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8-04-06

예전에 사두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미발표 단편소설과 에세이들을 모은 책.

'레이의 새로운 작품들에 대한 이 발견은 그가 생전에 출간했던 작품들과 관계가 없으면서도 관계가 있다. 이 발견은 그것을 바랐던 이들에게 가치가 있다. 어떤 작가를 사랑하면 그 작가으 ㅣ글을 계속해 읽고 싶어지고, 그 작가가 쓴 모든 글들, 탁월한 것, 뜻밖의 것, 심지어 미완성작까지 읽고 싶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서문, 테스 갤러거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Call If You Need Me>
레이먼드 카버, 최용준 옮김, 문학동네



 
2018-04-06

이제 그때를 돌아보면 당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누구인지, 교사나 외부인들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몇 가지 알고 있긴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나이였던 것 같다. 우리 같은 존재라면 누구든 유년의 어떤 시기에 그날 우리가 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세부는 다르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느끼는 감정은 흡하산 그런 경험 말이다. 그러니까 교사들이 우리를 잘 준비시키기 위해 아무리 애썼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모든 이야기와 비디오, 토론, 경고들도 핵심에서 빗나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덟 살 나이에 헤일셤 같은 곳에서 모여 산다면 그런 일에 대비가 되어 있을 수 없다. 우리를 가르치던 그런 선생님들을 만났다면, 정원사와 배달부들에게서 귀염둥이'라고 불리며 함께 농담을 하고 웃음을 터뜨리곤 하던 그런 곳에서 살았다면 말이다.
어쨌든 그런 가르침 중 일부는 우리의 내면 어디엔가 침투한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그런 경험에 직면했을 즈음 우리의 일부는 어느 정도 그런 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대여섯 살 무렵의 어린 시절부터 어떤 목소리가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될 거야.'하고 속삭여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가 들ㄴ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저 바깥세상에는 마담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지도 않고 해를 끼치려 하지도 않지만 우리 같은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고 우리의 손이 자기들의 손에 스칠까 봐 겁에 질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자신을 그런 이들의 관점에서 처음으로 일별하는 순간의 느낌은 정말이지 등줄기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것 같았다. 매일 걸어 지나가며 비쳐 보던 거울에 갑자기 뭔가 다른 것 혼돈스럽고 기괴한 뭔가가 비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를 보내지 마 Never Let Me Go>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민음사



<의외의사실의 세계문학 읽기>가 봄에 나올 예정인데,
이 책 한 편을 추가해서 내기로 했다.
그래서 작업 중.

2018.2.8에.



 
2018-03-29
일제가 조선을 식민 지배한 결과 나는 일본 땅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민족 차별 정책 때문에 충분한 '우리말'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 민족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일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 같은 역사가 나의 '빼어난 일본어 표현'을 가능케 해주었고 끝내 이런 상까지 안겨준 것이라 할진대, 내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에세이스트클럽상 수상 인사말에서 나는 자신을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으로 표현했다. "나는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반대한다. 그 연장선에 위치하고 있는 재일교포들에 대한 일본의 차별정책을 반대한다. 식민 지배의 죄과를 부인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우익의 사상을 반대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모든 것드을 일본으로 사고하고 일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어를 거치지 않는다면 나의 사고며 표현 행위마저도 모두 불가능하다. 또 이런 이유로 나의 글쓰기는 주로 일본인들의 눈에만 띌 뿐이다. 요컨대 '나'라는 존재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인 것이다. 그 감옥 속에서 나는 더 너른 광장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조국의 동포들에게까지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해왔던 것이다.

<소년의 눈물>
저자 서문



 
2018-03-28


<소년의 눈물-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이목 옮김, 돌베개


나는 서경식의 책을,
오래 전 대학 1학년 아니면 2학년 때
미학 관련된 교양 수업 시간에
레포트를 쓰기 위해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저자가 누구인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그 책은 아직 집에 있다.



 
2018-01-18
아무리 한가한 산책이라도 반드시 행선지를 정하는 게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나는 거리 산책을 하려고 코벤트 가든의 숙소를 나서기 전에 과제를 정한다. 그리고 도중에 행선지를 바꾼다든가 끝까지 가지 않고 되돌아오는 것은 누군가와 맺은 합의를 부당하게 어기는 것으로 간주한다. 한번은 라임하우스까지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이처럼 일종의 의무감을 갖고 맹세한 굳은 신념에 따라, 나 자신과 약속한 대로 정확히 정오에 출발했다.

아마추어 순찰기
<밤 산책> 찰스 디킨스




 
2018-01-15

<걷기의 인문학>에서 연결된 책 두 권.
<밤 산책> 찰스 디킨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장 자크 루소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 시리즈




 
2018-01-14
나는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사소하지만 이런 우울한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길을 걷는데 거리의 돌멩이 하나하나가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아저씨, 이 길을 돌아가보세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기분도 달랠 겸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아무 생각에나 빠져들려고 했지만, 과연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 머릿속은 온통 빈민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수천 명 대신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빈민 한 명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저, 실례합니다. 선생님." 한번은 그가 무너가 은밀히 할 말이 잇는 듯 나를 한 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말을 꺼냈다. "저도 한때는 잘나갔습니다."
"그거 안됐군요."
"선생님, 구빈원 원장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는데, 난 그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선생님, 한때 잘나갔던 제가 선생님과 이렇게 단 둘이 있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실은 원장과 저는 둘 다 프리메이슨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데, 제 처지가 이렇게 형편없다 보니 그쪽에서 제 수신호에 절대로 응답을 안해주지 뭡니까!"
-와핑 노역소

런던 동쪽, 불결한 강과 인접한 래트클리프와 스테프니의 경계 지역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11월이면 영락없이 <죽음의 춤>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도로와 공터, 허름한 집들이 미로처럼 얽히고설켰다가 한 칸짜리 집들에서 끝이 났다. 불결함과 넝마와 굶주림이 난무하는 이 질퍽질퍽한 진흙탕 동네에는 일자리를 잃었거나 어쩌다 드물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 어쨌든 숙련된 기술자들은 아니었다. 부두 노동자, 강변 노동자,석탄 운반꾼, 바닥짐 싣는 인부, 장작을 패거나 물 긷는 허드레일꾼까지 한낱 막일꾼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이 세상에 생겨나서 비참한 자신들 종족을 번식시켰다.
...
"방금 뭐라고 했죠?"
"납 때문이라고요. 납 공장 때문인 게 틀림없어요. 저 여자는 일당 십팔 펜스를 받고 거기에서 일했거든요. 그것도 일찌감치 신청을 하고, 운이 좋아서 그쪽에서 사람이 필요할 때만 일할 수 있죠. 그런데 납에 중독된 거예요. 어떤 사람은 쉽게 중독되고, 어떤 사람은 조금 늦게 중독되지만 결국 대부분 중독이 되고 말죠 모두 체질에 달려 있어요. 강한 체질도 있고 약한 체질도 있죠. 저 여자는 쉽게 중독되는 체질인 데다 상태가 아주 심각해요. 귀로 뇌가 흘러나오고 있어서 여간 괴롭지 않나 봐요. 그래서 저런 거예요. 더도 덜도 아니고 그것 때문이에요. 선생님."
...
그때 여주인의 결혼한 딸이 위층 자기 방에서 내려와서 대화에 끼었다. 그녀 역시 그날 아침 일찍 '간택'되기를 바라고 납 공장에 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네 명의 아이가 있었고, 부두 노동자인 남편 역시 일거리를 찾으러 나갔는데, 장인보다 형편이 나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영국 태생답게 몸매가 풍만하고 성격이 명랑했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옷차림은 허름했지만 나름대로 단정하게 보이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그녀는 불쌍한 병자의 고통 뿐만 아니라, 납 중독의 증상이라든가 어떤 식으로 악화되는지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런 경우를 자주 보기 때문이었다. 그녀 말로는 공장 안에서 냄새를 많이 맡으면 쓰러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배곯는 자식들을 보느니, 일당 18펜스를 위해 계속 그 일을 하다가 피부가 헐고 몸이 마비되는 편이 나았다.
...
나는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한동안 다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이들을 볼 때면 비참한 어른들을 볼 때와 달리 마음을 다잡지 않고선 견디기 힘들었다.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굶주렸으면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과묵할까. 나는 동굴 같은 집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 아이들은 분노도 느끼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할수록 나 자신이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동쪽의 작은 별
찰스 디킨스 <밤 산책>


저널리스트였던 찰스 디킨스의
르포 같은 장들.
사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어렸을 때 요약된 문고판으로 읽은 것 외에.



 
2018-01-14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어느 날 런던의 이스트엔드가 나를 향해 유혹의 손짓을 했다. 나는 런던광역시 중에서도 동쪽 방향을 향해 코벤트 가든을 출발해서는, 티푸 사힙과 찰스 램을 느긋하게 떠올리며 동인도회사를 지나고, 반바지 차림인 작은 해군생도 목각인형의 한쪽 다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그 앞을 지나서, 알드게이트 펌프를 지난 뒤 (거무스름한 얼굴을 흉측하게 묘사한 포스터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많이 붙어 있는) 사라센스 헤드를 거쳐, 그의 오래된 이웃이 운영했던 블랙 보아인지 블루 보어인지 아니면 블루 불인지 하는 건물의 텅 빈 마당을(그 집 주인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사라진 그의 마차들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잘 모른다) 어슬렁어슬렁 통과해 다시 철도의 시대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화이트 채플 교회를 지나 - 비상업적인 여행자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 상업적인 거리로 들어섰다. 이어서 푹푹 빠지는 진흙탕 대로를 신나게 걸으면서 설탕 정제업자 소유의 대형 건물과 뒷골목 작은 공터에 있는 작은 돛대와 풍향계, 그 근처 술와 선착장, 돌멩이가 깔린 전차길을 느릿느릿 움직이는 동인도 회사의 화물열차, 돈에 쪼들리는 뱃사람들이 육분의나 사분의깨나 갖다 바쳤을 전당포(그 물건들의 사용법만 알았더라면 내가 싼 값으로 샀을 텐데) 따위를 즐겁게 구경하다, 어느 순간 오른쪽 샛길로 빠져 와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와핑 노역소,
찰스 디킨스 <밤 산책>
이은정 옮김, 은행나무


걸어가는 저자를
따라 걷는 듯한.






 
2018-01-04
더불어 파이 장사꾼의 마지막 화롯불과 함께 밤새 깨어 있던 사람들의 일상도 꺼져가면, 거리 모퉁이에서 가장 먼저 아침밥을 파는 노점의 화로에 불이 붙는다. 이처럼 빠르게, 그러다 막판에는 순식간에 낮이 오고, 그러면 나도 피곤에 지쳐 잠을 잘 수 있었다. 요즘 종종 생각하는데, 그런 시각에 구가하는 일이 런던에서 가장 비참한 일은 아니며, 런던에서 가장 형편없는 지역이라고 해서 집 없는 노숙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필요하면 어디에서 온갖 악과 불행을 찾을 수 있는지 잘 알게 되었다. 다만 그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내가 노숙자처럼 수 킬로미터의 거리를 그것도 혼자서 외롭게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절대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밤 산책
<밤 산책> 찰스 디킨스, 이은정 옮김,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 시리즈4


찰스 디킨스는 불면증을 겪던 시기에,
밖에 나가 밤새도록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동틀 무렵에 들어와 잠을 잤다고 한다.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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