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7-12-26

.

 
2017-12-26


<




 
2017-12-14
그 시합은 아이디어 월드컵의 핵심 경기였다. 양 팀은 공을 놓고 맹렬하게 다퉜다. 올스타 페미니스트 팀은 '만연한 사회문제'라고 표기된 골대에 공을 차넣으려고 연거푸 시도했고, 주류 언론과 주류 남성들이 포진한 상대 팀은 '고립된 사건'이라는 예의 많이 본 골네트에 공을 집어넣으려고 애썼다. 주류 팀의 골키퍼는 공을 자기 골너트로부터 멀찌감치 떨어뜨리기 위해서 '정신질환'이란 말을 외치고 또 외쳤다. 그 '공'은 캘리포니아 주 아일라비스타(Isla Vista)에서 한 학생이 다른 학생드를 학살한 사건의 의미를 뜻했다(2014년 5월 23일 금요일 밤, 22세의 엘리엇 로저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캘리포니아 대학 쎈타바버라 분교에 다니는 남자 대학생 세명을 칼로 찔러 죽인 뒤 같은 학교 여학생 클럽으로 가서 총으로 여학생을 비롯한 세명을 더 쏘아 죽이고 행인들에게도 무차별 총격을 가하며 달아나다가 결국 차 안에서 총으로 자살했다).
사건이 벌어진 후 주말 내내 범인의 행동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가열차게 벌어졌다. 주류 목소리들은 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우겼다. 마치 그러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세상은 정상인과 미치광이라는 두 나라로 나뉘어 있고 두 나라 사이에는 국경을 건너는 사람도 공유하는 문화도 없는 것처럼. 그러나 정신질환은 범주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도의 문제일 때가 더 많고,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많은 수는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러 척도로 볼 때 광기는 불평등, 만족을 모르는 탐욕, 생태파괴와 더불어, 또한 비열함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핵심에 자리한 속성이지 주변부에만 있는 속성이 아니다.
T. M 루어먼(Luhrmann)은 지난해(2013) 신문에 실은 멋진 기고문에서, 인도에서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환청을 들을 때는 머릿속의 목소리가 집 청소를 하라고 말하곤 하는 데 비해 미국 환자들은 폭력적인 행동을 하라는 말을 드는 경향이 잇다고 지적했다. 문화는 중요하다. 형사사건의 피고 측 조사관으로 일하기 때문에 정신이상과 폭력에 관해서라면 속속들이 잘 아는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현실과의 접촉을 잃기 시작하면, 병든 뇌는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둘러싼 환경에 집착적으로, 망상적으로 매달리기 마련이야. 주변 문화의 질병에."
...
아일라비스타 살인자는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죽였다. 그러나 그가 벌인 광란극의 목표는 여학생 클럽의 회원들을 처단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여자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을 여자들이 자신에게 모욕을 가하는 상황으로 해석했던 듯하다.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는 의식과 자기연민이 슬프게 뒤섞인 감정 상태에서, 그는 여자들에게는 자신을 만족시킬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Men Explain Things To Me>
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창비





 
2017-12-14


'할머니들, 평등주의자들, 몽상가들, 이해하는 남자들,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 젊은 여자들, 그 길을 연 나이 든 여자들,
끝나지 않는 대화들
그리고 (2014년 1월에 태어난) 엘라 나히모비츠가
제 역량을 온전히 펼칠 세상을 위하여'



뭉클하고 울컥하는 첫 페이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
Rebecca Solnit



 
2017-12-05
영국을 제외하고는 어는 곳에서나 단체 보행은 하이킹으로, 하이킹은 캠핑으로 바뀌고 캠핑은 야외 행락이나 오지 모험 따위의 정체불명의 그 무엇으로 바뀌는 것 같다. 보행 단체들은 '걷기 더하기 그 무엇'을 표방한다. 보행 더하기 등사노가 환경보호, 보행 더하기 사회주의와 민요, 보행 더하기 청소년의 꿈과 국가주의와 같은 식이다. 보행이 시종일관 중심을 지키고 있는 곳은 영국뿐이다.
...
그렇지만 걸을 땅을 확보하는 일은 계급투쟁의 성격을 띠어왔다. 영국에서 땅을 가진 사람들은 지난 1000년 동안 점점 많은 땅을 가지게 되었고, 땅이 없는 사람들은 최근 150년 동안 그에 맞서 싸우게 되었다. 1066년에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방대한 사슴 사냥터를 챙긴 이래로, 외부인이 밀렵 등의 목적으로 사냥터에 진입하는 경우에 대단히 가혹한 처벌이 따랐다. 몇 세기 전부터는 거세, 국외 추방, 처형도 가능했다. 공용지(commons)는 소유자가 따로 있으면서 마을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거나 가축을 방목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이었고, 농지나 삼림에 나 있는 전통적인 공용로(right-of-way)는 소유자가 따로 있으면서 노동과 통과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었다. 1695년에 스코틀랜드 의회가 그런 공용지와 공용로를 없애는 법을 만들었고, 18세기에 잉글랜드에서는 인클로저 법이 만들어지고 가혹한 무단 강탈이 자행되면서 그런 공용지와 고용로가 급속도로 사라졌다.
...
보행을 위해 단체를 조직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이상하다. 실제로 보행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자주 언급하는 독립, 고독, 자유는 조직과 통솔이 없는 데서 온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즐거움을 얻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자유로운 시간, 자유롭게 걸을 장소, 질병이나 사회적 속박에서 자유로운 육체가 그것이다. 이 기본적 자유는 무수한 투쟁의 목적이 되어왔다. 힘든 투쟁을 통해서 자유로운 시간(8시간, 또는 10시간 노동, 그리고 이어서 주 5일 노동)을 쟁취해낸 노동자 단체즐이,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유롭게 걸을 장소를 확보하게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또 있었다. 이 장에서는 오직 자여노가 시골 공간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주로 다루었지만, 도심의 공원 조성과 관련해서도 풍요로운 역사가 있다. 예컨대 센트럴 파크는 뉴욕을 떠날 만한 여유가 없는 도심 주민에게 전원의 미덕을 선사한다는 민주적, 낭만적 기획이었다. 한편 자유로운 육체는 자유로운 시간이나 자유롭게 걸을 장소에 비해서 미묘한 주제다. ... 한편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활보할 권이를 위해 투쟁했는지는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읽어보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공장 노동자들의 육체에 기형과 질병을 초래할 정도로 처참한 생활환경과 노동환경을 고발한다. 요컨대 자연 속을 걷는 일은 중류층의 육체를 집과 사무실에 갇혀 있는 시대착오적 물건으로 변형시키는 환경, 노동자의 육체는 공장의 기계 부품으로 변형 시키는 환경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걷기의 인문학>
정원에서 자연으로 7. 보행을 위한 모임들, 통행을 위한 투쟁들
리베카 솔닛,김정아 옮김, 반비


다 읽었다.

 
2017-11-14
워즈워스에게 보행은 시의 주제이기도 했지만, 시를 쓰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 방식이란 주로 걸으면서 소리 내어 이야기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같이 걷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이야기했고, 혼자 걸을 때는 혼잣말을 했다. 그것 때문에 종종 우스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그래스미어에 사는 사람들이 그를 좀 이상하게 보기도 했다. "딴 사람들한테는 말을 많이 안 했는데 혼자서 그렇게 말을 많이 했더라고. 입모양을 보면 알지." "머리는 앞으로 내밀고 두 손은 뒤로 하는 거야. 그 자세로 슬슬 걷는 거야. 걷다가 걷다가 또 걷더니 딱 서는 그야. 그러고는 또 걷다가 걷다가 길 끝까지 쭉 걸어가는 거야. 그러더니 어디 앉아서 종이를 꺼내 뭘 쓰는 거야." ⌈서곡⌋에서 그는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걸어갈 때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개가 그에게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보내서 그가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는 것을 막아준다는 이야기이다.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던 워즈워스는 예전에 보았던 장면의 시각적 디테일과 감정적 생생함을 그릴 수 있었고, 자기가 존경하는 시인들의 긴 시구를 인용하거나,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쓴 시를 나중에 글로 옮길 수 있었다. 대다수의 현대 작가들은 책상 앞으로 떠나지 못하는 실내 서식 동물이다. 그들이 야외에 나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개요와 착상뿐이다. 반면에 워즈워스가 시를 쓴 방식을 보면, 구술 전통이 떠오르는 한편 왜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좋은 것들이 노래하는 듯 아름답고 대화하는 듯 자연스러운지 알 수 있다. 작곡가가 곡을 쓰면서 메트로놈의 소리로 일정한 리듬을 찾듯, 워즈워스는 시를 쓰면서 자기의 발걸음으로 일정한 리듬을 찾았던 것 같다.
(...)
워즈워스가 완벽한 낭만주의 시인이었다면 그래스미어의 누추한 도브 코티지에서 작은 정원 안을 왔다 갔다 하던 삼십 대 후반에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우리에게 ⌈서곡⌋의 여러 버전 중에 최초이자 최고의 버전을 남겼을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나오는 초기 가요와 이야기시 전부, 그리고 유년을 노래하는 여러 송시와 서정시를 남겼을 것이고, 이로써 그의 급진주의자로서의 이미지는 고스란히 남겨졌을 것이다. 그가 그 집에서 좀 더 지내다가 그래스미어와 가까운 라이달이라는 마을의 좀 더 큰 집으로 이사 가서 여든 살이 될 때까지 목숨을 부지했고, 그러면서 성향은 점점 더 보수적이 되고 시는 점점 더 시시해졌다는 사실은, 그의 평판에는 안된 일이었지만 그의 일신과 가족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그가 위대한 낭만주의자에서 위대한 빅토리아인으로 이행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이행이라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이행이었다. 그는 자신의 초기 정치관에 의리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자기 보행관에는 의리를 지켰다. 초기 워즈워스의 즐거운 반란을 이어가는 것이 작가 워즈워스가 아니라 보행자 워즈워스라는 것도 특이하다.

<걷기의 인문학>
정원에서 자연으로 7. 윌리엄 워즈워스의 두 다리
리베카 솔닛,김정아 옮김, 반비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1770. 4. 7- 1850. 4. 23


 
2017-11-09
루소가 말년에 쓴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1782)은 걷는 일에 관한 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루소가 이 책의 전제를 밝힌 곳은 두 번째 장인 ⌈두 번째 산책⌋이다. "내 영혼의 평상시 상태를 최대한 섬세하게 그려보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이 계획을 이행할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내가 혼자 산책할 때 내 머리에 떠오르는 몽상들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 이상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때는 루소가 태어나고 100년 후였고,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곳은 루소가 태어난 곳과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의 도시였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의 삶은 몇 가지 면에서 루소의 삶과는 완전히 달랐다. 루소가 방종한 생활을 한 것과 달리 키르케고르는 스스로 부과한 엄격한 금욕적 기준을 따랐고, 루소가 유랑생활을 한 것과는 달리 키르케고르는 평생 고향과 가족, 자기 종교를 떠나지 않았다.(물론 다툼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철학자 사이에는 대단히 흡사한 면도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았다는 것, (문학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한) 무수한 저작들을 쏟아냈다는 것, 자의식에 시달렸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부유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경건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키르케고르는 거의 평생 동안 물려받은 유산으로 살면서 아버지의 손에 휘둘렸다. (...)
키르케고르 자신, 아버지, 신 사이의 삼각관계가 그의 삶을 소진한 것 같다. 그가 자기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의 형상대로 빚어낸 것 같기도 하고, 그의 아버지가 어린 그와 함께 집안을 거닐면서 키르케고르라는 이상한 인물(그의 글에 등장하는, 애늙인이 같기도 하고 유령 같기도 한 배회자)을 의식적으로 빚어낸 것 같기도 하다. 부자가 그렇게 집 안을 거닌 일은 그에게는 상상이라는 탈육체적 마법의 나라,, 진짜 주민이라고는 자기 혼자뿐인 나라에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던 것 같다. 예컨대 키르케고르가 자신의 여러 대표작을 발표할 때 사용한 가짜 이름들은 그를 보여주는 동시에 숨겨주는 장치, 그의 고독에서 일군의 독자를 만들어내는 장치인 것 같다. 그가 집에서 손님을 맞은 적인 평생에 거의 한 번도 없었다. 알고 지낸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많았지만, 그중에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었다. 코펜하겐의 길들이 그의 "응접실"이었다고 그의 질녀 중 한 명이 말하고 있듯, 그가 일상에서 찾은 큰 기쁨은 코펜하겐 산책이었던 것 같다. 산책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가 사람들 사이에 끼는 방법, 곧 짧은 마주침이나 지인과 나누는 인사나 들려오는 대화 같은 것에서 희미한 인간적 온기를 쬐는 방법이었다. 혼자 걷는 사람은 주변 세계와 함께 있으면서도 주변 세계로부터 떨어져 있다. 밖에서 구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에서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걷는 일 자체가 이 가벼운 소외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혼자 걷는 사람이 혼자인 것은 걷고 있기 때무이지 친구를 만들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루소와 마찬가지로 키르케고르는 길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수시로 가벼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러면서 사유를 펼칠 수 있었다.
(...)
그의 일기에는 그의 모든 글이 걸으면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거듭 나온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거의 대부분은 초고를 단 한 번 개작한 글이다.(물론 산책 중에 머리로 작성한 초고를 뺐을 때의 이야기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의 초고는 산책 중에 머리로 작성된다.) 요즘은 이 글을 한 번 더 개작하고 싶다." 그의 긴 산책은 남이 보면 게으름의 표시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토대라는 것도 그의 일기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가 산책 중 사람을 만나는 모습이 담겨 있을 뿐이지만, 그런 만남 사이사이에는 홀로 걷는 시간, 사유를 정리하고 집필을 준비하는 긴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자의식과 절망의 소용돌이일 때가 많았음을 감안하면, 그가 도시에서 길을 걸으면서 집중력을 흩뜨린 덕분에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더 생산적으로 사유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
그가 맡는 거의 유일한 사회적 역할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이었다. 코펜하겐은 그가 공연하는 무대였고, 코펜하겐 사람들은 그 공연을 해석하는 비평가들이었다. 그에게 외출이란 글을 발표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 독자들과의 관계를 원했지만 너무 가깝지는 않은 관계, 자기가 제시한 조건을 따르는 관계를 원했다. 루소와 마찬가지로 키르케고르도 독자와의 관계에 까다로웠다. 그가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글을 쓰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수많은 글을 이런저런 가명으로 발표해놓고 사람들이 자기를 게으르게 본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올젠(Regine Olsen)과의 파혼이라는 일생일대의 비극을 결행한 후, 그는 그녀의 모습을 길에서, 오직 길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두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길을 지나가는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는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를 두고 전전긍긍했다. 확실한 사생활이 있는 사람에게는 길이 가장 가벼운 만남의 장이지만, 그에게는 길이 가장 사적인 공간이었다.

<걷기의 인문학>
생각이 걷는 속도 4. 정신의 발걸음
리베카 솔닛,김정아 옮김, 반비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 6. 28 - 1778. 7. 2
키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
1813 - 1855



 
2017-11-09


민음사 의뢰로
가즈오 이시구로를 설명하는
짧은 만화를 그렸다.
사실 만화는 정말 짧은데
그리기 전
<창백한 언덕 품경> <나를 보내지마> <우리가 고아였을 때> <남아있는 나날> 네권
그리고 단편집 <녹턴> 중 한 편을 읽었다.





 
2017-10-23


가즈오 이시구로.




 
2017-10-09
대단히 지적인 사람들도 순례 충동에 휩쓸릴 때가 있고, 종교라는 상부구조가 없어도 걷는 일의 힘겨움이 의미 있을 때가 있다. 영화감독 베르네 헤어초크(Merner Herzog)도 그런 경우였다. "1974년 11월 말이었다. 파리에서 한 친구가 찾아와, 로테 아이스너[영화사 연구가]가 중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안 돼, 지금은 안 돼, 지금 독일 영화는 그녀가 없으면 언 돼, 우리는 그녀를 죽게 하면 안 돼. 나는 소리쳤다. 그러고는 겉 옷 한 벌과 나침반 하나를 챙기고 필요한 것들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장화는 튼튼한 새 것이어서 믿을 만했다. 나는 파리까지 일직선 코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걸어서 도착한다면 그녀는 살아 있을 것아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는 겨울 날씨 속에서 뮌헨에서부터 수백 킬로미터를 걸었다. 옷은 자주 젖었고, 몸은 자주 악취를 풍겼고, 목은 자주 말랐고, 거의 발이나 다리 어딘가에 통증이 있었다.
헤어초크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그는 농밀한 열정과 극단적 행동을 좋아하는 사함, 그것이 얼마나 아둔하든 상관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가 파리까지 장거리 도보 여행을 하면서 쓴 일기를 보면, 그의 영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강박증 환자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갔다. 가끔 누가 차를 태워주면 탔고, 모르는 사람이 집에서 재워주면 잤다. 여관에서 자기도 했고, 헛간에서 자기도 했고, 전시용 이동식 주택에 몰래 들어가 자기도 했다. 걸은 일, 고생, 소소한 만남, 풍경의 파편 등을 띄엄띄엄 적은 이 글에서는. 그 자체로 헤어초크의 영화의 줄거리 같은 정교한 판타지들이 고생스러운 여정 묘사에 섞여 들어가 있가. 길을 나선 지 나흘째 되는 날, "똥을 누고 있는데 아무 사전 경고 없이 팔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산토끼가 나타났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페일 브렌디가 사탄구니에서 왼쪽 허벅지로 흘러내려 쓰라리다. 걷는 것은 왜 이리 비통한 것인가." 길을 나선 지 스무하루째 되는 날, 그는 아이스너의 방에 도착했다. 그녀는 그를 향해 미소지었다. ". 찬란한 한순간, 부드러운 물 같은 것이 지쳐 죽을 것만 같은 내 몸 전체에 흘렀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창문 열어요. 나, 며칠 전부터 날 수 있게 됐어요."

<걷기의 인문학>
생각이 걷는 속도 4. 은총을 찾아가는 오르막길 : 성지순례
리베카 솔닛,김정아 옮김, 반비



 
L [1][2][3] 4 [5][6][7][8][9][10]..[36]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