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9-03-25



동물에 대한 연민을 낮잡아보는 사람들이 많잖아. 우리가 구하는 게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이유로, 응원은 고사하고 비난을 받을 때도 있잖아. 나도 인터넷에서 그런 댓글 많이 봐. 개새끼들 도와줄 여력 있으면 사람이나 도와주라고. 불쌍한 사람도 많은데 개새끼가 대수냐고.
하지만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군가를 위해 자기 인생을 걸어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 여기 돕지 말고 저기 도와라, 얘를 구하지 말고 쟤를 구해라, 그런 소리는 누구도 구해본 적 없고 누구도 살려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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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뭐냐. 풍종견은 생산업을 규제하는 쪽으로 가야 하잖아. 믹스견의 핵심은 개식용이야. 시골은 집집마다 개를, 주로 혼종 발바리나 혼종 중대형견을 키우잖아. 그 사람들에게 개는 마당에 묶여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이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개식용 문화가 있기 때문에 키우는 거야. 붙박이로 묶어놨든 유기견마냥 풀어놨든, 짬밥 처리용으로 대충 키우다가 복날 되면 개장수한테 팔아서 노인네들 담뱃값 하는 거야.
(사설 보호소 '행강집' 및 동물보호단체 '행강'의 박운선 대표)
-3. 죄 없는 사형수와 무기수들

동시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식용 개농장이 있는 나라다.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시스템을 통해 식용 개를 조직적으로 사육하고 유통한다. 다른 개식용 나라의 개들이 잡힌 순간부터 수난을 겪는다면 한국 개농장 개들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가지 고통의 연속이다. 내가 만난 개농장 주인 김씨처럼 모든 개농장이 모견을 두고 교배시킨다. 모견은 출산 능력이 있는 동안은 죽음을 면하지만 새끼들이 도륙당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지켜보며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 물론 모견도 출산 능력이 떨어지면 도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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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동물이 당하는 이 모든 일은 축산 체계에 들어간 동물은 생명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살아 있을 때도 고깃덩어리와 똑같이 취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동물에게 행했다면 동물학대로 지탄받을 행위를 우리가 농장동물에게만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농장동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한 돼지 농장에 화재가 나서 수천마리의 돼지가 감금틀에 갇혀 산 채로 불타 죽었을 때도 기사 아래에는 이런 댓글이 수없이 달려 있었다.
"통돼지구이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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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 전통 문화라고 주장하는 개식용은 오늘날 쓸모없어진 개들을 처리하는 일종의 "하수처리"다. 번식을 못하는 번식견, 일 미터 길이의 줄에 묶여 잔반을 처리하던 마당 개, 한때는 반려견이었으나 이제는 길거리를 떠도는 유기견... 늙고 아프고 버림받고 쓸모없어진 이 모든 개들이 하수처리장으로, 도살장으로, 흘러간다. 개들을 죽음의 링 위에 올려놓고 돈내기를 하는 불법 투견도 대부분 개농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싸움에서 진 투견이 마지막으로 끌려가는 곳도 보신탕집이다. 오늘날의 개식용을 문화적 화두로 다루기 전에 도덕적 화두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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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식용과 관련한 한국 동물보호단체의 역사는 패배의 역사예요. 이제는 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요. 오늘 재판 결과도 그렇지만 기존의 동물보호법 안에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어. 문제는 여론이 형성되어야 입법으로 가는데, 자기는 개를 안 먹지만 남이 먹는 건 존중한다는, 그게 똘레랑스고 다양성이고 멋진 건 줄 아는 사람들이 태반이잖아. 키우던 개를 유기하는 사람은 비난하면서, 기우던 개를 개장수나 도살자한테 팔아넘기는 사람은 비난하지 않잖아.
어떤 사람들은 반려견, 유기견, 식용견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죠. 내가 가장 나중에 입양한 순돌이는 유기견이었던 동시에 식용개가 될 뻔했던 애예요. 구리시의 한 동네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가족들이 순돌이만 버리고 이사를 갔는데, 동네 남자들이 혼자 남은 애를 잡아먹으려고 올무를 설치한 거야. 순돌이 허리가 올무에 걸렸는데 그 안에서 살아보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허리는 거의 잘릴 지경이 되고 생식기는 표피가 다 벗겨져서 시뻘건 살덩이만 남아 있었어요. 그런 상태로 혼자 헤매다가 이번엔 차에 치여서 뒷다리가 다 부서졌어. 구조 후엔 결국 다리를 절단했어요. 허리가 끊어지는 것을 무릅쓰고라도 탈출하지 못했다면 얘는 어디 야산에서 목매달린 채 맞아 죽었겠지.
순돌이만이 아니에요 우리 집에 있는 다른 애들도 비슷해요. 시추 순심이는 주인이 있었지만 개소죽집으로 념겨지기 직전에 구조되었고, 믹스견 럭키는 동작대료 밑에 버려진 뒤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사람들로부터 숱하게 도망 다녀야 했어요. 백구인 흰돌이 흰순이는 처음부터 식용견으로 태어났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그러죠. "소는? 돼지는? 닭은?"
(팅커벨 프로젝트' 황동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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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평등을 말할 것인가'이다. 앞서 '헛된 기대들'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살아 있는 동물일 때도 고깃덩어리로 취급받는 농장동물들의 삶과 죽음은 어떤 동물보다 비참하고 끔찍히다. 그런데도 왜 누군가는 줄기차게 농장동물의 고통을 기준으로 평등을 말할까? 모든 동물을 똑같이 최악의 상태로 만들고 똑같은 잔인함으로 대하는 게 평등의 가치에 부합할까?
우리는 인간의 평등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최악의 처지에 놓인 누간가를 기준으로 삼아 모든 사람의 권리와 복지를 빼앗는 것이  평등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평등이란 말은 우월주의와 중심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쓰일 때 가치를 지닌다.
누군가가가 모든 동물을 평등하다고 전제한 뒤 이세상에는 '더 고통받는 동물'과 '덜 고통받는 동물'이 있다고, 그러므로 모든 동물을 '더 고통받는 동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평등은 아무 가치도 없다. 그것은 모든 동물을 고통의 수레바퀴에 밀어넣으려는 궤변일 뿐이다.
진심으로 농장동물의 고통을 우려한다면 평등을 위해 새로운 동물을 축산 체계에 포함하자고 말할 수 없다. 그 대신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육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이미 축산 체계에 들어와 있는 동물의 복지를 실현함으로써 농장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자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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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육이 아닌 이상, 먹는 것 가지고 뭐라 하면 불쾌해합니다. 저도 압니다. 음식은 복잡한 문제입니다. 문화, 습관, 그것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과의 기억, 그밖에도 많은 것이 들러붙어 있지요.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모든 동물을 먹어도 된다, 사람만 안 먹으면 된다, 이런 생각도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게 인간 말고는 다 잡아 죽이자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그게 다른 종을 대하는 우리의 도덕입니까? 인간은, 우리는, 그래도 되는 걸까요?
(사진작가 - 전 아트디렉터 및 사진작가 윤택상)
- 4. 쓸모없어진 존재들의 하수처리장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하재영, 창비




 
2019-03-14


장미빌라는 낮은 언덕을 깎아 만든 절벽 위에 지어졌다. 멀리서는 밋밋한 직육면체 형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십자 구조로 되어 있다. 지하와 옥탑을 합해 6층. 대략 30여 가구가 산다. 언젠가 녹슨 우편함 개수를 세어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내 발소리가 너무 크다고, 아래층에서 두 번이나 찾아온 총각을 빼고, 이웃을 만난 적은 거의 없다. 일상의 부스러기처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작은 단서로만 각 세대의 사정을 짐작해볼 따름이다. 한번은 아래층에서 이상한 기척이 들려온 적이 있다. 한밤중 경상도 사내가 뭐라뭐라 중얼대는 소리였다. 정신을 집중한 끝에 그가 누군가를 때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직하고 야비한 음성. 철썩, 툭, 퍽 하는 울림. 사내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로 뭔가 반문하고 다그치고 빈정대길 반복했다. 술에 취했거나 분노에 찬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충분한 여유를 갖고 상대를 괴롭히고 있었다. 어깨를 움츠린 채 창가로 가 동정을 살폈다. 밖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을 들어 몸을 기울였다. 4차선 도로의 소음이 사내으 ㅣ말을 자꾸 잡아먹었다. 남편을 깨울까 하다 그만두었다. 정확히 몇 호에서 나는 소린지 알 수 없었고, 괜한 낭패를 당할지 몰라서였다. 사내으 ㅣ웅얼거림은 한 시간가량 계속됐다. 맞는 쪽에서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신음, 단 한 번의 비명, 흐느낌조차 없었다. 마치 그곳에 없는 사람처럼. 애초에 없던 사람인 양. 이부자리로 돌아가 남편 뒤에 달라붙었다. 남편에게서 익숙하고 달콤한 땀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체취에 집중했고, 사내의 목소리가 멎어들 즈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런 일은 아주 가끔 일어났다. 보통 장미빌라를 맴도는 공기는, 저녁 무렵 생선 굽는 냄새나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있는 날 한꺼번에 '와아'하고 터져 나오는 함성, 창가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화분의 고요, 옆집 아기의 울믐과 택배가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는 경쾌한 초인종 소리 같은 것이다. 물론 최근에도 이곳 지하에서 비명이 새어 나온 적이 있다. 새벽 1시쯤이었을까. 누군가 갑자기 악- 하고 절규했다. 억울한 게 있는지 분에 못 이겨 혼자 내지르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는데, 그 뒤로 아무 기척이 나지 않았다. 그는 그날 4시쯤 다시 악, 악, 아악- 하고 연달아 세 번 발악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 중 '벌레들'
문학과 지성사



 
2019-03-13
한국 소설을 많이 읽는다.
여성 작가들이 쓴 소설이 많이 나오고
그 책들이 좋아서 좋다.
외국 소설을 읽을 때는 그렇지 않은데
우리말로 쓰인 한국 소설을 읽을 때는
소설을 쓰는 것에 형태가 불분명하고 격한 감정이 휘몰아친다.
너무 좋다, 이런 것을 쓸 수 있어서 좋겠다, 나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림 없는 글이 가지는 묘사와 힘.
질투와, 나도! 라는 마음이 휘몰아치다가
이제는 잦아들었다.
여전히 한국 소설을 읽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






 
2019-03-13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한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바깥은 여름> 작가의 말.


도서관에 빌려 읽다가
사서 읽기.




 
2019-02-04


이것저것
동시에 뒤섞어 읽고 있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삭책



 
2019-02-02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서효인+박혜진, 난다





 
2019-02-02

요즘 내 습관은
책을 읽으며, 책 소개를 보며
'내 책은 이 책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기'이다.






 
2019-01-23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정유정, 지승호, 은행나무




 
2019-01-17

한국 소설을
많이 읽는다.




 
2019-01-17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낮고 넓은 테이블에, 조각 수가 많은 퍼즐을 쏟아 두고 오래오래 맞추고 싶습니다. 가을도 겨울도 그러기에 좋은 계절인 것 같아요. 그렇게 맞추다보면 거의 백색에 가까운 하늘색 조각들만 끝에 남을 때가 잦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들어 있거나, 물체의 명확한 윤곽선이 보이거나, 강렬한 색이 있는 조각은 제자리를 찾기 쉬운데 희미한 하늘색 조각들은 어렵습니다.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사람 한사람은 미색 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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