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8-12-09

...그리고 그 외 모든 것. 바닥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는 특히 더 완벽한 핥기 대상이다. 이것은 매우 흥미롭다. 핥기, 즉 다른 사물에 대해 안전한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분자를 자신 몸속에 직접 들여오는 행위는 극도로 친밀한 제스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가 친밀하게 굴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의도했든 아니든 세상과 그렇게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과 환경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즉 자신의 피부나 털이 바닥과 닿는 지점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사이에 방어벽을 덜 세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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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개가 서로를 만질 수 있게 놔두어라! 그들은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통해 처음 보는 개나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들이 서로 털을 부비고, 깊이 냄새 맡고, 핥게 해주어라.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채 악수나 하는 것은 개의 방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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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집안에 있는 방이란 그들과 함께 공존하지만 서로 관련이 없으며, 단순히 조용히 냄새만 쌓이는 공간, 여러 가지 물체와 샘새가 나오는 비옥한 공간(벽장, 창문), 그리고 당신이나 당신 냄새가 발견될 수 있는 공간 같은 것으로 구성된 곳이다.
그러나 우리 눈에 무엇이 보이든, 바로 그 순간 일어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든 개는 분명 무언가 우리와 다른 것을 보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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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감각 능력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시각적 세상의 일부에 주의를 기울이고,우리가 맡지 못하는 냄새를 맡고, 우리가 흘려듣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고 개가 모든 것을 보거나 듣는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알아챌 수있다. 예를 들어 개는 우리처럼 다양한 색상을 볼 수 없는 대신 명도 차이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깊은 물을 꺼리거나 어두운 방에 들어가기를 겁내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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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지 못하는 개는 인간의 말에 담긴 운율과 목소리의 긴장감, 감탄사에 들어있는 풍부한 감정 같은 것을 더욱 세세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또한 말소리에 포함된 급작스러운 변화, 즉 고함이나 하나의 단어, 심지어는 오래 끄는 침묵도 예민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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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것들에만 집중한다는 것, 즉 각 사건과 사물을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반성과 숙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삶이다. 만약 그렇다면 개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경험하긴 하나 자신의 경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거나 생각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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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리로 따지면 점멸 융합 속도가 우리보다 빠른 개에게 시각적인 순간이란 우리보다 짧고 빠른다. 개의 시간에서 각 순간은 우리보다 짧다. 달리 말하면 다음 순간이 우리보다 빨리 온다는 말이다. 개에게 '지금 당장'은 우리도 모르는 새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개에게 원근, 규모, 거리 같은 것은 어느 정도 후각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냄새는 아주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즉 다른 시간의 척도에서 존재한다. 냄새는 빛이 우리 눈에 도달하는 것처럼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곧 그들의 '냄새-눈'은 우리와 다른 속도로 사물을 본다는 것이다.
...냄새는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기 때문에 냄새가 강함은 새로움을, 약함은 오래되었음을 의미한다. 개는 자기가 나아가는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미래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 '현재'를 보는 개의 후각적 창은 우리의 시각적 창보다 커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광경뿐만 아니라 방금 일어난 것과 곧 다가올 것도 일부 볼 수 있다. 그들의 현재에는 과거의 그림자와 미래의 기운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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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이동하다가 때가 되면 사라진다. 따라서 개에게 세상은 유동적이다. 코앞에서 파도처럼 넘실거리기도 하고 가물거리기도 한다.

9장 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개의 사생활>


 
2018-11-30
두 번째 설명은 첫 번째보다 더욱 중요하다. 인간의 동반자가 될 수 있게 한 바로 그 기술 때문에 개는 이 실험을 비롯해 다른 물리적 인지 과제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었다. 개에게 공을 보여준 뒤 그것을 엎어놓은 두 개의 컵 중 하나 속에 숨긴다. 개가 냄새를 맡을 수 없다고 가정하면 개는 두 개의 컵 중 하나를 무작위로 살펴볼 것이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이라면 이는 합당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컵 하나를 들어서 그 아래 있는 공을 보여준 다음 수색을 계속하게 하면 당연히 개는 그 컵 아래를 먼저 살필 것이다. 하지만 공이 들어 있지 않은 컵을 들어 그 속을 보게 하면 개는 돌연 논리를 모두 잃어버리고 빈 컵 속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개는 자기의 기술에 오히려 당했다고 할 수 있다. 무제를 맞닥뜨리면 영리하게도 개는 우리에게 눈길을 돌린다. 우리 행동은 정보의 출처가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개는 거의 모든 일에 우리 행동이 관련되어 있고, 우리 행동이 때로는 흥미로운 보상이나 먹이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따라서 실험자가 두 번째 칸막이 뒤에 숨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이동을 하면 그 칸막이 뒤에 무언가 흥미로운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험자가 빈 컵을 들어올리면 사람이 그 컵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개도 그 컵에 더 흥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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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개는 표준 지능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훌륭하게 성공해냈다고 믿는다. 개는 과업에 새로운 도구를 사용했다. 우리가 바로 그 도구다. 개는 이 사실을 학습했고, 우리를 훌륭한 만능 도구로 본다. 우리는 개를 보호해주고, 먹이를 주고, 우정을 제공하는 유용한 도구다. 닫힌 문은 열어주고 물그릇이 비면 채워준다. 개의 눈으로 보면 절대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나무에 얽힌 목줄을 빼낼 정도로 똑똑하다. 마술처럼 자기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옮겨줄 수도 있다. 씹을 것과 먹을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기도 한다.

8장 개의 고귀한 마음, 영리한 행동
<개의 사생활>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2018-11-22

코는 주둥이에 붙은 촉촉한 장식품이 아니라 가장 먼저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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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개의 행위는 '같은 콧구멍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인간의 조잡한 냄새 맡기 능력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어떤 대상의 냄새를 정확히 맡고자 하면 우리는 숨을 내쉬지 않고 반복적으로 강하게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하지만 개는 숨을 내쉬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기류를 만드는데 그것이 들숨의 속도를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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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처음 내린 커피 향, 그 환상적인 냄새도 몇 분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만다. 현관문 아래서 무언가 썩어가는 냄새 역시 몇 분 후면 맡을 수 없다. 하지만 개의 냄새 맡는 방식은 그들이 세상의 냄새 지형학에 익숙해지는 것을 피하게 해준다. 즉 개는 마치 그들 시선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모든 향기를 계속 신선한 상태로 콧속에 유지할 수 있다.

3장 개는 모든 사물을 냄새로 본다
<개의 사생활>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2018-11-21
인간의 망막과 비교해 갯과 동물의 망막에는 두 가지 작은 차이가 있다. 광수용세포의 분포와 광수용 세포의 작업 속도다. 광수용 세포의 분포는 개가 먹이를 쫓고 날아간 테니스공을 물어오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며, 거의 모든 색을 구분하지 못하고 코 바로 앞에 있는 사물을 보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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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얼굴 정면에 있는 물체를 불 수는 있지만 우리가 보는 것만큼 초점이 정확하지는 않다. 수정체는 가까운 광원에 맞추어 원근을 조절하지 않는다. 사실 개는 자기 코 앞에 있는 자잘한 것들을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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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눈에 이 형형색색의 세상이 어떻게 비칠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색 체계가 쓸모없어지는 시간대를 한번 상상해보자. 짙은 어둠이 깔리기 직전 하늘에 땅거미가 지고 있다. ... 즉 색을 감지하는 세포 수가 더 적어지고, 따라서 뇌에 신호를 전달하는 세포 수도 더 적다. 가까운 주변 세계는 약간 납작해 보인다. 여전히 어떤 색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빛과 어둠도 인식할 수 있지만 다채로운 색의 향연은 음미하지 못한다. 색들 간의 차이가 줄어들고 선명함도 덜해진다. 개들에게 세상은 이렇게 항상 어둑한 오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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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동작맹을 앓는 사람과 비슷하다. 개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틈새를 본다. 그들에게 우리는 항상 약간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인간은 개보다 세상에 약간 느리게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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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우리가 그들의 시각 세계를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우리 시각 세계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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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시각적 경험에는 마지막 의외의 특성이 하나 있다. 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세한 것들을 본다. 개의 시각이 다른 감각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개에게는 이득이 된다. 개는 세상을 눈으로만 인식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세한 것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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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기억을 더듬어 보라. 공원까지 가는 길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지만 당신의 개가 그 길을 무심히 지나친 적이 있는가 개는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보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 지금 이 순간 눈에 보이는 사소한 것들에 훨씬 관심이 많다.
그렇다면 개는 자신의 시각적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까? 답은 '영리하게'다.
개는 우리를 본다. 개가 우리 세계에 눈을 뜨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우리 세계를 뚫어지게 응시하기 시작한다. 개는 우리 세계를 보지만 우리조차 보지 못하는, 우리와 관련된 것들을 본다. 금방이라도 우리 마음을 꿰뚫어볼 듯이.

5장 개가 느끼는 색, 그 어둑한 오후의 향연
<개의 사생활>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다가 좋아서 살려고 찾아보니
절판된 책이네.
중고서점에서 두세배 가격으로 팔고 있다.




 
2018-11-15
한 배에서 태어난 여러 새끼 가운데 한 마리를 고르거나, 시끄러운 유기견 보호소에서 개를 입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개를 '만들기' 시작한다. 가축화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다. 매 순간의 상호작용은 개의 세상을 제한 하는 동시에 확장시킴으로써 그 고유한 특징을 만들어낸다. 강아지 입장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첫 몇 주간은(완전한 백지상태라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신생아가 경험하는 '지독하게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태'와 몹시 흡사하다. 첫 눈빛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주인이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파악하는 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
1세기경 로마 시대에 등장한 최초의 백과사전 편집자인 플리니는 <자연의 역사 Natural History>에서 곰의 출생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새끼 곰은 아무 형체 없는 흰색 덩어리에 불과했다. 크기는 생쥐보다 약간 컸으며, 털도 없고 눈도 뜨지 못한 상태였다. 오로지 발톱만이 눈에 띄었다. 어미 곰이 이 덩어리를 천천히 핥자 비로소 곰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플리니는 철저한 경험론자답게 어미 곰이 미분화된 순수 물질을 핥음으로써 자신의 새끼를 '만들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 가족이 처음 펌프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나도 마치 어미 곰처럼 펌프를 핥아 그 고유의 특징을 만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실제로 내가 펌프를 핥아주었다는 뜻은 아니다. 핥는 역할은 펌프의 것이다). 우리 활동에 관심을  표현하고, 우리를 배려하고, 지나치게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언제 놀면 좋은지 잘 아는 지금의 펌프, 누구나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그 개의 모습은 우리와의 상호작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펌프는 우리와 함께 세상을 살면서 우리를 관찰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나름의 해석 관점을 발달시켰다. 즉 훌륭한 가족 구성원이 된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펌프는 점차 지금의 모습에 가까워졌고, 우리 관계는 점점 더 깊어졌다.

2장 집 속으로 진화한, '집에 속한' 개
<개의 사생활>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21세기북스




 
2018-11-08


나의 연구 분야는 동물 행동이나. 직업상 나는 인간이 스스로를 설명하고자 사용하는 느낌, 욕망 등을 이용해 동물을 의인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어떤 식으로 동물의 행동양식을 연구해야 할지 배우는 동안 나는 행위를 설명하고자 할 때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사실, 즉 간단한 물리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정신 차원에 호소해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는 과학자 윤리를 준수해왔다.

...즉 인간은 공유하는 생물학적 특징보다는 개성을 더 중시한다. 잠재적인 신체 능력이나 인지적 능력을 설명해야 할 경우에도 개인이 먼저이고 인류라는 종의 한 개체라는 개념은 그다음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물의 경우에는 그 순서가 뒤바뀐다. 과학자들은 동물이 우선 그들 종을 대표하고 그다음에 개체로서 인식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두마리 동물이 그들 종의 대표 자격으로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


이 책은 강아지 훈련 교본이 아니다. 하지만 의도된 바는 아니어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개를 훈련시키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인간에 관한 책은 한 권도 읽어본 적 없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미 인간 훈련법을 배워버린 개들과 보조를 맞출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개의 사생활 INSIDE OF A DOG>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구세희 외 옮김, 21세기북스





 
2018-10-16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2018-10-08

이 책을 사면서 검색을 해보고 허수경 시인이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름만 들어봤을 뿐 책을 읽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책을 여러 날에 걸쳐 다 읽고,
한 번 읽은 책을 몇 달 후나 몇 년 후도 아니고 곧바로 다시 읽는 일은 거의 없는데,
며칠 후에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책이 안타깝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2018-10-05

허수경 시인.




 
2018-09-27
나는 그의 시집을 통째로 외우고 다녔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빈 바람처럼 쓸리던 마음이 어느새 다다라 문을 두드리면, '왔어!'하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문을 열어주는 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제 몫의 술잔을 비우는 시. 그것으로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종교이고 한 편의 시가 어떤 마음에게 신앙이라는 것을 알려준, '사원'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는 한 사람이 자라 성인이 되고 가족을 이루고 한 세대를 완성하고는, 그저 저녁을 보고 있어도 좋을 만큼의 시간을 먼 마을에서 보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여기서도 거기서도 서로를 그리워했을 시간. 모든 일들을 꿈으로 돌려놓아도 좋을 시간. 기어이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을 말이다. 나는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의 오랜 예배였던 그 '시간'을 이 책에서 만난다. 이런 기억과 함께.

어느 여름날, 그는 바닥까지 끌리는 긴 우산을 한쪽 팔에 걸고서 뮌스터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우리는 바빌론의 폐허에서 발굴한 '진흙개'의 기록이 남아 있을 연구실 창문을 함께 올려다보았고, 아픈 날 벗들의 이름을 앉혀놓고 혼자 밥을 먹었다는 중국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택시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하며 토끼가 자주 출몰했다는 기숙사를 멀찌감치 지나치기도 했다. 마치 모든 이유가 그 이름을 모국어로 부러주기 위함이라는 듯, 마당에 심어놓은 고향의 꽃과 채소들 앞에 나를 세워놓았던 저녁. 그리고 어둠 속으로 퇴화해가는 존재를 이야기했던 밤. 아침엔 가는 길에 먹으라며 새벽부터 만 김밥이 식탁 위에 동그랗게 올려져 있었다. '늙은 산들의 마을'을 떠나올 때, 밀밭에서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까마귀떼는 검은 물방울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용목(시인)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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