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7-02-25
<바람의 열두 방향>은 작가의 초기 단편을 모은 책인데, 단편마다 시작 부분에 작가의 짧은 서문이 있다.
두번째 소설 '파리의 4월'의 서문 중,

'이 글은 내가 돈을 받은 최초의 작품이자 출판된 두 번재 작품이다.
......
'전문가주의'는 미덕이 아니다. 프로란 아마추어가 열정 때문에 하는 일을 돈을 받고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하지만 돈의 경제학에서 보면, 보수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한 작업을 여러 사람이 알게 되고 읽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작가와 독자의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이는 예술가의 목적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이 있다.

웹툰을 하게 되면서 했던 생각과 같아.





 
2017-02-25


바람의 열두 방향 THE WIND"S TWELVE QQARTERS
어슐러 K. 르귄 Ursula K. Le Guin 지음,
최용준 옮김, 시공사




 
2017-02-25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다 읽었다.



'그때 이후, 불확실한 시간에
고통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나의 섬득한 이야기가 말해질 때까지
내 안의 심장은 불타리라'






 
2017-02-23
그러나 어떤 경우든 간에 가장 억압받는 개인들은 운동의 선봉에는 결코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오히려 보통은 대담하고 편협하지 않으며, 개인적으로는 안정적이고 평온하며, 심지어 특권을 누릴 수도 있는 삶을 살 가능성이 있음에도 관대함으로(또는 야망으로) 투쟁에 투신하는 지도자들이 혁명을 이끈다. 기념물에서 자주 되풀이되는, 자신의 무거운 사슬을 끊는 노예의 상은 수사적인 것이다. 그의 사슬은 좀 더 가볍고 느슨한 구속에 메인 동료들에 의해 끊어진다.
...지도자는 유능해야 하며 도덕적, 육체적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낮은 수준의 억압이 요구된다. 만약 그에게 가해지는 억압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것은 양쪽 힘 모두를 저하시킨다. 모든 진정한 봉기들(분명히 해두자면 아래로부터의 봉기이다. 쿠데타나 궁정 반란"이 아니라)의 원동력인 분노와 의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물론 억압이 존재해야 하지만 적당한 정도이거나 비효율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라거에서의 억압은 극단적 수준의 것이었고, 다른 분야들에서는 칭찬받을 만한 저 유명한 독일의 효율성을 발휘하여 행해졌다 전형적인 포로, 수용소의 중추를 형성하는 포로는 고갈의 한계에 와 있었다. 굶주리고 쇠약하며 상처로 가득했고(...), 따라서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그는 해진 넝마 같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이미 알고 있었듯이, ㅣ현실 세계에서 혁명은 넝마들로는 되지 않는다. 이는 영화나 문학의 수사적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모든 혁명들, 세계 역사의 항로를 바꾼 혁명들과 우리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작은 혁명들을 이끈 자들은 억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직접 피부로 경험하지는 않은 인물들이었다. 내가 이미 언급한 비르케나우에서의 봉기는 화장터 담당이었던 특수부대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들은 절망에 빠지고 분노한 사람들이었지만, 영양 상태가 좋고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제대로 된 신을 신은 사람들이었다. 최고의 찬사를 받아 마땅한 바르샤바 게토의 봉기는 유럽의 첫 번째 '저항'이었고 승리나 구원에 대한 최소한의 희망도 없이 일어난 유일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몇 가지 기본적인 특권들을 따로 보유한 정치적 엘리트 집단의 작품이었다.

7. 고정관념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I sommersi e i salvati> 프리모 레비, 이소영 옮김, 돌베개




 
2017-02-23



황정은,들



 
2017-02-19
그대에게 앨리시어의 계절에 관해 말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환등기처럼 돌아가고 돌아오는 사계에 관해 말이다. 앨리시어의 사계에서 씨발 년은 아이들의 뒤를 성큼성큼 쫓고 아이들은 노인을 쫓고 노인은 씨발 년을 살금살금 쫓는다. 언제까지고 벽 위를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림자들처럼 반복된다. 이즈음 앨리시어의 어머니는 앨리시어에게 깨끗한 옷을 입혀두고 더럽혀지는 정도를 감시한다. 아무때고 소매나 옷깃을 뒤집어보고 얼룩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얼룩은 말하자면 촉매로 작용하는데 어느 정도가 안정적일지 짐작할 수 없어 불안정한 촉매다. 간장 한 방울 정도는 괜찮다가도 다른 날엔 그 정도로도 즉각 씨발됨이 전개된다. 이렇고 보니 앨리시어에게 깨끗한 옷은 억지로 입어야 하는 씨발 년의 피부나 다름없다. 옷깃에 쓸리곤 하는 목엔 발진이 돋았다. 엘리시어는 그걸 긁으며 아버지의 뒷보습을 바라본다.

(......)

앨리시어가 이야기를 해줄까.
여기 이 모퉁이에서.
작은 마을에 관한 꿈이다. 복숭아술로 유명한 마을이라고 해두자. 앨리시어는 이 마을의 주민으로 태어나 다른 많은 아이들과 함께 좁은 방에 갇혔다. 밥도 약도 없이 말이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높은 곳에 달린 창을 향해 머리를 들고 서 있다. 움직이면 서로의 몸이 닿는 이 방을 탈출했던 아이들은 도로 잡혀들어간다. 이번엔 같은 방에 갇히지 않고 좁은 방에 따로 갇힌다. 앨리시어는 다른 아이들의 소식을 들을 수 없고 그들도 앨리시어의 소식을 듣지 못한다. 마을의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었다. 좁고 깊은 개천을 따라 노점들이 설치되었다. 색색의 지등이 걸리고 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이 춤을 추며 마을을 돌아다닌다. 축제가 가장 화려해진 순간에 시체가 발견된다. 작은 발뿐이다 .축제는 중단되고 수색이 벌어지고 살인범이 발견된다. 그는 밧줄에 묶인 채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러 모였다. 모두가 그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다. 그는 몸집이 크고 피부가 희다. 밀가루 반죽으로 어설프게 빚은 쿠키처럼 생겼다. 쿠키맨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사방을 둘러본다. 경찰이 그가 알려주는 대로 노점들을 팽팽하게 고정시키고 있는 밧줄을 끌어당긴다. 신체 일부를 담은 작은 자루들이 개천에서 올라온다. 밧줄 하나에 하나씩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덩어리가 물속에서 올라온다. 자루를 째자 팔다리를 잃은 몸이 흘러나온다. 앨리시어는 그 몸을 알아본다. 죽지 않았으면 했던 몸이다. 앨리시어는 그를 불러보려고 입을 벌린다. 그 이름을 부르고자 숨을 들이쉰 순간 혀가 사라지고 입이 닫힌다 경찰이 살인한 남자에게 자를 쥐여주고 몸의 길이를 재라고 명령한다. 그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몸의 길이를 잰다. 머리부터 꼬리뼈까지 삼십오 센티미터! 쿠키맨이 검지를 치켜들고 외친다. 앨리시어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지만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언제 어떻게 그 방을 빠져나왔는지, 도대체 살아남는 데 성공하기나 한 것인지, 아무것도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상태로 이 꿈은 중단되지도 않고 이제, 이제, 어떻게 끝날까.

(......)

계속해 형.
토끼가... 휙 지나갔을 때, 붉은 조끼를 입고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며 늦었다, 늦었어, 하면서 앨리스 소년의 앞을 지나갔을 때, 앨리스 소년은 저거다, 라고 외치고 토끼를 따라 뛰었다. 토끼를 쫓아 달리고 달려서, 마침내 토끼굴로 미끄러졌다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 토끼굴이 얼마나 길고 깊은지 아냐? 그건 진정 긴 굴이었다. 앨리스 소년은 떨어지면서 다시 기다렸다.
뭐를?
바닥에 닿기를?
뭘 하려고?
그래야 다른 데 가지.
어어.
...
...
...
그래서, 닿았냐.
아직.
아직?
아직도 떨어지고, 여태 떨어지고 있는 거다. 상당히 어둡고 긴 굴속을 떨어지면서 앨리스 소년이 생각하기를,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상당히 오래전에 토끼 한 마리를 쫓다가 굴속으로 떨어졌는데...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를 않고 있네... 나는 다만, 떨어지고 있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계속... 더는 토끼도 보이지 않는데 줄곧... 하고 생각하며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 언제고 바닥에 닿겠지, 이제 끝나겠지, 생각하는데도 끝나지 않아서, 이게 안 끝나네, 골똘하게 생각하며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
..
...
그래서 어떻게 되냐.
뭐?
앨리스 새끼는 어떻게 되냐.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문학동네




황정은의 세계.


 
2017-02-19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데
다른 한 권은 황정은,
<야만적인 앨리스씨>,
문학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거라
커버가 없고
커버를 벗겨낸 표지에는 제목이 없다.
원래 표지는 어떻게 생겼지?




 
2017-02-15
거대한 공동화장실, 의무적으로 정해진 짧은 시간,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익숙해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고 적지 않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서서, 참을성 없이, 때로는 애원하며, 또 때로는 윽박지르면서 10초마다 "하스트 두 게마흐트"Hast du gemacht(아직 멀었어?)라고 물어온다. 그럼에도 몇 주 안에 불편함은 주어들더니 결국 사라졌고, 그 자리에 익숙함이(모드가 그런 것은 아니고!) 찾아왔다. 이는 인간에서 동물로의 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자비로운 방식이었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나치 위계의 어떤 단계에도, 어떤 문서에도, 어떤 "노동 회의"에서도 분명하게 계획되고 확립된 것은 아니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체제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비인간적인 체제는 자신의 비인간성을 사방으로, 특히 낮은 곳을 행해서 퍼뜨리고 확장한다. 저항이 없으면, 그리고 이례적으로 강인한 성격이 아니라면, 그 체제는 자신의 희생자와 반대자를 부패시킨다.

...

라거나 가스실로 보내진 여성들의 잘린 머리카락이 수톤 씩 아무렇게나 전시되어 있는 아우슈비츠 박물관의 진열장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공포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월이 흘러 그 머리카락은 퇴색하고 상했지만 계속해서 방문객들에게 속삭이며 소리없는 고발을 하고 있다. 독일군은 이 머리카락들을 목적지로 보낼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이 특이한 상품은 독일의 몇몇 섬유기업이 구입해서 침대 카버나 다른 산업용 직물로 제조하는데 사용되었다.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이 이것이 무슨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었는지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판매자, 곧 라거의 SS당국이 거기서 실질적인 이윤을 뽑아냈을 가능성 또한 희박해 보인다. 이윤을 얻으려는 동기보다 잔학한 폭력의 동기가 우위에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 수톤 씩 화장터에서 나온 인간의 재는 대개 치아나 척추 뼈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습지대를 메우기 위해, 목조 건물의 벽 사이에 넣을 단열재로, 심지어 인산비료로 말이다. 특히 수용소 옆에 위치한 SS군의 마을길을 포장하는데 자갈 대신에 사용되었다. 나는 이것이 순전한 냉담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재의 출처 때문에, 곧 그것이 짓밟아야 할 재료이기 대문에 그렇게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확실히 쓸데없는 잔인함은 라거의 내부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히틀러주의의 근본적인 특징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에 대한 최고의 논평은 이미 언급한 바 있는 트레블링카의 전 사령관 프란츠 슈탕글과 지타 세레니의 긴 인터뷰(<암흑 속에서< 아델피 출판사, 밀라노, 1975)에서 발췌한 다음과 같은 두 문장 속엥 축약되어 있는 것 같다.
"그들을 어차피 다 죽일 것이었는데...... 굴욕감을 주고 잔혹행위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요?" 뒤셀도르프 감옥에서 종신형에 처해 있던 슈탕글에게 작가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실질적을 ㅗ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사람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그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이썽ㅆ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다른 말로 하자만 희생자는 죽기 전에 인간 이하로 비하되어야 했다. 죽이는 자가 자신의 죄의 무게를 덜 느끼게끔 말이다. 이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쓸데없는 폭력의 유일한 우용성이라고 하늘에 외치고 있다.

5. 쓸데없는 폭력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2017-02-15
반복하지만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다. 이것은 불편한 개념인데, 다른 사람들의 회고록을 읽고 여러 해가 지난 뒤 내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차츰차츰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생존자들은 근소함을넘어서 이례적인 소수이고, 권력 남용이나 수완이나 행운 덕분에 바닥을 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벙어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무슬림들", 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고 자신들의 증언이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이다. 또 다른 하늘 아래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노예생활을 경험하고 돌아온 솔제니친도 그 점에 주목했다.

장기 복역자들, 생존자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축하하는 그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두말할 나위 없이 프리두르키pridurki거나 수감생활대부분의 시간 동안 프리두르키였다. 왜냐하면 라거는 절멸을위한 것이기 대문이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 다른 수용소 세계의 언어에서 프리두르키는 어떤 식으로든 특권의 지위를 획득한 포로들로, 우리 쪽에서는 프로미넨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

또 다른 좀 더 광범위한 수치심이 있다. 곧 세상에 대한 수치심이다. 존 던 John Donne은 "어느 누구도 섬은 아니다"(적절히든 아니든 수없이 인용되고 있다)라며, 모두에게는 각자의 죽음의 종이 울리고 기억할 만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타인과 자신의 죄 앞에서 그 죄를 보지 않도록, 그래서 느낄 수 없도록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히틀러 치하의 12년간, 보지 않는 것이 모르는 것이며 모르는 것이 공모와 묵인에 대한 자신들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자발적인 무지의 장막, 곧 T.S. 엘리엇이 말한 '부분적인 피신" partial shelter이 우리 포로들에게는 허용되자 않았다. 우리는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고통의 바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수면은 해가 갈수록 거의 우리를 잠기게 할 정도로 차올랐다.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리는 일은 소용없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의 바다는 온통 주위에, 수평선 끝까지 온 사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섬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었고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 일이었다. 우리 가운데 의로운 사람들은(더도 덜도 아니고, 여느 인간 집단에 있는 딱 그만큼 존재했다) 자신들이 아닌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이 거기에 연루됐다는 생각 때문에 가책과 수치심이라는 고통을 느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주위와 눈앞 그리고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인간 종, 곧 우리는 엄청난 고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고통은 어떤 비용이나 노력도 필요치 않은, 무에서 생겨나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3. 수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2017-02-09
무스펠트를 심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선고를 내린 법정이 의심을 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판단 욕구와 판단력은 특수부대 앞에서 흔들린다. 당장 질문들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우리를 안심시킬 대답을 내놓기가 어려운 폭발적인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왜 그들은 그 임무를 받아들였는가? 왜 그들은 반항하지 않았는가? 왜 그들은 차라리 죽음을 원하지 않았는가?
...
우리가 알고 있는 저 비참한 학살 실행자들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다. 곧 즉각적인 죽음보다는 다만 몇 주라도 삶을(도대체 무슨 삶인가!) 연장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서도 자기 손으로 살인을 하진 않은 사람들이다. 반복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심판할 권한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라거에서의 경험을 한 사람도 그렇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누구든지 감히 심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추론적 실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할 수 있다면 수개월을, 수년을 게토에서 만성적 배고픔과 피로, 혼잡한 난리통과 굴욕감에 시달렸다고 상상해보라. 자신의 주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소중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소식을 받거나 보내지도 못한 채 세상에서 잘려져 나갔다고 상상해보라. 결국에는 화물열차의 객차마다 80명, 100명씩 실려 무턱대로 미지의 곳으로 며칠 밤낮을 잠도 못자고 여행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러고는 결국 해독 불가능한 어떤 지옥의 별들 사이에 내던져졌다고 상상해보라. 여기서 가혹하면서도 정확하지 않은 어떤 임무가 그에게 제안된다. 아니 부과된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에게 생존이 제공된다. 내가 보기에는 바로 이것이 진정한 베펠노트슈탄트Befehlnotstand, 즉 '명령에 따른 강제 상태'이다. 심판대에 끌려나온 나치주의자들과 그 후 (그들의 선례에 따라) 많은 나라의 전범들이 체계적이고 뻔뻔스럽게 들먹인 그것이 아니라. 전자는 즉각적인 복종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엄격한 양자택일을 의미하고, 후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내부적인 일이었다. 곧 몇 가지 조치로써 경력에 피해를 입거나, 완화된 처벌을 받거나, 최악의 경우들에서는 최전방으로 보내짐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실제로 자주 그렇게 해결되었다).

...

룸코프스키의 이야기는 라거의 관라자들과 카포들에 대한 매우 유감스럽고 우려스러운 이야기이다. 한 체제를 위해 일하고 그 체제의 죄에는 자진해서 눈감아버리는 하위 권력층들의 이야기이다. 서명에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모든 것에 죄다 서명을 하는 중간 간부들의 이야기이다. 고개를 가로젓지만 묵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내가 하지 않으면 나보다 더 못한 다른 사람이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2 회색지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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