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7-08-30
160.
"실은" 하고 말한 고바야시는 그 뒷말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쓰다는 곧바로 묻고 싶어졌다.
"실은 어떻다는 건가?"
"실은 얼마 전에 자네 부인한테 죄다 말해버렸네."
쓰다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뭘 말인가?"
고바야시는 상대의 태도와 표정을 씹어서 맛이라도 보는 듯이 잠시 사이를 두며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대답을 겉으로 드러냈을 때는 이미 태도를 확 바꾸었다.
"거짓말이네. 실은 거짓말이야.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네."
?걱정하지 않네. 이제 와서 그 정도의 일을 말했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가? 그럼 이쪽도 진짜네. 실은 진짜야. 죄다 얘기해버렸네."
"바보!"
쓰다의 목소리는 의외로 컸다. 반듯하게 의자에 걸터앉아 있던 여종업원이 살짝 고개를 들고 눈을 이쪽으로 향하자 고바야시는 곧바로 그것을 소재로 삼았다.
"레이디가 놀라니까 좀 조용히 하게. 자네 같은 무뢰한하고 술을 마시면 아무래도 체면이 깎여서 못쓴다니까."
고바야시는 여종업원 쪽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자도 미소를 지었다. 쓰다 혼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고바야시는 다시 곧 그 틈을 파고들었다.
"대체 그 일의 자초지종은 어떻게 된 건가? 나는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했고, 자네도 얘기해주지 않았던 게 아닌가? 내가 잊어버렸나?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쪽에서 도망친 건가, 아니면 자네가 도망친 건가?"
"그거야말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아닌가?"
"응, 나로서는 상관없는 게 당연하지. 또 실제로 상관하지 않네. 하지만 자네는 그렇게 안 될 거네. 무척 마음이 쓰일 거야."
"그야 당연하지."

<명암> 나쓰메 소세키,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7-08-22
2
전차를 탄 쓰다는 침울한 기분이었다. 꼼짝달싹 못 할 만큼 승객이 붐비는 전차에서 그는 손잡이에 매달린 채 오로지 자신의 일만 생각했다. 작년의 격심했던 고통이 생생하게 기억의 무대 위로 올라왔다. 하얀 시트 위에 눕혀진 비참한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쇠사슬을 끊고 달아날 수 없는 개가 내는 듯한 자신의 신음 소리가 또력이 들렸다. 그리고 차가운 날붙이의 빛과 그것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 마지막으로 돌연 양쪽 페에서 한꺼번에 공기를 짜내는 듯한 엄청난 힘의 압박, 그리고 압박을 받은 공기가 눌리지만 수축할 수 없기에 일어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격심한 고통이 그의 기억을 덮쳤다.
쓰다는 불쾨해졌다. 갑자기 마음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다들 점잔을 빼고 있었다.
'왜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을까?'
아라카와 제방으로 꽃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발적으로 발생한 당시의 격심한 고통에 대해 그는 완전히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원인은 모든 상상 밖에 있었다. 이상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웠다.
'이 육체는 언제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 아니, 지금 바로 이 육체 안에 어떤 변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전혀 모르고있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여기까지 생각해온 그의 머리는 거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뒤에서 와하고 밀어 떨어뜨릴 기세로 그를 앞쪽으로 밀어붙였다. 돌연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정신세계도 마찬가지다. 정신세계도 전적으로 마찬가지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변하는 것을 본 것이다.'
쓰다는 무심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마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처럼 눈을 주위로 돌렸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전차 안의 승객들은 그의 눈길에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쓰다의 생각은 그가 타고 있는 전차처럼 자기 자신의 레일 위를 달려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이삼일 전 한 치눅에게서 들은 푸앵카레 이야기를 떠올렸다. 쓰다를 위해 '우연'의 의미를 설명해준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푸앵카레의 주장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이 우연, 우연, 하는 이른바 우연한 사건이라는 건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짐작이 안 될 때 쓰는 말이네.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난자와 어떤 특별한 정자가 만날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필요한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또 어떤 조건이 필요했는지 생각해보면 거의 상상이 안 갈 거네,"
쓰다는 친구의 말을, 단지 새롭게 주어진 지식의 단편으로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이야기를 자신의 신상에 적용해 생각했다. 그러자 어둡고 불가사의한 힘이 오른쪽으로 가야 할 그를 왼쪽으로 밀어붙이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그를 뒤로 끌어당기기도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그는 여태까지 한 번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남의 견제를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무슨 일이건 자신의 힘으로 했고 무슨 말이건 자신의 힘으로 했음에 틀림없었다.
'왜 그 여자는 그곳으로 시집을 갔을까? 그건 자신이 가려고 마음 먹어서 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곳으로 시집갈 리가 없었는데. 그리고 나는 또 왜 이 여자와 결혼했을까? 그것도 내가 원했기에 결혼이 성립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그때껏 이 여자와 결혼할 생각을 안 했는데. 우연일까? 푸앵카레가 말한 이른바 지극히 복잡한 원인일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전차에서 내린 쓰다는 생각에 잠긴 채 집을 향해 걸었다.

<명암>을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지막 작품. 마무리를 못하고 죽었다.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7-08-19
음력 3월, 붉은색이 사방을 감싸고 있는 한낮인데도, 잠들어 있는 천지에 봄에서 뽑아낸 진한 자줏빛 한 점을 선명하게 떨어뜨려놓은 것 같은 여자다. 꿈의 세계를 꿈보다도 곱게 바라보게 하는 검은 머리를 흐트러지지 않게 접어놓은 살쩍 위에는, 야광패를 제비꽃 모양으로 아주 맑게 새겨 넣은 가느다란 간자시가 꽂혀 있다. 조용한 낮이 먼 세상으로 마음을 빼앗으려는 것을 검은 눈동자가 휙 움직이면, 보는 사람은 앗 하고 정신을 차린다. 반 방울이 퍼지는 짧은 순간을 훔쳐 질풍의 위세를 보이는 것은 봄에 있으면서 봄을 제압하는 깊은 눈이다. 이 눈동자를 거슬러 올라가 마력의 경지에 이르면 도원의 백골이 되어 다시는 속세로 돌아올 수 없다. 보통 꿈이 아니다. 희미한 꿈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요성 하나가 죽을 때까지 자신을 보라며 자줏빛으로 눈썹 가까이 다가온다. 여자는 자줏빛 기모노를 입고 있다.

후지오에 대한 묘사

<우미인초> 나쓰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7-08-19


<우미인초> 나쓰메 소세키
다 읽었다.

후지오를 그렇게 죽일 줄은(작가가)
몰랐다.
읽기 힘든 면들이 좀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초기작들은.




 
2017-08-15

실용서라고는 거의 안 읽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 몸이 피로가 쌓이니
이런 책도 사서 보고 있다.
효과가 좋아.

어깨 때문에 수영을 시작했는데
운동으로 풀리는 근육과
마사지-스트레치로 풀리는 근육이 다르다고 한다.






 
2017-08-03
"꽤 멀군그래. 원래 어디서 오르는 거지?"
한 사람이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멈춰 선다.
"어디서부턴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디서 오르든 마찬가지겠지. 산이 저기 보이니 말이야."
얼굴이나 체격이 네모나게 각진 남자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흰 중절모의 갈색 차양 아래로 짙은 눈썹을 움직이며 올려다보는 머리 위로는, 속까지 쪽빛을 드러낸 희미한 봄 하늘이 불면 날아갈 듯 부드럽게 펼쳐져 있고, 마치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듯이 히에이잔 산이 우뚝 솟아 있다.

<우미인초>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쓰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7-07-16


읽을 예정.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 5.

우미인초는 개양귀비의 다른 이름이라고.






 
2017-07-16
<에리크 로메르>

아주 솔직하게 말하는데 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낍니다.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스물에서 스물다섯 사이에 매우 왕성한 창작열을 발휘했던 시기가 있었고 이는 서른 무렵까지 지속됐죠. 서른 이후에는 나 자신이 고갈됐다는 걸 알았어요. 당시 많이 괴로웠고 혼자 힘으로는 결코 소재를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정말 '나 자신의'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아마 이것이 내가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 '도덕 이야기' 이후 소재들을 찾아내겠다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내게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와 동시에 '희극과 격언'의 구상이 떠올랐는데, 이 연작에는 공통된 주제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그것을 찾아다녔고 심지어 약간 모호한 주제를 발견했으나 실제로 조직화되지는 못했어요. 그러고 나서 내가 썼던 것, 스물다섯이 아니라 그 전에 썼다가 완전히 제쳐뒀던 것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 유용한 것들이 있음을 알아차렸죠.

시나리오 및 영화 계획
로베르 아몽, 장피에르 팔리아노 - 1982


 
2017-07-16


<태풍>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노재명 옮김, 현암사
, 읽었다.

'시라이 도야는 문학자이다.
8년 전에 대학을 졸업한 뒤 시골의 중학교를 두세 군데 흘러 다니다가, 작년 봄에 표연히 도쿄로 되돌아왔다. 여기서 '흘러 다닌다'는 말은 걸립패가 사용하는 말이고, '표연'이라는 말은 오고 감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도야의 거취를 이렇게 형용하는 것이 적합한지 여부는 작가라 하더라도 보증할 수 없다. 뒤엉킨 실의 한쪽 끝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 그 줄이 한 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한 줄의 실 뒤편에 이중 삼중의 인연이 뒤엉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러기가 북쪼긍로 날아가고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오는 것도 새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에 걸맞은 변명이 있을 터이다.'
이렇게 시작.

'나쓰메 소세키는 총 열네 권의 장편소설을 썼다. <태풍>(1907)은 그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로 말할 것 같으면 소세키의 장편소설들 중에서 가장 덜 읽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나온 초기 성공작들, 즉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의 유명세에도 밀리는 데다가, 뒤에 나온 '전기 3부작'(<산사로> <그 후> <문>)과 '후기 3부작'(<피안을 지날 때까지> <행인> <마음>)의 위세에도 눌려온 터다. 국내에게 출간된 소세키의 책들 뒤편에 으레 붙어 있는 작가 연보에도 이 작품은 빠져 있기 일쑤다. 이 정도면 거의 무시당해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냉정히 말하면 그럴 만하다고 할 여지가 없지 않다. 굵직한 서사가 없어서 읽는 재미가 덜한 데다가, 소세키 본인의 육성과 잘 구별되지 않는 계몽적 연설들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형철(문학평론가)의 해설





 
2017-07-09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요?
주로 내 버전(그게 사실이라는 데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지만)은 1923년 4월 4일 낭시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겁니다. 가끔 다른 날짜를 대는 적도 있지만 이날이라고 하면 다른 전기 작가들이 말하는 것과 동일할 거예요.




전에는, 전에도 늘 두세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었고 소설과 비소설을 번갈아 혹은 동시에 읽었지만, 일정한 흐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흐름이 없어지고 뒤죽박죽인 것 같다.
읽는 책들의 실제 목록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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