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6-10-11
다음날 고양이는 병원에 가서 다시 이런저런 주사를 맞고 왔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식욕을 회복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날밤부터는 입을 벌려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새벽녘에 귓가에서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아이들이 코를 고나 했지만 아니었다. 바로 곁에 엎드려 어둠 속에서 투명하고 푸른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와 얼굴이 마주쳤다. 내 눈이 자신을 향하자 고양이는 입을 조금 벌렸다. 그러자 코 고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두 번, 세번 고양이는 입을 벌렸고, 깊은 밤의 정적 속에서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고양이가 울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겨우 알아차렸다.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고양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고양이도 커다란 눈으로 계속 나를 바라보았다. 초롱초롱하게 맑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투명한 눈이었다. 차마 내 감상적인 마음을 핑계로 그 아픈 몸뚱이를 쓸어줄 수도 없었다.
고양이는 다음날 죽었다. 밤에 집을 돌아가자 안에 있던 딸아이가 맹장지가 있는 곳까지 나와서 엄마, 죽었어, 하고는 문기둥에 매달려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의 죽은ㅁ은 내게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오랫동안 감기로 누워 있던 오바가 병원에 입원하고 없었다 폐렴이었대, 하고 언니가 알려주었다. 몸이 약해진 것 같지만 걱정할 건 없나봐, 라고도 했다. 밤에 짐을 챙기러 집에 온 어머니를 봐도 걱정할 만한 사태는 아닌 눈치였다. 그저 감기라고만 생각한 게 잘못이었나보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그동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병원에 들르면 좋겠구나. 오빠도 좋아할 테니.
어머니의 말에 나는 놀이가 하나 늘어난 기분이었다. 병원으로 문병을 가면 대개 평소에는 먹지 못하는 것들을 얻어 먹었던 일을 떠올렸다.
바로 다음날, 신바람이 나서 집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가르쳐준 2층 병실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시트마저 치워진 텅 빈 철제 침대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순간 나는 오빠가 어떻게 됐는지 가슴 깊은 곳에서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내 병실을 잘못 찾은 건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수를 다시 확인하고 복도를 둘러보았다. 몇 호실이지? 하고 의아해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걸 알고 퇴원했는지도 몰라, 라는 생각도 했다. 우두커니 복도에 서 있었다. 접수처에 가서 물어보지도,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도 못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욕실
<묵시> 쓰시마 유코 단편집, 김훈아 옮김, 문학동네

<웃는 늑대>와 같이 산 책.
레이먼드 카버 <풋내기들>을 읽은 후
읽고 있다.
그러고보니 다 문학동네.



 
2016-10-07


이 작품 정말 좋다.
'집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물이 이렇게 많은데'

드물게 여성 화자.

<풋내기들> 중,



 
2016-10-07
제임스는 냉장고로 갔다. 열린 냉장고 문 앞에 서서 환한 냉장고 안을 살펴보며 토마토주스를 마셨다. 냉장고에서 찬 공기가 뿜어져나왔다. 선반에 놓인 작은 음식 포장과 상자, 랩으로 싸놓은 닭, 깔끔하게 포일로 싸둔 남은 음식물들, 이 모든 것이 별안간 역겨웠다. 제임스는 어째서인지 앨리스를, 그녀의 목에 난 점을 떠올리고는 몸을 떨었다. 그는 냉장고 문을 닫고 입안에 있던 토마토주스를 싱크대에 뱉었다. 그러고는 입을 헹구고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 타서 거실로 가져갔다. 아직도 TV가 방영되고 있었다. 오래된 서부극이었다. 제임스는 자리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몇 분간 TV를 보고 있으니, 그 영화를 오래전에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이 희미하게 기억나고 그들이 하는 대사가 익숙하게 들리는 게, 전에 봤다가 잊어버린 영화를 볼 때 흔히 드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주인공이, 최근에 죽은 영화배우였는데, 무슨 말을 했다. 그 작은 마을로 지금 막 말을 타고 달려온 낯선 사람에게 주인공이 뭔가 어려운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러자 제임스 머릿속에서 돌연 아귀가 맞아떨어지더니 그 낯선 사람이 어떤 대답을 할지 정확히 떠올랐다. 제임스는 어떤 결말이 나올지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고조되는 것을 느끼며 영화를 계속 보았다. 그 무엇도 이미 굴러가기 시작한 흐름을 멈출 수 없었다. 주인공과 보안관으로 변신한 주민들이 불굴의 의지와 용기를 보여주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고작 미치광이 하나와 불씨 하나가 모든 것을 무너뜨린 것이다. 제임스는 커피를 다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파괴적이고 불가피한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 영화를 보았다. 그러고는 TV를 껐다. 제임스는 침실 문 앞으로 가서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이디스가 아직 때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문 아래로 불빛이 새어나오지는 않았다. 그는 이디스가 잠들었기를 바랐다. 제임스는 그대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연약하고 어쩐지 무가치하게 느껴쪘다. 내일이면 이디스는 크로퍼드 선생을 만나러 갈 것이다. 선생이 뭘 발견할지 누가 알겠는가? 검사도 하겠지 왜 하필 이디스인가? 그는 생각했다. 왜 우리지? 왜 다른 누군가가 아니고, 왜 오늘밤에 본 히피들이 아니고? 그들은 새처럼 자유로이, 미래를 의심하거나 뭔가 책임질 것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왜 그들, 아니면 그들과 비슷한 누군가가 되면 안 되지? 말이 되지 않았다. 제임스는 침실 문에서 물러났다. 밤에 가끔 그랬듯이 나가서 걸을까도 생각했지만, 바람이 거세어져서 집 뒤에 서 있는 자작나무 가지들이 꺾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너무 춥기도 할 터였고, 오늘밤에는 이 시간에 혼자서 걷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맥빠지는 느낌이었다.
제임스는 다시 TV 앞에 앉았지만 TV를 켜지는 않았다. 제임스는 담배를 피우며 히피 남자가 자기를 건너다보며 씩 웃던 모습을 생각했다. 히피 남자가 자기 밴이 주차된 곳으로, 소녀의 팔을 허리에 감고서 느릿느릿 오만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제임스는 거센 파도 소리를 떠올렸고, 바로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몰려와 해변에 부딪히고 있을 높은 파도를 생각했다. 제임스는 히피 남자의 귀걸이를 떠올리고는 자기 귀를 당겨보았다. 그 녀석이 걷듯이 느긋하게, 히피 소녀의 팔을 허리에 두르고 돌아다니고 싶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제임스는 머리카락을 쓸고서 너무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임스는 소녀가 빙고를 외칠 때 어떻게 보였는지, 젊고 흥분한 소녀를 다들 얼마나 질투하는 시선을 바라보았는지 상기했다. 사람들이 알기만 했더라면, 소녀와 그 친구를, 그가 사람들에게 말해줄 수만 있었다면.
제임스는 침대에 누워 있는 이디스를, 이디스의 몸속에서 피가 서서히 흐르면서 빠져나갈 길을 찾는 것을 생각했다. 제임스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훌륭한 아침식사를 차릴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병원이 문을 열면, 이디스는 크로퍼드 선생에게 전화해서 진찰 시간을 정할 것이고, 제임스는 이디스를 태워다준 다음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며 잡지를 들춰볼 것이다. 이디스가 결과를 듣고 나올 때쯤이면 히피들이 밤새 사랑을 나누고는 맛있게 아침을 먹겠지 싶었다. 부당했다. 제임스는 인생의 정오를 지나는 두 히피가 지금 이곳 거실에 있었으면 했다. 그러면 앞으로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말해주고, 그들을 바로잡아줄 텐데. 한창 오만방자하고 웃음이 넘치는 시기에 있는 그들을 붙잡아 세우고 말해줄 텐데. 반지와 팔찌, 귀걸이와 장발, 애정 행위 이후에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는지 말해줄 텐데.

-당신 뜻에 부합한다면
<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김우열 옮김, 문학동네



 
2016-09-30
처음 이곳으로 이사해서 모텔 매니저가 되었을 때, 우리는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집세와 수도 전기 요금도 없고 한 달 수입이 삼백 달러였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홀리는 장부를 맡았는데, 계산에 밝았고 숙박 건도 거의 혼자 처리했다.  홀리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사람들도 홀리를 좋아했다. 나는 모텔 주변을 맡아서, 잔디를 깎고 잡초를 베어내고 수영장을 깨끗하게 하고 간단한 수리를 했다. 첫해에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나는 밤에 다른 일을 하나 더 하면서 야간 근무를 했고, 우리는 잘나가고 있었고 계획도 하나 가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잘 모르겠는데, 내가 막 어떤 객실의 화장실 타일을 깔았을 때 이 자그마한 멕시코 청소부가 청소하러 들어온다. 홀리가 고용한 여자다. 내가 그전에 그 여자를 의식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보면 인사는 했지만 말이다. 그 여자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여하간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 여자는 멍청하지 않았고, 귀엽고 괜찮은 구석이 있었다. 잘 웃었고, 누군가 무슨 말을 하면 아주 집중해서 들었으며, 말을 할 때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날 아침 이후로 그 여자를 볼 때면 나는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깔끔하고 다부졌고, 치아가 하얗고 예뻤다. 그 여자가 웃을 때면 나는 입을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나를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아침 나는 어느 객실 화장실 수도꼭지의 와셔를 교체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내가 거기 있는지 몰랐다. 그 여자는 객실로 들어오더니, 청소부들이 청소할 때 늘 그러듯 TV를 켰다. 난 하던 일을 멈추고 화장실에서 나갔다. 그 여자는 날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았다. 나는 가서 그 여자 뒤로 방문을 닫았다. 그 여자를 안았다. 그런 뒤 우리는 침대에 누웠다.
...
음주라는 게 웃기다 뒤돌아보면 우리는 중요한 일들을 언제나 술을 마시면서 결정했다. 술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를 할 때도, 식탁이나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여섯 개의 맥주나 위스키 한 병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해서 모텔 일을 맡아, 예전 동네와 친구들과 인간관계와 기타 모든 것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도 우린 밤새 마시며 장단점을 따져보며 취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통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홀리가 우리 삶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내가 사무실 문을 닫고 위층으로 올라오기 전에 처음으로 한 일도 주류 판매점으로 달려가 티처스를 사온 것이다.
...
후아니타와의 일은 일주일에 닷새 열시에서 열한시 사이에 여섯 주간 지속되었다. 처음에 우리는 후아니타가 청소하는 도중에 이 객실 저 객실에서 만나기로 공모했다. 난 그냥 그 여자가 일하는 곳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얼마 후 그게 위험한 일은 듯해서, 그 여자가 일정을 조정하여 동쪽을 향한 객실, 그러니까 산을 마주하고 있는 모텔의 끝 객실인 22호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객실의 문은 사무실 창문에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다정하게 굴었지만, 신속하게 했다. 우린 신속하면서 동시에 다정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건 완전히 새롭고 예기치 못한 일이었고, 그런 만큼 더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아침, 다른 청소부인 보비가 방에 들어와 우리를 보았다. 두 여자는 함께 일했지만 친구는 아니었다. 그 여자는 곧장 사무실로 가서 홀리에게 말해버렸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나는 그때도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후아니타는 겁먹고 수치스러워했다. 그 여자는 옷을 입고 차를 몰고 집으로 갔다. 나는 잠시 후 바깥에서 보비를 보고, 보비도 집으로 보냈다. 그날 나는 직접 모텔 객실을 정돈했다. 홀리는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아마도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나는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일하러 가기 전에 아파트에 들어갔을 때, 홀리는 문을 닫고 침실에 있었다. 난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직업소개소에 다른 청소부를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끊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 그녀가 그 흥얼거림을 시작했다. 나는 끝장났다. 다시 일하러 갔지만,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홀리랑 나는 어쩌면 그 일을 이겨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날 밤 내가 일을 마치고 들어갔을 때 홀리가 내게 술잔을 던지고 우리 둘 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끔찍한 말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홀리의 뺨을 때렸고 그러고 나서 때린 것을, 그리고 바람피운 것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나는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우리는 펑펑 울며 속을 털어놓았고 술을 더 마셨다. 거의 밤새도록. 그런 뒤 기진맥진해 침대에 올라가 사랑을 나눴다. 그 일은 다시는 더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후아니타와의 일 말이다. 감정을 터뜨린 뒤,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어쩌면 홀리는 그 일을 잊지는 못하더라도 날 용서하려는 듯했고, 그대로 인생이 굴러갈 수도 있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건 내가 후아니타를 그리워하고 때때로 그 여자를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칠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홀리가 잠들고 나면 침대에 누워 후아니타의 하얀 치아를 떠올렸고, 그러고 나서 가슴을 떠올렸다. 후아니타의 유두는 검고 따뜻했고 그 바로 아래 짧은 털이 좀 있었다. 겨드랑이에도 털이 나 있었다. 난 미친 게 분명했다. 이런 식으로 두어 주 흐른 뒤 나는 그 여자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느님 맙소사. 어느 저녁 나는 일터에서 전화를 걸었고, 그 여자네 집에 들르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일을 마치고 그 여자 집으로 갔다. 그 여자는 남편과 별거중이었고 두 아이와 함께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자정이 막 지난 시각에 갔다. 난 마음이 불편했지만 후아니타는 그걸 알고 나를 곧바로 편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식탁에서 맥주를 마셨다. 후아니타는 일어나서 내 의자 뒤로 오더니 내 목을 문지르며 긴장을 풀라고, 긴장을 풀고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말했다. 목욕가운 차림으로, 그 여자는 내 발치에 앉아서 내 손을 잡고 작은 손톱 줄로 내 손톱 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고서 그 여자를 일으켰고, 우리는 침실로 들어갔다. 한 시간쯤 후 나는 옷을 입고, 그 여자에게 잘 자라고 입을 맞춘 뒤 모텔로 돌아갔다.

-정자
레이먼드 카버 <풋내기들>

 
2016-09-30


사실 살 때는 모르고 샀지만 (수록 작품이 무엇인지 확인도 안 하고 샀다, 두 권 모두)
읽기 시작하고 보니 이 책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실린 작품들의 처음 원고였다. 그러니까 출판사에 보내고 편집자의 의견으로 삭제되고 수정되기 이전 원고, 레이먼드 카버가 편집자에게 보낸 상태의 원고.
단편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과 작품의 순서도 같다. 레이먼드 카버가 처음에 붙인 제목이 출판되면서 바뀐 경우가 있어, 제목이 다른 것은 있다.





 
2016-09-30
나는 볼 만큼 봤다. 며칠 묵으려고 어머니 집에 갔는데, 계단을 다 올랐을 때 보니 어머니가 소파에서 웬 남자와 키스하고 있었다. 때는 여름에, 문이 열려 있고 컬러TV가 켜져 있었다.
...
그날 오후 이후로 많은 일이 일어났고, 이제 전체적으로 그때보다 상황이 나아졌다. 하지만 그 나날들, 어머니가 막 만난 남자들과 같이 자던 그 시기에 나는 실직한 상태였고, 술을 마셔댔고, 미쳤었다. 내 아이들도 미쳤었고, 아내는 미쳤을 뿐 아니라 알코올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실직한 항공우주공학자와 그 짓도 했다. 그 남자도 미쳤었다. 그 남자는 이름이 로스였는데 애가 다섯인가 여섯인가 그랬다. 그는 첫 아내에게 입은 총상 때문에 다리를 절었다. 당시 그는 아내가 없었고, 내 아내를 원했다. 그때는 다들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두번째 아내도 생겼다가 없어졌지만, 몇 년 전에 그의 넓적다리에 총을 쏴서 다리를 절게 한 것은, 그리고 부양비를 대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섯 달마다 그를 법정에 혹은 감방에 보냈다가 꺼냈다가 하는 것은 그의 첫 아내였다. 이제는 나도 그가 잘 지내길 바란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당시에 나는 여러 차례 무기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난 아내에게 말했다, 소리쳤다. "그 자식 죽여버릴 거야!"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상황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그와 전화로는 몇 번 이야기했지만, 그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내의 지갑을 뒤지다가 그의 사진을 두 장 발견하기는 했다. 한 사진에서 그는 몸집이 작은, 그렇다고 아주 작지는 않은 남자였고 콧수염이 있었는데, 줄무늬 스웨터를 입고서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사진에서는 어떤 집 - 내 집인가? 모르겠다 - 앞에 서서 양복 차림에 타이를 맨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로스, 이 개자식아, 이제 잘 지내기 바란다. 너도 좀 나아졌기를 바란다고.

-다들 어디 있지?
<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김우열 옮김, 문학동네



 
2016-09-29


그리고 작년에 나온 레이먼드 카버 2권을 샀다.
영풍에 갔는데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가 책이 너무 지저분해, <풋내기들>만 사고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는 교보에 가서 샀다.
2016년 9월 19일



 
2016-09-29
언젠가 서펀타인 연못에 1실링짜리 동전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 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내던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몸을 내던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겠지(그녀도 다시 가봐야 했다. 방들은 여전히 북적이고, 손님들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우리는(그녀는 온종일 부어턴과 피터와 샐리를 생각했다) 늙어 갈 거야. 중요한 단 한 가지, 그녀의 삶에서는 그 한 가지가 쓸데없는 일들에 둘러싸여 가려지고 흐려져서, 날마다 조금식 부패와 거짓과 잡담 속에 녹아 사라져 갔다. 바로 그것을 그는 지킨 것이었다. 죽음은 도전이었다. 죽음은 도달하려는 시도였다. 사람들은 그 중심이 왠지 자신들을 비켜가므로 점점 더 거기에 도달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 가까웠던 것이 멀어지고, 황홀감은 시들고,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죽음은 팔을 벌려 우리를 껴안는다.

댈러웨이 부인 Mrs. Dalloway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열린책들

다 읽었다.




 
2016-09-23
언젠가 클라리사는 그와 함께 버스 위층에 탄 적이 있었다. 클라리사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쉽게 감동하는 성격이라, 금방 낙심하는가 하면 또 금방 쾌활해지곤 했다. 그 무렵엔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했고 서로 뜻도 잘 맞아서, 버스 위층에 타고 별난 장면이나 이름들, 사람들을 지적해 내면서, 런던을 탐험하고 캘러도니언 마켓에서 보물을 한보따리씩 갖고 돌아오곤 했었다. 그 무렵 클라리사는 한 가지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당신 그들은 산더미 같은 이론들을, 오로지 이론만을 가지고 있었지만.그녀의 이론은 그들이 사람들을 모르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도 않다는 데 대해 느낀 불만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 서로를 알 수가 있겠는가? 매일 만나다가, 여섯 달이나 아니면 몇 년씩 만나지 못한다. 사람들을 그처럼 잘 알지 못한다는 건 불만스러운 일이라는 데에 그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그녀는, 섀프츠버리 대로로 올라가는 버스에 앉아서 말했다. 자기는 ㅇ디에나 있는 것 같다고. 〈여기, 여기, 여기〉 가 아니라(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의자 등받이를 툭툭 쳤다) 어디에나. 섀프츠버리 대로를 올라가면서, 그녀는 손을 내둘렀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이라고. 자기를 알려면, 아니 다른 누구라도, 그들을 완성하는 사람들, 장소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그녀는 한 번도 말을 건네 본 적이 없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떤 여자, 계산대 뒤에 있는 어떤 남자, 심지어 나무나 헛간과도 묘한 친화력을 느낀다고 했다. 그것은 결국 초월적 이론으로 발전해서, 한편으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작용한 나머지, 그녀는 이렇게 믿기에, 혹은 적어도 믿는다고(자신의 회의주의에도 불구하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즉, 우리의 와현, 즉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나머지 부분에 비하면 너무나 일시적이며, 그 보이지 않는 부분은 널리 퍼져 나간다고,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살아남아서 이 사람 혹은 저 사람과 어떻게인가 결보된 채 다시 나타나거나, 심지어 죽은 후에 특정한 장소들에 출몰하게 된다고...... 아마도 - 아마도

댈러웨이 부인 Mrs. Dalloway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열린책들



 
2016-09-18
밀리선트 브루턴이 소파에 누워 그 실을 툭 끊어뜨리고 코를 골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리처드 댈러웨이와 휴 휘트브레드는 콘디트 스트리트 모퉁이에서 미적대고 있었다. 길모퉁이에서는 양쪽에서 불어온 바람들이 서로 맞부딪치며 몰아쳤다. 그들은 어느 가게의 진열창을 들여다보았다. 딱히 무엇을 사거나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헤어지려는 참이었으나, 맞바람이 몰아치는 길모퉁이에서 몸속의 조수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오전과 오후가, 두 개의 힘이 만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가운데,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신문 벽보가 공중으로, 처음에는 마치 연처럼 씩씩하게 날아오르더니, 주춤하고 내려앉으며 펄럭거렸다. 어느 숙녀의 베일이 들렸다. 노란 차양들이 떨렸다. 오전의 빠른 차량 속도는 느려졌고, 짐수레들이 반쯤 빈 거리를 아무렇게나 덜컹거리며 내려갔다. 노팍에서는, 하고 리처드 댈러웨이는 막연히 떠올렸다. 거기에서는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꽃잎들을 흩날리고, 물결을 일으키고, 꽃피는 풀밭을 일렁이게하며 지나갔다. 건초 만드는 이들은 아침나절의 피곤을 낮잠으로 풀어 보려고 울타리 아래에 자리를 잡고 무성한 녹색 풀숲을 젖혔으며, 참당귀풀의 흔들리는 동그란 꽃송이들을 헤치고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고 한결같고 빛나는 여름 하늘을.
자신은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제임스 1세 시대의 은배를 구경하고, 휴 휘트브레드는 감식가인 양 젠체하는 눈길로 스페인풍 목걸이를 들여다보면서 이블린이 마음에 들어 할지도 모르니 값을 물어볼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 리처드는 여전히 무기력한 기분이었다.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삶은 이 난파 잔해물들을 던져 올린 것이었다. 가게 진열창들은 색색의 인조 보석들로 가득 차 있고, 그는 노년의 무기력함으로 굳어진 채, 노년의 마비 상태로 뻣뻣해진 채 서 있었다. 이블린 휘트브레드는 이 스페인풍 목걸이를 사고 싶어 할 수도 있었다 - 아마 그렇겠지. 기지개라도 켜야겠다. 휴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일세!⌋ 리처드는 뒤따라가며 말했다.
휴와 함께 목걸이를 사러 갈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나 몸 속에는 조수가 있고, 오전은 오후와 만난다. 깊고 깊은 물결 위에 가냘픈 조각배처럼 실려, 레이디 브루턴의 증조부와 그의 회고록과 북아메리카 원정은 파도에 쓸려 가라앉았다. 밀리선트 브루턴 역시. 그녀도 침몰했다. 리처드는 이주 계획이야 어찌 되든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 편지에 대해서도, 편집가가 맏아들이든 말든 상관없었다. 목걸이는 휴의 존경스런 손가락 사이에 걸려 있었다. 꼭 보석을 사야겠다면 아무 여자에게나 주어 버리라지. 길거리의 아무 여자에게라도. 인생이란 참으로 하찮다는 느낌이 절실히 밀려왔다 - 이블린을 위해 목걸이를 산다든가 하는 것. 만일 자기한테 아들이 있다면, 일해라, 일해라, 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엘리자베스가 있었고, 그는 자기 땔 엘리자베스를 끔찍이 아꼇다.

댈러웨이 부인 Mrs. Dalloway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열린책들



독서일기가 길을 잃은 듯.
띄엄띄엄 책을 읽고 있다.
무엇을 탓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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