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7-08-06
http://news.joins.com/article/21812369

아, 눈물이 날 정도로 끔찍해.
그나마 학교가 신경써서 처리해준 것이 다행일 뿐.




 
2017-07-31

엄마와 나는 30살 차이.
30년은 어떤 시간일까.





 
2017-07-23

옥자만 구했네.




 
2017-07-16


작업하는 방.
방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나는
작업하는 방이 있지.



 
2017-07-09





.

 
2017-06-19
나이가 들면서 아줌마라고 불리는 일이 잦아지는데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남자들.
이 사람들이 그 평범하고 일상적인 단어로
얼마나 손쉽게 무시와 경멸을 표현하는지를,
본다.





 
2017-06-17


동생네 놀러왔을 때 첫째 조카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아이팟으로 찍어서 동생에게 보내줬더니 동생이,
실제보다 착하고 사랑스러운 애로 나왔네
라고 답했다.




 
2017-06-17


너는 나의
셋째 조카.




 
2017-06-13
"여자가 나오면 쓸 수가 없어요. 너무 어려워요.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어떤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 나는 매우 서툴러요. ... 여자에 대한 편견이나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훈


나는, 그 때는 몰랐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한국소설들에 대해서 최근에 가끔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문학을 포함한 국어과목을 좋아하여
학기가 시작할 때 교과서를 받으면 집에 오자마자 국어과목 교과서는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왜 한국의 근현대 소설은 좋아했던 기억이 없는지
좋아했던 것은 시였고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오래 기억한 소설은 훨씬 많은 숫자를 차지했던 한국소설들 중 한 편이 아니라
중학교 교과서에 있던 헤세의 단편 두 개 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당연하게도 한국의 근현대 소설들에서 여성들은 역할도 성격도 없이
그저 폭력과 성(물론 폭력적인 방식의 성)의 대상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이라고는 거의 교과서 속의 문학작품 밖에 접하지 못하던 나는 그런 장면들을
포르노를 보듯, 부끄럽고 민망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읽었다.
하지만 학교에 오면 수업시간에 그런 장면들이 아무렇게 않게 다루어지고 설명되었다.




 
2017-06-12

트위터에서, '모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걸까' 라는 트윗을 잘못 읽어,
'모두가 싫어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걸까' 라고 읽고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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