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4-02-21
1
겐조가 먼 곳에서 돌아와 고마고메 한구석에 살림을 차린 건 그가 도쿄를 떠난 지 몇 년 만이었던가. 고향 땅을 밟으며 그는 감회와 함께 알 수 없는 외로움마저 느꼈다. 겐조의 몸에는 아직도 먼 이국 냄새가 그냥 들러붙어 있었다. 그는 그 냄새를 한시바삐 떨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냄새 속에 배어 있는 자부심과 만족감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다만 그런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소 불안정한 모습으로 센다기에서 오이와케로 빠지는 길을 날마다 하루 두 번씩 시계바늘처럼 오고 갔다.
어느 날 가랑비가 뿌렸다. 그때 그는 외투는커녕 비옷조차 걸치지 않은 채 우산 하나만을 펼쳐 들고 여느 때처럼 혼고쪽 길을 규칙적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인력거꾼 집을 조금 지났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과 맞닥뜨렉 되었다. 그 사람은 네즈 신사 뒤편 오르막길로 해서 그와는 반대 방향인 북쪽을 향해 걸어온 듯, 겐조가 조금 전 무심코 길 저편을 바라보았을 때부터 이미 시선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일부러 눈길을 옆으로 떨군 채 그 사람 곁을 지나쳐 가려고 했으나 그 사람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저도 모르게 그 사람 쪽으로 눈길이 가고 말았다. 순간, 그 사람 역시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다.
길은 한산했다. 둘 사이에는 가랑비만 소리 없이 떨어질 뿐, 서로를 감지하는 데는 어떤 어려움도 없었다. 겐조는 얼른 눈을 딴 데로 돌리며 다시 곧바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말뚝처럼 우뚝 멈춰선 채, 전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겐조는 그의 시선이 줄곧 자신을 좇아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남자와 몇 년 동안 만나지 않은 것일까. 이 남자와 인연을 끊은 것은 그가 스무 살이 채 될까 말까 했던 옛날이었다. 벌써 15,6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그들은 우연히라도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겐조의 지위와 조건도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검은 팔자수염에 실크해트를 쓴 지금의 모습과 밤송이 머리의 엿날 모습을 비교해 보면 그 스스로도 격세지감에 싸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상대편은 너무나 그래로였다. 어림잡아도 예순 대여섯 살은 넘었을 텐데, 아직도 수염이 새까만 게 옛날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모자도 쓰지 않고 외출하는 소싯적 버릇을 지금까지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는 사실 처음부터 그 사람과 만나는 것을 피했고, 혹시 만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이 자기보다 멋진 차림이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방금 눈앞에서 본 그 사람의 행색은 누가 보더라도 결코 유복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모자를 안 쓰는 것이야 본인의 자유라 하더라도 모양새로 판단했을 때 아무래도 중류 이하로 생활하는 동네 노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든 우산도 한 세대 전에나 쓰던 투박하고 무거운 박쥐우산이었다.
겐조는 집에 돌아가서도 길가에서 만났던 그 남자의 일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따금, 꼼짝 않고 길가에 멈춰선 채 뚫어질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그 사람의 눈초리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어떠한 화제거리가 있어도 결코 아내에게 말하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아내 역시 그런 남편에게 볼일 외에는 말을 걸지 않았다.

<길 위의 생> 나쓰메 소세키, 김정숙 옮김, 이레
의 시작



 
2014-02-10


며칠 전 읽기 시작한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책이라고 말 한 건
전에 다른 번역본을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
얼마 전 까페 꼼마에 갔다가
처음보는 제목이라고 생각하고 펼쳐보았는데
제목을 다르게 번역한 같은 책이었다.

예전에 읽은 건,
<길 위의 생> 나쓰메 소세키, 김정숙 옮김, 이레

이 책의 마지막에 역자가 제목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있다.
'<길 위의 생>이라는 제목에 덧붙여 밝혀두고 싶은 게 있다. 이 작품의 원 제목은 <미치쿠사>이다. 일본 특유의 어휘로 사전적 설명을 빌린다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길가에 난 풀을 말하고, 또 하나는 길 가는 도중에 딴 짓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말이다. 보통 후자쪽이 '도중에서 지정거린다, 도중에서 한눈 팔며 시간을 낭비한다'는 관용구적 표현과 함께 널리 쓰이고, 소세키 또한 후자의 감각으로 제목을 붙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의미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상징적이고 깊은 것으로 이 작품에 잘 나타나있다.
또 하나, 이 제목은 우리말로 명사화해서 번역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굳이 우리 말을 붙인다면 '노방초'라는 말이 있으나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인데다가 제목이 시사하는 상징적이고 깊은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원 제목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작품 세계와 가장 가까운 제목을 찾는 작업은 난제 중의 난제였다.'

그러니까 '한눈팔기'가 직역에 가까운 것 같다.





 
2014-02-10


<한눈팔기> 나쓰메 소세키, 조영석 역, 문학동네
굉장히 좋아하는 책,입니다.





 
2014-02-08


<죽음의 집의 기록> 끝







 
2014-02-02
<그들은 어떨까? 어떻게? 그들은 정말로 익숙해진 걸까?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을까?> 이러한 의문들이 나를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내가 이미 말한 바 있지만, 모든 죄수들은 감옥을 자신의 집처럼은 아니지만, 마치 여인숙이나 혹은 행군 도중인 듯이 또는 어떤 휴식 장소에 머무는 것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공연히 바쁘게 움직이거나 애수에 잠겨 있었는데, 그들 각자는 확실히 거의 불가능한 어떤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꿈꾸고 있었다. 비록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계속적인 불안감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었다. 마치 헛소리처럼 근거 없는, 더욱 놀라운 것은 언뜻 보기에 가장 현실적인 사람들의 생각 속에도 종종 깃들어 있는, 가끔 무의식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그런 희망들의 이상스러운 열렬함과 조급함, 이 모든 것들이 이 장소에 독특한 형태와 특성을 부여하였으며, 어쩌면 이러한 성격들이 그곳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옥이 아닌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수한 분위기였다. 여기서는 모두가 몽상가였고, 이러한 점은 눈에 띄는 것이었다. 공상은 감옥의 대다수에게 음울하고 음침하고 어떤 건강치 못한 모습을 부여했던 까닭에 병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거의 대다수가 침묵했고,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악의에 차 있었으며, 자신의 희망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단순한 마음과 솔직함은 멸시를 받았다. 희망이 실현 불가능하면 할수록, 이 불가능성을 몽상가 자신이 더 많이 느끼면 느낄수록, 그는 더욱더 집요하고 의도적으로 마음속에 그것을 숨겨 두었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혹자는 속으로 그것을 부끄럽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또예프스끼



 
2014-02-02
「사사건건 맞기만 했지요. 알렉산드르 뻬뜨로비치.」그는 어느날 저녁에 불 앞에서 내 침대에 걸터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 이후로 15년 동안 나는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얻어맞았어요. 날마다 몇 번씩 때리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든 나를 때렸거든요. 그래서 이골이 났지요.」 어떻게 그가 군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그가 이야기했는데 기억을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영원한 부랑자이며 탈주병이었다. 내가 그의 이야기 중에서 오직 기억하고 있는 한 가지는, 그가 관리를 죽인 후 언도받은 4천 대의 체형을 말할 수 없이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혹독하게 벌을 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아마도 살아서 나오지 못할 정도로 말이지요. 아무리 이력이 붙었다 해도 4천 대라는 건 농담이 아니죠! 더욱이 관리는 악에 받쳐 있었고! 확신할 수 있었지요. 절대 무사히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을요.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처음에 나는 세례를 받으려고 했지요. 용서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람들이 직접 대놓고 그래봤자 소용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세례받은 사람은 좀 더 안타깝게 생각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대로 실행했지요. 세례를 받고 알렉산드라라는 세례명도 받았지요. 그런데 몽둥이는 몽둥이일 뿐이에요. 조금도 봐주는 것이 없고 치가 떨리게 하더군요. 나는 <두고 보자. 내거 너희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고 말 테다>라고 속으로 다짐했지요. 결국 알렉산드르 뻬뜨로비치, 내가 어떻게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시체 흉내를 잘 내거든요. 아예 죽어 버린 시체가 아니라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순간의 흉내 말이지요. 사람들이 나를 데리고 가서 1천 대를 때렸지요. 나는 초조해져서 고함을 질렀어요. 곧 이어 1천 대가 다시 시작되자 아찔해지더군요. 머릿속은 윙윙 울리고 다리는 힘이 없어 꺾였지요. 내 계획을 실행할 때가 온 거예요. 나는 땅에 쓰러졌어요. 눈은 초점을 잃고 얼굴은 파래지고 숨을 쉬지 않았어요. 입에 거품을 문 채. 의사가 와서는 곧 죽을 거라고 말하더군요. 나는 병원을 옮겨졌어요. 그러나 금방 살아났지요. 그런 일이 두 번 반복되자 그들은 약이 올랐으요. 나에게 매우 화가 나고 말았지요. 나는 그들을 두 번이나 속인 거예요. 세 번째에도 나는 1천대를 맞고 인사불성이 외었지요. 마지막 남은 1천 대를 맞을 때는 한대 한대가 마치 칼로 심장을 쑤시는 듯했고, 한 대 맞는 고통이 세 대 맞는 꼴이 되도록 그들은 무지하게 때렸어요. 그들은 나에게 적의를 가졌던 거예요. 인정사정없던 마지막 1천 대는(빌어먹을......), 3천 대를 맞는 것과 다름이 없었지요. 얼마 남지 않아서 내가 쓰러지지 않았더라면(2백 대 정도 남아 있었는데), 죽을 때까지 때렸을지도 몰라요. 나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다시 그들을 속이게 된 거지요. 그들은 내 속임수를 또다시 그대로 믿었어요. 믿을 수밖에 없었죠. 의사도 믿었으니까요. 나머지 2백 대는 더 심한 것이었어요. 다른 때의 2천 대를 맞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으니까요. 빌어먹을. 그렇게 때렸지만 나를 끝장낼 수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몽둥이로 맞고 자란 덕분이지요.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 그렇게 맞고도 살아 있는 거예요. 아! 난 엄청나게 맞고 자랐어요. 살면서 내내 맞기만 했지요.」그는 마지막 이야기를 하면서 슬픈 생각에 잠긴 듯이 몇 번이나 맞았는지를 헤어리려는 듯하면서 덧붙였다.「아니야, 몇 번 맞았는지 셀 수 없어. 어떻게 세겠어. 수가 모자랄 만큼인데!」그는 나를 응시하고는 웃어 보였다. 나 역시 응답으로 미소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선량한 웃음이었다.「알렉산드르 뻬뜨로비치, 당신은 아십니까? 내가 지금도 밤중에 꿈을 꾸면, 그것도 맞는 꿈이라는 것을. 도무지 다른 꿈은 꾸어지지 않아요.」그는 실제로 밤중에 자주 소리를 지르곤 했다. 큰 소리를 지를 때면 죄수들이 그를 다급히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하면서. 그는 크지 않은 키에 덩치 좋은 사나이로 나이는 마흔다섯 살 정도에, 넉살 좋고 명랑해 보이며 죄수들과의 관계도 좋았지만 훔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탓에 우리에게도 많이 맞곤 했다. 그러나 우리들 중 도둑질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며, 그로 인해 맞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또예프스끼

그 때는 태형, 그러니까 죄에 대한 벌로 매를 맞는 것이 제도적으로 존재했던 것 같다.
2천 대, 3천 대라는 숫자가 놀랍다.





 
2014-01-27

호크니/내가 지금가지 본 삶의 방식 중 가장 훌륭한 것이 모네의 방식입니다. 그는 지베르니의 수수한 집, 그러나 매우 훌륭한 주방과 두 명의 요리사, 정원사, 멋진 작업실이 있는 집을 갖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삶입니까! 그가 한 일이라곤 수련 연못과 정원을 바라보는 것뿐이었습니다. 정말 환상적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43년간 머물렀습니다. 그는 마흔세 번의 봄과 마흔 세 번의 여름, 그리고 마흔세 번의 가을과 겨울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2014-01-25

지지난주, 웹툰을 시작하면서부터 책을 거의 못 읽었다.
이번 주 에피소드를 마치고 나서
작업을 닥쳐서 급하게 하지 말아야 다음날의 후유증도 덜 하고
그래야 다른 생활이나 웹툰이 아닌 다른 그림들도 이전처럼 유지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나쓰메 소세키씨의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아직 도스토예프스키씨를 만나고 있다.





 
2014-01-11
'도스또예프스끼는 1850년 1월 23일 서부 시베리아의 옴스끄에 있는 유형지에 도착하는데, 그의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4년 동안의 기간을 마치 산 사람이 관 속에 있는 것과 같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각주
<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또예프스끼



 
2014-01-11

<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또예프스끼가 1850년부터 1854년까지 4년간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감옥에 대한 이야기.
책은, 자신의 부인을 살해하고 시베리아의 감옥에서 10년을 보낸 후 그곳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다가 죽은 러시아의 귀족이 남긴 노트를 어떤 사람이 읽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 노트의 내용인 셈.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활의 첫걸음부터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여기서 내가 아주 감동적이고 비일상적인, 좋게 말해서 예기치 못한 그런 일을 발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시베리아에 오면서 내 운명에 대해 짐작해 보려고 애썼을 때 나의 상상 속에서 이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못했고 아주 놀랄 만한 사실들의 심연은 내가 거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나를 붙들어 놓기 시작했다. 단지 나중에, 내가 꽤 오랫동안 감옥에서 산 후에야, 그러한 생존의 모든 예기치 못함과 모든 의외성을 나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런 일에 놀라고 또 놀랄 뿐이었다. 이러한 경악은 오랜 유형 생활 내내 나를 쫓아다녔지만, 나는 결코 한번도 그것과 화해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제 1부
2. 첫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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