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9-10-12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하

상을 삼분의 이쯤 읽다가 내버려 뒀다가
다시 읽고 있다.
하의 초반, 아버지가 살해된 채 발견되고
삼형제의 첫째가 누명을 쓰는 결정적인 장면을 지나며
이제는 예전처럼 도스토예프스키가 흥미진진하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흥미진진하지가 않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것을 떠나서 읽기 시작하면
책을 덮지 못해 새벽까지 읽곤 했다.





 
2019-10-12
피터 거리를 뒤덮으며 피어오르던 연기가 집들 사이의 좁은 틈 사이에서 짙어져 촘촘한 회색 베일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나 길 양쪽의 집들은 선명하게 잘 보였다. 거리 중간에 있는 두 채를 제외하고 집들은 모두 똑같았다. 점판암 지붕을 덮은 누르스름한 회색 상자 모양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어린아이 몇이 거리에서 놀고 있었고 고양이 두 마리가 배수로에 있는 무엇인가를 앞발로 뒤집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무엇인가 먹을 것을 찾아 샅샅이 뒤지는 것처럼 거리를 이쪽저쪽으로, 위아래로 탐색하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맹금의 눈처럼 탐욕스럽고 욕심 사나워 보이면서도 허기를 풀어줄 먹잇감이 전혀 없다는 듯이 부루퉁하고 졸린 듯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그녀는 여전히 게으르고 불만에 찬 눈길로 거리를 위아래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이륜마차가 모퉁이를 돌아왔다. 그녀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마차는 길 건너편 집 앞에 멈춰 섰다. 그 집은 창틀이 초록색이고 문에 해바라기가 찍힌 명판이 걸려 있어서 다른 집들과는 구분되었다. 납작한 트위드 모자를 쓴 작은 체구의 남자가 내리더니 그 문을 두드렸다. 거의 만삭인 여자가 나와서 문을 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젓고 거리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문을 닫고 들어가버렸다. 그 남자는 기다렸다. 말도 고삐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 채 참을성 있게 서 있었다. 하얀 얼굴에 턱이 여러 겹이고 아랫입술이 선반처럼 툭 튀어나오온 또 다른 여자가 창가에 나타났다. 두 여자는 나란히 창문에 몸을 기대고 그 남자를 지켜보았다. 그는 안짱다리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그에 대해 무언가 말을 주고받았다. 그는 곧 담배를 내던졌다. 그들은 그를 지켜보았다. 그가 다음에 무슨 일을 할까? 말에게 먹을 것을 주려나? 그러나 이때 회색 트위트 치마에 코트를 입은 키 큰 여자가 황급히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그러자 그 작은 남자가 몸을 돌려 손을 모자에 대고 인사했다.

<세월> 버지니아 울프, 김영주 옮김,열린책들


묘사하기.



 
2019-10-10
거짓말! 그녀가 마음 속으로 외쳤다. 얼마나 지독한 거짓말인가! 그는 그녀가 진정으로 느꼈던 단하나의 감정을 앗아갔다. 그녀가 진정으로 이해했던 그 한 순간을 그가 망쳐버린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모리스와 앨리너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들의 코가 빨갰다. 그들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너무 경직되고 굳어 있어서 그녀는 충동적으로 크게 웃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저렇게 느낄 수는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는 거야. 우리 모두 그 어떤 것도 느끼고 있지 않아.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척하고 있는 거지.
그때 다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결하려던 시도가 끝난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걸어갔다. 이제 행렬을 이루려는 시도 같은 것은 없었다. 작은 무리들이 한데 모였다. 무덤 사이에서 사람들은 다소 은밀하게 악수를 나누고 미소까지 지었다.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에드워드가 연로한 제임스 그레이엄 경과 악수를 하면서 말하자, 그는 에드워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녀도 가서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까? 무덤들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차츰 상복을 입은 채 무덤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가라앉은 아침나절의 파티를 벌이는 양상으로 되어갔다. 그녀는 주저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줄곧 걷고 있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묘지꾼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화환들을 솜씨 좋게 쌓아 올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근처를 서성이던 그 여자가 그들과 합세해서 카드에 적힌 이름들을 읽느라 몸을 숙이고 있었다. 장례식이 끝났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1880년

<세월 The Years> 버지니아 울프, 김영주 옮김, 솔출판사



 
2019-10-03



솔출판사 버지니아 울프 전집 중
<제이콥의 방>과 <세월>을 샀다.
주문할 때 이미지로 볼 때는 몰랐는데 하드커버.
종이커버로 한 겹 더 싸여있지 않아서 좋다.(읽을 때 불편)

그리고
기사로 수상작 선정 소식을 보고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샀다.
응, 한국 소설을 나오기를 기다려서 사는 사람이 되었어.



 
2019-09-29


버지니아 울프 전집이 28년만에 완간되었다고 한다.(솔출판사)
몇 년 전에 이 전집에서 나온 <파도>와 <유산>이 집에 있다.
그런데 긴 시간이 걸려 전집이 나오는 동안 책의 모양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 나는 싫어.
집에 있는 책이랑 안 맞잖아.




 
2019-09-29
언젠가 서펀타인 연못에 1실링짜리 동전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 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내던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몸을 내던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겠지(그녀도 다시 가봐야 했다. 방들은 여전히 북적이고, 손님들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우리는(그녀는 온종일 부어턴과 피터와 샐리를 생각했다) 늙어 갈 거야. 중요한 단 한 가지, 그녀의 삶에서는 그 한가지가 쓸데없는 일들에 둘러싸여 가려지고 흐려져서, 날마다 조금씩 부패와 거짓과 잡담 속에 녹아 사라져 갔다. 바로 그것을 그는 지킨 것이었다. 죽음은 도전이었다. 죽음은 도달하려는 시도였다. 사람들은 그 중심이 왠지 자신들을 비켜가므로 점점 더 거기에 도달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 가까웠던 것이 멀어지고, 황홀감은 시들고,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죽음은 팔을 벌려 우리를 껴안는다.
...
그런데(바로 오늘 아침 그녀 자신도 그랬지만) 두려움이라는 것도 있다. 부모가 손에 쥐어 준 이 인생이라는 것을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 평온하게 지니고 가야 한다는 것에 덮쳐 오는 무력감. 그녀의 마음속 갚은 곳에도 끔찍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요즈음도, 리처드가 있어 주지 않는다면, ⌈더 타임스⌋를 읽으며 그가 거기 있지 않다면, 그래서 그녀가 새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차츰 되살아나 마치 마른 가지를 마주 비비듯 그 한량없는 기쁨의 불꽃을 피워 내지 못한다면, 그녀는 도저히 더 살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 두려움에서 그녀는 벗어났다. 하지만 그 청년은 자살을 한 것이다.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2019-09-22
그녀는 무엇보다도 레이디 벡스버러처럼 검은 머리, 쭈글쭈글한 가죽 같은 피부에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인이었으면 했다. 레이디 벡스버러처럼 느긋하고 당당해지고 싶었다. 몸집이 크고, 남자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고, 시골에 별장을 소유하고, 아주 점잖고 아주 진지한 여성. 반면 그녀 자신은 가느다란 완두콩 줄기 같은 몸집에 우스울 만큼 작은 얼굴에 코는 새의 부리처럼 뾰족했다. 사실 몸을 잘 가꾸고 있었고, 손과 발은 여전히 고왔다. 또, 옷값을 별로 들이지 않는 것치고는 옷도 잘 입었다. 하지만 이제 종종 자신이 걸치고 있는 이 몸(그녀는 네덜란드 그림을 보려고 멈추어 섰다), 이 몸과 그 모든 기능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아무것도 아니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보이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존재. 더는 결혼을 할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을 것도 아니고, 단지 사람들과 더불어 본드 스트리트를 걸어가는, 이 놀랍고도 다분히 엄숙한 행진에 동참하고 있을 뿐이야. 클라리사조차도 더는 아니고 그저 미세스 댈러웨이, 리처드 댈러웨이의 부인으로서.

밀리선트 브루턴의 오찬 파티는 각별히 유쾌하다고 하던데, 그녀는 초대받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저열한 시기심도 그녀를 리처드에게서 떼어 놓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그녀가 두려운 것은 시간 그 자체였다. 레이디 브루턴의 얼굴이 마치 무감각한 돌에 새겨진 해시계나 되는 듯이, 그녀는 거기서 자기 삶의 시간이 기우는 것을 읽었다. 해마다 그녀의 몫은 베어져 나가 이제 남은 귀퉁이는 얼마 되지 않으며, 더 이상 잡아 늘일 수도 없고 젊었을 때처럼 삶의 다채로운 빛깔과 맛과 분위기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젊었을 때는 그 모든 것으로 얼마나 충만했던지, 방 안에 들어설 때면 그녀의 존재로 온 방이 가득 차는 듯했다. 가끔 자기 응접실 문간에 서서 지체할 때문, 마치 물속에 뛰어들기 직전의 잠수부와도 같이 미묘한 긴박감을 맛보곤 했다. 발밑의 바다는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고, 파도는 막 부서질 듯하지만 이내 부드럽게 퍼져 나가면서, 수초를 휘말고 숨기고 뒤집으면서 진주빛 포말이 엉겨붙게 한다.

그녀가 늙었다고 생각할까? 그가 그렇게 입 밖에 내어 말할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이쪽에서 눈치 채게 될까? 그가 돌아와 보니 그녀가 늙어 있더라고? 사실 그랬다. 앓고 난 후로 그녀는 머리가 거의 새하얗게 세었다.
브로치를 탁자 위에 놓다가, 그녀는 갑작스런 경련을 느꼈다. 잠시 그런 의문들을 떠올리는 사이를 틈타, 얼음처럼 차디찬 새발톱이 가슴속을 파고들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직 그렇게 늙은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쉰두 번째 해로 접어들었을 뿐인데. 아직도 여러 달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월, 칠월, 팔워! 한 달 한 달이 여전히 옹글게 남아 있었다. 마치 그 떨어지는 방울을 붙잡기라도 하려는 듯, 클라리사는 (화장대 쪽으로 다가가며) 바로 그 순간의 핵심 속으로 뛰어들어, 그것을 거기에 고정시켰다 - 이 유월 아침의 순간을, 다른 모든 아침들의 무게가 실려 있는 이 아침의 한순간을 고정시키듯, 그녀는 거울과 화장대와 늘어선 병들을 새삼스럽게 둘러보면서 자신의 전부를 한 점에 모아 (거울 속을 들여다보면서), 섬세한 분홍빛 얼굴을 마주 보았다. 오늘 저녁 파티를 열려는 여인, 클라리사 댈러웨이, 그녀 자신의 얼굴이었다.

댈러웨이 부인 Mrs. Dalloway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2019-09-01



그간.





 
2019-07-28

베토벤 교향곡의 특징을 '극적'이라 한다면, 슈베르트 교향곡의 특성은 C장조 교향곡에서 드러난 것처럼 '서사적'이다. 슈베르트의 C장조 교향곡은 훗날 로베르트 슈만이 깊이 매료되어 '천상의 길이'라고 했을 만큼 그 발전과 전개의 폭이 엄청난데, 그로 인해 음악적 시간을 전혀 새롭게 조직하는 방식이 교향곡 장르에 도입되었다. 이 모든 것의 기초는 화성을 새롭게 형상화하는 기술인데, 슈베르트는 이 무렵이 그 기술을 스스로 터득했다. 효율적이고 철저하고 목표 지향적인 형식을 대신해서 구조적인 이탈과 더불어 미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정적이고 재귀적이고 정체하는 형식이 등장하게 되었다.

<프란츠 슈베르트>
한스-요하힘 힌리히센, 홍은정 옮김, 프란츠


음악은 잘 모른다.
이 책의 설명들은 거의 대부분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로 읽는다.
단조와 장조, 으뜸화음 등의 기본적인 개념조차.
그래서 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읽힌다.




 
2019-07-24

'이제 불가사의 하고 스산한 음향이 슈베르트 음악에서 자취를 감추는 일은 없으며, 심지어 가장 밝은  C장조 작품에까지 스며들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우울함을 자아낸다. '

<Franz Schubert> Hans-Joachim Himrichsen, 홍은정 옮김, Fr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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