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23-04-11
되찾은 시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여러 번 내 앞에 다시 나타났으며, 그때마다 다른 상황이 그 동일한 사람들을 내게 얼마나 다양한 형태와 목적 아래 제시하는 듯 보였던가. 각각의 인물이 짠 실타래가 통과한 내 삶의 여러 다양한 지점은 지극히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을, 마치 삶이 가장 다른  형태의 무늬를 짜기 위해 제한된 수의 실타래만을 소유한다는 듯 마침내 섞어 놓았다. 이를테면 나의 다양한 과거에는 아돌프 할아버지를 방문했던 일을 비롯하여, 원수의 여사촌인 빌파리지 부인의 조카, 르그랑댕 씨와 그의 여동생, 우리 집 안마당에서 살던 프랑수아즈의 친구이자 조끼 짓는 전직 재봉사 등이 있었는데, 그들보다 더 멀리 떨어진 존재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오늘 이 모든 상이한 실타래가 이야기의 골조를 짜기 위해 한데 모였고, 여기는 생 루 부부, 저기는 젊은 캉브르메르 부부, 또 모렐은 말하지 않더라도 다른 많은 이들의 결합이 일련의 상황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으므로, 내게는 이 상황이 완벽한 통일성을 이루면서 각각의 인물은 다만 그 구성 요소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 삶은 삶이 내게 제시하는 존재 중 하나 이상이 내 기억의 반대편에서 그 존재를 완성하기 위해 다른 존재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이미 긴 것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만났으며, 이제 자신의 명성에 어울리는 자리를 차지한 엘스티르만 해도, 나는 그에게 베르뒤랭 부부와 코타르 부부, 리브벨 레스토랑에서의 대화, 내가 알베르틴을 만났던 오후 모임과 같은 가장 오래된 추억들을 덧붙일 수 있었다. 이처럼 어떤 예술 애호가는 누군가가 제단화 한 폭만 보여주어도 다른 폭이 어느 성당, 어느 박물관, 어느 개인 소장품에 분산되었는지를 기억한다. 그는 머릿속에서 제단화의 밑부분을, 더 나아가 제단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 권양기를 따라 올라가는 통이 여러 번에 걸쳐 반대쪽에 걸린 밧줄을 건드리는 것처럼, 내 삶에서 자리를 차지했던 인물이나 하물며 사물들조차 차례차례로 번갈아 가면서 상이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없다. 단순한 사교 관계나, 물질적인 대상이라 해도 내가 몇 해 후 기억 속에서 다시 만날 때면, 나는 삶이 그 대상 주위에 부단히 다른 실들을 낫다가, 마치 오래된 공원의 하찮은 수도관을 에메랄드빛 칼집으로 에워싸는 벨벳처럼, 세월의 모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벨벳에 의해 그 대상의 울림을 약화시키는 것을 보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2> 민음사

 
2023-04-09
'형이상학도 신학도 혹은 자연과학도 인간의 언어와 사고에는 결코 이르지 않는 실재를 인간의 외부에 설정하고, 종종 현실과 이념, 이곳과 저편, 주체와 객체를 이분하는 세계관에 의해서 인간적 현실을 국한하고, 세계와 인간을 분단해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우리가 인지하고 경험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언어와 사고 속에서 생기하고, 이것에 의해서 제작되고, 영향받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국가와 경제 같은 공공성의 차원에서 생겨나고 있는 사태, 또 우리가 자연으로 간주하고 있는 사상조차 우리의 관점, 사고, 언어의 바깥에는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계에 끊임없이 관계하고 있고, 세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이 '비실제론(인간은 인간 외부의 무한한 넓이 속에서 극히 일부이다)와 '프래그머티즘'(모든 사상이 인간의 행위와 사고에 관계되어 있다)은 일견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어느 쪽이나 인간의 영역을 영원히 고정된 현실로 간주하고, 다양한 운동과 진동으로부터 절연하고자 하는 사고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비실재론'은 고정된 인간적 현실의 바깥에서 인간을 고쳐 응시하고, '프래그머티즘'은 그렇게 하여 한 번 개척된 인간의 지평에서, 일상의 실천과 경험을 구성하는 운동과 진동에서 인간을 고쳐 파악한다.

철학의 민주화란 철학의 비민중적 요소, 즉 인간적 현실을 고정된 실체에 가두고 또 생의 현실적 과정에서 분리하는 경향에 대항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비민중적 사고를 해체하는 공공성과 전달 가능성을 향하여 사고를 확장하고 단련하여 가는 것일 뿐이다.'

- 프롤로그 중

'확실히 '기쁨'은 들뢰즈에게 있어서 단순한 취미와 기분의 문제는 아니었다. 또 니체주의의 지속이라고 하는 틀에 알맞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낙천주의를 원천으로 하는 사고도 아니다. 그것은 사고의 생명과 관계되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관계되는 것이다.

미리 존재한다고 간주되고 생성과 운동을 배척하고 고정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진 주체와 이성과 지식과 표항에 언제나 저항하고, 그것들과 일체인 도덕, 정치, 권력에 대항하고자 했다.

'미래'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부분 기지의 사항에 의지하여 가장 현저하게 보이는 지표에 따라서  이야기하고 있음에 불과하고 예지의 능력을 가질 수는 없다. 우리는 언제나 구제할 길이 없을 정도로 과거의 이미지에 의지하여 그 이미지를 반복하면서 과거조차도 잘못 읽고, 미래를 상기하지마 그것이 반복인 것 자체를 생각해 보는 일은 드문 것이다. 미래는 본질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상당히 어중간한 과거(현재랑 과거의 산단-앞쪽의 끝-이다)의 이미지를 투영하여 미리 과거도 미래도 국한하면서 미래에 관하여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화적 문맥을 벗어나서 '영원회귀'에 관하여 이상할 정도로 진지하게 생각하고자 했던 니체와 들뢰즈는 필시 미래를 생각하는 데서도 상당히 다른 양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사고가 근본적으로 빈약하고 종종 점과 예언어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그저 과거의 국한된 이미지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태 그 자체를 잘 생각할 수 없는 채 심신 만은 끊임없이 미래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죽음이라는 확실한 미래에 관해서도 우리는 잘 생각하지 못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쁨의 철학'은 죽음의 미래에 대한 가능한 한 정확한 계측과 지식과 함께 있을 것이고, 그러한 계측과 지식은 이미 과거의 민중의 사고 속에 면면이 실재하여 왔던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강력한 두뇌를 가진 사상가들도 결코 이 문제를 끝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철학하기 위해서 동물이 되는 것, 결코 들뢰즌ㄴ 역설을 말했던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는 영역과 인간 바깥(동물, 식물 물질 등)의 영역가의 관계 그 자체를 끊임없이 재고하는 것은 그의 철학의 커다란 모티프였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생명, 인간과 사물, 그 사이의 연속과 불연속을 미세한 진동(차이)에서부터 거대한 구성에 이르기까지 동적으로, 횡단적으로 파악하여 사고의 정지와 죽음에 대항하는 것은 언제나 기본적인 자세였다. 그러한 시야에서 시공을 관통하는 어떤 법칙들을 확립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반복하고 변화하는 '사건'들을 감지하고자 했다.
자연은 노스탤지어도 유토피아도 아니며 끊임없이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리얼리티이고, 인간의 영역 어디까지에나 침투하면서 그런데도 외부성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을 둘러싼 정동이 혹은 파토스가 들뢰즈의 철학을 언제나 깊은 곳에서부터 생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그것이 하나의 '기쁨의 철학'으로 표출되었다.

<들뢰즈, 유동의 철학> 우노 구니이치 지음, 이정우, 김동선 옮김, 그린비

- 에필로그 중

-----------

들뢰즈 작업 준비하면서 처음 끝까지 읽은 책.
재미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부분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고 하지만 다른 책들에 비해 감정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많았고 설명도 비교적 쉽게 되어 있었고 사실은 재미있었다. 철학이 이런 학문이군,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부분에서 마음을 건드리는 학문이구나 생각을 하게 했다.
그 이후에 읽은 책들도 '재미'와 '어려움', '더 알고 싶다'와 '여긴 내 영역은 아니다'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끝까지 읽지 못한 책들이 대부분.
작업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전혀 모르겠고-작업을 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에 비해 책 자체는 평이하게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요즘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사실 철학이 너무 생소한 분야이므로, 내 언어로, 내 이야기로 표현하기에는. 하지만 책이 끝나보면 계속 취미로 철학책을 읽을지 말지 결정이 되겠지.




 
2023-03-18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주는 매우 수학적이다. 어쩌면 신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우주는 이런 우주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수도 있는데, 비수학적 우주에는 이런 질문을 던질 만한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우주가 항상 미적분학 언어를 사용해 미분방정식이라는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은 불가사의하면서도 경이로운 사실이다. 미분방정식은 지금 이 순간의 어떤 것과 다음 순간의 그것 사이의 차이를, 혹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과 무한히 짧은 순간 전후의 그것 사이의 차이를 기술한다. 세부 사항은 우리가 다루는 것이 자연의 어떤 부분이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법칙의 구조는 늘 똑같다. 이 경이로운 주장을 달리 표현한다면, 우주에는 암호 비슷한 것, 즉 매 순간 모든 장소에서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종의 운영 체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우주는 미천한 우리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종류의 논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종류의 논리가 작용하는 방식을 존중하며 따를까? 아인슈타인이 "세계의 영원한 수수께끼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는 말로 경이로움을 표현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유진 위그너가 <자연과학에서 수학의 터무니없는 효율성에 관해>라는 제목의 눈문에서 "물리학 법칙의 기술에서 수학 언어가 지난 적절성의 기적은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고 누릴 자격도 없는 경이로운 선물이다."라고 한 것도 그런 뜻에서 한 말이다.'

<미적분의 힘 Infinite Power>
스티븐 스트로가츠, 이충호 옮김, 해나무


재미있게 읽고 있다.
생각보다 훨씬 재밌다.

 
2023-03-16


'사실을 말하자면 그에게는 아직 악덕의 외적 흔적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우려할 만한 내적 흔적이 있었다. 큰 키에 매력적인 얼굴을 가진 그의 화술은 옆에 앉은 알코올 중독자의 지성과는 완전히 다른, 과장 없이 정말 뛰어난 지성을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모든 것에는 다른 문장에 적합한 표정이 덧붙여졌다. 인간의 얼굴 표정이라는 완벽한 보물을 소유하고서도 그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듯, 그 표정을 틀린 순서로 배열했고, 자신이 지금 듣고 있는 말과는 아무 상관 없는 미소와 시선을 되는대로 한 잎씩 흩날리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우리가 언제나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추구하는 어떤 꿈이 들어 있다. 베르고트나 스완에 대한 믿음은 내가 질베르트를 사랑하게 했고, 질베르 르 모베에 대한 믿음은 게르망트 부인을 사랑하게 했다. 그리고 지극히 고통스럽고 질투 어린, 그리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보였던 알베르틴에 대한 나의 사랑에는 얼마나 광대한 넓이의 바다가 마련되었던가! 게다가 우리가 집착하는 바로 이런 개인적인 성격 때문에 인간들에 대한 사람은 이미 조금은 일탈 행위인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2 - 되찾은 시간1> 마르셀 프루스트, 김화영 옮김, 민음사

밤에 자려고 누워서 거의 지루해하며 몇 페이지씩 읽고 있다. 그러다가 아 이래서 이 책을 좋아했었지 하는 부분들을 만난다.
이 책을 20대 때 읽고 건너 건너 한 권씩, 전체는 아니고 1권을 여러 번 읽었고 다른 건 몇 개만 읽고 이번에 읽으면서 완전하게 이 책이 그때만큼 좋지 않다,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인정하게 되었고 그것이 사실 반가웠다. 그리고 이렇게 이런 표현들은 정말 좋다 하며 설레게 되는 것도 반갑다.




 
2023-02-25


'언어의 방식으로 경험을 입증하고자 하는 욕구, 시간의 흐름 자체를 세심하게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욕구는 왜 충동의 수준에 가깝게 일어나는가? 나보코프는 자서전 <기억하라 말하라(Speak, Memory)>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시는 태곳적부터의 충동으로 의식 속의 우주에서 작가의 위치를 표현하려는 위상적인 것이다. 의식의 팔은 밖으로 뻗어 더듬어 찾고, 그 팔은 길수록 좋다. 아폴론이 타고난 기관은 날개가 아니라 촉수다." 많은 작가 - 보즈웰,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플로베르 그리고 당연히 제임스 조이스 - 가 그런 것처럼 나보코프에게도 언어를 통해 고쳐 쓰이기 전의 경험은 그 자체로 진정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그의 (역사적) 자아를 승인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 상상하고, 때로는 예술 작품에서 가공의 인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자신을 다시 명명한다 - 월트 휘트먼으로 이름을 바꾼 월터 휘트먼이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로 이름을 바꾼 데이밋 헨리 소로우를 돌이켜보라. 그리고 적어도 젊은 저자의 야심 속에서라면 그 충동은 신성한 의무의 수준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동생 스타니슬라우스에게 편지를 썼다. "미사의 신비와 내가 하려는 것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어. 일상생활의 빵을 그 자체로 영구적이고 예술적인 생명을 가진 것으로 바꿈으로서 (...) 사람들의 지적, 도덕적, 영적 고양을 위하여 (...) 그들에게 일종의 지적 혹은 영적 기쁨을 주려는 것이지."
작가의 삶이 지니는 복잡성을 버지니아 울프만큼 공들여 분석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여러 권의 일기에서, 그리고 비교적 적은 범위에서지만 편지에서 그것을 분석했다. 의식 속으로 들어오는 착상의 느린 진화, 뒤죽박죽이고 수수께끼 같은 모든 것을 지난하게도 글로 베껴 쓰는 것, 의기양양한 행위로서의 글쓰기 감각, 무의식(울프는 이것을 '그녀'로 생각하며 '잠재의식'이라고 불렀다)에 항복할 필요, 음향, 울림, 리듬으로서의 언어 속의 기쁨 -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자 애썼던 울프는 그에 대해 너무나 꼼꼼하게 썼다. 1928년 9월 8일 비타 색빌웨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을 시작할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건널 수 없는 심연의 저편에 그것이 존재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숨 가쁜 고통 속에서만 극복된다는 것도요. 글을 쓰려고 앉아 분명 한 시간 정도 있으면 착상에 내려앉을 언어의 그물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서 (...) 훌륭한 것은, 그것을 쓰기 전에는 글로 쓸 수 없는 것처럼 보이고, 오직 눈에 보이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9개월 동안 절망 속에서 살면서 의도했던 것을 잊었을 때에야 베로소 그 책은 봐줄 만해집니다.
-버지니아 울프, '1928년 9월 8일 비타 색빌웨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가의 신념> 조이스 캐롤 오츠, 송경아 옮김, 은행나무


일이 지루하고 답답하고 나는 매일 혼자서 벽을 앞에 두고 뭘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되돌이표로 반복할 때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쓴 책을 보면 정말 도움이 된다. 마음 속에 바람이 분다. 그 책들은 왜 그런지 대부분 소설가가 쓴 책. 나느 소설가가 아닌데 작업물이 비슷하지도 않은데.





 
2019-11-26


작품에 앞서
심사평과 수상소감이 있는 것은
좋은 구성은 아닌 것 같다.


수상작 편혜영 ⌈호텔 창문⌋과
김금희  ⌈기괴의 탄생⌋을 읽었다.



 
2019-11-20


디디의 우산



 
2019-11-17
뇌는 둥글지...... 그것이 둥근 이유는 두개골이라는 것이 아름답고도 단단한 구의 형태로 닫혀 있기 때문이야. 두개골이라는 틀이 있기에, 그것이 고유한 형태로, 저마다의 패턴으로 완벽하게 닫혀 있기에 뇌는 둥근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야. 말하자면 삶의 형태로...... 틀을 벗어나면 뇌는 그저 맥없이 풀어지는 구불구불한 끈일 뿐. 각각의 두개골은 각각의 패턴으로 맞물려 있지. 열명의 사람이 있다면 열가지, 백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가지 패턴으로. 각각은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니까 한개의 두개골, 그것이 붕괴되었을 때 세계는 유일했던 한가지, 방금 부서진 그 패턴을 상살한다. 억겁으로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을 그 패턴을. 그러나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런 상실쯤 세계에...... 그런 일은 그렇게 일어난다. 그냥 그렇게. 어떻게 그렇게...... dd의 패턴은 아름다웠겠지. 만인 속에서도 내가 알아볼 수 있었던 그 얼굴 속에서 고유하게 맞물려 있었을 것이다. 그것, 그것은 유일하니까 다시는 돌아올 수 없고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두번은 만날 수 없는...... 그것이 내 곁에서 슥 사라질 때, 슥 빠져나가 멀리, 튀어 오르는 빗물로 지글지글 끓는 것 같았던 검은 길 위로 내동댕이쳐지기 직전에, 나는 dd를 붙들고 있지 않았고 이윽고 모든 것이 그 길 위에서...... 우리가 항상 오가던 길 위에서, 중단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의 결과일까...... 무엇의, 결과이기는 한 걸까.

...

그것을 골똘하게 내려다보며 d는 바깥인데 조금도 바깥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방에 틀어박혔다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으나 여기는 여전히, 어딘가의 안쪽이고, 작은 주머니에서 조금 덜 작은 주머니로 이동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가 놀랍도록 친밀하고도 구태의연했다. 그리고...... 그렇다 당신의 말씀 그대로, 이 방은 본래 이러했다.
d는 그동안 자신이 무언가를 잃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세계가 변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야. 본래 상태로 돌아왔을 뿐이라고 이제 생각했다. dd가 예외였다. dd가 세계에, d의 세계에 존재했던 시기가 d의 인생에서 예외. 따라서 나는 변한 것이 아니고 본래로 돌아왔다...... d는 벌어져 있던 입을 다물었다.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금속 창처럼 양쪽 귀를 꿰뚫는 것이 있었다. d는 그간의 흔적들이 멀고도 긴 궤적을 그린 끝에 자신에게 돌아왔음을 느꼈다. 세계는 잡음으로 가득했다.

...

그 상처는 다갈색 흔적으로 남았다. 피부 아래 고인 피가 어디로도 흡수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 작은 점이 되었다. 물방울처럼 생긴 다갈색 점. 그렇게 작은 상처도 흔적을 남기는데 dd의 죽음은......하고 d는 생각했다. 그 죽음은 내게 조그만 점도 남기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 삶이 내게, 알량한 점 하나 남겨주지 않았어.
한번은 d가 602번 버스로 출근하는 길에 버스기사가 몇 차례 곡예하듯 차선을 넘어가며 운전했고 그때마다 사람들의 몸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출렁거렸다. 버스가 다음 정류장으로 다가가려고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을 때 d는 운전석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똑바로 운전하라고 말했다. 뭐라고? 뭐라고요? 똑바로 운전하시라고요 제대로 하시라고 네? 뭐라고요? 똑바로...... 똑바로 운전하라고 씹새끼야. 아 손님 뒤로 가 계세요 위험하니까 뒤로 가 계시라고요. d는 그가 몹시 뻔뻔하다고 생각했고 한사코 못 들은 척하는 그가 역겨워 얼굴을 징그렸다. 그러나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뒤로 돌았을 때 d는 버스기사보다도 자신을 역겨워하고 경계하며 쳐다보는 탑승객들의 얼굴을 보았고 때마침 열린 무을 통해 목적지도 아닌 정류장엣 내렸다. 한강과 안양천 사이의 뚝방길이었다. 주말에나 한강변으로 내려가려는 소풍객이 더러 있을 뿐 평소엔 탑승객도 하차객도 드문 정류장이었다. 귀찮은 짐짝을 덜어내듯 버스가 퉁탕거리며 d를 두고 출발했다. d는 증오에 몸을 떨면서 버스가 간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고 미친 듯 혼자 떠들다가 이윽고 잠잠해졌다. 강바람이 d의 얼굴을 말렸다. 환멸과 혐오. 그것이 d에게 가능했다. 왜 안 되겠는가. d는 그 뒤로 가끔 걸어서 강을 건넜다. 가능한 감정을 품고 살았다.

...

d가 그들을 알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d는 헐거워진 모자를 고쳐 쓰며 얼굴을 찌푸렸다. 너를 아느냐고? 이 장소를 벗어난 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누군가 등을 두드리며 자신을 아느냐고 물으면, d는 그 얼굴을 몰라볼 것이고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모르니까. 모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알 이유도 없은까. d가 혐오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같이, 그들도 같을 것이다. 똑같이 혐오스러울 것이다. 혀를 내밀어 음식을 먹고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 치고 다니고, 자신이 지닌 사물로 사람을 찌르고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며, 알고도 굳이 개의치 않고, 비대한 자아와 형편없는 자존감이 뒤죽박죽 섞인 인격을 아무에게나 들이대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타인. 거짓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

d는 아무렇게나 책을 펼쳤다가 힘의 범람,이라는 구절을 보고 반복해서 그것을 읽었다. 범람. 힘의. 힘의 범람. 누군가 다시 벽을 때렸고 이번엔 다른쪽 방이었다.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오른쪽 방과 왼쪽 방에서. d는 옆방의 거주자들을 생각하고 미소 지었다. 옆방을, 15번과 똑같은 16번과 17번의 구조를, 자신의 것과 다를 바 없거나 더 더러운 침구와 벽, 합판과 시트지로 구성된 싸구려 가구와 그 방을 가득 채우고 있을 허름한 생필품들을 생각했다. 나는 그 사물들의 일시적 소유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것보다 혐오스러운 것, 좀더 결딜 수 없는 것, 말하자면 자신의 이웃을 향해, 그토록 열심으로 벽을 두들길 기회를 주고 있다. 재미있느냐고? 재미있다. 재미가 있다. d는 책장을 한장 더 넘기며 생각했다. 매트리스를 짓누를 때 말고는 존재감도 무게도 없어 무해한 그들, 내 이웃. 유령적이고도 관념적인 그 존재들은 드디어 물리적 존재가 되었다. 사악한 이웃의 벽을 두들기는 인간으로.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다.


⌈d⌋
<디디의 우산> 황정은 연작소설, 창비




 
2019-10-31
파묘

추석 지난 뒤, 땅이 얼기 전에.
이순일은 여러 차례 그렇게 말했고 이제 그때가 되었다. 11월 둘째 주였다. 한세진은 아침 여섯시에 차를 몰아 집을 나섰고 별다른 막힘 없이 올림픽대로를 달려 이순일이 사는 집에 도착했다. 셔터를 내린 차고 앞에 차를 바짝 붙인 뒤 엔진을 끄자 바로 시트가 식었다. 추운 날이었다. 해가 완전히 뜨고 나면 기온이 조금 오르겠지만 그날의 목적지는 군사분계선 근처였고 이맘때 그곳의 한낮은 여기 밤보다 추웠다. 매년 그랬다.
한세진은 드나드는 차들의 무게로 들뜨고 부서진 주차장 바닥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다시 묶은 뒤 사층으로 올라갔다. 이순일이 짐을 다 꾸려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녹두전, 고추전, 고기볶음을 담은 밀폐 용기, 사과, 배, 술 한 병을 담은 종이가방과 그보다 작은 배낭 한 개. 이순일은 이번엔 그릇을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스티로폼이나 은박 말고, 진짜 접시들.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한세진이 배낭을 집어들자 안에 든 접시들이 묵직하게 늘어지며 왈그락 소리를 냈다. 아마 깨질 거라고, 깨져도 괜찮은 그릇들이냐고 한세진이 묻자 이순일은 왜 깨지냐고, 조심하면 깨지지 않는다며 도로 가져올 그릇들이라고 답했다. 한세진은 더 말하지 않고 짐을 아래층으로 옮겼다.

황정은 '파묘'
2019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황정은은
다른 단계로 넘어간 것 같다.
<디디의 우산>에 실린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조금 했는데.



 
2019-10-30
나는 욕을 하는 남편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저이가 왜 저렇게 되었을까? 비는 멈추지 않았고, 새벽에 냉장고 정리를 했다. 그러면서 남편의 좋았던 모습을 떠올려보려 애를 썼다. 군고구마를 품에 안고 오던 어느 겨울밤. 그런 날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도 자꾸만 미친놈 미친년 하고 욕을 하는 모습만 떠올랐다. 삼 년 전에 담근 마늘장아찌를 버렸다. 내가 감기에 안 걸리는 건 매일 마늘을 다섯 쪽씩 먹기 때문이야. 남편은 마늘장아찌를 먹을 때마다 같은 말을 하고 또 했다. 토요일에는 킥보드를 한 시간이나 탔다. 타다 힘들면 버스 정류장에 앉아 쉬었다. 이번에는 따르릉따르릉으로 시작되는 동요를 불렀다. 우물쭈물하다가 큰일납니다. 마지막 가사가 마음에 들어 같은 구절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러자 남편을 미워하는 감정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불쑥불쑥.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파왔지만 그렇다고 생각이 멈춰지진 않았다. 오늘 저녁에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변기 물을 내리지 않아서 궁시렁거렸더니 남편이 잔소리 좀 그만하라며 소리르 질렀다. 나는 정갈하게 늙고 싶었다. 가끔 옛집이 그리웠다. 거긴 화장실이 두 개였으니까. 변기에 락스를 반 통이나 부었다. 킥보드 타는 게 익숙해져서인지 먼 곳까지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며칠전부터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 단지에 가보았다. 새 아파트 단지라 그런지 단지 내에 산책길이 많았다. 킥보드를 타기에도 좋았다. 그래서 속도를 냈다. 내리막길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넘어지면서 나는 킥보드 손잡이에 왜 거북이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그래, 그건 경고문이었다.
윤성희 '어느 밤'

2019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L [1] 2 [3][4][5][6][7][8][9][10]..[42]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