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3-11-29
점심상에 알배기 굴비를 올릴 때까지만해도 마나님은 행복감으로 마음이 그들먹했다. 겸상을 하고 막 수저를 드려는데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안부전화여서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도 밥상으로 돌아와 보니 그사이에 굴비는 온데간데없다. 살을 어찌나 알뜰하게 발라먹었는지 머리와 꼬리를 잇는 등뼈의 가시가 빗으로 써먹어도 좋을 정도로 온전하고 깨끗하다. 한 마리에 오만 원도 넘는 진짜 영광굴비래요. 며느리가 집에 선물 들어온 굴비 두름에서 세 마리를 갖다주며 한 말을 마나님은 영감님에게 몇 번이나 되뇌며 그 굴비를 구웠는지 모른다. 아들이 그런 비싼 선물을 받았다는 게 대견해서 마나님은 마냥 신이 났던 것이다.
그러다 별안간 허방을 밟은 것처럼 비참의 밑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이다. 평생 제 입밖에 모르는 영감과 살아왔거늘 이제 와서 웬 지옥불 같은 증오란 말인가. 하긴 저 영감이 무슨 잘못이람. 아들을 저따위로 키운 시어머니 탓을 하다가, 난 또 뭔가, 내가 저 영감을 저렇게 길들인 걸, 자신을 다독거렸다가, 그래봤댔지 남는 건 허망감밖에 없다. 한바탕 허망감이 휩쓸고 지나가면 뼈에는 숭숭 구멍이 뚫리고 입술은 다시는 열리지 않을 빗장처럼 무겁게 닫힌다.
영감님은 마나님이 왜 토라졌는지 아직도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십여 년을 해로하면서 어찌 좋은 날만 있었겠는가. 툭하면 토라지기도 잘하지만 뒤끝이 없어 언제 그랬더냐 싶게 헤헤거리기도 잘하는 마누라였다. 그래 버릇해서 영감님은 한 번도 마누라가 왜 토라졌는지 그 근본 원인을 캐들어간 적이 없다. 불화가 오래가면 자기만 손해라고 생각해서 얼렁뚱땅 화해를 서둘렀을 뿐이다.
영감님이 알고 있는 화해의 방법은 딱 한가지 불문곡직 잠자리에서 마누라를 기쁘게 해주는 것였다. 그는 그 방법밖에 모를 뿐 아니라 그 방법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오래 끄는 자식놈들이 한없이 변변치 못해 보였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 방법에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부터 어쩔 것인가, 내 꼴이 어쩌다 이리 초라해졌단 말인가.

<노란집> 박완서

그냥 산문집인 줄 알았는데
앞부분엔 짧은, 단편보다 더 짧은 형식으로
노부부에 대한 소설이 몇 개 있다.
읽기 시작했다가,
아, 좋아서
시작부터 너무 많이 읽지 않으려고
금방 덮었다.




 
2013-11-29
서문
엄마의 휘모리장단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어머니가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집에서 쓰신 글이다. 돌아가신 지 이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어머니의 뜰에는 살아 계실 때와 거의 똑같은 속도와 빛깔로 꽃이 피고 지고 있다. 염천인데도 직선으로 올라온 상사화 꽃대와 나무수국 흰빛과 목백일홍 붉은 꽃송이가 여름의 빛을 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엄마를 부른다. 꽃이 피면 감탄사를 가장 먼저 전하고 싶어 엄마를 찾는다. 내 마음속 어린애는 아직도 엄마를 부르는데 나는 어느 틈에 할머니가 되어 있다. 손녀를 부르는 내 음성에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어머니의 소리가 배어 있다. 엄마가 그랬듯이.
......

2013년 6월 아치울 노란집에서
호원숙


<노란집> 서문




 
2013-11-28


<노란집> 박완서, 열림원



 
2013-11-28
나는 벌써 열아홉 살이었다. 나는 기둥 서방의 영혼을 갖지 못하였다. 난 몹시도 고통스러웠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느낌이 점점 더 나를 사로잡았고, 나보다 앞선 사람들, 자기들의 남자다움을 확신하고 싶었던 모든 다른 사람들처럼 그 느낌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노고와, 어머니의 건강을 빨아먹고 살고 있었다. 내가 마침내 내 약속을 실현시키기 시작하고, 소매에 소위의 띠를 늘어뜨리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 인생에 첫 승리를 가져다주기 시작할 때까지는 적어도 이 년이란 세월이 가로놓여 있었다. 나에겐 도망칠 권리가, 어머니의 도움을 마다할 권리가 없었다. 나의 자존심, 나의 남성다움, 나의 존엄성, 이 모든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내 미래에 대한 전설이 어머니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었다. 화를 낸다거나 까다롭게 군다거나 하는 것은 내게 허용되지 않았다. 점잔을 빼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 엄격한 순결성이라든지 근사하게 턱을 주억거린다든지는 나중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피와 살이 된 가혹한 실험 교육이 나로 하여금 더 이상 버림받은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위해 투쟁하게끔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므로 하는 말인데, 그에 대한 철학적, 정치적 결론이나 정돈된 교훈이나 도덕성 따위들 역시 나중 일이었다. 우선 나는 부끄러움을 삼키고, 시계와의 경주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었다. 약속을 지키고, 사랑이 넘치는 비합리적 꿈을 계속 살아있게 할 무엇인가를 공급하려 애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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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카를론 가를 따라서 차르비치 거리를 향해 걸었다. 교회는 비어 있었다. 어머니는 어떤 의미로는 그렇게 교회를 독점할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은 듯하였다.
"우리밖에 없구나"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기다릴 필요도 없겠다."
어머니는 마치 신이 의사이기라도 하여 운 좋게 빈 시간에 오기라도 한 듯이 말하였다. 어머니는 십자를 그었고, 나도 그렇게 하였다. 어머니는 제단 앞에 꿇어앉았고, 나도 그 곁에 꿇어앉았다. 어머니의 뺨 위로 눈물이 흘렀으며, 어머니의 입술이 오래된 러시아의 기도문을 더듬거렸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계속하여 나오는 기도문을. 나는 눈을 내리깔고 어머니 옆에 있었다. 어머니는 가슴을 쳤고, 한 번은 내게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여자들의 돈을 받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해라!"
"맹세해요, 엄마."
어머니 역시 하나의 여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주여, 그를 도우사 똑바로 서게 하시고, 옳게 행하게 하시고, 병으로부터 지켜주서소!"
어머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주의하겠다고 맹세해라! 아무 병에도 안 걸리겠다고 약속해!"
"약속해요, 엄마."
어머니는 그러고도 오랫동안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기도는 하지 않고 울기만 하였다. 그런 다음 내가 어머니를 일으켰고,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어머니는 눈물을 닦더니 갑자기 매우 만족한 듯 하였다. 마지막으로 교회를 돌아볼 때에는, 거의 어린아이 같은 속임수의 기색마져 얼굴 위로 나타났다.
"아무도 모를 거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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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1938년, 스웨덴에서 돌아왔을 때 일어났다.
내 보배를 다시 얻을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처세술이라고는 전혀 없는 브리지트의 남편에게 실망과 구토를 느끼며, 어머니가 내게 약속하였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에 멍청해진 나는, 절대로, 절대로 여자를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내 상처를 핥기 위해, 그리고 공군에 편입되기 전 몇 주일을 집에서 보내가 위해 니스로 돌아왔다.
나는 역에서 택시를 탔다. 강베타 거리의 모퉁이에서 당트 거리로 돌자마자 나는 먼발치로 호텔 앞 작은 정원에서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놀리는 듯 미소 짓는 형체를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보통과 매우 다르게 나를 맞아주었다. 물론 나는 눈물과 끝없는 포옹과 감동과 만족에 찬 킁킁거림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별 인사 비슷한 이 흐느낌, 이 절망적인 시선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내 품 안에서 울고 떨고 하다가는 가끔씩 내 얼굴을 더 잘 보기 위해 몸을 떼어내곤 하였다. 그러고선 다시 새로운 격정으로 내 품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나는 불안에 사로잡혀, 근심스럽게 어머니의 건강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건강한 것 같았고, 일도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새로운 눈믈의 폭발과 가슴 막히는 흐느낌. 마침내 어머니는 진정하였고, 야릇한 태도로 내 팔을 잡더니 나를 비어 있는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는 구석에 있는 우리가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거기서 어머니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나를 위해 어머니가 짜놓은 계획을 일러주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였다. 내게 베를린으로 가서 히틀러를 죽임으로써 프랑스를 구하고, 부수적으로 세계도 구하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무엇이든 다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나의 최종적 무사함까지. 왜냐하면 내가 잡힌다고 가정해도 - 나는 너를 잘 아니까, 네가 잡히지 않고 히틀러를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지마는, 그래도 혹시 잡힌다고 가정하여도 -, 최강국들, 프랑스, 영국, 미국이 내 석방을 위해 최후 통첩을 할 것임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중략) 나는 지하실로 내려가 궤짝 속에 넣어두었던 권총을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표를 사러 갔다. 신문에서 히틀러가 베르히테스가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기분이 좀 나아졌다. 왜냐하면 칠월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도시의 공기를 호흡하는 것보다는 바바리아 알프스의 숲 공기를 마시는 편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또 나는 내 원고들을 잘 정리해두었다. 어먼이ㅢ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살아서 도망쳐 올 수 있을지 전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편지 몇 통을 썼고, 내 군용 자동 권총에 기름을 칠했으며, 내 무기를 보다 더 안전하게 숨기기 위해 나보다 뚱뚱한 친구에게 저고리를 빌렸다. (중략) 그 동안 어머니는 한시도 쉬지 않고 나를 따라다녔다. 자랑과 감탄에 찬 어머니의 시선이 어디고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기차표를 받아들고, 독일 철도가 내게 삼십 퍼센트 할인을 해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방학 중 여행을 위한 특별 대우였다. 떠나기 전 사십팔 시간 동안 나는 소금 친 오리를 먹는 양을 신중하게 제한하였다. 장 장애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어머니에 의해 매우 나쁘게 해석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위대한 날의 전야, 나는 마지막으로 수영하기 위해 '그랑 스 블뢰'에 갔다. 그리고 감개가 무량하게 나의 마지막 스웨덴 처녀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 해안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나의 위대한 비극 여배우가 살롱 안락의자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를 보자마자, 그 여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찌푸리더니 두 손을 모아잡았다. 그러더니 내가 손짓을 할 시간도 갖기 전에 벌써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는 얼굴을 하고 무릎을 끓는 것이었다.
"제발 얘야, 그것을 하지 마라! 너의 영웅적인 계획을 포기해라! 영웅적 행위일랑은 네 불쌍한 에미를 위해 해라. 그들은 외아들에게 그걸 요구할 권리가 없어! 나는 널 키위기 위해 널 사나이로 만들기 위해 그토록 투쟁해왔는데. 그래서 마침내...... 아, 하느님!"
눈은 공포로 커다래지고, 얼굴은 아연실색, 두 손을 모으고......
나는 놀라지 않았다. 너무도 오래전부터 나는 '조건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오래전부터 나는 어머니를 알고 있었고, 그토록 완전하게 어머니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표를 벌써 산걸" 하고 내가 말했다.
사나운 결의의 표정이 어머니의 얼굴에서 공포와 절망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내버렸다.
"환불해줄 거다!" 지팡이를 집어들며 어머니가 선언하였다.

<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심민화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11-23
지난 번에 아이젠 거리를 지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옆에서 "카알은 뭘 하고 있지?"하고 말했습니다. 뒤돌아보니 내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 남자가 혼잣말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질문도 혼잣말이었습니다. 카알은 내 소설에 등장하는 불행한 주인공입니다. 악의 없이 내 곁을 지나가던 그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과제를 제기함으로써 나를 비웃은 셈입니다. 그의 말을 격려로 여길 수는 없으니까요.
지난번에 그대는 내 외삼촌의 편지와 관련하여 앞으로의 계획과 전망에 대해 물었습니다. 나로서는 그 질문이 놀라웠습니다. 낯선 그 남자의 질문을 들었을 때 그대의 질문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물론 나는 아무런 계획도 전망도 없습니다.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추락하거나 떠돌거나 비틀거릴 뿐입니다. 자리에 누워지낼 수만 있다면 최선이겠지요. 계획이나 전망은 전혀 없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충만한 상태입니다. 아니, 잘 지내지 못합니다. 미래와 마찬가지로 현재를 저주합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프란츠 카프카, 변난수, 권세훈 옮김, 솔


제자리걸음, 되돌이표 반복 중인 이 책.





 
2013-10-28



1. 박완서 소설을 몇 권 읽기는 했지만 오래전이고 좋아한 적은 없다. 최근에도 초기 단편을 모은 책을 빌렸다가 한 세개 읽고 반납해버렸지. 서점에 갔다가 <노란집>이라는 산문집을 잠깐 봤는데 다 읽고 싶었다. 당장 사고 싶었지만 가방도 자전거바구니도 안 가져와서 자전거 타고 들고갈 길이 없어 내려놓았다.

2. 만화책들은 모두 비닐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니, 서점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사야겠다 생각하고 가지 않으면 보다가 사고 싶은 마음이 들 리가 없다. 만화책은 한 번 보면 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인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

3. 좋아하는 까뮈의 전집, 사실은 다 읽지는 않았고, 다 있다.

4. 나도 이렇게 두꺼운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5. 새로 인테리어를 한(2년은 된 거 같지만) 교보문고는 어쩐지 편하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주로 영풍문고.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공드리 사장님을 만나 어색한 칼국수를 얻어먹고 나왔는데 헤어진 후에도 어색함이 계속 남아있어 갑자기 서점에 갔습니다.



 
2013-10-22
나는 그 모욕이라는 게 십중팔구는 단지 상상이며, 어머니는 어디서나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것, 신경과민 때문에 때로 어머니가 먼저 남들을 이유없이 모욕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야단스러운 일을 혐오하였고, 그 계속적인 소란이 견딜 수 없이 지긋지긋하였으니 결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 어머니는 십사 년이나 홀로 살고 홀로 싸워왔던 것이어서, '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 자기 옆에도 남자라는 존재가 지키고 있다는 느낌보다 더 어머니를 매혹시키는 것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두 손에 힘을 모아 부끄러움을 누르며 어머니가 지명한 어떤 재수 없는 보석 장수, 고기 장수, 담배 장수, 고물 장수를 찾아갔다. 그러면 문제의 인물은 한 소년이 몸을 떨며 자기 가게로 들어오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 소년은 주먹을 꼭 쥐고 그의 앞에 서서 분노 - 무엇보다도 효성심 때문에 억지로 내보이는 불쾌감의 과시에 어울리는 - 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곤 하였다.
"아저씨, 아저씨가 우리 엄마를 모욕했지요. 자, 받아요!"
그러고서 나는 그 불행한 사람에게 따귀를 먹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나는 매우 일찍 강베타 가 주변에서 깡패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소동을 내가 얼마나 혐오하고 있으며, 내가 얼마나 그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 일이 얼마나 나를 비참하게 하는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한두 번, 어머니의 하소연이 전혀 얼토당토않다는 것을 알고서 반대하려 해본 일이 었었다. 그러자 이 노인네는 마치 다르에 힘이 쭉 빠져버린 듯이 내 앞에 주저앉아버렸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들었다. 그러고는 하염없이 그렇게 앉아, 기력과 용기가 완전히 빠져버린 것 같은 상태에서 멍청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 싸우러 갔다. 자기 자신의 상황에 대한 명석한 몰이해라고밖엔 표현할 수 없는 무엇에 사로잡힌 생물의 모습을 나는 결코 견디어내지 못하였다. 나는 사람이건 동물이건 버림받은 존재의 모습을 결코 참지 못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두 경우 안에 말문이 막힌 채 비통하게 침묵하고 있는 모든 것을 태도로 보여주는데 참을 수 없을 만큼 특출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연고로 아그로프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따귀를 맞았던 것이다. 아그로프는 따귀를 맞자 이렇게만 내뱉었다.
"깡패 녀석, 떠돌이 광대에다 협잡꾼의 자식이니 하나도 놀랍지 않지."

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2013-10-21
그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사십 줄에 들어서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토록 어려서, 그토록 일찍, 그토록 사랑 받는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나쁜 버릇을 들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디에나 다 있는 일인 줄 알고,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요구하게 된다. 바라보고 갈망하고 기다린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인생은 그 여명기에, 결코 지키지 않을 약속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죽는 날까지 찬밥을 먹어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어떤 여자가 당신을 안아서 가슴에 품어준다 해도 조사(弔詞)에 불과할 뿐, 우리는 버림받은 개처럼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무덤으로 돌아와 짖어대는 것이다. 이제 다시는, 이제 다시는, 이제 다시는. 사랑스런 팔들이 당신의 목을 두르고, 아무리 달콤한 입술이 사랑의 말을 속삭여도, 당신은 계속 달려야만 한다. 당신은 너무도 빨리 샘을 지나쳤고, 그리고 바닥나도록 다 마셔버렸다. 다시 갈증에 사로잡힐 때, 사방으로 몸을 던져보아야 샘물은 없고, 신기루뿐이다. 여명의 첫 빛 속에서 당신은 사랑에 대해 매우 압축된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세세한 자료들을 잔뜩 머릿속에 넣고 있다. 그리하여 어디를 가도 비교라는 독을 품고 다니면서, 전에 한 번 받았던 것을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한다.
나는 어머니들로 하여금 자기 자식들을 사랑하지 못하게 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단지 어머니들에게 누군가 달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내 어머니에게 애인이 있었다면, 나는 샘물들 주변에서 매번 갈증으로 죽어가며 인생을 보내지는 않았으리라. 진짜 금강석에 정통하다는 것, 그것이 내겐 불행이었다.

새벽의 약속, 로맹가리

 
2013-10-20


새벽의 약속, 로맹가리, 심민화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3-09-21
내가 지난 시절 내뱉었던 혐오스러운 말에서 나를 지켜주세요. 그대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으며 어쨌든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세요. 지난번에 라스커-쉴러와 슈니츨러를 모욕하는 글을 적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옳았던가요!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내가 바닥에 누워 있는 심연 위를 천사가 되어 날아다닙니다. 막스가 칭찬하더군요! 그가 원래부터 내 책을 칭찬한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내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판단은 누군가가 그럴 마음이 있다면 검증해보아야겠지요. 막스는 누구보다도 나를 칭찬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누가 나를 검증할 수 있겠습니까? 내 자신을 의미하는 지리멸렬한 상태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강력한 손을 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때 말하는 것은 정확한 의견도 아닐 뿐더러 순간적인 의견도 아닙니다. 내 자신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불명확한 것들이 뒤엉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한 거부감을 정확히 규명할 수도 없고 완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대여, 만일 그대가 이러한 혼란을 겪는다면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직접 체험하는 사람보다 구경꾼에게 더 슬프고 거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한지 상상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고백하건대, 내가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적고 있는 동안 말입니다.

프란츠

Nr.181
1913년 2월 18일에서 19일
<카프카의 편지 -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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