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7-08-19


<우미인초> 나쓰메 소세키
다 읽었다.

후지오를 그렇게 죽일 줄은(작가가)
몰랐다.
읽기 힘든 면들이 좀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초기작들은.




 
2017-08-15

실용서라고는 거의 안 읽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 몸이 피로가 쌓이니
이런 책도 사서 보고 있다.
효과가 좋아.

어깨 때문에 수영을 시작했는데
운동으로 풀리는 근육과
마사지-스트레치로 풀리는 근육이 다르다고 한다.






 
2017-08-03
"꽤 멀군그래. 원래 어디서 오르는 거지?"
한 사람이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멈춰 선다.
"어디서부턴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디서 오르든 마찬가지겠지. 산이 저기 보이니 말이야."
얼굴이나 체격이 네모나게 각진 남자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흰 중절모의 갈색 차양 아래로 짙은 눈썹을 움직이며 올려다보는 머리 위로는, 속까지 쪽빛을 드러낸 희미한 봄 하늘이 불면 날아갈 듯 부드럽게 펼쳐져 있고, 마치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듯이 히에이잔 산이 우뚝 솟아 있다.

<우미인초>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쓰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7-07-16


읽을 예정.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 5.

우미인초는 개양귀비의 다른 이름이라고.






 
2017-07-16
<에리크 로메르>

아주 솔직하게 말하는데 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낍니다.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스물에서 스물다섯 사이에 매우 왕성한 창작열을 발휘했던 시기가 있었고 이는 서른 무렵까지 지속됐죠. 서른 이후에는 나 자신이 고갈됐다는 걸 알았어요. 당시 많이 괴로웠고 혼자 힘으로는 결코 소재를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정말 '나 자신의'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아마 이것이 내가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 '도덕 이야기' 이후 소재들을 찾아내겠다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내게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와 동시에 '희극과 격언'의 구상이 떠올랐는데, 이 연작에는 공통된 주제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그것을 찾아다녔고 심지어 약간 모호한 주제를 발견했으나 실제로 조직화되지는 못했어요. 그러고 나서 내가 썼던 것, 스물다섯이 아니라 그 전에 썼다가 완전히 제쳐뒀던 것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 유용한 것들이 있음을 알아차렸죠.

시나리오 및 영화 계획
로베르 아몽, 장피에르 팔리아노 - 1982


 
2017-07-16


<태풍>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노재명 옮김, 현암사
, 읽었다.

'시라이 도야는 문학자이다.
8년 전에 대학을 졸업한 뒤 시골의 중학교를 두세 군데 흘러 다니다가, 작년 봄에 표연히 도쿄로 되돌아왔다. 여기서 '흘러 다닌다'는 말은 걸립패가 사용하는 말이고, '표연'이라는 말은 오고 감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도야의 거취를 이렇게 형용하는 것이 적합한지 여부는 작가라 하더라도 보증할 수 없다. 뒤엉킨 실의 한쪽 끝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 그 줄이 한 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한 줄의 실 뒤편에 이중 삼중의 인연이 뒤엉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러기가 북쪼긍로 날아가고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오는 것도 새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에 걸맞은 변명이 있을 터이다.'
이렇게 시작.

'나쓰메 소세키는 총 열네 권의 장편소설을 썼다. <태풍>(1907)은 그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로 말할 것 같으면 소세키의 장편소설들 중에서 가장 덜 읽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나온 초기 성공작들, 즉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의 유명세에도 밀리는 데다가, 뒤에 나온 '전기 3부작'(<산사로> <그 후> <문>)과 '후기 3부작'(<피안을 지날 때까지> <행인> <마음>)의 위세에도 눌려온 터다. 국내에게 출간된 소세키의 책들 뒤편에 으레 붙어 있는 작가 연보에도 이 작품은 빠져 있기 일쑤다. 이 정도면 거의 무시당해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냉정히 말하면 그럴 만하다고 할 여지가 없지 않다. 굵직한 서사가 없어서 읽는 재미가 덜한 데다가, 소세키 본인의 육성과 잘 구별되지 않는 계몽적 연설들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형철(문학평론가)의 해설





 
2017-07-09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요?
주로 내 버전(그게 사실이라는 데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지만)은 1923년 4월 4일 낭시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겁니다. 가끔 다른 날짜를 대는 적도 있지만 이날이라고 하면 다른 전기 작가들이 말하는 것과 동일할 거예요.




전에는, 전에도 늘 두세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었고 소설과 비소설을 번갈아 혹은 동시에 읽었지만, 일정한 흐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흐름이 없어지고 뒤죽박죽인 것 같다.
읽는 책들의 실제 목록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분이.




 
2017-06-17
<녹색광선>은 전체가 즉흥적이었습니다. 어떤 부분도 미리 써놓지 않았죠. 글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배우들이 완전히 즉흥연기를 했어요.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했죠. 식사 장면의 경우, 나는 아무 언질도 안 했고 단지 "그 여자가 고기를 먹도록 설득해봐"라는 지시만 내렸죠.

내 영화들에서 표현되는 디테일들은 종종 캐릭터나 배우의 생각에서부터 탄생합니다. 이 영화의 경우에는 그보다 좀 더 나아게 캐릭터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했고 캐릭터의 생각을 기록하려고 했어요. 아마 배우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생각이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화를 위해 표현한 것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분명한 것은 내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내용을 믿긴 하지만요.

<녹색 광선>은 지나치게 성공적이었습니다. 촬영이 쉬웠고 낭비도 많지 않았어요. 편집도 쉬웠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했죠. 그런데 나는 사실 누벨바그에 대한 살짝 향수 어린 회고라고 일반 대중이 생각하면서 영화를 좋아하리라곤 예상치 못했었죠. 이 영화에서 그다지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일회성이라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며, 다시 그렇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게는 영상 담당이 셋, 사운드 담당이 둘있는데, 이들은 상당히 필수적인 것인 듯합니다. 한 명이 혼자서 프레임과 조명을 책임진다고 해도, 촬영에는 세 사람이 필요하죠. 조명에 있어서나 카메라 자체의작동을 위해 도움이 필요하고 또 필름 릴을 갈아줄 누군가 필요하기에 세 명인 것입니다. 사운드의 경우 좋은 결과를 얻고 싶으면 붐 오퍼레이터가 필요하고 소형 마이크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을 정확하게 배치해야만 하는데, 이는 두 명이 있을 때보다 더 빨리 할 수 있죠.
그러나 나는 더 멀리까지 나가보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하도록 인원을 줄일 수 있는지 알고 싶었죠. <녹색 광선>과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에서 바로 이걸 시도했고, 그 결과 한 명이 촬영을, 다른 한 명이 사운드를 맡았습니다. 신인들을 고용했죠. 그때까지 보조로 일해왔던 젊은 여자 둘이었어요. 이런 작업을 혼자 책임지고 완성해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완전히 환상적인 데다 정말 대단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숏에서는 여배우가 추워해서(사실 아주 추었죠), 원래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던 장면인데 바지를 입었습니다. 그크린 상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가 생각했던 것이죠, 카페에 앉아 있는 장면에서인데, 자기 다리가 숏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약간 각도를 넓힌 숏이 들어갔고, 테이블 아래가 약간 보입니다...... 그러나 스태프 한 명을 추가하느니 실수 몇 가지를 무릅쓰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 경우에는 스태프를 추가하는 게 불가능했고.

<비행사의 아내>는 녹색과 파란색이었고, <아름다운 결혼>은 분홍색과 밤색, <해변의 폴린느>는 아주 연한 파란색, 흰색, 빨간색, <만월의 밤>은 회색이었습니다. (...) 가장 최근 영화인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의 경우에는 적당한 표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세르지는 벽돌로 된 도시거든요. 그러나 그 색감은 호수와 숲이 띠는 초록과 파랑입니다. 창백한 분홍을 배경으로 초록과 파랑이 드러나는 게 필요했어요. 게다가 그 영화는 초록과 파랑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요. <녹색 광선>의 색은 오렌지와 초록이지만(내 작은 수첩을 보면 '오렌지 띠와 초록'이라고 실용적인 메모를 해뒀었죠), 영화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색은 당연히 시골의 초록색, 바다의 청록색, 그리고 빨강입니다.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에도 빨강이 많습니다.

-녹색 광선,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
제라르 르그랑, 위베르 니오그레, 프랑수아 라마스, 1986

<에리크 로메르 -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
피오나 핸디사이드 엮음, 이수원 옮김, 마음산책


 
2017-06-16
프랑스어에는 영어로 정확히 번역되기 힘든 '모럴리스터moralist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모럴(도덕/교훈)'이라는 말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모럴리스트'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 데 흥미가 는 사람을 의미해요. 마음 상태와 느낌에 관심을 갖죠. (...) 그리고 캐릭터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위 자체보다 그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예요. 이 '도덕 이야기'는 액션 영화도 아니고, 물리적인 행동이 일어나거나 매우 극적인 무엇이 존재하는 영화들이 아닙니다. 특정한 느낌이 분석되고 캐릭터 자신들조차 그들의 느낌을 분석하는 매우 자기 성찰적인 영화들이에요. 이것이 바로 '도덕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누벨바그, 시작
그레이엄 페트리, 1971

어떤 소재가 관객에게 가장 어필할지를 계속 자문하는 대신, 동일한 소재를 여섯 번 다루는 것이 최선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죠. 여섯 번째가 되면 관객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희망하면서. 나는 여전히 10년 전 나 자신을 위해 계획했던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융통성 없이 고지식해지리라고 마음먹었었는데, 한 가지 아이디어를 계속 고집하면 결국 지지자들이 생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죠. 심지어 배급사조차도...... 독립된 한 편의 시나리오보다는 여섯 편으로 구성된 연작의 시나리오를 문제 삼거나 비판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워요. 예를 들어 그 누구도 <클레르의 무릅>에 약간의 범죄 이야기를 넣으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도덕 이야기'의 다섯 번째 작품이고 이 연작은 탐정물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진정 내 목표는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받아들여지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었어요.
-선택과 운
루이 노게이라, 1971

"내게 텔레비전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연구하는 방법이었다. 텔레비전은 내게 사람들이 반응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나는 지나치게 효과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법, 말하는 사람의 앞에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법을 배웠다."
-도덕 이야기
비벌리 워커, 1973

......혹은 나 자신의 작품들, 그러네요, 나는 영화에서의 '직접적 글쓰기를 믿지 않습니다. 그런 예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일반적으로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가장 성공한 축에 끼지도 않아요. 알렉상드르 아스트뤼크가 말한 "카메러-스틸로", 즉 책을 쓰듯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영화 일이란 항상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며, 이는 독립된 문학작품을 각색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어던 방식으로든 문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영화란 없어요.
(...)
그 모든 이야기들은 실제로 좀 복잡한 경향이 있어요. 한 가지, 희곡이 문학작품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누구라도 공연할 수 있죠 단지 읽기만 하고 공연이 안 될 수도 있고, 그럼에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한 편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희곡과 동일한 문학적 가치를 가진 시나리오는 없습니다. 왜 그러지 못할까? 나는 이를 지속적으로 자문하면서도 그에 대한 답을 실제로 찾을 수가 없어요.
-시나리오 및 영화 계획
로베르 아몽, 장피에르 필리아노, 1972


<에리크 로메르 -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
피오나 핸디사이드 엮음, 이수원 옮김, 마음산책




 
2017-06-10


에리크 로메르는 수줍어하고 비밀스러운 사람으로, 그에 대해서는 수년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그는 가명으로 작업을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세 번째 이름으로 소설을 출간한 적도 있다. 현재 파리에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조용히 살고 있다. 그는 1920년 낭시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로메르의 경력은 잘 차트화되어 있다. 그는 수년간 문학을 가르쳤으며 동시에 여러 매체에 영화평론을 썼고 종국에는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이 되었다. 이 영향력있는 프랑스 잡지의 동료 중에는 고다르, 샤브롤, 트뤼포, 리베트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함께 '작가 정책'을 주조했고 영화감독으로서 각자의 커리에서 있어서 상호 협조했다. 로메르는 (샤브롤과 함께) 히치콕에 관한 책을 썼는데, 히치콕은 호크스, 무르나우와 더불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감독으로 꼬ㅃ는 사람이다. <하오의 연정>을 준비하던 중 그는 박사학위 논문 <무르나우의 <파우스트>의 공간구성>을 완성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에 더해 로메르는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TV에서도 광범위하게 작업했다. 포와 파스칼, 건축에서 콘크리트 사용에 관한 연구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소재를 다룬 교육적 성격의 다큐멘터리를 여러 편 만들었다. 이런 작업은 '도덕 이야기'의 스타일에 영향을 끼쳤다. "내게 텔레비전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연구하는 방법이었다. 텔레비전은 내게 사람들이 반응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나는 지나치게 효과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법, 말하는 사람의 앞에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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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르의 영화는 모두 각각 다음에 오는 영화의 자금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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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르는 영화 준비에 많은 시간을 들인 후 6주 만에 촬영을 마치며, 한 테이크를 여러 번 가는 적이 드물다. 준비 시간은 자료 조사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 이뤄진다. 로케이션은 매우 주의 깊게 선택되며, 각 장소에서 하루 중 최고의 빛을 얻어내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다. 로메르는 특정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고 그들의 작품을 주의 깊게 연구한다. <하오의 연정>에서는 앵그르의 터치가 발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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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광인 로메르는 매일 5킬로미터를 달리며, 30년간 환경오염 반대주의자로서 자동차 소유를 거부하고 있다. 가끔씩 즐기는 시가나 한 잔의 포도주가 유일한 그의 비행이다. 차는 매일 저녁 5시에 촬영 현장으로 즉각 서빙된다.

-도덕 이야기
비벌리 워커 - 1973

<에리크 로메르 -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 피오나 핸디사이드 엮음, 이수원 옮김, 마음산책


에리크 로메르라니 낯설다.
에릭 로메르라구, 나에게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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