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2-06-21
C와 E와 영사관에서 보낸 직원 등이 마중 나왔다. C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E 역시. 그러나 이 난장판 속에서 L과 D 부인과  R과의 이별은 짧고 싸늘했다.
피곤하다. 독감이 다시 왔다. 뉴욕이 첫 본때를 보이는지 두 다리가 휘청거린다. 첫눈에 본 인상은 비인간적이고 흉한 도시. 하지만 인상이란 바뀌기 마련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작은 일들이다. 가령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 장갑을 끼고 있고 네거리에서는 교통경찰 없이도 교통법규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것 등,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잔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사람들이 모두 다 무슨 시리즈물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는 것. 저녁에  피곤하고 열이 나는 몸으로 택시를 타고 브로드웨이를 통과하다가 나는 한바탕 일루미네이션의 홍수에 문자 그대로 아연실색했다. 5년간의 어둠에서 막 벗어난 참인 나에게 이 강렬한 불빛의 대향연은 처음으로  새로운 대륙에 와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카멜 담배를 광고하는 15미터짜리 거대한 광고판. 입을 커다랗게 벌린 G.I가 '진짜' 연기를 뻐금뻐금 뿜어내고 있다. 온통 노랗고 빨간 색 천지다) 나는 몸과 마음이 아파 자리에 눕는다. 그러나 이틀 후면 생각이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Albert Camus, 여행일기, 미국(1946년 3월~5월)
책세상, 김화영 옮김

(5년 간의 어둠은 2차 대전 때 파리가 나치에 점령되었던 때를 이야기함)




 
2012-06-20
마찬가지로, 한 악절에 대한 이런 애착은, 스완의 몸 안에 일종의 젊어질 가능성을 열 것이 틀림없는 성싶었다. 오래 전부터 그는 삶을 한 이상에 지향하기를 단념하고, 나날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에 그쳐서, 꼬집어서 그렇다고 명확히 마음속으로 말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죽을 때까지 그런 삶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신 속에 고상한 이상을 품지 않게 된 그는, 그런 고상한 이상의 실재를 믿는 것을 그만둔 지 오래였는데, 또항 그 실재를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못하였다. 따라서 그는 하찮은 사상, 사물의 본질에 무관심으로 있을 수 있는 사상 속으로 몸을 피하는 습관이 들어 있었다. 사교계에 출입하는 여하로 행실의 좋고 나쁨이 정해진다고 생각해 본 일도 없는 대신에, 만약 초대를 승낙했다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방문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명함을 놓고 와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담소 중에 사물에 관해 속마음의 의견을 결코 진정으로 표시하지 않았지맘,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그리고 자기의 역량을 보이지 않고서도 무방한 어떤 물적인 상세를 제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는 요리 만드는 법, 어느 화가의 생년월일, 또는 사망 연월일, 그 화가의 작품 목록 따위에 매우 정확하였다. 때로는, 기어이, 어느 작품이나 어느 사람의 인생관에 대해서 의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럴 때는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에 전혀 집착하고 있지 않은 듯, 자기 말에 비꼬는 투를 가미하였다. 그런데 어떤 유의 병약자들에게는, 그들이 도착한 어느 고장, 다른 섭생법, 때로는 우발적인 동시에 신비스러운 기관의 변화로 갑자기 그들의 병이 후퇴해가는 것처럼 보여, 그 때문에 아주 다른 생활이 뒤늦게 시작된다는 뜻하지 않은 가능성에 직면하는 일이 있었는데, 마치 그런 사람들처럼, 스완은 그가 들은 바 있는 악절의 기억 속에, 혹은 다시 한 번 나타나지나 않을까 보려고 연주해 달라고 했던 어떤 소나타 속에, 그런 눈에 보이지 않은 실재 중의 하나의 현존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런 실재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둔지 오래였으나, 마치 그가 괴로워하던 마음의 가뭄 위에 일종의 친화적인 영향을 가져다 준 것처럼, 그는 그런 실재에 일생을 바치고 싶은 욕구와 거의 열기 같은 것을 새로 느꼈다. 그러나 들은 것이 누가 작곡한 것인지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고, 그것을 얻으려고 해도 얻을 수 없어서 결국 잊어버리고 말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제2부 스완의 사랑
마르셀 프루스트, 김창석 옮김, 국일미디어



 
2012-06-13
'날씨가 완전히 풀려 있었고 해가 우리 등 뒤에 비추고 있어서, 아샤의 등에 대보았을 때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야기 도중 아샤가 전차에 뛰어오르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전차는 놓쳐버렸다. 우리는 매우 붐비는 극장 앞 광장에 서 있었다. 그녀에 대한 불만과 그녀를 향한 사랑이 내 속에서 바람처럼 빠르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전차승강대에서 날 내려다보며 내게 작별인사를 했고 난 뒤에 남아 그녀를 따라 그녀에게 뛰어올랐어야 했던건 아니었는지 고민하며 그렇게 서 있었다.'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Walter Benjamin, 김남시 옮김, 그린비



 
2012-06-13
'언어만 있고 사물이 없는 글을 짓지 말 것'
이태준 <문장강화>



 
2012-06-12
'책이 예술작품이 되기 전에 우리가 그것을 붙잡을 수 있다면? 마치 아샴 언덕을 올라갈 때처럼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따끈할 때 붙잡을 수 있다면. 물론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언어의 과정은 느리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멈춰서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또 채워 넣어야 할 문장의 틀이 있다.'
로드멜 1926년, Virginia Woolf



 
2012-06-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스완네 집 쪽으로 2
마르셀 프루스트
김창석 옮김
국일미디어



 
2012-06-09
김목인의, 음악가 자신의 노래,처럼
애니메이터 자신의 애니메이션.



 
2012-06-09
자꾸 뭔가 나타났다가 자세히 보려고 하면 사라진다. 손을 뻗으려고 하면 없고 스케치북을 펴면 그릴게 없다. 그것이 가장 자주 나타나는 건 얼핏 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진이나 그림, 책이나 웹페이지를 넘기다가 이리저리 조합을 뒤섞어 잘못 이해한 글 속.




 
2012-06-08
노래는 참.
영상을 본다고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는데
불을 끄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면
노래하는 사람이랑 개인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 같다.
목소리,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그림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2012-06-06
저의 생활 방식은 단지 글 쓰는 일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변화를 겪게 된다면 오직 글 쓰는 일에 가능한 한 좀더 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시간은 짧고, 저의 힘은 미약하여 사무실은 끔찍하고, 집은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름답고 반듯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면 요령있게 헤쳐나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시간을 성공적으로 잘 분할하는 요령에 대해 느끼는 만족감은, 원래 쓰려고 했던 것보다 씌여진 글에서 피로감이 훨씬 더 분명히 드러날 때 느끼는 영원한 비참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참기 어려운 허약함 때문에 지난 며칠 동안 중단되기는 했지만 한 달 반 전부터 저의 시간표는 이렇습니다. 여덟시부터 두시 아니면 두시 삼십분까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세시나 세시 반까지 점심, 그때부터 일곱시 반까지 침대에서 잠자기(대부분 시도일 뿐입니다. 일주일 내내 잠 속에서 유고 연방인 몬테네그로 거주민만 보았습니다. 그 꿈은 아주 복잡한 의상을 세세하고 명료하게 보여주어 불쾌한 두통만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십 분 간 창문을 열어놓고 벌거벗은 채 체조하기, 한 시간 동안 산책하는데 혼자서 하거나 막스와 함께 아니면 다른 친구들과 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가족들과 저녁 식사(저는  세 명의 누이동생이 있는데 하나는 결혼했고 다른 하나는 약혼을 했습니다. 미혼인 누이동생은 다른 누이동생들에 대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가장 사랑하는 누이동생입니다) 그리고 열시 반까지(그러나 흔히 열한시 반까지) 앉아 글을 씁니다. 체력과 의욕과 행운에 따라 한시, 두시, 세시까지 쓴 적도 있고 한 번은 아침 여섯시까지 쓴 적도 있습니다. 다시 모든 긴장을 피하려고 위에서처럼 체조를 한 뒤 몸을 씻고는 가벼운 가슴의 통증과 경련하는 배의 근육과 함께 잠자리에 듭니다. 잠들려고 모든 시도를 해보지만 불가능합니다. 잠들 수가 없습니다(K씨는 꿈을 꾸지 않는 잠을 원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일을 생각하고 다음 날 그대의 편지가 올 것인지, 몇 시에 올 것인지 명확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밤은 깨어 있거나 아니면 잠들지 못하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일 제가 이런 상황에 대해 그대에게 상세히 쓴다 해도 또 그대가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저는 결코 이야기를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아침에 사무실에서 기진맥진한 채 일을 시작하려는 것이 특별히 놀랄 일도 아닙니다. 타자수에게 가기 위해 늘 지나가는 복도에 서류와 인쇄물 같은 것들을 나르는 들것이 있습니다.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들것이 유독 나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Nr.12 1912년 11월 1일
카프카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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