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4-04-16
나는 사람들과의 공동 생활을 참을 수 없습니다. 또한 공동 생활을 불행으로 느낄만한 여력도 없습니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상태에서 바라볼 때 사람들은 내게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그다지 크지 않아서 부모님의 침실과 거실 사이에 있는 여기 내 방에서 사느니 육체적인 조건만 허락된다면 차라리 황야나 숲 속에서 또는 섬에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대에게 고통을 안겨줄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결코 그대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도는 갖지 않겠지만 항상 그렇게 될 것입니다. 펠리체, 삶을 진부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세요. 진부함이 단조롭고 단순하며 사소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삶은 끔찍합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렇게 느낍니다. 자주-가장 깊은 내면에서는 아마도 끊임없이-내가 인간이라는 점에 회의를 느낍니다. 내가 그대에게 가한 괴로움은 나로 하여금 그것을 자각하게 만든 우연한 계기일 뿐입니다.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Nr. 296

하지만 나를 붙잡는 것은 바로 하늘의 명령인, 진정될 줄 모르는 불안입니다. 예전에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어느 정도는 정당함을 지녔던 건강,적은 수입, 애처로운 본질 등은 이 불안 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이 모든 것들은 불안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불안에 의해 단지 유예된 것처럼 보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리고 결국에는 그대가 나를 정신병자로 인식하게 되겠지만 이 불안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눈이 멀까 봐 가리고 싶을 정도로 내게는 명백한 그것을 그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사랑스럽고 신뢰에 가득 찬 그대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그것은 물론 다시 불분명해집니다.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해 보이고, 행복이 우리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펠리체, 비록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겠습니까? 결혼, 결합, 무가치한 내 현존재의 해체 등을 통해서 파멸하리라고 나는 확실히 느낍니다. 그 파멸은 나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해당됩니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 파멸은 더 빠르고 끔찍하게 다가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해주세요. 우리는 서로 가까운 관계여서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는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하지 않았던 부분도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그대가 질문하면 모든 것에 답하겠습니다.
Nr.299

내가 세운 계획은 물론 최상의 것은 아닙니다. 최상의 계획은 아마도 어떤 약삭빠른 방법으로 돈을 모아 그대와 함께 남쪽에 있는 섬이나 호숫가로 가서 영원히 그곳에 머무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남쪽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세상과 격리된 채 풀과 열매를 먹으며 삶을 살아가겠지요.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을 깊이 성찰해볼 생각도 없고 남쪽으로 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글을 쓰는 것만을 원할 따름입니다. 그러면서 파멸해가거나 미쳐버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불가피한 결과니까요.
Nr.300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이런 사람,
이런 사랑.



 
2014-04-13
Nr.292
1913년 7월 1일
...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대답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므로 원치 않습니다." 또는 "그것은 불가능하므로 당분간 원치 않습니다." 또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원합니다." 나는 그대의 편지를 세번째 의미로 받아들이고(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걱정스럽습니다), 그대를 나의 사랑하는 신부로 여깁니다. 그러나 곧바로(기다릴 틈이 없습니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미래와 또한 내 성격과 책임으로 인해 우리의 공동 생활에서 발생하여 그대가 제일 먼저 완전히 당하게 될 불행에 대해 엄청난 불안을 느낍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차갑고 이기적이며 감정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완화시키기보다는 숨기려 하는 내 모든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Nr.293
1913년 7월 3일
카프카의 서른번째 생일
...
행복하다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매우 불안하고 근심이 많습니다. 아마도 인간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나 봅니다. 처음 만난 저녁부터 그대와 완전히 결합된 듯한 감정을 느꼈던 사건은 내게는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그때 나는 기꺼이 그대의 가슴에 안겨 눈을 감고 싶었습니다.
그대는 내게 그런 선물을 주었습니다. 삼십 년을 견뎌내게 했던 힘은 그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힘의 결과인 현존재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펠리체, 그대는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분명 중요한 생일입니다. 오늘, 삶은 얻은 것을 잃지 않고 그 축을 중심으로 특별한 부분을 맴돌고 있습니다.
...
그대가 얼마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낯선 사람이 아님에도 내 편지가 저를 더 낯설게 만들지는 않나요? 저의 친척들이 그대에게 낯설지 않습니까? 그림 엽서의 내 부모님이 다른 낯선 사람들처럼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지는 않나요? 단지 유대인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서 낯섦이 완화된 것은 아닌가요? 그대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더 무서워지는 이 사람이 두렵지 않나요? 그대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나요?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요? 그것은 기적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인간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신에게 감사해야지요.




이 책만 쉬엄쉬엄 읽고 있습니다.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2014-04-06
Nr. 279
1913년 6월(실제로는 10일부터 쓴 것으로 추정) 16일
.....
펠리체, 우리의 결혼을 통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각자가 무엇을 잃고 얻을지에 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나는 끔찍스러운 고독을 잃고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그대를 얻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대는 거의 만족스러웠던 지금까지의 삶을 잃게 되겠지요. 베를린과 즐거웠던 사무실, 친구들, 소박한 오락, 건강하고 활달한 좋은 남자와 결혼해 바라마지 않았던 예쁘고 건강한 아이를 낳을 전망을 잃을 것입니다. 이처럼 상상하기 힘든 손실 대신에, 그대는 병약하고 비사회적이며 말이 없고 우울하며 경직되어있을 뿐 아니라 거의 희망이 없고 유일한 덕목이라고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 밖에 없는 남자를 얻을 겁니다. 그대와 같이 건강한 처녀의 본성에 걸맞게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대신에, 그대는 가장 나쁜 의미에서 순진하며 그대에게 인간적인 언어를 배울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이 남자를 위해 희생해야 할 것입니다. 사소한 모든 것들도 그대는 잃게 될 겁니다. 내 수입은 그대의 수입보다 많지 않습니다. 내 연봉은 정확히 사천오백팔십팔 크로네입니다. 물론 연금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수입이 공무원의 경우와 비슷하게 늘어날 가망은 별로 없습니다. 부모님에게 기대할 것도 많지 않으며, 문학에 기대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대는 정말로 위에서 말한 사람 때문에 그것을 행하고 견뎌내겠습니까?

<길 위의 생>을 읽은 후, <여름>을 읽다만 후
한동안 책을 안 읽다가
<카프카의 편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카프카씨는 결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2014-04-06
그대여, 들어보세요! 내게 다가오는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요! 그래야만 한다면 돌아가요! 지금-멀리에서보다 베를린에서 더 많이-그대로부터 나를 차단하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것을느끼나요?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이 나를 질식시키고 내가 쓰고자하는 철자들은 쓸데없이 넘쳐흐릅니다.
Nr. 262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솔출판사





 
2014-03-29
독서일기.

<길 위의 생>은 다 읽었지만
이디스 워턴의 <여름>은 읽다 말고 반납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순수의 시대>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은 어쩐지 잘 읽히지 않습니다.



 
2014-03-04

이날 정독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여름> 이디스 워턴, 문학동네






 
2014-03-02

정독도서관에 갔다가 발견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동서문화사에서도 완역본이 나왔구나,
그것도 2010년.

왼쪽 건 민음사에서 나온 것.
이건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뿐.





 
2014-02-25
29
겐조는 자신의 배후에 또다른 세계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 없었다. 그 세계는 평소의 그에게는 먼 과거의 지나간 일이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갑자기 현재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성질을 띠고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땡땡이중을 닮은 히다의 밤송이 머리가 어른거렸다. 고양이처럼 턱을 처박고 괴롭게 헐떡이는 누이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였다. 혈색 없는 형 특유의 마르고 긴 얼굴도 왔다갔다 했다.
옛날 그 세계의 사람이었던 그는 그 후 스스로의 힘으로 그 세계를 훌훌 벗어나올수 있었고, 거기서 벗어난 후로는 오랫동안 도쿄 땅을 밟지 않았다. 겐조는 지금 다시 그 속에 되돌아가 오랜만에 과거의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싫은 감정과 약간의 그림움이 뒤섞인 상태였다.
겐조는 또 그 세계와는 전혀 관계없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때때로 그의 앞을 가로지르는, 젊은 피와 반짝이는 눈을 가진 청년들이 있었다. 그는 그 청년들의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래의 희망을 밝혀주는 종소리처럼 맑디 맑은 그 소리가 겐조의 어두운 마음을 약동시켰다.
......
겐조의 말은 반은 변명조였고, 반은 자조적이었다. 그는 과거의 감옥생활에서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면서 반드시 미래의 자기를 쌓아올려야 했다. 그게 그의 방침이었고 확신이었다. 그러나 그 방침에 따라 앞으로 전진해간다는 게 지금의 그에게는 헛되이 늙어간다는 결과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닌 듯 느껴졌다.
"학문만 하다 죽는 인간처럼 재미 없는 인생도 없을거야."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 말뜻은 결국 청년에게 통하지 않았다. 겐조는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아내의 눈에는 결혼 당시와 어떻게 다르게 비칠까를 생각하며 걸었다. 아내는 아이를 낳을 때마다 늙어갔다. 머리카락이 걱정스러울 만큼 빠진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세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길 위의 생>



 
2014-02-25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 일단 한 번 일어난 것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그저 여러가지 형태로 모양만 바뀌는 것으로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

<한눈팔기>를 다 읽고
전에 읽었던 <길 위의 생>을 다시 읽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가 죽기 1년 반 전에 쓴 작품.
이 책의 주인공이 어려서 양자로 보내졌다가 몇년만에 원래의 부모님집으로 돌아온 것, 양부모와의 관계 등의 상황은 실제 나쓰메 소세키가 겪었던 일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작품 속의 시기는 작가가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쓸 즈음을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2014-02-21


<길 위의 생>
나쓰메 소세키
김정숙 옮김,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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