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8-01-14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어느 날 런던의 이스트엔드가 나를 향해 유혹의 손짓을 했다. 나는 런던광역시 중에서도 동쪽 방향을 향해 코벤트 가든을 출발해서는, 티푸 사힙과 찰스 램을 느긋하게 떠올리며 동인도회사를 지나고, 반바지 차림인 작은 해군생도 목각인형의 한쪽 다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그 앞을 지나서, 알드게이트 펌프를 지난 뒤 (거무스름한 얼굴을 흉측하게 묘사한 포스터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많이 붙어 있는) 사라센스 헤드를 거쳐, 그의 오래된 이웃이 운영했던 블랙 보아인지 블루 보어인지 아니면 블루 불인지 하는 건물의 텅 빈 마당을(그 집 주인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사라진 그의 마차들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잘 모른다) 어슬렁어슬렁 통과해 다시 철도의 시대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화이트 채플 교회를 지나 - 비상업적인 여행자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 상업적인 거리로 들어섰다. 이어서 푹푹 빠지는 진흙탕 대로를 신나게 걸으면서 설탕 정제업자 소유의 대형 건물과 뒷골목 작은 공터에 있는 작은 돛대와 풍향계, 그 근처 술와 선착장, 돌멩이가 깔린 전차길을 느릿느릿 움직이는 동인도 회사의 화물열차, 돈에 쪼들리는 뱃사람들이 육분의나 사분의깨나 갖다 바쳤을 전당포(그 물건들의 사용법만 알았더라면 내가 싼 값으로 샀을 텐데) 따위를 즐겁게 구경하다, 어느 순간 오른쪽 샛길로 빠져 와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와핑 노역소,
찰스 디킨스 <밤 산책>
이은정 옮김, 은행나무


걸어가는 저자를
따라 걷는 듯한.






 
2018-01-04
더불어 파이 장사꾼의 마지막 화롯불과 함께 밤새 깨어 있던 사람들의 일상도 꺼져가면, 거리 모퉁이에서 가장 먼저 아침밥을 파는 노점의 화로에 불이 붙는다. 이처럼 빠르게, 그러다 막판에는 순식간에 낮이 오고, 그러면 나도 피곤에 지쳐 잠을 잘 수 있었다. 요즘 종종 생각하는데, 그런 시각에 구가하는 일이 런던에서 가장 비참한 일은 아니며, 런던에서 가장 형편없는 지역이라고 해서 집 없는 노숙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필요하면 어디에서 온갖 악과 불행을 찾을 수 있는지 잘 알게 되었다. 다만 그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내가 노숙자처럼 수 킬로미터의 거리를 그것도 혼자서 외롭게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절대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밤 산책
<밤 산책> 찰스 디킨스, 이은정 옮김,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 시리즈4


찰스 디킨스는 불면증을 겪던 시기에,
밖에 나가 밤새도록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동틀 무렵에 들어와 잠을 잤다고 한다.




 
2017-12-26

.

 
2017-12-26


<




 
2017-12-14
그 시합은 아이디어 월드컵의 핵심 경기였다. 양 팀은 공을 놓고 맹렬하게 다퉜다. 올스타 페미니스트 팀은 '만연한 사회문제'라고 표기된 골대에 공을 차넣으려고 연거푸 시도했고, 주류 언론과 주류 남성들이 포진한 상대 팀은 '고립된 사건'이라는 예의 많이 본 골네트에 공을 집어넣으려고 애썼다. 주류 팀의 골키퍼는 공을 자기 골너트로부터 멀찌감치 떨어뜨리기 위해서 '정신질환'이란 말을 외치고 또 외쳤다. 그 '공'은 캘리포니아 주 아일라비스타(Isla Vista)에서 한 학생이 다른 학생드를 학살한 사건의 의미를 뜻했다(2014년 5월 23일 금요일 밤, 22세의 엘리엇 로저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캘리포니아 대학 쎈타바버라 분교에 다니는 남자 대학생 세명을 칼로 찔러 죽인 뒤 같은 학교 여학생 클럽으로 가서 총으로 여학생을 비롯한 세명을 더 쏘아 죽이고 행인들에게도 무차별 총격을 가하며 달아나다가 결국 차 안에서 총으로 자살했다).
사건이 벌어진 후 주말 내내 범인의 행동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가열차게 벌어졌다. 주류 목소리들은 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우겼다. 마치 그러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세상은 정상인과 미치광이라는 두 나라로 나뉘어 있고 두 나라 사이에는 국경을 건너는 사람도 공유하는 문화도 없는 것처럼. 그러나 정신질환은 범주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도의 문제일 때가 더 많고,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많은 수는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러 척도로 볼 때 광기는 불평등, 만족을 모르는 탐욕, 생태파괴와 더불어, 또한 비열함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핵심에 자리한 속성이지 주변부에만 있는 속성이 아니다.
T. M 루어먼(Luhrmann)은 지난해(2013) 신문에 실은 멋진 기고문에서, 인도에서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환청을 들을 때는 머릿속의 목소리가 집 청소를 하라고 말하곤 하는 데 비해 미국 환자들은 폭력적인 행동을 하라는 말을 드는 경향이 잇다고 지적했다. 문화는 중요하다. 형사사건의 피고 측 조사관으로 일하기 때문에 정신이상과 폭력에 관해서라면 속속들이 잘 아는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현실과의 접촉을 잃기 시작하면, 병든 뇌는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둘러싼 환경에 집착적으로, 망상적으로 매달리기 마련이야. 주변 문화의 질병에."
...
아일라비스타 살인자는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죽였다. 그러나 그가 벌인 광란극의 목표는 여학생 클럽의 회원들을 처단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여자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을 여자들이 자신에게 모욕을 가하는 상황으로 해석했던 듯하다.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는 의식과 자기연민이 슬프게 뒤섞인 감정 상태에서, 그는 여자들에게는 자신을 만족시킬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Men Explain Things To Me>
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창비





 
2017-12-14


'할머니들, 평등주의자들, 몽상가들, 이해하는 남자들,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 젊은 여자들, 그 길을 연 나이 든 여자들,
끝나지 않는 대화들
그리고 (2014년 1월에 태어난) 엘라 나히모비츠가
제 역량을 온전히 펼칠 세상을 위하여'



뭉클하고 울컥하는 첫 페이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
Rebecca Solnit



 
2017-12-05
영국을 제외하고는 어는 곳에서나 단체 보행은 하이킹으로, 하이킹은 캠핑으로 바뀌고 캠핑은 야외 행락이나 오지 모험 따위의 정체불명의 그 무엇으로 바뀌는 것 같다. 보행 단체들은 '걷기 더하기 그 무엇'을 표방한다. 보행 더하기 등사노가 환경보호, 보행 더하기 사회주의와 민요, 보행 더하기 청소년의 꿈과 국가주의와 같은 식이다. 보행이 시종일관 중심을 지키고 있는 곳은 영국뿐이다.
...
그렇지만 걸을 땅을 확보하는 일은 계급투쟁의 성격을 띠어왔다. 영국에서 땅을 가진 사람들은 지난 1000년 동안 점점 많은 땅을 가지게 되었고, 땅이 없는 사람들은 최근 150년 동안 그에 맞서 싸우게 되었다. 1066년에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방대한 사슴 사냥터를 챙긴 이래로, 외부인이 밀렵 등의 목적으로 사냥터에 진입하는 경우에 대단히 가혹한 처벌이 따랐다. 몇 세기 전부터는 거세, 국외 추방, 처형도 가능했다. 공용지(commons)는 소유자가 따로 있으면서 마을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거나 가축을 방목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이었고, 농지나 삼림에 나 있는 전통적인 공용로(right-of-way)는 소유자가 따로 있으면서 노동과 통과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었다. 1695년에 스코틀랜드 의회가 그런 공용지와 공용로를 없애는 법을 만들었고, 18세기에 잉글랜드에서는 인클로저 법이 만들어지고 가혹한 무단 강탈이 자행되면서 그런 공용지와 고용로가 급속도로 사라졌다.
...
보행을 위해 단체를 조직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이상하다. 실제로 보행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자주 언급하는 독립, 고독, 자유는 조직과 통솔이 없는 데서 온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즐거움을 얻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자유로운 시간, 자유롭게 걸을 장소, 질병이나 사회적 속박에서 자유로운 육체가 그것이다. 이 기본적 자유는 무수한 투쟁의 목적이 되어왔다. 힘든 투쟁을 통해서 자유로운 시간(8시간, 또는 10시간 노동, 그리고 이어서 주 5일 노동)을 쟁취해낸 노동자 단체즐이,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유롭게 걸을 장소를 확보하게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또 있었다. 이 장에서는 오직 자여노가 시골 공간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주로 다루었지만, 도심의 공원 조성과 관련해서도 풍요로운 역사가 있다. 예컨대 센트럴 파크는 뉴욕을 떠날 만한 여유가 없는 도심 주민에게 전원의 미덕을 선사한다는 민주적, 낭만적 기획이었다. 한편 자유로운 육체는 자유로운 시간이나 자유롭게 걸을 장소에 비해서 미묘한 주제다. ... 한편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활보할 권이를 위해 투쟁했는지는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읽어보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공장 노동자들의 육체에 기형과 질병을 초래할 정도로 처참한 생활환경과 노동환경을 고발한다. 요컨대 자연 속을 걷는 일은 중류층의 육체를 집과 사무실에 갇혀 있는 시대착오적 물건으로 변형시키는 환경, 노동자의 육체는 공장의 기계 부품으로 변형 시키는 환경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걷기의 인문학>
정원에서 자연으로 7. 보행을 위한 모임들, 통행을 위한 투쟁들
리베카 솔닛,김정아 옮김, 반비


다 읽었다.

 
2017-11-14
워즈워스에게 보행은 시의 주제이기도 했지만, 시를 쓰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 방식이란 주로 걸으면서 소리 내어 이야기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같이 걷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이야기했고, 혼자 걸을 때는 혼잣말을 했다. 그것 때문에 종종 우스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그래스미어에 사는 사람들이 그를 좀 이상하게 보기도 했다. "딴 사람들한테는 말을 많이 안 했는데 혼자서 그렇게 말을 많이 했더라고. 입모양을 보면 알지." "머리는 앞으로 내밀고 두 손은 뒤로 하는 거야. 그 자세로 슬슬 걷는 거야. 걷다가 걷다가 또 걷더니 딱 서는 그야. 그러고는 또 걷다가 걷다가 길 끝까지 쭉 걸어가는 거야. 그러더니 어디 앉아서 종이를 꺼내 뭘 쓰는 거야." ⌈서곡⌋에서 그는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걸어갈 때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개가 그에게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보내서 그가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는 것을 막아준다는 이야기이다.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던 워즈워스는 예전에 보았던 장면의 시각적 디테일과 감정적 생생함을 그릴 수 있었고, 자기가 존경하는 시인들의 긴 시구를 인용하거나,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쓴 시를 나중에 글로 옮길 수 있었다. 대다수의 현대 작가들은 책상 앞으로 떠나지 못하는 실내 서식 동물이다. 그들이 야외에 나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개요와 착상뿐이다. 반면에 워즈워스가 시를 쓴 방식을 보면, 구술 전통이 떠오르는 한편 왜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좋은 것들이 노래하는 듯 아름답고 대화하는 듯 자연스러운지 알 수 있다. 작곡가가 곡을 쓰면서 메트로놈의 소리로 일정한 리듬을 찾듯, 워즈워스는 시를 쓰면서 자기의 발걸음으로 일정한 리듬을 찾았던 것 같다.
(...)
워즈워스가 완벽한 낭만주의 시인이었다면 그래스미어의 누추한 도브 코티지에서 작은 정원 안을 왔다 갔다 하던 삼십 대 후반에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우리에게 ⌈서곡⌋의 여러 버전 중에 최초이자 최고의 버전을 남겼을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나오는 초기 가요와 이야기시 전부, 그리고 유년을 노래하는 여러 송시와 서정시를 남겼을 것이고, 이로써 그의 급진주의자로서의 이미지는 고스란히 남겨졌을 것이다. 그가 그 집에서 좀 더 지내다가 그래스미어와 가까운 라이달이라는 마을의 좀 더 큰 집으로 이사 가서 여든 살이 될 때까지 목숨을 부지했고, 그러면서 성향은 점점 더 보수적이 되고 시는 점점 더 시시해졌다는 사실은, 그의 평판에는 안된 일이었지만 그의 일신과 가족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그가 위대한 낭만주의자에서 위대한 빅토리아인으로 이행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이행이라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이행이었다. 그는 자신의 초기 정치관에 의리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자기 보행관에는 의리를 지켰다. 초기 워즈워스의 즐거운 반란을 이어가는 것이 작가 워즈워스가 아니라 보행자 워즈워스라는 것도 특이하다.

<걷기의 인문학>
정원에서 자연으로 7. 윌리엄 워즈워스의 두 다리
리베카 솔닛,김정아 옮김, 반비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1770. 4. 7- 1850. 4. 23


 
2017-11-09
루소가 말년에 쓴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1782)은 걷는 일에 관한 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루소가 이 책의 전제를 밝힌 곳은 두 번째 장인 ⌈두 번째 산책⌋이다. "내 영혼의 평상시 상태를 최대한 섬세하게 그려보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이 계획을 이행할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내가 혼자 산책할 때 내 머리에 떠오르는 몽상들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 이상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때는 루소가 태어나고 100년 후였고,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곳은 루소가 태어난 곳과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의 도시였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의 삶은 몇 가지 면에서 루소의 삶과는 완전히 달랐다. 루소가 방종한 생활을 한 것과 달리 키르케고르는 스스로 부과한 엄격한 금욕적 기준을 따랐고, 루소가 유랑생활을 한 것과는 달리 키르케고르는 평생 고향과 가족, 자기 종교를 떠나지 않았다.(물론 다툼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철학자 사이에는 대단히 흡사한 면도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았다는 것, (문학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한) 무수한 저작들을 쏟아냈다는 것, 자의식에 시달렸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부유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경건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키르케고르는 거의 평생 동안 물려받은 유산으로 살면서 아버지의 손에 휘둘렸다. (...)
키르케고르 자신, 아버지, 신 사이의 삼각관계가 그의 삶을 소진한 것 같다. 그가 자기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의 형상대로 빚어낸 것 같기도 하고, 그의 아버지가 어린 그와 함께 집안을 거닐면서 키르케고르라는 이상한 인물(그의 글에 등장하는, 애늙인이 같기도 하고 유령 같기도 한 배회자)을 의식적으로 빚어낸 것 같기도 하다. 부자가 그렇게 집 안을 거닌 일은 그에게는 상상이라는 탈육체적 마법의 나라,, 진짜 주민이라고는 자기 혼자뿐인 나라에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던 것 같다. 예컨대 키르케고르가 자신의 여러 대표작을 발표할 때 사용한 가짜 이름들은 그를 보여주는 동시에 숨겨주는 장치, 그의 고독에서 일군의 독자를 만들어내는 장치인 것 같다. 그가 집에서 손님을 맞은 적인 평생에 거의 한 번도 없었다. 알고 지낸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많았지만, 그중에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었다. 코펜하겐의 길들이 그의 "응접실"이었다고 그의 질녀 중 한 명이 말하고 있듯, 그가 일상에서 찾은 큰 기쁨은 코펜하겐 산책이었던 것 같다. 산책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가 사람들 사이에 끼는 방법, 곧 짧은 마주침이나 지인과 나누는 인사나 들려오는 대화 같은 것에서 희미한 인간적 온기를 쬐는 방법이었다. 혼자 걷는 사람은 주변 세계와 함께 있으면서도 주변 세계로부터 떨어져 있다. 밖에서 구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에서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걷는 일 자체가 이 가벼운 소외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혼자 걷는 사람이 혼자인 것은 걷고 있기 때무이지 친구를 만들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루소와 마찬가지로 키르케고르는 길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수시로 가벼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러면서 사유를 펼칠 수 있었다.
(...)
그의 일기에는 그의 모든 글이 걸으면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거듭 나온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거의 대부분은 초고를 단 한 번 개작한 글이다.(물론 산책 중에 머리로 작성한 초고를 뺐을 때의 이야기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의 초고는 산책 중에 머리로 작성된다.) 요즘은 이 글을 한 번 더 개작하고 싶다." 그의 긴 산책은 남이 보면 게으름의 표시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토대라는 것도 그의 일기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가 산책 중 사람을 만나는 모습이 담겨 있을 뿐이지만, 그런 만남 사이사이에는 홀로 걷는 시간, 사유를 정리하고 집필을 준비하는 긴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자의식과 절망의 소용돌이일 때가 많았음을 감안하면, 그가 도시에서 길을 걸으면서 집중력을 흩뜨린 덕분에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더 생산적으로 사유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
그가 맡는 거의 유일한 사회적 역할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이었다. 코펜하겐은 그가 공연하는 무대였고, 코펜하겐 사람들은 그 공연을 해석하는 비평가들이었다. 그에게 외출이란 글을 발표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 독자들과의 관계를 원했지만 너무 가깝지는 않은 관계, 자기가 제시한 조건을 따르는 관계를 원했다. 루소와 마찬가지로 키르케고르도 독자와의 관계에 까다로웠다. 그가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글을 쓰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수많은 글을 이런저런 가명으로 발표해놓고 사람들이 자기를 게으르게 본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올젠(Regine Olsen)과의 파혼이라는 일생일대의 비극을 결행한 후, 그는 그녀의 모습을 길에서, 오직 길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두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길을 지나가는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는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를 두고 전전긍긍했다. 확실한 사생활이 있는 사람에게는 길이 가장 가벼운 만남의 장이지만, 그에게는 길이 가장 사적인 공간이었다.

<걷기의 인문학>
생각이 걷는 속도 4. 정신의 발걸음
리베카 솔닛,김정아 옮김, 반비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 6. 28 - 1778. 7. 2
키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
1813 - 1855



 
2017-11-09


민음사 의뢰로
가즈오 이시구로를 설명하는
짧은 만화를 그렸다.
사실 만화는 정말 짧은데
그리기 전
<창백한 언덕 품경> <나를 보내지마> <우리가 고아였을 때> <남아있는 나날> 네권
그리고 단편집 <녹턴> 중 한 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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