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9-10-17
하녀가 이미 그녀의 짐들을 풀어놓은 뒤였다. 물건들은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엘리너는 드레스를 벗고 흰 속치마 차림으로 꼼꼼하지만 조심스럽게 세수를 했다. 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태양에 그을린 그녀의 얼굴은 영국의 햇볕으로 온통 따가웠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이브닝드레스를 입으면서, 자신의 목이 마치 갈색 칠이라도 된 것처럼 가슴선과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회색 머리가 섞여 있는 숱 많은 머리를 틀어서 재빨리 고리 모양으로 정돈하고, 가운데에 황금알이 박힌 응결된 산딸기 잼처럼 생긴 붉은 방울 보석을 목에 걸었다. 그러고는 55년 동안 너무도 익숙해져서 그녀 자신도 더이상 쳐다보지 않았던 그 여인 - 엘리너 파지터를 쳐다보았다. 늙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마를 가로질러 주름살이 지고 탄탄했던 살은 음푹 꺼지고 주름이 잡혀 있었다.
...
"우리 서로 아는 사이였지요." 윌리엄 경이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예전에 애버콘 테라스에 오곤 했던 윌리엄 화트니 _ 그 옛날의 더빈 _일 수 있을까? 바로 그였다. 그녀는 그가 인도로 간 이후로 그를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럴까? 그녀는 그녀가 예전에 알았던 소년의 늙고 주름투성이의 벌겋고 누런 얼굴 - 그는 거의 머리가 없었다 - 에서 눈을 돌려 그녀의 남동생인 모리스를 보면서 자문했다. 그는 머리가 벗어지고 야위었지만, 분명히 그녀 자신처럼 인생의 장년기에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아니면 그들도 모두 윌리엄 경처럼 갑자기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네들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때 그녀의 조카인 노스와 질녀인 페기가 그네들의 엄마와 함께 들어왔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
그에게 변호사가 되라고 독려했어야 했나? 그녀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이를 반대했었다. 결국 일은 그렇게 되어버렸고 그걸로 그만인 법이다. 그는 결혼했고 세 아이를 두었고 원하건 원치 않건 그는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다. 세상 일들이란 돌이킬 수 없는 법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의 실험을 하고, 저들은 또 저들의 실험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조카인 노스와 질녀인 페기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얼굴에 햇빛을 받으며 그녀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완벽하게 건강한 달걀 껍질 같은 그들의 얼굴이 유난히 젊어 보였다. 페기가 입고 있는 파란 드레스가 어린아이의 모슬린 원피스처럼 눈에 띄었고 갈색 눈을 한 노스는 아직 크리켓을 하는 소년이었다. 그는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반면 페기는 자기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잘 교육받고 자란 아이들이 웃어른들의 얘기를 들을 때 짓는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재미있어할지도 모르지, 아니면 지루해할까? 엘리너는 어느 쪽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
그녀는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부엉이를 보고 싶었다. 그녀는 새에 대해 부쩍 흥미를 느껴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징조야, 침실로 들어가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씻고 새를 관찰하는 나이든 여자라, 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눈 주위에 주름이 있긴 했지만 자신의 눈이 여전히 빛나는 듯했다. 더빈이 칭찬을 했기에 기차 안에서 그늘 속으로 가렸던 그 눈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게는 씻고 새를 관찰하는 나이 든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었어. 그녀가 생각했다. 그게 바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이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난 절대로 그렇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거울에서 물러났다. 멋진 방이었다. 누군가 벌레를 짓이긴 흔적들이 벽에 남아 있고 창문 아래에서 남자들이 고함치던 외국 여관의 침실들에 머물렀던 뒤라서인지 방은 그늘지고 세련되고 시원했다. 그런데 쌍안경은 어디 있담? 어디 서랍에라도 치워두었나? 그녀는 쌍안경을 찾으려고 돌아섰다.
...
"아주 오래전이겠네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오래전도 아니야." 엘리너가 말했다. 그녀는 조금 화가 났다. "글쎄......" 그녀가 생각에 잠겼다. "이십 년 - 이십오 년 즈음일거야."
그녀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페기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제 고작 열여섯이나 열일곱 살 정도일 것이다.
......
아마도 그녀가 줄곧 여행 중이어서 그럴 테지만, 아직도 배가 부드럽게 바다를 지나가고 있는 것 같고, 아직도 기차가 덜커덩거리며 프랑스를 지나느라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녀가 홑이불로 덮고 몸을 쭉 편채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사물들이 그녀는 지나쳐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것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람들의 삶, 그들의 변화하는 삶이었다.
...
천장의 나방들을 바라보고, 촉촉한 울음소리를 내며 나무에서 나무로 원을 그리며 나는 부엉이 소리를 듣고 있던 그녀의 마음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 버린 그 말들은 그 온전한 의미를 내주지는 않았지만 고대 이탈리아어라는 단단한 껍질 안에 무엇인가를 접어 넣어두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덮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조만간 이 책을 읽어야지. 크로스비에게 연금을 주고 그만두게 하고 나면, 그때...... 다른 집을 빌려야 할까? 여행을 할까? 드디어 인도로 갈까? 윌리엄 경이 옆방에서 침대에 들고 있었다. 그의 인생은 끝이 나고 그녀의 삶은 이제 시작된 것이었다. 아니야, 나는 또 다른 집을 구할 생각은 없어, 또 다른 집은 아니야. 천장 위에 얼룩을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배가 부드럽게 바다를 헤쳐 가고, 기차가 선로를 따라 좌우로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다시 들었다. 모든 것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는 법이지. 그녀는 생각했다. 모든 건 지나가고 모든 건 변하지. 그녀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지? 어디로? 어디로?...... 나방들이 천장을 맴돌며 돌진하듯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책이 미끄러져 마루에 떨어졌다. 크래스터가 돼지를 탔지. 그런데 은쟁반은 누가 탔더라? 생각해내려고 애를 쓰다가 그녀는 돌아누워 촛불을 껐다. 어둠이 가득 내렸다.

1911년
<세월> 버지니아 울프, 김영주 옮김,열린책들



 
2019-10-16
그녀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노년이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그녀는 생각했다.. 하나씩 하나씩 사람의 기능을 잘라내면서도 살아 있는 어떤 것을 중심에 남겨놓다니. 체스 한 판, 공원에서의 드라이브와 아버스넛 장군의 저녁 방문만을 남겨놓고서....... 그녀는 신문을 오려낸 것들을 쓸어 모았다.
유제니 숙모와 딕비 숙부처럼, 제 기능을 다 갖추고 있는 생의 절정기에 죽는 것이 더 낫지. 하지만 그는 저런 인물은 아니었어. 오려낸 신문 기사에 눈길을 주며 그녀는 생각했다. "뛰어나게 매력적인 인물...... 사냥과 낚시와 골프를 즐겼다.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았어. 그는 아주 기이한 사람이었어. 유약하고 민감하고 직함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했지. 그리고 아내의 활발함에 종종 기가 눌렸어. 그녀는 짐작했다. 그녀는 신문 조각들을 밀어놓고 그녀의 책을 집어 들었다. 신기한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두 사람에게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말이야. 유제니 숙모를 좋아하는 마틴, 딕비 숙부를 좋아했던 그녀. 그녀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08년
<세월> 버지니아 울프, 김영주 옮김,열린책들

1880년부터 1918년까지의 이야기.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에 태어나 1941년에 세상을 떠났다.




 
2019-10-14
내심 하는 생각들

이럴 일인가, 싶은데 나는 이 소설을 반년 동안 썼다. 중간에 다른 원고를 쓰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이러저러한 일들도 있었고, 두어 번은 완전히 새로 시작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하면서 핑계를 대고 싶어도 겨우 단편 한 편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이럴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작년 여름에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아무래도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원고를 밤새 붙들고 있다가 그날 쓴 문장을 모두 지우고 어스름한 새벽빛에 수면안대를 한 뒤 침대에 누울 때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에서 이렇게까지 살 일인가, 로 곡잘 생각이 넘어갔고...... 그러다 약속한 기한을 한참 넘기고 이제는 정말이지 반드시 보내야 하는 최후의 마지막 데드라인이 밝어오기 전날, 며칠째 제대로 잠도 자지 않은 채 원고를 완성시키려고 애쓰던 나는 절망에 빠졌다. 막상 끝을 내려니 반년간 매달려온 이 소설이 완전히 망했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대체로 나의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내가 쓰는 글이 충분히 소설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이상하지, 나만큼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데 이 소설은 너무 말이 많아, 너무 직접적이면서 또 너무 추상적이고(장면은 거의 없는데다가), 지루한 감정 토로만 끊임없이 늘어놓고 있잖아?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심지어 전위적이지도 않아...... 나는 자주 내 글의 뱃가죽이 너무 얇아 내장이 훤히 비쳐 보이는 개구리처럼 불필요할 정도로 투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글쓰기를 멈추게 될 때마다 '소설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느낀/느끼는 감정을 전달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거야. 그러나 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 아니어서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마감 전날 참담한 기분이 되어 이건 소설도 아냐, 역시 아무래도...... 디테일이 너무 없이, 심지어...... (다시 한번) 전위적이지도 않고, 라고 중얼거리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놀랍게도 완전히 절망에 빠져 그다지 길지도 않았던 나의 소설가 인생을 끝내기로 마음먹기 직전(다행히 실제로 그런 마음을 먹지는 않았다) 느닷없이 어딘가에서 희망의 전조 같은 것이 아주 미약하게 피어오르는 걸 느꼈으며(그 와중에 나는 마지막 두 문단을 썼고, 문장을 몇 개 손보았다) 종말의 전조만큼이나 분명한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이상 전조가 아니게 되었고 이내 나는 왜인지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이게 바로 '그 소설'이야. 내가 쓰려고 했던 그 '소설!' 그러고 곧이어 나는 한시라도 빨리 내가 쓴 것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거야, 이게 내가 쓰려던 거라구!...... 물론 이 역동적이고 파고 높은 감정은 송고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지만. (나는 늘 그렇듯이 송고 후 오랫동안 깊은 무력감에 젖어들었다.......)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
작가노트, 정영수 ⌈우리들⌋




 
2019-10-12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하

상을 삼분의 이쯤 읽다가 내버려 뒀다가
다시 읽고 있다.
하의 초반, 아버지가 살해된 채 발견되고
삼형제의 첫째가 누명을 쓰는 결정적인 장면을 지나며
이제는 예전처럼 도스토예프스키가 흥미진진하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흥미진진하지가 않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것을 떠나서 읽기 시작하면
책을 덮지 못해 새벽까지 읽곤 했다.





 
2019-10-12
피터 거리를 뒤덮으며 피어오르던 연기가 집들 사이의 좁은 틈 사이에서 짙어져 촘촘한 회색 베일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나 길 양쪽의 집들은 선명하게 잘 보였다. 거리 중간에 있는 두 채를 제외하고 집들은 모두 똑같았다. 점판암 지붕을 덮은 누르스름한 회색 상자 모양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어린아이 몇이 거리에서 놀고 있었고 고양이 두 마리가 배수로에 있는 무엇인가를 앞발로 뒤집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무엇인가 먹을 것을 찾아 샅샅이 뒤지는 것처럼 거리를 이쪽저쪽으로, 위아래로 탐색하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맹금의 눈처럼 탐욕스럽고 욕심 사나워 보이면서도 허기를 풀어줄 먹잇감이 전혀 없다는 듯이 부루퉁하고 졸린 듯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그녀는 여전히 게으르고 불만에 찬 눈길로 거리를 위아래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이륜마차가 모퉁이를 돌아왔다. 그녀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마차는 길 건너편 집 앞에 멈춰 섰다. 그 집은 창틀이 초록색이고 문에 해바라기가 찍힌 명판이 걸려 있어서 다른 집들과는 구분되었다. 납작한 트위드 모자를 쓴 작은 체구의 남자가 내리더니 그 문을 두드렸다. 거의 만삭인 여자가 나와서 문을 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젓고 거리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문을 닫고 들어가버렸다. 그 남자는 기다렸다. 말도 고삐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 채 참을성 있게 서 있었다. 하얀 얼굴에 턱이 여러 겹이고 아랫입술이 선반처럼 툭 튀어나오온 또 다른 여자가 창가에 나타났다. 두 여자는 나란히 창문에 몸을 기대고 그 남자를 지켜보았다. 그는 안짱다리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그에 대해 무언가 말을 주고받았다. 그는 곧 담배를 내던졌다. 그들은 그를 지켜보았다. 그가 다음에 무슨 일을 할까? 말에게 먹을 것을 주려나? 그러나 이때 회색 트위트 치마에 코트를 입은 키 큰 여자가 황급히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그러자 그 작은 남자가 몸을 돌려 손을 모자에 대고 인사했다.

<세월> 버지니아 울프, 김영주 옮김,열린책들


묘사하기.



 
2019-10-10
거짓말! 그녀가 마음 속으로 외쳤다. 얼마나 지독한 거짓말인가! 그는 그녀가 진정으로 느꼈던 단하나의 감정을 앗아갔다. 그녀가 진정으로 이해했던 그 한 순간을 그가 망쳐버린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모리스와 앨리너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들의 코가 빨갰다. 그들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너무 경직되고 굳어 있어서 그녀는 충동적으로 크게 웃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저렇게 느낄 수는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는 거야. 우리 모두 그 어떤 것도 느끼고 있지 않아.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척하고 있는 거지.
그때 다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결하려던 시도가 끝난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걸어갔다. 이제 행렬을 이루려는 시도 같은 것은 없었다. 작은 무리들이 한데 모였다. 무덤 사이에서 사람들은 다소 은밀하게 악수를 나누고 미소까지 지었다.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에드워드가 연로한 제임스 그레이엄 경과 악수를 하면서 말하자, 그는 에드워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녀도 가서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까? 무덤들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차츰 상복을 입은 채 무덤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가라앉은 아침나절의 파티를 벌이는 양상으로 되어갔다. 그녀는 주저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줄곧 걷고 있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묘지꾼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화환들을 솜씨 좋게 쌓아 올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근처를 서성이던 그 여자가 그들과 합세해서 카드에 적힌 이름들을 읽느라 몸을 숙이고 있었다. 장례식이 끝났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1880년

<세월 The Years> 버지니아 울프, 김영주 옮김, 솔출판사



 
2019-10-03



솔출판사 버지니아 울프 전집 중
<제이콥의 방>과 <세월>을 샀다.
주문할 때 이미지로 볼 때는 몰랐는데 하드커버.
종이커버로 한 겹 더 싸여있지 않아서 좋다.(읽을 때 불편)

그리고
기사로 수상작 선정 소식을 보고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샀다.
응, 한국 소설을 나오기를 기다려서 사는 사람이 되었어.



 
2019-09-29


버지니아 울프 전집이 28년만에 완간되었다고 한다.(솔출판사)
몇 년 전에 이 전집에서 나온 <파도>와 <유산>이 집에 있다.
그런데 긴 시간이 걸려 전집이 나오는 동안 책의 모양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 나는 싫어.
집에 있는 책이랑 안 맞잖아.




 
2019-09-29
언젠가 서펀타인 연못에 1실링짜리 동전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 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내던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몸을 내던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겠지(그녀도 다시 가봐야 했다. 방들은 여전히 북적이고, 손님들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우리는(그녀는 온종일 부어턴과 피터와 샐리를 생각했다) 늙어 갈 거야. 중요한 단 한 가지, 그녀의 삶에서는 그 한가지가 쓸데없는 일들에 둘러싸여 가려지고 흐려져서, 날마다 조금씩 부패와 거짓과 잡담 속에 녹아 사라져 갔다. 바로 그것을 그는 지킨 것이었다. 죽음은 도전이었다. 죽음은 도달하려는 시도였다. 사람들은 그 중심이 왠지 자신들을 비켜가므로 점점 더 거기에 도달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 가까웠던 것이 멀어지고, 황홀감은 시들고,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죽음은 팔을 벌려 우리를 껴안는다.
...
그런데(바로 오늘 아침 그녀 자신도 그랬지만) 두려움이라는 것도 있다. 부모가 손에 쥐어 준 이 인생이라는 것을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 평온하게 지니고 가야 한다는 것에 덮쳐 오는 무력감. 그녀의 마음속 갚은 곳에도 끔찍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요즈음도, 리처드가 있어 주지 않는다면, ⌈더 타임스⌋를 읽으며 그가 거기 있지 않다면, 그래서 그녀가 새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차츰 되살아나 마치 마른 가지를 마주 비비듯 그 한량없는 기쁨의 불꽃을 피워 내지 못한다면, 그녀는 도저히 더 살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 두려움에서 그녀는 벗어났다. 하지만 그 청년은 자살을 한 것이다.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2019-09-22
그녀는 무엇보다도 레이디 벡스버러처럼 검은 머리, 쭈글쭈글한 가죽 같은 피부에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인이었으면 했다. 레이디 벡스버러처럼 느긋하고 당당해지고 싶었다. 몸집이 크고, 남자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고, 시골에 별장을 소유하고, 아주 점잖고 아주 진지한 여성. 반면 그녀 자신은 가느다란 완두콩 줄기 같은 몸집에 우스울 만큼 작은 얼굴에 코는 새의 부리처럼 뾰족했다. 사실 몸을 잘 가꾸고 있었고, 손과 발은 여전히 고왔다. 또, 옷값을 별로 들이지 않는 것치고는 옷도 잘 입었다. 하지만 이제 종종 자신이 걸치고 있는 이 몸(그녀는 네덜란드 그림을 보려고 멈추어 섰다), 이 몸과 그 모든 기능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아무것도 아니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보이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존재. 더는 결혼을 할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을 것도 아니고, 단지 사람들과 더불어 본드 스트리트를 걸어가는, 이 놀랍고도 다분히 엄숙한 행진에 동참하고 있을 뿐이야. 클라리사조차도 더는 아니고 그저 미세스 댈러웨이, 리처드 댈러웨이의 부인으로서.

밀리선트 브루턴의 오찬 파티는 각별히 유쾌하다고 하던데, 그녀는 초대받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저열한 시기심도 그녀를 리처드에게서 떼어 놓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그녀가 두려운 것은 시간 그 자체였다. 레이디 브루턴의 얼굴이 마치 무감각한 돌에 새겨진 해시계나 되는 듯이, 그녀는 거기서 자기 삶의 시간이 기우는 것을 읽었다. 해마다 그녀의 몫은 베어져 나가 이제 남은 귀퉁이는 얼마 되지 않으며, 더 이상 잡아 늘일 수도 없고 젊었을 때처럼 삶의 다채로운 빛깔과 맛과 분위기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젊었을 때는 그 모든 것으로 얼마나 충만했던지, 방 안에 들어설 때면 그녀의 존재로 온 방이 가득 차는 듯했다. 가끔 자기 응접실 문간에 서서 지체할 때문, 마치 물속에 뛰어들기 직전의 잠수부와도 같이 미묘한 긴박감을 맛보곤 했다. 발밑의 바다는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고, 파도는 막 부서질 듯하지만 이내 부드럽게 퍼져 나가면서, 수초를 휘말고 숨기고 뒤집으면서 진주빛 포말이 엉겨붙게 한다.

그녀가 늙었다고 생각할까? 그가 그렇게 입 밖에 내어 말할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이쪽에서 눈치 채게 될까? 그가 돌아와 보니 그녀가 늙어 있더라고? 사실 그랬다. 앓고 난 후로 그녀는 머리가 거의 새하얗게 세었다.
브로치를 탁자 위에 놓다가, 그녀는 갑작스런 경련을 느꼈다. 잠시 그런 의문들을 떠올리는 사이를 틈타, 얼음처럼 차디찬 새발톱이 가슴속을 파고들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직 그렇게 늙은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쉰두 번째 해로 접어들었을 뿐인데. 아직도 여러 달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월, 칠월, 팔워! 한 달 한 달이 여전히 옹글게 남아 있었다. 마치 그 떨어지는 방울을 붙잡기라도 하려는 듯, 클라리사는 (화장대 쪽으로 다가가며) 바로 그 순간의 핵심 속으로 뛰어들어, 그것을 거기에 고정시켰다 - 이 유월 아침의 순간을, 다른 모든 아침들의 무게가 실려 있는 이 아침의 한순간을 고정시키듯, 그녀는 거울과 화장대와 늘어선 병들을 새삼스럽게 둘러보면서 자신의 전부를 한 점에 모아 (거울 속을 들여다보면서), 섬세한 분홍빛 얼굴을 마주 보았다. 오늘 저녁 파티를 열려는 여인, 클라리사 댈러웨이, 그녀 자신의 얼굴이었다.

댈러웨이 부인 Mrs. Dalloway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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