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7-11-09
루소가 말년에 쓴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1782)은 걷는 일에 관한 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루소가 이 책의 전제를 밝힌 곳은 두 번째 장인 ⌈두 번째 산책⌋이다. "내 영혼의 평상시 상태를 최대한 섬세하게 그려보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이 계획을 이행할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내가 혼자 산책할 때 내 머리에 떠오르는 몽상들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 이상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때는 루소가 태어나고 100년 후였고,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곳은 루소가 태어난 곳과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의 도시였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의 삶은 몇 가지 면에서 루소의 삶과는 완전히 달랐다. 루소가 방종한 생활을 한 것과 달리 키르케고르는 스스로 부과한 엄격한 금욕적 기준을 따랐고, 루소가 유랑생활을 한 것과는 달리 키르케고르는 평생 고향과 가족, 자기 종교를 떠나지 않았다.(물론 다툼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철학자 사이에는 대단히 흡사한 면도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았다는 것, (문학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한) 무수한 저작들을 쏟아냈다는 것, 자의식에 시달렸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부유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경건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키르케고르는 거의 평생 동안 물려받은 유산으로 살면서 아버지의 손에 휘둘렸다. (...)
키르케고르 자신, 아버지, 신 사이의 삼각관계가 그의 삶을 소진한 것 같다. 그가 자기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의 형상대로 빚어낸 것 같기도 하고, 그의 아버지가 어린 그와 함께 집안을 거닐면서 키르케고르라는 이상한 인물(그의 글에 등장하는, 애늙인이 같기도 하고 유령 같기도 한 배회자)을 의식적으로 빚어낸 것 같기도 하다. 부자가 그렇게 집 안을 거닌 일은 그에게는 상상이라는 탈육체적 마법의 나라,, 진짜 주민이라고는 자기 혼자뿐인 나라에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던 것 같다. 예컨대 키르케고르가 자신의 여러 대표작을 발표할 때 사용한 가짜 이름들은 그를 보여주는 동시에 숨겨주는 장치, 그의 고독에서 일군의 독자를 만들어내는 장치인 것 같다. 그가 집에서 손님을 맞은 적인 평생에 거의 한 번도 없었다. 알고 지낸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많았지만, 그중에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었다. 코펜하겐의 길들이 그의 "응접실"이었다고 그의 질녀 중 한 명이 말하고 있듯, 그가 일상에서 찾은 큰 기쁨은 코펜하겐 산책이었던 것 같다. 산책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가 사람들 사이에 끼는 방법, 곧 짧은 마주침이나 지인과 나누는 인사나 들려오는 대화 같은 것에서 희미한 인간적 온기를 쬐는 방법이었다. 혼자 걷는 사람은 주변 세계와 함께 있으면서도 주변 세계로부터 떨어져 있다. 밖에서 구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에서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걷는 일 자체가 이 가벼운 소외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혼자 걷는 사람이 혼자인 것은 걷고 있기 때무이지 친구를 만들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루소와 마찬가지로 키르케고르는 길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수시로 가벼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러면서 사유를 펼칠 수 있었다.
(...)
그의 일기에는 그의 모든 글이 걸으면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거듭 나온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거의 대부분은 초고를 단 한 번 개작한 글이다.(물론 산책 중에 머리로 작성한 초고를 뺐을 때의 이야기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의 초고는 산책 중에 머리로 작성된다.) 요즘은 이 글을 한 번 더 개작하고 싶다." 그의 긴 산책은 남이 보면 게으름의 표시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토대라는 것도 그의 일기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가 산책 중 사람을 만나는 모습이 담겨 있을 뿐이지만, 그런 만남 사이사이에는 홀로 걷는 시간, 사유를 정리하고 집필을 준비하는 긴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자의식과 절망의 소용돌이일 때가 많았음을 감안하면, 그가 도시에서 길을 걸으면서 집중력을 흩뜨린 덕분에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더 생산적으로 사유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
그가 맡는 거의 유일한 사회적 역할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이었다. 코펜하겐은 그가 공연하는 무대였고, 코펜하겐 사람들은 그 공연을 해석하는 비평가들이었다. 그에게 외출이란 글을 발표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 독자들과의 관계를 원했지만 너무 가깝지는 않은 관계, 자기가 제시한 조건을 따르는 관계를 원했다. 루소와 마찬가지로 키르케고르도 독자와의 관계에 까다로웠다. 그가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글을 쓰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수많은 글을 이런저런 가명으로 발표해놓고 사람들이 자기를 게으르게 본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올젠(Regine Olsen)과의 파혼이라는 일생일대의 비극을 결행한 후, 그는 그녀의 모습을 길에서, 오직 길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두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길을 지나가는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는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를 두고 전전긍긍했다. 확실한 사생활이 있는 사람에게는 길이 가장 가벼운 만남의 장이지만, 그에게는 길이 가장 사적인 공간이었다.

<걷기의 인문학>
생각이 걷는 속도 4. 정신의 발걸음
리베카 솔닛,김정아 옮김, 반비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 6. 28 - 1778. 7. 2
키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
1813 - 1855



 
2017-11-09


민음사 의뢰로
가즈오 이시구로를 설명하는
짧은 만화를 그렸다.
사실 만화는 정말 짧은데
그리기 전
<창백한 언덕 품경> <나를 보내지마> <우리가 고아였을 때> <남아있는 나날> 네권
그리고 단편집 <녹턴> 중 한 편을 읽었다.





 
2017-10-23


가즈오 이시구로.




 
2017-10-09
대단히 지적인 사람들도 순례 충동에 휩쓸릴 때가 있고, 종교라는 상부구조가 없어도 걷는 일의 힘겨움이 의미 있을 때가 있다. 영화감독 베르네 헤어초크(Merner Herzog)도 그런 경우였다. "1974년 11월 말이었다. 파리에서 한 친구가 찾아와, 로테 아이스너[영화사 연구가]가 중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안 돼, 지금은 안 돼, 지금 독일 영화는 그녀가 없으면 언 돼, 우리는 그녀를 죽게 하면 안 돼. 나는 소리쳤다. 그러고는 겉 옷 한 벌과 나침반 하나를 챙기고 필요한 것들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장화는 튼튼한 새 것이어서 믿을 만했다. 나는 파리까지 일직선 코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걸어서 도착한다면 그녀는 살아 있을 것아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는 겨울 날씨 속에서 뮌헨에서부터 수백 킬로미터를 걸었다. 옷은 자주 젖었고, 몸은 자주 악취를 풍겼고, 목은 자주 말랐고, 거의 발이나 다리 어딘가에 통증이 있었다.
헤어초크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그는 농밀한 열정과 극단적 행동을 좋아하는 사함, 그것이 얼마나 아둔하든 상관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가 파리까지 장거리 도보 여행을 하면서 쓴 일기를 보면, 그의 영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강박증 환자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갔다. 가끔 누가 차를 태워주면 탔고, 모르는 사람이 집에서 재워주면 잤다. 여관에서 자기도 했고, 헛간에서 자기도 했고, 전시용 이동식 주택에 몰래 들어가 자기도 했다. 걸은 일, 고생, 소소한 만남, 풍경의 파편 등을 띄엄띄엄 적은 이 글에서는. 그 자체로 헤어초크의 영화의 줄거리 같은 정교한 판타지들이 고생스러운 여정 묘사에 섞여 들어가 있가. 길을 나선 지 나흘째 되는 날, "똥을 누고 있는데 아무 사전 경고 없이 팔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산토끼가 나타났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페일 브렌디가 사탄구니에서 왼쪽 허벅지로 흘러내려 쓰라리다. 걷는 것은 왜 이리 비통한 것인가." 길을 나선 지 스무하루째 되는 날, 그는 아이스너의 방에 도착했다. 그녀는 그를 향해 미소지었다. ". 찬란한 한순간, 부드러운 물 같은 것이 지쳐 죽을 것만 같은 내 몸 전체에 흘렀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창문 열어요. 나, 며칠 전부터 날 수 있게 됐어요."

<걷기의 인문학>
생각이 걷는 속도 4. 은총을 찾아가는 오르막길 : 성지순례
리베카 솔닛,김정아 옮김, 반비



 
2017-10-01
어디에서 시작할까? 근육이 긴장한다. 한쪽 다리가 기둥처럼 땅과 하늘 사이에서 몸을 지탱한다. 다른 쪽 다리가 뒤에서 휙 옮겨 온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다. 몸무게가 앞쪽 발볼로 쏠린다. 엄지발가락이 바닥을 밀어내면, 몸무게는 또 한 번 미묘한 균형을 찾아간다. 두 다리가 위치를 바꾼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이 이러지면서, 탁, 탁, 탁, 탁, 보행의 리듬이 생긴다. 더없이 자명하면서도 더없이 모호한 이 보행이라는 주재는 어느새 슬며시 종교, 철학, 풍경, 도시 정책, 해부학, 알레고리, 그리고 애통함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
내가 걷는 길도 도로와 샛길을 합쳐서 구불구불 얼추 10킬로미터가 된다. 나는 힘들었던 10년 전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불안이 떨쳐질까 해서였다. 그 후로도 나는 자꾸 이 길로 돌아왔다. 일을 쉬기 위해서일 때도 있었고 일을 하기 위해서일 때도 있었다. 생산 지향적인 문화에서는 대개 생각하는 일을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아무 일도 안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슨 일을 하는 척하는 것이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덕이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쉬는 덧, 심장이 뛰는 덕)에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갓,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육체노동이라고 할까. 수년간 걷기를 다른 일의 수단으로 삼아왔던 내가 걷기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
여행의 경이와 해방과 정화를 얻자면, 세계를 한 바퀴 돌아도 좋겠지만 한 블록을 걸어갔다 와도 좋다. 걷는다면 먼 여행도 좋고 가까운 여행도 좋다. 아니, 여행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자리를 걷는 것도 가능하도, 좌석밸트에 묶인 채 전 세계를 도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보행의 욕구를 만족시키자면 자동차나 배, 비행기의 움직임으로는 부족하다. 몸 자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음속애서 일이 일어나려면 몸의 움직임과 눈의 볼거리가 필요하다. 걷는 일이 모호한 일이면서 동시에 무한히 풍부한 일인 것은 그 때문이다.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이다.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김정아 옮김, 반비


요즘의 유행을 따라 제목에 인문학이 붙었지만 원래 제목은,
Wanderlust : A History of Walking
방랑벽 : 걷기의 역사




 
2017-09-21

요제프 K는 꿈을 꾸었다.
아름다운 날이었다. K는 산책을 나섰다. 그러나 두 걸음을 채 내딛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미 묘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묘지의 길들은 매우 인공적인 모양으로 걷기 불편할 정도로 구불구불 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길을 마치 물살에 실린 듯 매끄럽게, 공중에 살찍 부유한 채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미끄러져 갔다. 그는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갓 만들어진 어느 붕분을 멀리서 발견하고는 그곳에서 멈추어 설 생각을 했다. 그 무덤은그를 강하게 유혹했으므로, 아무리 빨리 서둘러도 도저히 속도가 양에 차지 않았다. 간혹 무덤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곤 했다. 여러 개의 깃발을이 펄럭이면서 서로 힘차게 겹치는 바람에 무덤의 모습을 가렸던 것이다. 기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를 축하하는 행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시선을 여전히 먼 곳으로 향하고 달려가던 중에, 갑자기 그는 똑같은 무덤이 바로 옆 길가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식간에 그 무덤을 지나쳐 버렷으므로 그는 서둘러 풀밭으로 뛰어내렸다. 그가 뛰어내리는 와중에도 길은 계속해서 앞으로 돌진하고 있으므로, 그는 비틀거리다가 무덤 앞으로 무릎을 꿇은 채 쓰러져버렸다. 무덤 뒤에는 두 명의 남자가 양손으로 비석을 함께 치켜든 자세로 서있었다. K가 나타나자마자 그들은 비석을 바닥에 쿵 내려 놓았고, 비석은 담처럼 단단하게 땅에 박혔다. 그리고 수풀 사이에서 제 3의 남자가 나타났는데, K는 화가인 그를 알아보았다. 화가는 단추를 엉성하게 잠근 셔츠에 바지 차림이었다. 머리에는 테 없는 벨벳 모자를 썼다. 한 손에는 평범한 연필을 들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오면서도 그는 허공에 연필로 인물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화가는 그 연필로 비석 위에 작업을 하려고 했다. 비석은 매우 높았으므로 화가는 쪼그리고 앉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허리를 살짝 굽히기는 했다. 무덤이 그와 비석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데 그는 무덤 위로 올라서지는 않으려 했다. 화가는 발끝으로 서서, 비석의 표면에 왼손을 받쳤다. 특별히 능숙한 솜씨 덕분에, 화가는 평범한 연필을 가지고 황금색 필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는 썼다. '여기 잠들다-.' 모든 활자는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며, 돌 속으로 깊이 파였고 완벽한 황금빛이었다. 두 단어를 쓴 후 그는 K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비석에 적힐 글귀가 궁금해 미칠 것 같은 K는, 화가가 무엇을 망설이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직 비석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화가는 다시 계속해서 비문을 적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모종의 장애가 생긴 것이다. 화가는 연필을 쥔 손을 아래로 떨구고, 다시 K를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K도 그를 보았다. 그래서 그가 매우 심각하게 당황해하고 있으며,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차마 입 밖에 꺼내어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 전까지 화가가 갖고 있던 모든 활기와 생명력은 사라져버렸다. 그 덕분에 K도 역시 당황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쩔 줄 모르며 서로 바라만 보았다.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흉측한 오해가 그들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다. 그 좋지 않은 순간, 묘지 종탑에서 조그만 종이 댕댕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가가 한 손을 치켜들고 흔들자, 종소리는 멈추었다. 잠시 후 종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아주 작게, 그 어떤 재촉의 기운도 없이 울렸다가 금세 중단되었다. 마치 종이 스스로의 소리를 한번 시험해보려고 한 듯이, K는 화가의 상태에 대해 너무도 낙담한 나머지 울기 시작했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오랫동안 훌쩍거렸다. 화가는 K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곧 자신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닫고는, 계속해서 비석에 글자를 새기기로 결심했다. 화가가 다음 철자 최초의 획을 조그맣게 긋기 시작할 때, 그것은 K에게는 구원의 빛과도 같았다. 하지만 화가는 K를 달래기 위해 할 수 없이 억지로 그 일을 행하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과는 달리 글자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고, 더구나 황금빛도 아니었다. 칭백하고 멀건 획이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지나갔다. 단지 철자의 크기만은 무척 컸다. 그것은 알파벳 J였다. 철자가 거의 완성되었을 때, 화가는 솟아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무덤으로 성큼 뛰어올라가 발로 흙을 쿵쿵 밟아댔다. 봉분 흙이 주변으로 튀었다. 그제야 K는 화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화가에게 용서를 빌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K는 열 손가락으로 흙을 마구 파헤쳤다. 흙은 거의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무덤은 이미 이 일을 위해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단지 눈속임으로 지표면에 딱딱한 흙을 살짝 덮어놓았을 뿐이었다 표면의 흙을 걷어내자마자 경사진 벽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던 것이다. K는 가볍게 빙그르르 몸을 돌리고, 등을 아래로 한 채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아직 머리를 목덜미 위에 둔 K가 칠흑 같은 심연을 행해 한없이 아래로 빨려드는 동안, 위에서는 그의 이름이 강렬한 장식체로 비석 위에 새겨지고 있었다.
이 순간 황홀함에 떨며 그가 잠이 깨었다.
1914. E 145~147

<프란치 카프카 - 꿈>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1
배수아 옮김, 워크룸 프레스


그런데 지금 이 책 페이지가 중간에 뒤죽박죽  
제본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17-09-16
이어서.

예상보다 날카롭게 보여 깜짝 놀란다. 나는 아이가 나와 닮았으리라 생각했다. 아름다우리라 상상했다. 그러나 아이는 작고 마르고 점투성이에 머리는 모래색이다. 턱이 무척 뾰족하다. 눈은 나보다 더 어두운 갈색이다. 눈빝은 너무 솔직하고 또 너무 교할하다. 아이는 딱 한 번 탐색의 눈길로 내 드레스와 장갑, 슬리퍼, 스타킹에 놓인 자수를 본다. 그러고는 눈을 끔벅인다. 훈련받은 내용을 생각해 보는 모양이다. 급하게 무릎 굽혀 인사를 한다. 인사를 잘해 내 기뻐하고 있음이 눈에 보인다. 아이는 나에 대해서도 기뻐하고 있다. 아이는 나를 바보라 생각한다. 그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화가 난다. 나는 생각한다. <넌 나를 파멸시키려 브라이어에 온 거야.> 나는 앞으로 한 발 나가 아이의 손을 잡는다. <얼굴을 붉히지 않아? 떨거나 눈을 내리깔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아이는 내 시선을 되받고 아이의 손가락, 손톱을 물어뜯은 차고 단단한 손가락은 너무나 차분하게 내 손에 머물러 있다.



 
2017-09-14
나는 그 아이가 근처에 있다는 점과 아이에 대한 궁금증으로 밤새 자다 깨다 한 터이다. 삼촌에게 가기 전에 당장 그 아이를 보지 않으면 병이라도 날 것 같다. 마침내 일곱시 반경에 하인용 계단으로 통하는 복도에서 낯선 발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스타일스 부인이 웅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 다 왔습니다.⌋ 내 방문을 똑똑하고 두드린다. 어떻게 서 있어야 하나? 나는 벽난롯가에 가 선다.말할 때 내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릴까? 아이가 그걸 알아차리려나? 아이가 긴장해 숨을 죽일까? 나는 숨을 죽이고 있다. 이윽고 몸에 열이 난다. 얼굴에도 피가 몰릴 것이다. 문이 열린다. 스타일스 부인이 먼저 들어오고, 잠시 망설이다 아이도 내 앞에 와 선다. 수전, 수전 스미스, 수키 토드리. 속이기 쉬운 아이, 내 인생을 가져가고 자유를 가져다줄 아이.

제 2부, 9장 316p
<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2017-09-12


그리고 지난 번에 서울 갔을 때
유어마인드에서 산 <녹색광선>을 다 읽었지.




 
2017-09-12


핑거스미스,
산수도서관에서 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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