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9-07-09

<프란츠 슈베르트>
한스-요하힘 힌리히센, 홍은정 옮김, 프란츠

6/30-7/2 서울에 있으면서
약속 중간에 혼자 유어마인드에 들러
(자주 가지 않지만 가면 늘 그렇게 되듯이)
충동적으로 쉭쉭 책을 골랐다.
네 권, 71,000원
그 중 한 권.





 
2019-05-31
우주는 어둠으로 충만하다. 빛은 우주가 탄생한 후 38만 년이 지나서야 처음 그 존재를 드러냈다. 빅뱅이 있은 직후, 초기 우주는 너무 뜨거워서 우리가 오늘날 물질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온도가 낮아졌고, 물이 얼음이 되듯 '물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빅뱅 이후 38만 년쯤 지났을 때 수소, 헬륨과 같은 원자들이 생겨났고, 이때부터 빛도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이전에는 빛과 물질이 한데 뒤엉킨 어떤 '것'이 있을 뿐 빛은 호롤 존재할 수 없었다. 이때 탄생한 빛은 지금까지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다. 이 빛을 우주배경복사라 하며, 그 발견에 노벨물리학상이 주어지기도 했다. 우주는 38만 살이 되던 해, 자신의 모습을 빛에 남겨 놓은 것이다.

<떨림과 울림> 김상욱, 동아시아



 
2019-05-30


<떨림과 울림> 김상욱, 동아시아



전체적으로 흐름을 잃었다.
모든 면에서.
최근 몇 주, 몇 달이라기보다는
몇 년.
독서도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2019-05-30


<아무튼, 식물> 임이랑, 코난북스

아무튼 시리즈는 가볍게 읽는다.

집에 식물에 늘었다.










 
2019-05-07


그리고 그 순간이 찾아왔다.
d는 젖은 얼굴을 닦으려고 수건을 잡았다가 놓았다. 놓쳐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요일 오후 아홉시 직전이었다. 욕실 벽에 걸린 시계가 째각거렸다. 거품 섞인 물이 세면대에 고여 있었고 d는 맨발로 타일을 밟고 있었다. d가 조금 전에 잡았다가 흠칫 놀라 놓아버린 것. 그건 평범한 수건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집에 있던 물건. d는 매일 아무 때나 그걸로 얼굴이며 목을 닦은 뒤 수건걸이에 도로 걸거나 빨래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여러번 빨아 말리길 반복한 탓에 좀 뻣뻣해지고 납작해진 아이보리색 면직물이었다. 무늬도 이니셜도 없어 d로서는 다른 수건과 구별하기도 어려웠다. 그것의 온도가 갑자기 매우 낯설었다. 체온을 가진 것처럼 온기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불을 켜지 않은 부엌을 향해 욕실 문이 열려 있었다. d는 컴컴한 부엌을 가로지르다가 식탁에 놓은 탁상달력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더듬어 그것을 주었을 때 d는 표지까지 열세장인 두꺼운 마분지와 좁은 간격으로 말린 스프링에서 온도를 느꼈다. 달력을 올려두고 식탁을 짚어보니 그것 역시 미지근했다.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가구와 식기, 유리, 각종 손잡이들. d는 그날부터 서서히 그것을 눈치챘다. 공기보다는 싸늘해야 마땅한 사물들이 미묘한 생물처럼 미열을 품고 있었다. 그 미적지근한 온도를 참을 수 없어 d는 사물과의 접촉을 줄였다. 모든 것이 이렇게 될 수는 없으니 변한 것은 내 쪽이라고 d는 생각했다.
내가 차가워졌다,라고.
...

d는 거의 모든 사물에서 온기를 감각하게 된 뒤로 외출하지 않았다.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 머물렀다. 누구와도 통화하지 않고 그다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사물들을 부수고 쪼개고 버렸다. 공들여 그 일을 하다보면 사물들의 온기로 손이 뜨거워졌다. d는 작열감을 줄이려고 머리를 긁거나 몸에 손을 문지러가며 작업했다. 쓰레기를 계속 버려 골목을 지저분하게 만든다고 툴툴거리며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도 했으나 d는 대꾸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상자를 채우고 물건을 버리고 상자를 채웠다. 사물들은 내내 기묘하고도 기괴한 생물들처럼 온기를 띠고 있었고 그것을 만질 때마다 d는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내버려둘 수 없는 이유는, 거짓말을 하니까.  

<디디의 우산>
황정은, 창비



 
2019-04-27


울고 있는 가수

가수는 노래하고 세월은 흐른다
사랑아, 가끔 날 위해 울 수 있었니
그러나 울 수 있었던 날들의 따뜻함
나도 한때 하릴없이 죽지는 않겠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돌담에 기대
햇살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네
맹세는 따뜻함처럼 우리를 배반했으나
우는 철새의 애처러움
우우 애처러움을 타는 마음들
우우 마음들이 가여워라
마음을 빠져나온 마음이 마음에게로 가기 위해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울 수 있음의 따뜻했음
사랑아, 너도 젖었니
감추어두었던 단 하나, 그리움의 입구도 젖었니
잃어버린 사랑조차 나를 떠난다
무정하니 세월아,
저 사랑의 찬가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문학과지성사




 
2019-04-27


그리하여 18세기말경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 내가 만일 역사를 다시 쓴다면 십자군전쟁이나 장미전쟁보다 그것을 더 충실하게 묘사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즉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지요. 만약 <오만과 편견>이 중요하다면, 그리고 <미들마치>와 <빌레트>, <폭풍의 언덕>이 중요한 작품들이라면, 시골 저택에서 아첨꾼들과 사절판책속에 파묻혀 있던 외로운 귀족들만이 아니라 일반 여성들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한 시간의 강연에서 입증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사실일 것입니다. 이런 선두주자가 없었다면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 죠지 엘리어트는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는 말로우가 없었다면, 말로우는 초오서가 없었다면, 초오서는 그 이전에 길을 열고 자연적인 언어의 야만성을 순화시킨 잊혀진 시인들이 없었다면 글을 쓸 수 없었겠지요. 왜냐하면 걸작이란 혼자서 외토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여러 해 동안 일단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경험이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제인 오스틴은 훼니 버니의 무덤에 화환을 놓아야 하고 죠지 엘리어트는 엘리자 카터 - 일찍 일어나서 그리스어를 배우기 위해 침대에 종을 매달았던 용감한 노파 - 의 억센 그림자에 경의를 표했어야 했을 겁니다 .모든 여성들은 다 같이 지금 웨스트민스터사원에 - 세간에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긴 했지만 아주 타당하게도 - 안치되어 있는 에이프러 벤의 무덤에 꽃을 바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 준 사람이 그녀였으니까요. 내가 오늘밤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기지로 일 년에 오백 파운드를 버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완전히 터무니없지 않은 소리로 들리게 한 것도 그녀 - 비록 부정하며 호색적이긴 했지만 - 입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옮김, 도서출판 예문





 
2019-04-10
20세기 후반의 페미니즘까지 고려해도 인간사를 통틀어 남자들의 집단 결속력만큼 가히 막강한 영향력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
남성 집단의 결속은 통제력과 남성 간 경쟁에 전념하는 과정, 즉 억압과 호르몬에 사로잡힌 지배욕에 몰두함으로써 파생된다.
그야말로 놀라운 반전이다. 개인 간 경쟁이라는 파괴적이고 무법적인 에너지와 남을 이기려는 야망이 집단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으로 바뀌며 다소 건설적인 사회적 사업에 힘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집단은 폐쇄적이며 외부인들을 '타인'으로 상정한다.
그들은 제일 먼저 여성들을 배제한다. 그 다음에는 남성들 중에 연령대가 다르거나 성향이 다르거나, 계급 혹은 민족이 다르거나 성취한 업적의 수준이 차이가 나는 이들을 배제한다. 이러한 배척은 그들만의 내부적 담합과 영향력을 강화하게 된다. 어떤 위협을 감지하면 그 '형제애'로 똘똘 뭉쳐 침범할 수 없는 결속을 보여준다.
남성의 담합은 아주 오래된 대부분의 사회적 기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정부, 군대, 교회, 대학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회사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위계적이고 유기적이며 통합적이고도 영속적인 기관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며 권세를 누려왔고 사람들 사이에 거의 보편적으로 통용되기에 이르러 대개 '시국', '세계', '분업', '역사', '신의 뜻'이라는 말만으로 그 존재와 세력을 일컫게 되었다.
...
20세기 후반의 페미니즘을 회상해 보면 여성 결속력의 전형이었다. 나서서 이끄는 사람이 없어도 각자 할 일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게급이 없고 포괄적이며 융통성 있고 서로 협력하고 조직화되지 않은 임시적 단체를 만들려던 당시의 시도는 더 나은 균형을 가진 젠더 간의 연합을 창조해냈다.

3장 이해하려 애쓰기
남자들의 단합, 여자들의 연대 2010년 11월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K. 르귄

작가가 80대에 블로그에 쓴
단편적인 글을 모은 책이다.


나는 요 며칠
서울아트시네마 관련된 이야기(프로그래머 관련)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글들이 눈에 들어온다.



 
2019-04-02


나이를 먹고부터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다.'라는 말에 믿음을 잃게 되었다.
...
만약 내가 90세가 되어서 스스로 45세가로 믿는다면 욕조에서 나오려고 애쓰느라 고역을 치르게 될 것이다. 심지어 내가 70을 먹고도 40이라 믿으면 자신을 기만하다 십중팔구 끔찍한 멍청이가 되리라.
...
실은, 70 넘은 사람이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다.'라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저 말은 더 젊은 사람들이 용기를 북돋우려고 혼잣말을 하거나 서로 주고받는 말이다. 실제로 나이 든 사람에게 저 말을 할 때면 얼마나 아둔하고 진인한 짓인지 깨닫지 못한다.
...
반면 '노년은 나약한 자들의 것이 아니다.'라는 포스터가 있다. 아마 그 문구도 그 포스터에서 비롯했겠지 싶다. 70대 남녀의 모습이 들어간 광고인데 공군에서 독수리 형상이라고 부르던 자세로 선 채, 꽥 끼는 최소한의 의복만을 걸친 포스터 속 두 사람의 몸이 아주 탄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막 마라톤을 완주하고 와선 숨도 몰아쉬지 않으면서 7킬로그램이 넘는 역기를 들어가며 휴식을 취하는 모양새다. '우리를 봐라.'고 그들은 말한다. '노년은 나약한 자들의 것이 아니다.'
날 봐라 나는 그들에게 호통을 친다. 난 뛰지도 못하고, 역기도 못 들고, 꽉 끼는 천 조각을 걸친 내 모습이라면 상상만 해도 여러모로 질겁한다. 나는 나약한 여자다. 항상 그랬다. 당신네 운동 선수들이 뭔데 노년이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가?
노년은 누구든 거기까지 이르는 자의 것이다. 전사들도 늙는다. 나약한 이들도 늙는다. 사실상 개연성으로 따지면 전사들보다 더 많은 나약한 이들이 늙어가게 된다. 노년은 건강하고, 강인하고, 거칠고, 용감무쌍하고, 병들고, 허약하고, 겁이 많고, 무능한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아침 식사 전에 항상 16킬로미터를 달리는 사람들, 휠체어에 앉아 살아가는 사람들, <런던 타임스> 십자말풀이를 10분 내에 푸는 사람들, 현 대통령이 누군지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의. 노년은 신체 단련이나 용기의 문제라기보다 장수라는 운의 문제이다.
...
노화에 대한 보상이 있다면 결코 신체적인 기량 측면은 아니다. 때문에 그런 것을 강조하는 문구나 포스터는 나를 아주 성가시게 한다. 나약한 이들을 모욕할뿐더라 요점을 빗나가 있다.
등이 구부정하고 관절염에 걸린 손에 연륜의 더께가 쌓인 얼굴을 한 두 노인이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 진지하고도 속깊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터라면 좋겠다. 문구는 이렇게 써야겠지. '노년은 젊은이들의 것이 아니다.'

1장 여든을 넘기며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K. 르 귄, 진서희 옮김, 황금가지



 
2019-03-28
피피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제 나는 피피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 피피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피피의 부모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피피를 잃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피피에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피피가 지금까지 겪지 않았고 앞으로도 겪지 않아야 할 그 모든 일을 지금, 누가, 겪고 있는지.  p45

누가 아젠다를 결정하는가. 무엇이 중하고 경한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시 되는 가치 때문에 희생되는 타자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그것을 결정했던 사람들이 교묘한 방식으로 약자를 배제해온 사람들은 아니었는가. 모든 사람이 획일적인 사안, 획일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믿음이 전체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p50

자신과 타자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강자와 약자, 권력과 착취, 차별과 평등, 폭력과 고통처럼 버성긴 단어에 대해 자기 나름의 해석을 시도하는 일인지 모른다.  p51

모든 타자가 내게 특별해진 존재만큼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그 깨달음과 일치되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감상주의를 넘어서야 했고 내 안의 도덕적 한계를 재설정해야 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튀어나오는 자기 모순을 당혹감에 휩싸여 응시해야 했다.
동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이 모슨에 대해 공격적인 질문을 받는다. "개, 고걍이를 먹지 말자고? 소, 돼지, 닭은?" "모피를 입지 말자고? 가죽 신발과 가죽 가방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쓰자고? 동물실험을 한 의약품은?" 그리고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나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중요한 선택을 한 사람들, 생명윤리에 있어 엄격한 생활을 하는 실천주의자들(나는 아니다)은 극단적인 동물 애호가라는 조롱을 당한다. p52

나는 그 시작점을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어떤 동물에게서, 눈동자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타자에게서, 피피라고 불리는 개별적 존재에게서 찾았다. 어디에선가 시작해야 한다면 나는 여기에서 시작하려 한다.  p54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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