개농장이 모견을 두고 교배시킨다. 모견은 출산 능력이 있는 동안은 죽음을 면하지만 새끼들이 도륙당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지켜보며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 물론 모견도 출산 능력이 떨어지면 도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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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동물이 당하는 이 모든 일은 축산 체계에 들어간 동물은 생명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살아 있을 때도 고깃덩어리와 똑같이 취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동물에게 행했다면 동물학대로 지탄받을 행위를 우리가 농장동물에게만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농장동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한 돼지 농장에 화재가 나서 수천마리의 돼지가 감금틀에 갇혀 산 채로 불타 죽었을 때도 기사 아래에는 이런 댓글이 수없이 달려 있었다.
"통돼지구이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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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 전통 문화라고 주장하는 개식용은 오늘날 쓸모없어진 개들을 처리하는 일종의 "하수처리"다. 번식을 못하는 번식견, 일 미터 길이의 줄에 묶여 잔반을 처리하던 마당 개, 한때는 반려견이었으나 이제는 길거리를 떠도는 유기견... 늙고 아프고 버림받고 쓸모없어진 이 모든 개들이 하수처리장으로, 도살장으로, 흘러간다. 개들을 죽음의 링 위에 올려놓고 돈내기를 하는 불법 투견도 대부분 개농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싸움에서 진 투견이 마지막으로 끌려가는 곳도 보신탕집이다. 오늘날의 개식용을 문화적 화두로 다루기 전에 도덕적 화두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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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식용과 관련한 한국 동물보호단체의 역사는 패배의 역사예요. 이제는 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요. 오늘 재판 결과도 그렇지만 기존의 동물보호법 안에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어. 문제는 여론이 형성되어야 입법으로 가는데, 자기는 개를 안 먹지만 남이 먹는 건 존중한다는, 그게 똘레랑스고 다양성이고 멋진 건 줄 아는 사람들이 태반이잖아. 키우던 개를 유기하는 사람은 비난하면서, 기우던 개를 개장수나 도살자한테 팔아넘기는 사람은 비난하지 않잖아.
어떤 사람들은 반려견, 유기견, 식용견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죠. 내가 가장 나중에 입양한 순돌이는 유기견이었던 동시에 식용개가 될 뻔했던 애예요. 구리시의 한 동네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가족들이 순돌이만 버리고 이사를 갔는데, 동네 남자들이 혼자 남은 애를 잡아먹으려고 올무를 설치한 거야. 순돌이 허리가 올무에 걸렸는데 그 안에서 살아보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허리는 거의 잘릴 지경이 되고 생식기는 표피가 다 벗겨져서 시뻘건 살덩이만 남아 있었어요. 그런 상태로 혼자 헤매다가 이번엔 차에 치여서 뒷다리가 다 부서졌어. 구조 후엔 결국 다리를 절단했어요. 허리가 끊어지는 것을 무릅쓰고라도 탈출하지 못했다면 얘는 어디 야산에서 목매달린 채 맞아 죽었겠지.
순돌이만이 아니에요 우리 집에 있는 다른 애들도 비슷해요. 시추 순심이는 주인이 있었지만 개소죽집으로 념겨지기 직전에 구조되었고, 믹스견 럭키는 동작대료 밑에 버려진 뒤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사람들로부터 숱하게 도망 다녀야 했어요. 백구인 흰돌이 흰순이는 처음부터 식용견으로 태어났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그러죠. "소는? 돼지는? 닭은?"
(팅커벨 프로젝트' 황동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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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평등을 말할 것인가'이다. 앞서 '헛된 기대들'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살아 있는 동물일 때도 고깃덩어리로 취급받는 농장동물들의 삶과 죽음은 어떤 동물보다 비참하고 끔찍히다. 그런데도 왜 누군가는 줄기차게 농장동물의 고통을 기준으로 평등을 말할까? 모든 동물을 똑같이 최악의 상태로 만들고 똑같은 잔인함으로 대하는 게 평등의 가치에 부합할까?
우리는 인간의 평등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최악의 처지에 놓인 누간가를 기준으로 삼아 모든 사람의 권리와 복지를 빼앗는 것이  평등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평등이란 말은 우월주의와 중심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쓰일 때 가치를 지닌다.
누군가가가 모든 동물을 평등하다고 전제한 뒤 이세상에는 '더 고통받는 동물'과 '덜 고통받는 동물'이 있다고, 그러므로 모든 동물을 '더 고통받는 동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평등은 아무 가치도 없다. 그것은 모든 동물을 고통의 수레바퀴에 밀어넣으려는 궤변일 뿐이다.
진심으로 농장동물의 고통을 우려한다면 평등을 위해 새로운 동물을 축산 체계에 포함하자고 말할 수 없다. 그 대신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육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이미 축산 체계에 들어와 있는 동물의 복지를 실현함으로써 농장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자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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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육이 아닌 이상, 먹는 것 가지고 뭐라 하면 불쾌해합니다. 저도 압니다. 음식은 복잡한 문제입니다. 문화, 습관, 그것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과의 기억, 그밖에도 많은 것이 들러붙어 있지요.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모든 동물을 먹어도 된다, 사람만 안 먹으면 된다, 이런 생각도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게 인간 말고는 다 잡아 죽이자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그게 다른 종을 대하는 우리의 도덕입니까? 인간은, 우리는, 그래도 되는 걸까요?
(사진작가 - 전 아트디렉터 및 사진작가 윤택상)
- 4. 쓸모없어진 존재들의 하수처리장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하재영, 창비




 
2019-03-14


장미빌라는 낮은 언덕을 깎아 만든 절벽 위에 지어졌다. 멀리서는 밋밋한 직육면체 형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십자 구조로 되어 있다. 지하와 옥탑을 합해 6층. 대략 30여 가구가 산다. 언젠가 녹슨 우편함 개수를 세어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내 발소리가 너무 크다고, 아래층에서 두 번이나 찾아온 총각을 빼고, 이웃을 만난 적은 거의 없다. 일상의 부스러기처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작은 단서로만 각 세대의 사정을 짐작해볼 따름이다. 한번은 아래층에서 이상한 기척이 들려온 적이 있다. 한밤중 경상도 사내가 뭐라뭐라 중얼대는 소리였다. 정신을 집중한 끝에 그가 누군가를 때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직하고 야비한 음성. 철썩, 툭, 퍽 하는 울림. 사내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로 뭔가 반문하고 다그치고 빈정대길 반복했다. 술에 취했거나 분노에 찬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충분한 여유를 갖고 상대를 괴롭히고 있었다. 어깨를 움츠린 채 창가로 가 동정을 살폈다. 밖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을 들어 몸을 기울였다. 4차선 도로의 소음이 사내으 ㅣ말을 자꾸 잡아먹었다. 남편을 깨울까 하다 그만두었다. 정확히 몇 호에서 나는 소린지 알 수 없었고, 괜한 낭패를 당할지 몰라서였다. 사내으 ㅣ웅얼거림은 한 시간가량 계속됐다. 맞는 쪽에서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신음, 단 한 번의 비명, 흐느낌조차 없었다. 마치 그곳에 없는 사람처럼. 애초에 없던 사람인 양. 이부자리로 돌아가 남편 뒤에 달라붙었다. 남편에게서 익숙하고 달콤한 땀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체취에 집중했고, 사내의 목소리가 멎어들 즈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런 일은 아주 가끔 일어났다. 보통 장미빌라를 맴도는 공기는, 저녁 무렵 생선 굽는 냄새나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있는 날 한꺼번에 '와아'하고 터져 나오는 함성, 창가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화분의 고요, 옆집 아기의 울믐과 택배가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는 경쾌한 초인종 소리 같은 것이다. 물론 최근에도 이곳 지하에서 비명이 새어 나온 적이 있다. 새벽 1시쯤이었을까. 누군가 갑자기 악- 하고 절규했다. 억울한 게 있는지 분에 못 이겨 혼자 내지르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는데, 그 뒤로 아무 기척이 나지 않았다. 그는 그날 4시쯤 다시 악, 악, 아악- 하고 연달아 세 번 발악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 중 '벌레들'
문학과 지성사



 
2019-03-13
한국 소설을 많이 읽는다.
여성 작가들이 쓴 소설이 많이 나오고
그 책들이 좋아서 좋다.
외국 소설을 읽을 때는 그렇지 않은데
우리말로 쓰인 한국 소설을 읽을 때는
소설을 쓰는 것에 형태가 불분명하고 격한 감정이 휘몰아친다.
너무 좋다, 이런 것을 쓸 수 있어서 좋겠다, 나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림 없는 글이 가지는 묘사와 힘.
질투와, 나도! 라는 마음이 휘몰아치다가
이제는 잦아들었다.
여전히 한국 소설을 읽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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