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8-04-17
잠시 뒤 세라의 숨이 고르고 느려졌고, 나는 다시 세라에게서 몸을 뗐다. 등을 대고 누워 어두운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누워 바람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눈을 감자마자 무슨 소리가 들렸다. 아니, 계속 들리던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바람은 여전히 불었고, 나는 처마 아래로 그 소리와 집밖 전선이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었고,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누워서 좀더 귀를 기울이다가 일어나 거실로 가 창문을 통해 레스토랑을 보았다. 빠르게 흐르는 구름 사이로 달 가장자리가 보였다.
나는 창가에 서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아내려 애썼다. 나는 반짝이는 바다와 어두운 레스토랑 뒤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이상한 정적의 원인을 깨달았다. 레스토랑의 발전기가 거진 것이다. 나는 잠시 그곳에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피트에게 전화를 해야 할지 생각했다. 어쩌면 잠시 뒤에 저절로 고쳐져 다시 스위치가 켜질지도 몰랐지만,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보고싶으신가요?'

아무도 소방관이나 집 가까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뒤로 물러섰고, 닉은 점점 긴장되는 걸 느꼈다. 누군가 외쳤다. "오, 맙소사, 맙소사."
"저것 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닉은 열심히 불을 바라보고 있는 조앤 옆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조앤의 이마 쪽 머리털을 축축해 보였다. 그는  조앤을 껴안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날 아침에만 적어도 세 번은 그렇게 조앤을 껴안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닉은 로버트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고, 로버트가 집이 아닌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로버트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굳어 있었다. 마치 이 모든 일 - 방화, 구금, 배반, 간통, 확립된 질서의 전복 - 이 닉의 탓이며 그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닉은 조앤에게 팔을 두른 채 로버트를 쏘아 보았다. 마침내 로버트의 얼굴에서 붉은 기가 가셧다. 로버트는 눈을 내리깔았다. 다시 시선을 들었을 때 로버트는 닉을 보지 않았다. 로버트는 마치 아내를 보호하려는 듯, 캐럴에게 다가갔다.
닉과 조앤은 불을 바라보며 계속 서로를 안고 있었지만 조엘이 멍하니 닉의 어깨를 두드리자 닉은 가끔씩 느끼던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조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생각 해?" 닉이 조앤에게 물었다.
"빌을 생각했어." 조앤이 말했다.
닉은 계속 조앤을 껴안고 있었다. 조앤은 잠시 아무 말고 하지 않다가, 말했다. "있지, 난 때때로 빌을 생각해. 어쨌든 내 첫사랑이었으니까."
닉은 여전히 조앤을 껴안고 있었다. 조앤은 닉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불타오르는 집을 계속 지켜보았다."
'방화'

하지만 그날 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한 뒤 내가 벽난로에 불을 지피는데, 낸시가 고개를 젓더니 소용없을 거라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해? 무슨 뜻이야?" 내가 물었다.
"소용없을 거라고. 현실을 직시해." 낸시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내일 아침에 낚시하러 가기도 싫고 개도 원하지 않아. 싫어. 개를 원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어머니와 리처드를 만나라 가는 거야. 나 환자서. 혼자 있고 싶어. 리처드가 보고 싶어." 낸시가 말하고 울기 시작했다. "리처드는 내 아들이야. 내 아기." 낸시가 말했다. "그리고 이제 거의 다 커서 떠났어. 그애가 보고 싶어."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가 죽은 뒤 발견 된 단편들.



 
2018-04-14
내 삶과 글에 직간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유일한 것은 두 아이임을 인정해야겠다. 둘은 내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태어났고, 나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기 시작해서 독립할 때까지 거의 십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내 삶 곳곳에 막대하고 종종 해롭기가지 한 영향을 미쳤다.
...
1960년대 중반 나는 아이오와시티에 살았고, 어느 날 빨래방에서 세탁기를 쓰느라 바빴다. 대여섯 번 정도 돌려야 할 분량이었는데, 대부분은 아이들 옷이었지만 물론 아내와 내 옷도 포함되어 있었다. 토요일 오후였고, 아내는 대학 스포츠클럽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허드렛일과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날 오후,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아무도 친구 생일파티나 뭐 그런 비슷한 게 있었던 듯하다. 어쨌든 그 시간에 나는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미 내가 써야 하는 세탁기의 수를 놓고 인정머리 없는 노파와 한바탕 설전을 벌인 뒤였다. 이제 나는 그 노파, 또는 비슷한 다른 누군가와의 다음 말다툼을 대비하고 있었다. 나는 붐비는 빨래방에서 작동중인 건조기들을 초조한 마음으로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건조기 가운데 하나가 멈추는 순간, 축축한 옷이 담긴 쇼핑 바구니를 가지고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갈 참이었다. 이해하시길. 나는 그 빨래방에서 옷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삼십 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건조기를 놓쳤다 다른 누가 먼저 그리로 간 것이다. 나는 점점 필사적이 되어갔다. 말했듯이,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날 오후 어디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늦었고, 그 때문에 내 심리 상태가 그랬을 수도 있다. 난 건조기에 옷을 넣는다 할지라도 옷이 마르고 그걸 바구니에 담아 기혼자 학생용 아파트로 돌아갈 때까지 한 시간 정도 더 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건조기 안에 든 옷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삼십 초 정도 기다렸다가 아무도 그 것을 가지러 오지 않으면 나는 건조기 안에 든 옷을 꺼내놓고 내 옷을 넣을 생각이었다. 그게 빨래방의 규칙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떤 여자가 건조기로 오더니 문을 열었다. 나는 거기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는 건조기 안에 손을 넣더니 옷을 몇 개 꺼냈다. 하지만 충분히 마르지 않았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녀는 무을 닫고 건조기에 10센트짜리 주화 두 개를 더 넣었다. 나는 정신이 멍해지면서 쇼핑 카트를 가지고 다시 물러나 기다렸다. 하지만 그 순간 거의 눈물이 날 정도로 무기력하고 당혹스러운 느낌 속에서도 그때까지 이 세상에서 내게 있었던 그 어떤 일도, 정말로 그 어떤 일도 내게 두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큼 중요하지 않으며 큰 변화를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게는 늘 그 두아이가 있을 거고, 나는 늘 이렇게 답답한 책임감과 끝없는 불안 속에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 그 순간 - 맹세하건대, 이 모든 일이 그 빨래방에서 일어났다 - 나는 앞으로도 이런 책임과 당혹스러움 속에서 살아야 할 뿐 별다른 변화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상황이 변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더 좋아지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그 사실을 알았지만, 내가 그걸 감내하고 살 수 있을까? 그 순간 나는 조정이 필요함을 알았다. 눈높이를 낮춰야 할 터였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내게는 통찰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통찰력이 뭐? 통찰력은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통찰력이 있으면 삶이 더 고달파질 뿐이다.
...
아내와 내가 신성하게 또는 가치 있게 여겼던 관점, 모든 정신적 가치들이 시간이 흐르며 부서져갔다. 우리에게 뭔가 끔찍한 일이 얼어났다. 다른 가족들에게서는 일어나는 걸 본 적이 없는 뭔가였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부식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우리가 보고 있지 않던 사이,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이 운전석에 앉은 것이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아이들이 고비와 채찍을 잡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던 것과 같은 일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
거의 이십 년 동안, 나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글을 썼다. 물론 좋은 시기도 있었다. 오직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성숙한 기쁨과 만족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독약을 먹겠다.
이제 내 삶의 상황은 예전과 많이 다르지만, 이제는 내가 원해서 단편 소설과 시를 쓴다. 아니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과거 그 시절부터 몸에 익은 오래된 습관의 결과일 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는 뭔가를,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으며, 갑자기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 혹은 왜 아직 저녁식사가 준비되지 않았는지 아이가 따지며 물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아직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뭔가를 배웠다. 내가 배운 것 가운데 하나는 굽히지 않으면 부러진다는 점이다. 또한 나는 굽히고 동시에 부러지는 게 가능하다는 것도 배웠다.

'정열'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레이먼드 카버,
에 실린 에세이  


'정열'은 자신의 인생(글쓰기)에 영향을 미친 것들에 대한 짧은 에세이인데,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2018-04-13
1960년대 중반 나는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것 자체가 내겐 버거운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동안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내게서 집중력은 사라져버렸다. 더는 장편소설을 쓸 만큼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지만, 여기서 털어놓기에는 너무 지루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내가 이제 시와 단편들만을 쓰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시작하고, 끝낸다. 어슬렁거리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간다. 그건 그 무렵, 그러니까 내가 이십대 후반이던 때에 원대한 야심을 전부 잃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발전하기 위해 야심과 작은 행운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너무 큰 야심과 불운, 또는 운이 전혀 없다면, 그건 치명적이다. 물론 재능은 있어야 한다.
...
이사크 디네센은, 자신은 날마다 희망도 절망도 하지 않고 조금씩 써나간다고 했다. 언젠가 나는 가로 3인치, 세로 5인치짜리 카드에 그 말을 적어 내 책상 옆 벽에 붙여놓을 생각이다.

'글쓰기에 대해'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레이먼드 카버, 최용준 옮김, 문학동네



 
2018-04-06

예전에 사두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미발표 단편소설과 에세이들을 모은 책.

'레이의 새로운 작품들에 대한 이 발견은 그가 생전에 출간했던 작품들과 관계가 없으면서도 관계가 있다. 이 발견은 그것을 바랐던 이들에게 가치가 있다. 어떤 작가를 사랑하면 그 작가으 ㅣ글을 계속해 읽고 싶어지고, 그 작가가 쓴 모든 글들, 탁월한 것, 뜻밖의 것, 심지어 미완성작까지 읽고 싶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서문, 테스 갤러거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Call If You Need Me>
레이먼드 카버, 최용준 옮김, 문학동네



 
2018-04-06

이제 그때를 돌아보면 당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누구인지, 교사나 외부인들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몇 가지 알고 있긴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나이였던 것 같다. 우리 같은 존재라면 누구든 유년의 어떤 시기에 그날 우리가 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세부는 다르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느끼는 감정은 흡하산 그런 경험 말이다. 그러니까 교사들이 우리를 잘 준비시키기 위해 아무리 애썼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모든 이야기와 비디오, 토론, 경고들도 핵심에서 빗나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덟 살 나이에 헤일셤 같은 곳에서 모여 산다면 그런 일에 대비가 되어 있을 수 없다. 우리를 가르치던 그런 선생님들을 만났다면, 정원사와 배달부들에게서 귀염둥이'라고 불리며 함께 농담을 하고 웃음을 터뜨리곤 하던 그런 곳에서 살았다면 말이다.
어쨌든 그런 가르침 중 일부는 우리의 내면 어디엔가 침투한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그런 경험에 직면했을 즈음 우리의 일부는 어느 정도 그런 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대여섯 살 무렵의 어린 시절부터 어떤 목소리가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될 거야.'하고 속삭여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가 들ㄴ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저 바깥세상에는 마담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지도 않고 해를 끼치려 하지도 않지만 우리 같은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고 우리의 손이 자기들의 손에 스칠까 봐 겁에 질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자신을 그런 이들의 관점에서 처음으로 일별하는 순간의 느낌은 정말이지 등줄기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것 같았다. 매일 걸어 지나가며 비쳐 보던 거울에 갑자기 뭔가 다른 것 혼돈스럽고 기괴한 뭔가가 비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를 보내지 마 Never Let Me Go>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민음사



<의외의사실의 세계문학 읽기>가 봄에 나올 예정인데,
이 책 한 편을 추가해서 내기로 했다.
그래서 작업 중.

2018.2.8에.



 
2018-03-29
일제가 조선을 식민 지배한 결과 나는 일본 땅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민족 차별 정책 때문에 충분한 '우리말'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 민족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일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 같은 역사가 나의 '빼어난 일본어 표현'을 가능케 해주었고 끝내 이런 상까지 안겨준 것이라 할진대, 내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에세이스트클럽상 수상 인사말에서 나는 자신을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으로 표현했다. "나는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반대한다. 그 연장선에 위치하고 있는 재일교포들에 대한 일본의 차별정책을 반대한다. 식민 지배의 죄과를 부인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우익의 사상을 반대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모든 것드을 일본으로 사고하고 일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어를 거치지 않는다면 나의 사고며 표현 행위마저도 모두 불가능하다. 또 이런 이유로 나의 글쓰기는 주로 일본인들의 눈에만 띌 뿐이다. 요컨대 '나'라는 존재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인 것이다. 그 감옥 속에서 나는 더 너른 광장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조국의 동포들에게까지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해왔던 것이다.

<소년의 눈물>
저자 서문



 
2018-03-28


<소년의 눈물-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이목 옮김, 돌베개


나는 서경식의 책을,
오래 전 대학 1학년 아니면 2학년 때
미학 관련된 교양 수업 시간에
레포트를 쓰기 위해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저자가 누구인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그 책은 아직 집에 있다.



 
2018-01-18
아무리 한가한 산책이라도 반드시 행선지를 정하는 게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나는 거리 산책을 하려고 코벤트 가든의 숙소를 나서기 전에 과제를 정한다. 그리고 도중에 행선지를 바꾼다든가 끝까지 가지 않고 되돌아오는 것은 누군가와 맺은 합의를 부당하게 어기는 것으로 간주한다. 한번은 라임하우스까지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이처럼 일종의 의무감을 갖고 맹세한 굳은 신념에 따라, 나 자신과 약속한 대로 정확히 정오에 출발했다.

아마추어 순찰기
<밤 산책> 찰스 디킨스




 
2018-01-15

<걷기의 인문학>에서 연결된 책 두 권.
<밤 산책> 찰스 디킨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장 자크 루소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 시리즈




 
2018-01-14
나는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사소하지만 이런 우울한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길을 걷는데 거리의 돌멩이 하나하나가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아저씨, 이 길을 돌아가보세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기분도 달랠 겸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아무 생각에나 빠져들려고 했지만, 과연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 머릿속은 온통 빈민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수천 명 대신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빈민 한 명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저, 실례합니다. 선생님." 한번은 그가 무너가 은밀히 할 말이 잇는 듯 나를 한 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말을 꺼냈다. "저도 한때는 잘나갔습니다."
"그거 안됐군요."
"선생님, 구빈원 원장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는데, 난 그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선생님, 한때 잘나갔던 제가 선생님과 이렇게 단 둘이 있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실은 원장과 저는 둘 다 프리메이슨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데, 제 처지가 이렇게 형편없다 보니 그쪽에서 제 수신호에 절대로 응답을 안해주지 뭡니까!"
-와핑 노역소

런던 동쪽, 불결한 강과 인접한 래트클리프와 스테프니의 경계 지역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11월이면 영락없이 <죽음의 춤>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도로와 공터, 허름한 집들이 미로처럼 얽히고설켰다가 한 칸짜리 집들에서 끝이 났다. 불결함과 넝마와 굶주림이 난무하는 이 질퍽질퍽한 진흙탕 동네에는 일자리를 잃었거나 어쩌다 드물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 어쨌든 숙련된 기술자들은 아니었다. 부두 노동자, 강변 노동자,석탄 운반꾼, 바닥짐 싣는 인부, 장작을 패거나 물 긷는 허드레일꾼까지 한낱 막일꾼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이 세상에 생겨나서 비참한 자신들 종족을 번식시켰다.
...
"방금 뭐라고 했죠?"
"납 때문이라고요. 납 공장 때문인 게 틀림없어요. 저 여자는 일당 십팔 펜스를 받고 거기에서 일했거든요. 그것도 일찌감치 신청을 하고, 운이 좋아서 그쪽에서 사람이 필요할 때만 일할 수 있죠. 그런데 납에 중독된 거예요. 어떤 사람은 쉽게 중독되고, 어떤 사람은 조금 늦게 중독되지만 결국 대부분 중독이 되고 말죠 모두 체질에 달려 있어요. 강한 체질도 있고 약한 체질도 있죠. 저 여자는 쉽게 중독되는 체질인 데다 상태가 아주 심각해요. 귀로 뇌가 흘러나오고 있어서 여간 괴롭지 않나 봐요. 그래서 저런 거예요. 더도 덜도 아니고 그것 때문이에요. 선생님."
...
그때 여주인의 결혼한 딸이 위층 자기 방에서 내려와서 대화에 끼었다. 그녀 역시 그날 아침 일찍 '간택'되기를 바라고 납 공장에 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네 명의 아이가 있었고, 부두 노동자인 남편 역시 일거리를 찾으러 나갔는데, 장인보다 형편이 나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영국 태생답게 몸매가 풍만하고 성격이 명랑했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옷차림은 허름했지만 나름대로 단정하게 보이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그녀는 불쌍한 병자의 고통 뿐만 아니라, 납 중독의 증상이라든가 어떤 식으로 악화되는지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런 경우를 자주 보기 때문이었다. 그녀 말로는 공장 안에서 냄새를 많이 맡으면 쓰러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배곯는 자식들을 보느니, 일당 18펜스를 위해 계속 그 일을 하다가 피부가 헐고 몸이 마비되는 편이 나았다.
...
나는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한동안 다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이들을 볼 때면 비참한 어른들을 볼 때와 달리 마음을 다잡지 않고선 견디기 힘들었다.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굶주렸으면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과묵할까. 나는 동굴 같은 집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 아이들은 분노도 느끼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할수록 나 자신이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동쪽의 작은 별
찰스 디킨스 <밤 산책>


저널리스트였던 찰스 디킨스의
르포 같은 장들.
사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어렸을 때 요약된 문고판으로 읽은 것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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