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17-02-05
나는 여기서 극단적 경험들, 곧 희생자들이 받았던 상처의 기억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기억의 기록을 지우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인들이 작동 중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그 자체로 트라우마다. 트라우마를 회상하는 일은 고통스럽고 적어도 피해자의 마음을 심란케 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 기억을 지우려는 경향이 있다. 상처를 준 사람은 그 기억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신의 죄의식을 덜기 위해 마음 깊숙이 그 기억을 몰아내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현상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희생자와 압제자 사이에 놓은 역설적인 유사성에 주목하게 된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양자는 같은 덫에 걸려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덫을 준비하고 또 튀어 오르게 만든 사람은 오직 압제자 자신이다. 따라서 압제자가 괴로워한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희생자가 괴로움ㅇㄹ 겪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수십 년이 지나도록 희생자는 고통 속에서 괴로워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다시 한 번 그 상처는 치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상처의 시간은 연장되며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는 - 우리는 그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는데 - (인간의 형벌에 도움을 받아서든 아니든 간에) 가해자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을 영구화하기 위해 피해자에게도 평화를 주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철할자 장 아메리는 벨기에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겟ㅍ타포에게 고문당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글은 우리를 경악에 빠뜨린다.

고문당한 사람은 고문에 시달리는 채로 남는다. (...) 고문당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그를 무로 만들어 버린 데서 오는 혐오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첫 따귀로 이미 금이 가고, 이어지는 고문을 더 이상 회복되지 않는다.

그에게 고문은 끝나지 않는 죽음이었다. 아메리, 그는 1978년에 자살했다.

1 상처의 기억,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2017-02-05
...... 이보다는, 왜 그랬는가, 범죄를 저지를 때 이들은 인식하고 있었는다, 하는 동기와 정당성에 대한 물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 두 가지 질문이나 기타 유사한 질문에 대한 답변들은 서로 굉장히 비슷하다. 슈페어Albert Speer처럼 야심차고 지적인 전문가든 아이히만Adolf Eichmann처럼 광신적인 냉혈헌이든, 아니면 트레블링카의 슈탕글이나 아우슈비츠의 회스Rudolf Hoss처럼 근시안적인 관리든, 고문 발명가들인 보거Wilhelm Boger와 카두크Oswald Kaduk처럼 우둔하고 추악한 사람이든, 질문을 받는 사람의 개인적인 성격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정신적, 문화적 수준에 따라 크고 작은 오만함을 보이면서 여러 형태로 표현되는 그 답변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똑같은 내용을 말한다. 즉,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다른 사람들(내 상관들)은 나보다 더 나쁜일을 저질렀다, 내가 받아온 교육과 살아온 환경을 감안했을 때 나는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다, 내가 하지 않았다면 내 대신 다른 사람이 더욱 엄하게 했을 것이다, 등과 같은 답변이다.

1 상처의 기억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이소영 옮김, 돌베개



 
2017-02-02


나치의 절멸 수용소에 대한 최초의 소식들은 격동의 해인 1942년에 퍼지기 시작했다. 대체로 막연한 정보의 단편들이었지만 그것들은 서로 일치하는 데가 있었다. 전해온 소실들이 묘사하는 학살은 규모 면에서 너무나 방대했고, 극단적으로 잔인했으며, 복잡다단한 동기를 지니고 있었다. 대중은 그 소식들이 전하는 엄청남 때문에 그 이야기를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가 일찍이 죄를 지은 장본인들로부터 예견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많은 생존자들, 그중에서도 <살인자들은 우리 가운데에 있다>(가르잔치 출판사, 밀라노, 1970)의 마지막 페이지들에서 시몬 비젠탈은 SS(나치 친위대) 군인들이 냉소적으로 포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면서 즐거워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지 간에, 너희와의 전쟁은 우리가 이긴거야. 너희 중 아무도 살아남아 증언하지 못할 테니까. 혹시 누군가 살아 나간다 하더라도 세상이 그를 믿어주지 않을걸. 아마 의심도 일고 토론도 붙고 역사가들의 연구도 있을 테지만, 확실한 건 아무거도 없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가 그 증거들을 너희와 함께 없애버릴 테니까. 그리고 설령 몇 가지 증거가 남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너희 중 누군가가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너희가 얘기하는 사실들이 맏기에는 너무도 끔찍하다고 할 거야. 연합군의 과장된 선전이라고 할거고 모든 것을 부인하는 우리를 믿겠지. 너희가 아니라, 라거(강제수용소)의 역사, 그것을 쓰는 것은 바로 우리가 될거야.

희한하게도, 이와 똑같은 생각('우리가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거야")이 한밤의 꿈의 형태로 포로들의 절망의 수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 거의 모든 생환자들이 말로든 그롤 남긴 그들의 기억 속에서든 포로생활을 하던 밤에 자주 되풀이되던 꿈을 상기한다. 세부적인 면에서는 제각각 다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한결같다. 집으로 돌아가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고통들을 안도하면서 또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꿈, 그러나 믿어주지 않는, 아니 들어주지도 않는 꿈이다. 가장 전형적인 (그리고 가장 잔인한) 형태로는 상대방이 몸을 돌리고 침묵 속으로 가버린다. 이 주제애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희생자와 압제자 양쪽 다 라거에서 벌어졌던 일이-여기에 덧붙이자면, 비단 라거에서뿐만 아니라 게토에서, 동부 전선의 후방에서, 경찰서와 정신장애인 보호시설에서도 벌어졌다-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어서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점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지금부터라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I sommersi e i salvati> 서문
프리모 레비, 이소영 옮김, 돌베개





 
2017-02-02


<백의 그림자> 황정은, 민음사


 
2017-01-22


아니지.
라고 기조는 말했다.
그건 바다라기보다는 강에 가까웠으니까, 강에 솥뚜껑처럼 커다란 기포가 터지는 지점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강가에서,라기보다는 물 언저리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어. 누군가, 그 기포가 터지는 지점 너머로는 절대 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어. 거기부터는 바닥이 낭떠러지라서, 완전한 절벽이라서, 도저히 절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는 거야. 과연 그럴까보냐,하고 나를 포함해서 모두 차례차례 물속으로 들어갔어. 어차피 수면 부근에서 헤엄치는데 바닥이 무슨 상관이냐, 생각하면서. 이렇게, 이렇게, 팔을 저어서 앞으로 나아갔는데, 기포를 지나고보니 정말 자른 듯이 낭떠러지가 시작되고 있었어. 앞으로는 자욱하고 거대한 물뿐이고 바닥은 보이지도 않아서, 나는 정말 겁을 먹고 말이지, 어느 사이엔가 강가를 향해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어. 철벅철벅, 하고 헤엄치면서 뒤를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도, 물방개처럼 팔과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돌아오고 있는 거야. 눈물이 날 정도로 열심히 헤엄치는데, 물가에 가까워질수록 이대로 돌아가기는 억울하다고 할까, 분하기도 해서, 나는 도로 기포를 향해 헤엄치는 거야. 하지만 역시 기포를 지나고 보면 나도 모르게 강가로 되돌아가는 거야. 이런 식으로 줄곧 헤엄치는데, 왠지 몇 번이나 이것을 되풀이했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아니, 아니, 그날만이 아니고 그 전날 밤에도 그 전전날 밤에도 줄곧, 그러니까 줄곧.
그거 지금, 꿈 얘기지?
응.
뭐야, 하고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강냉이를 배부르게 먹은 탓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무도씨, 하고 기조가 말했다.
사람은 언제까지고 헤엄을 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렇지.
몇 번이나 그런 걸 되풀이하다가 체력이 떨어지고 머리에 치명적일 정도로 산소가 부족해지만, 어떻게 되는 거야?
가라앉겠지.
죽는 걸까.
죽는 거지.
기조는 입을 다물고 곰곰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팔로 머리를 받치고 눈을 감았다. 무도씨, 하고 기조가 말했다.
어떡하지.
뭘.
아무리 물장구를 크게 쳐서 파문을 만들어도, 그것은 내가 열심히 팔과 다리를 저을 때뿐이잖아. 뭔가, 물살을 엄청 저었다는 느낌은 있는데, 언제까지고 마침내 해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팔과 다리를 멈춰버리면 곧장 가랑앉기 시작해서, 일단 가라앉은 뒤로는 파문도 없이 그저 엄청난 양의 물만 있을 뿐이라면.
꿈이잖아.
꿈이래도, 있잖아, 사람들이 헤엄쳐, 난 힘이 빠져, 잠방잠방하다가, 가라앉아. 머리 위로 수면이 점점 멀어지고, 내가 가라낮은 자리에서 파문을 만들며 헤엄치는 내 다음 사람의 배가 보여. 글ㄴ데 그 사람도 결국 가라앉아.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야.
사람이 많았다며.
응.
다른 사람이 지나가겠지,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사람도 가라앉으면, 하고 기조가 말했다.
그 다음 사람이 있겠지.
그 사람도 가라앉으면.
또 다음 사람이 오겠지.
언제까지.
졸려.
무도씨, 언제까지.
아무도 없을 때까지, 아닐까.
마지막 사람이 가라앉고 나면, 역시 물만 남을까.
남겠지.
흑, 흑, 흑.
왜 울어.
생각하니까, 너무 막막해서.
그런 걸 왜 생각해.
그런 걸 생각하는 게 이상해?
이상해.
이상한가.
이상하잖아, 그건 꿈이고.
무도씨, 무도씨, 하고 기조가 말했다.
커다란 물만 남는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오뚝이와 지빠귀
같은 책.




 
2017-01-22


근사하다. 파씨가 말했다. 내가 첫번째 손님이 될래.
뭐라고 했어? 기린이 이마를 찌푸렸다.. 입에 든 걸 삼키고 말해.
나는 말했다. 파씨가 가고 싶대. 파씨가 그 레스토랑의 첫번째 손님이 될거래.
파씨라고?
파씨.
파씨가 누구야.
파씨가 누구냐니.
나는 내 오른쪽 자리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파씨는 없었다. 방금 누군가 박차고 일어난 듯 빈 의자가 비틀린 채 놓여 있었다. 나는 카페테리아 계산대 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도 파씨가 없었다. 기린이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김밥 한 조각을 집었다. 기린은 김밥을 우물우물 씹었다. 칵테일을 마시고, 바닥에 달라붙은 파인애플 조각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곰곰 따져보듯 씹었다. 몸집이 큰 초식동물의 배설물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나는 쿠킹포일을 구겨 휴지통을 향해 던졌다. 포일뭉치는 휴지통 가장자리에 맞아 바닥으로 떨여졌다.
어째서 자기를 파씨라고 불러.
휴지통을 응시하며 기린이 말했다. 기린은 파인애플 조각을 아직도 씹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기린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기린이 주먹으로 턱을 받치며 뚱하게 말했다.
파씨는 어렷을 때 우리가 기른 토끼의 이름이잖아. 왜 자기를 그런 것으로 불러.
터지겟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목덜미에서 단단하고 차가운 것이 부풀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더듬자 차갑고, 축축하고, 딱딱했다. 자꾸자꾸자꾸자꾸 부풀어서 팡, 터지는 소리가 났다.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문학동네




 
2017-01-15


지금은 이 책 읽는 중.
사직도서관에서 회원카드 만들고 처음 빌린 두 권은 황정은.






 
2017-01-15


읽었다.








 
2017-01-12


광주시립도서관 회원카드를 만들었다.
시립도서관은 세 개,
사직도서관, 산수도서관, 무등도서관.




 
2017-01-12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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