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7-06-17
<녹색광선>은 전체가 즉흥적이었습니다. 어떤 부분도 미리 써놓지 않았죠. 글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배우들이 완전히 즉흥연기를 했어요.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했죠. 식사 장면의 경우, 나는 아무 언질도 안 했고 단지 "그 여자가 고기를 먹도록 설득해봐"라는 지시만 내렸죠.

내 영화들에서 표현되는 디테일들은 종종 캐릭터나 배우의 생각에서부터 탄생합니다. 이 영화의 경우에는 그보다 좀 더 나아게 캐릭터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했고 캐릭터의 생각을 기록하려고 했어요. 아마 배우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생각이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화를 위해 표현한 것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분명한 것은 내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내용을 믿긴 하지만요.

<녹색 광선>은 지나치게 성공적이었습니다. 촬영이 쉬웠고 낭비도 많지 않았어요. 편집도 쉬웠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했죠. 그런데 나는 사실 누벨바그에 대한 살짝 향수 어린 회고라고 일반 대중이 생각하면서 영화를 좋아하리라곤 예상치 못했었죠. 이 영화에서 그다지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일회성이라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며, 다시 그렇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게는 영상 담당이 셋, 사운드 담당이 둘있는데, 이들은 상당히 필수적인 것인 듯합니다. 한 명이 혼자서 프레임과 조명을 책임진다고 해도, 촬영에는 세 사람이 필요하죠. 조명에 있어서나 카메라 자체의작동을 위해 도움이 필요하고 또 필름 릴을 갈아줄 누군가 필요하기에 세 명인 것입니다. 사운드의 경우 좋은 결과를 얻고 싶으면 붐 오퍼레이터가 필요하고 소형 마이크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을 정확하게 배치해야만 하는데, 이는 두 명이 있을 때보다 더 빨리 할 수 있죠.
그러나 나는 더 멀리까지 나가보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하도록 인원을 줄일 수 있는지 알고 싶었죠. <녹색 광선>과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에서 바로 이걸 시도했고, 그 결과 한 명이 촬영을, 다른 한 명이 사운드를 맡았습니다. 신인들을 고용했죠. 그때까지 보조로 일해왔던 젊은 여자 둘이었어요. 이런 작업을 혼자 책임지고 완성해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완전히 환상적인 데다 정말 대단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숏에서는 여배우가 추워해서(사실 아주 추었죠), 원래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던 장면인데 바지를 입었습니다. 그크린 상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가 생각했던 것이죠, 카페에 앉아 있는 장면에서인데, 자기 다리가 숏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약간 각도를 넓힌 숏이 들어갔고, 테이블 아래가 약간 보입니다...... 그러나 스태프 한 명을 추가하느니 실수 몇 가지를 무릅쓰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 경우에는 스태프를 추가하는 게 불가능했고.

<비행사의 아내>는 녹색과 파란색이었고, <아름다운 결혼>은 분홍색과 밤색, <해변의 폴린느>는 아주 연한 파란색, 흰색, 빨간색, <만월의 밤>은 회색이었습니다. (...) 가장 최근 영화인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의 경우에는 적당한 표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세르지는 벽돌로 된 도시거든요. 그러나 그 색감은 호수와 숲이 띠는 초록과 파랑입니다. 창백한 분홍을 배경으로 초록과 파랑이 드러나는 게 필요했어요. 게다가 그 영화는 초록과 파랑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요. <녹색 광선>의 색은 오렌지와 초록이지만(내 작은 수첩을 보면 '오렌지 띠와 초록'이라고 실용적인 메모를 해뒀었죠), 영화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색은 당연히 시골의 초록색, 바다의 청록색, 그리고 빨강입니다.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에도 빨강이 많습니다.

-녹색 광선,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
제라르 르그랑, 위베르 니오그레, 프랑수아 라마스, 1986

<에리크 로메르 -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
피오나 핸디사이드 엮음, 이수원 옮김, 마음산책


 
2017-06-16
프랑스어에는 영어로 정확히 번역되기 힘든 '모럴리스터moralist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모럴(도덕/교훈)'이라는 말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모럴리스트'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 데 흥미가 는 사람을 의미해요. 마음 상태와 느낌에 관심을 갖죠. (...) 그리고 캐릭터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위 자체보다 그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예요. 이 '도덕 이야기'는 액션 영화도 아니고, 물리적인 행동이 일어나거나 매우 극적인 무엇이 존재하는 영화들이 아닙니다. 특정한 느낌이 분석되고 캐릭터 자신들조차 그들의 느낌을 분석하는 매우 자기 성찰적인 영화들이에요. 이것이 바로 '도덕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누벨바그, 시작
그레이엄 페트리, 1971

어떤 소재가 관객에게 가장 어필할지를 계속 자문하는 대신, 동일한 소재를 여섯 번 다루는 것이 최선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죠. 여섯 번째가 되면 관객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희망하면서. 나는 여전히 10년 전 나 자신을 위해 계획했던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융통성 없이 고지식해지리라고 마음먹었었는데, 한 가지 아이디어를 계속 고집하면 결국 지지자들이 생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죠. 심지어 배급사조차도...... 독립된 한 편의 시나리오보다는 여섯 편으로 구성된 연작의 시나리오를 문제 삼거나 비판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워요. 예를 들어 그 누구도 <클레르의 무릅>에 약간의 범죄 이야기를 넣으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도덕 이야기'의 다섯 번째 작품이고 이 연작은 탐정물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진정 내 목표는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받아들여지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었어요.
-선택과 운
루이 노게이라, 1971

"내게 텔레비전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연구하는 방법이었다. 텔레비전은 내게 사람들이 반응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나는 지나치게 효과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법, 말하는 사람의 앞에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법을 배웠다."
-도덕 이야기
비벌리 워커, 1973

......혹은 나 자신의 작품들, 그러네요, 나는 영화에서의 '직접적 글쓰기를 믿지 않습니다. 그런 예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일반적으로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가장 성공한 축에 끼지도 않아요. 알렉상드르 아스트뤼크가 말한 "카메러-스틸로", 즉 책을 쓰듯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영화 일이란 항상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며, 이는 독립된 문학작품을 각색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어던 방식으로든 문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영화란 없어요.
(...)
그 모든 이야기들은 실제로 좀 복잡한 경향이 있어요. 한 가지, 희곡이 문학작품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누구라도 공연할 수 있죠 단지 읽기만 하고 공연이 안 될 수도 있고, 그럼에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한 편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희곡과 동일한 문학적 가치를 가진 시나리오는 없습니다. 왜 그러지 못할까? 나는 이를 지속적으로 자문하면서도 그에 대한 답을 실제로 찾을 수가 없어요.
-시나리오 및 영화 계획
로베르 아몽, 장피에르 필리아노, 1972


<에리크 로메르 -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
피오나 핸디사이드 엮음, 이수원 옮김, 마음산책




 
2017-06-10


에리크 로메르는 수줍어하고 비밀스러운 사람으로, 그에 대해서는 수년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그는 가명으로 작업을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세 번째 이름으로 소설을 출간한 적도 있다. 현재 파리에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조용히 살고 있다. 그는 1920년 낭시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로메르의 경력은 잘 차트화되어 있다. 그는 수년간 문학을 가르쳤으며 동시에 여러 매체에 영화평론을 썼고 종국에는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이 되었다. 이 영향력있는 프랑스 잡지의 동료 중에는 고다르, 샤브롤, 트뤼포, 리베트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함께 '작가 정책'을 주조했고 영화감독으로서 각자의 커리에서 있어서 상호 협조했다. 로메르는 (샤브롤과 함께) 히치콕에 관한 책을 썼는데, 히치콕은 호크스, 무르나우와 더불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감독으로 꼬ㅃ는 사람이다. <하오의 연정>을 준비하던 중 그는 박사학위 논문 <무르나우의 <파우스트>의 공간구성>을 완성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에 더해 로메르는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TV에서도 광범위하게 작업했다. 포와 파스칼, 건축에서 콘크리트 사용에 관한 연구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소재를 다룬 교육적 성격의 다큐멘터리를 여러 편 만들었다. 이런 작업은 '도덕 이야기'의 스타일에 영향을 끼쳤다. "내게 텔레비전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연구하는 방법이었다. 텔레비전은 내게 사람들이 반응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나는 지나치게 효과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법, 말하는 사람의 앞에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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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르의 영화는 모두 각각 다음에 오는 영화의 자금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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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르는 영화 준비에 많은 시간을 들인 후 6주 만에 촬영을 마치며, 한 테이크를 여러 번 가는 적이 드물다. 준비 시간은 자료 조사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 이뤄진다. 로케이션은 매우 주의 깊게 선택되며, 각 장소에서 하루 중 최고의 빛을 얻어내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다. 로메르는 특정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고 그들의 작품을 주의 깊게 연구한다. <하오의 연정>에서는 앵그르의 터치가 발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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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광인 로메르는 매일 5킬로미터를 달리며, 30년간 환경오염 반대주의자로서 자동차 소유를 거부하고 있다. 가끔씩 즐기는 시가나 한 잔의 포도주가 유일한 그의 비행이다. 차는 매일 저녁 5시에 촬영 현장으로 즉각 서빙된다.

-도덕 이야기
비벌리 워커 - 1973

<에리크 로메르 -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 피오나 핸디사이드 엮음, 이수원 옮김, 마음산책


에리크 로메르라니 낯설다.
에릭 로메르라구, 나에게는 아직.




 
2017-05-19
하지만 피타고라스 교파의 철학과 신앙은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들은 수학이 현실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이 기이한 상상의 영역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상적으로' 구현되고 있다고 믿었다. 가령, 모래땅에 막대기로 그린 원은 비록 결함이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둥글고 곡선의 두께가 무한히 얇은 이상적인 원을 어떻게든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꿈은 실제로는 실현될 수가 없다. 전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 추종자 가운데 한 명인 메타폰툼의 히파소스는 지금까지의 말이 거짓임을 알아냈다고 한다. 특히 그는 한 단위가 정사각형(한 변의 길이가 단위 길이인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가 유리수가 아님을, 즉 정확한 분수로 표현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
히파소스의 주장을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루트2는 무리수(유리수가 아닌 실수)다'라고 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 교도들에게 이것은 우주가 수 - 역서 수는 정수라는 의미다 - 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종교에 가까운 그들의 신념에 치명상을 가하는 끔찍한 진실이었다. 분수는 정수들의 비율이므로 그러한 세계관에 잘 들어맞았지만, 분수가 아닌 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02 형태와 논리-기하학으로 가는 첫단계

대수라는 단어는 마랍어 알자브르 al-jabr에서 나왓다. 820년 경에 큰 활약을 했던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라는 인물이 처음 만들어낸 단어다. ... 알자브르는 '한 방정식의 양변에 동일한 값을 더한다'는 뜻이다.
04 미지수의 유혹-X가 활약하는 무대

<교양인을 위한 수학사 강의> 이언 스튜어트 지음, 노태복 옮김, 반니




 
2017-05-12


수학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지금은 하고 있지 않지만
나중에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두 가지 중 하나는
수학문제를 풀면서 살고 싶다는 것.
고등학교 수학부터 단순한 사칙연산만 가득한 문제집까지.




 
2017-05-11
그는 꽤 중요한 인물이었던 게 틀림없다. 모두들 먼저 그에게 인사를 했으니까. 그는 키가 크고 살이 찐 40대 남자로 외모는 품위 있다기보다는 상스러워 보였다. 그는 나와 딱 세 번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번 모두 그런 곳에서는 보기 드물게 몹시 수줍어했다. 마치 뭔가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작업에 대한(바로 '나프틸라민'의 사용에 대해) 질문만 했다. 그리고 두번째에는 내게 왜 그렇게 수염이 기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우리는 모두 면도기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손수건 한 장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월요일마다 단체로 수염을 깎는다고 대답했다. 세번째는 내게 타자기로 깨끗하게 친 쪽지 한 장을 주었다. 목요일에도 면도를 할 수 있고 '에펙텐마가친'에서 가죽 신발 한 켤레를 얻을 수 있게 허가해주는 쪽지였다. 그는 내게 정중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불안해하나" 그 당시 생각도 독일어로 하던 나는 혼자 이렇게 결론지었다. "Der Mann hat keine Ahnung', 즉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
'pt' 문제로 다시 돌아가자 나는 강한 흥분 상태에 빠졌다. 인간 대 인간으로 '다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다는 것은 수용소 생활 이후 가장 생생하게 지속적으로 품고 있던 내 갈망이었다. ... 내가 밤마다 현실처럼 생생하게 (독일어로) 꿈을 꾸며 기대하고 있던 만남은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 중 누군가와의 만남이었다. 우리를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마치 우리에게 눈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던 그 사람들이었다.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아니었다. 그저 균형을 되찾고 싶었고 "그래서?"라고 말하고 싶었다.
...
나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너무 많았고 그에게나 내게나 너무 무거운 질문들뿐이었다. 아유슈비츠는 왜? 판비츠는 왜? 어린아이들은 왜 가스실로 가야 했는지? 하지만 나는 아직 어떤 한계를 넘어설 시기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에게 그저 내 책에 함축적이거나 명백히 드러나 있는 판단들을 수용할 수 있는지만 물어보았다. 이게 파르벤이 자발적으로 노예 노동력을 이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당시 부나 공장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매일 1만명을 집어삼켰던 아우슈비츠의 '시설들'을 알고 있었는지. 마지막으로 그가 "그 시절의 메모들"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그것을 한 부만 복사해서 보내줄 수 있는지.
...
이게파르벤에 대한 내 질문에는 딱 잘라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 거기서 포로들에게 일을 시켰지만 그것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라고. 실제로 그는 자신의 (정신이상자의 것 같은!)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8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면적에 거대한 건물들로 이루어진 부나-모노비츠 전 공장은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생존할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할 목적으로 건축되었으며 포로들에게 동정심을 갖지 말라는 명령은 'eine Tarnung' 즉 위장이었다는 것이다. 'Nihil de principe', 즉 원칙적으로는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이게파르벤에게 그 어떤 비난도 할 수 없었다. 나의 뮐러는 지금 그 회사를 이어받은 W의 직원이었다. 그리고 대개는 자기가 먹는 밥그릇에 침을 뱉지 않는 법이다. 아유슈비츠에 잠깐 머무르는 동안 그는 "유대인 학살을 목적으로 하는 그 어떤 활동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앞뒤가 맞지 않고 모욕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말이었다. 당시에 침묵하는 다수자였던 독일인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 전략은 최대한 적게 알려고 하는 것, 그래서 어떤 것도 묻지 않는 것이었다. 그 역시 그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에게조차 설명ㅇ르 요구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맑은 날이면 화장터 소각로의 불길을 부나 공장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
애꾸눈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겁쟁이도 아니었고 귀머거리나 냉소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적응하지 못했다. 과거와 계산을 했는데 그 계산이 자신의 생각에 꼭 들어맞지 않았다. 그는 약간의 속임수를 쓰더라도 계산을 맞추려고 애를 썼다. 전 SA에게 그 이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나는 독일인들을 비교해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해변이나 공장에서 만났던 다른 정직한 독일인들과 비교해볼 때 그에게 더 호감이 갔다. 나치즘에 대해 그는 소심하고 애매한 판결을 내렸지만 변명을 하려고 애를 쓰지는 않았다 그는 대화를 하려고 했다. 그는 양심이 잇엇고 그 양심을 달래기 위해 발버둥쳤다. 첫 편지에서 그는 "과거의 극복", "Bewaltigung der Vergangenheit"에 대해서 말했다. 후에 나는 이것이 틀에 박힌 문장이며 일반적으로 '나치즘에서 해방'되었다고 알려진 오늘날 독일의 완곡어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단어에 포함되어 있는 '발트walt'는 '지배', '폭력', '폭행'을 뜻하는 단어들에도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과거 왜곡'이나 '과거에 행한 폭력'으로  번역해도 그 단어의 깊은 의미에서 그다지 멀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진부한 무구 속에서 피난처를 찾는 것이, 다른 독일인들의 미사여구로 치장된 무신경함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 과거를 극복하려는 그의 노력은 어색하고 약간 우스꽝스럽고 짜증나고 슬펐지만 그래도 무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내게 신발 한 켤레를 얻을 수 있게 해준 건 아니었나?

VANADIO 바나듐



 
2017-05-07


난 줄리아가 결혼한 뒤 토끼들과 홀로 남게 되어 홀아비가 된 것 같은 기분,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화학자들만이 알고 있는 엄숙한 시를 대중에게 알려주기 위해 탄소에 대한 대하소설, 엽록소의 광합성에 대한 소설을 쓰는 공상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그걸 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이다. 그 이야기는 이 책의 말미를 장식할 것이다.

ORO 금

<주기율표 IL SISTEMA PERIODICO> 프리모 레비 Primo Revi, 이현경 옮김, 돌베개



 
2017-03-31



<아무도 아닌>을 다 읽었고,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다 읽었고.




 
2017-03-23


황정은 씨 안녕,
아무도 아닌,을 읽고 있어요.



 
2017-03-21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 바 비활성 기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박식하게도 그리스어에서 따온 진기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각각 '새로운 것'(네온), '숨겨진 것')크립톤)', '움직임이 없는 것'(아르곤), 그리고 '낯선 것'(제논)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들은 정말로 활성이 없어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어서 어떤 화학 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비활성 기체는 수세기 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다만 1962년 한 부지런한 화학자의 오랜 독창적인 노력 끝에, '낯선 것'(제논)이 극도로 탐욕스럽고 활발한 플루오린과 잠깐 결합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 일이 었었을 뿐이다 . 그런데 이 업적이 너무나 뜻밖의 일로 여겨져서 그 화학자는 노벨상까지 받았다. 또 이러한 비활성 기체를 가리켜 귀한 가스라고도 한다. 물론 여기서 모든 귀한 가스는 정말 활발하지 못한 것인지, 또 모든 비활성 가스는 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활성 기체는 희유가스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 가운데는 공기의 1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이 존재하는 아르곤, 곧' 움직임 없는 것'이 있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해, 그 양은 이 지구상에서 생명체의 흔적이 유지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이산화탄소보다도 스무 배 또는 서른 배나 더 많은 양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얼마 되지는 않지만 우리 선조들*은 바로 그러한 기체들과 비슷한 데가 많다.
....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 정착한 유대인)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이현경 옮김, 돌베개
의 첫 장, 아르곤


화학자인 저자가 쓴 원소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과학서적은 아닌 책.

원소들의 특징을 사람의 성격처럼 설명하는 것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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