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2-06-28
생활이 복잡해지고 있다.
그래봐야 남들이 보기엔 심심하기 짝이 없는 삶이겠지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지만 하루는 짧다.
잠을 좀 줄이고 싶지만 안 돼.
어린이도 아니고 나는 왜 여덟시간 아홉시간씩 자는 거지.



 
2012-06-25
개와 살기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서는 개가 잠깐 다른 곳에 가 있으면 그 시간이 정말 허전하고 어색했다.
개와 있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버린 지금은 오히려 개가 없는 때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렇지 않고, 평소처럼 어딘가 구석에서 소리 없이 누워있을 거라고 나도 모르게 여기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2012-06-22
두 번의 죽음과 세 번의 탄생에 대하여.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로베르 브레송




 
2012-06-21


카프카의 편지





 
2012-06-21
벽보부착금지!
작가의 기법에 관한 13가지 명제
Ⅰ. 비교적 큰 작품을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도록 하고, 하루 작업량을 끝낸 뒤에는 나중에 이어질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
Ⅱ. 원한다면 이미 이룩해 놓은 것에 관해 이야기해도 좋지만 집필을 하는 동안만큼은 이미 쓴 것을 소리내어 읽지 말 것. 이미 써놓은 것을 읽으면서 흡족해하면 템포가 더뎌지기 때문이다. 이 규칙을 준수한다면 전달하고 싶은 바람이 더 커짐으로써 결국 이것이 작품을 완성하는 추동력이 된다.
Ⅲ. 작업환경을 조성할 때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도록 할 것. 맥빠진 소음 속에서 반쯤 쉬어가면서 하는 작업은 품격을 떨어뜨린다. 그에 반해 피아노 연습곡 소리나 사람들이 일하면서 지르는 소리들은 유난히 고요한 밤의 정적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밤의 정적이 내면의 귀를 날카롭게 만들어준다면 피아노 연습곡을 치는 소리와 일하는 사람들의 소리는 밖에서 들리는 기괴한 소음들까지도 자신 속에 파묻어버릴 수 있을 풍부한 어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판가름할 시험대가 된다.
Ⅳ. 아무 도구나 사용하지 않도록 할 것. 특정한 종이, 잉크를 좀스럽게 보일 정도로 고집하는 태도가 도움이 된다. 사치를 추구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도구들을 풍부하게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Ⅴ. 어떠한 생각도 자기도 모르게 흘려보내지 말 것이며, 외국인 등록일을 담당하는 관청처럼 자신의 노트를 엄격히 관리할 것.
Ⅵ.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펜을 뻣뻣하게 굴릴 것. 그러면 펜대는 그 영감을 마치 자석의 힘처럼 끌어당길 것이다. 착상이 떠오를 때 그것을 적는 것을 침착하게 주저하면 할수록 그 착상은 그만큼 더 잘 익어서 품에 들어올 것이다. 말은 생각을 정복하지만 글은 생각을 지배한다.
Ⅶ. 아무런 착상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글쓰기를 그만두지 말 것. (식사시간이라든지 약속과 같이) 지켜야 할 어떤 일정이 있다든지, 아니면 작품을 마친 경우에만 글쓰기를 중단하는 것이 문필가가 명예를 걸고 지켜야 할 계율이다.
Ⅷ. 영감이 떠오르지 않거든 이미 써놓은 것을 깨끗하게 정서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 그러다보면 직감이 깨어난다.
Ⅸ. 글쓰기를 하루도 거르지 말라-그렇지만 몇 주씩 거를 수는 있다.
Ⅹ. 한 번이라도 저녁부터 이튿날 훤하게 날이 밝을 때까지 앉아있던 적이 없는 작품일랑 결코 완전한 작품으로 여기지 말 것.
Ⅺ. 작품의 결미 부분은 평소의 작업 공간에서 쓰지 말 것. 그 공간에서 결말을 완성할 용기가 나지 않을 테니까.
Ⅻ. 집필의 단계 : 사고-문체-글. 정서(正書)의 의미는 글을 쓸 때 서예를 할 때처럼 정성을 글씨에만 쏟는 데 있다. 사고는 영감을 죽이고, 문체는 그 사고를 묶으며, 글은 그 문체를 보상해준다.
Ⅷ. 작품은 구상의 데스마스크(Totenmaske)다.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도서출판 길, 김영옥 , 윤미애 , 최성만 옮김

 
2012-06-21
C와 E와 영사관에서 보낸 직원 등이 마중 나왔다. C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E 역시. 그러나 이 난장판 속에서 L과 D 부인과  R과의 이별은 짧고 싸늘했다.
피곤하다. 독감이 다시 왔다. 뉴욕이 첫 본때를 보이는지 두 다리가 휘청거린다. 첫눈에 본 인상은 비인간적이고 흉한 도시. 하지만 인상이란 바뀌기 마련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작은 일들이다. 가령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 장갑을 끼고 있고 네거리에서는 교통경찰 없이도 교통법규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것 등,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잔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사람들이 모두 다 무슨 시리즈물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는 것. 저녁에  피곤하고 열이 나는 몸으로 택시를 타고 브로드웨이를 통과하다가 나는 한바탕 일루미네이션의 홍수에 문자 그대로 아연실색했다. 5년간의 어둠에서 막 벗어난 참인 나에게 이 강렬한 불빛의 대향연은 처음으로  새로운 대륙에 와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카멜 담배를 광고하는 15미터짜리 거대한 광고판. 입을 커다랗게 벌린 G.I가 '진짜' 연기를 뻐금뻐금 뿜어내고 있다. 온통 노랗고 빨간 색 천지다) 나는 몸과 마음이 아파 자리에 눕는다. 그러나 이틀 후면 생각이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Albert Camus, 여행일기, 미국(1946년 3월~5월)
책세상, 김화영 옮김

(5년 간의 어둠은 2차 대전 때 파리가 나치에 점령되었던 때를 이야기함)




 
2012-06-20
마찬가지로, 한 악절에 대한 이런 애착은, 스완의 몸 안에 일종의 젊어질 가능성을 열 것이 틀림없는 성싶었다. 오래 전부터 그는 삶을 한 이상에 지향하기를 단념하고, 나날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에 그쳐서, 꼬집어서 그렇다고 명확히 마음속으로 말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죽을 때까지 그런 삶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신 속에 고상한 이상을 품지 않게 된 그는, 그런 고상한 이상의 실재를 믿는 것을 그만둔 지 오래였는데, 또항 그 실재를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못하였다. 따라서 그는 하찮은 사상, 사물의 본질에 무관심으로 있을 수 있는 사상 속으로 몸을 피하는 습관이 들어 있었다. 사교계에 출입하는 여하로 행실의 좋고 나쁨이 정해진다고 생각해 본 일도 없는 대신에, 만약 초대를 승낙했다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방문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명함을 놓고 와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담소 중에 사물에 관해 속마음의 의견을 결코 진정으로 표시하지 않았지맘,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그리고 자기의 역량을 보이지 않고서도 무방한 어떤 물적인 상세를 제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는 요리 만드는 법, 어느 화가의 생년월일, 또는 사망 연월일, 그 화가의 작품 목록 따위에 매우 정확하였다. 때로는, 기어이, 어느 작품이나 어느 사람의 인생관에 대해서 의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럴 때는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에 전혀 집착하고 있지 않은 듯, 자기 말에 비꼬는 투를 가미하였다. 그런데 어떤 유의 병약자들에게는, 그들이 도착한 어느 고장, 다른 섭생법, 때로는 우발적인 동시에 신비스러운 기관의 변화로 갑자기 그들의 병이 후퇴해가는 것처럼 보여, 그 때문에 아주 다른 생활이 뒤늦게 시작된다는 뜻하지 않은 가능성에 직면하는 일이 있었는데, 마치 그런 사람들처럼, 스완은 그가 들은 바 있는 악절의 기억 속에, 혹은 다시 한 번 나타나지나 않을까 보려고 연주해 달라고 했던 어떤 소나타 속에, 그런 눈에 보이지 않은 실재 중의 하나의 현존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런 실재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둔지 오래였으나, 마치 그가 괴로워하던 마음의 가뭄 위에 일종의 친화적인 영향을 가져다 준 것처럼, 그는 그런 실재에 일생을 바치고 싶은 욕구와 거의 열기 같은 것을 새로 느꼈다. 그러나 들은 것이 누가 작곡한 것인지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고, 그것을 얻으려고 해도 얻을 수 없어서 결국 잊어버리고 말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제2부 스완의 사랑
마르셀 프루스트, 김창석 옮김, 국일미디어



 
2012-06-13
'날씨가 완전히 풀려 있었고 해가 우리 등 뒤에 비추고 있어서, 아샤의 등에 대보았을 때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야기 도중 아샤가 전차에 뛰어오르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전차는 놓쳐버렸다. 우리는 매우 붐비는 극장 앞 광장에 서 있었다. 그녀에 대한 불만과 그녀를 향한 사랑이 내 속에서 바람처럼 빠르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전차승강대에서 날 내려다보며 내게 작별인사를 했고 난 뒤에 남아 그녀를 따라 그녀에게 뛰어올랐어야 했던건 아니었는지 고민하며 그렇게 서 있었다.'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Walter Benjamin, 김남시 옮김, 그린비



 
2012-06-13
'언어만 있고 사물이 없는 글을 짓지 말 것'
이태준 <문장강화>



 
2012-06-12
'책이 예술작품이 되기 전에 우리가 그것을 붙잡을 수 있다면? 마치 아샴 언덕을 올라갈 때처럼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따끈할 때 붙잡을 수 있다면. 물론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언어의 과정은 느리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멈춰서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또 채워 넣어야 할 문장의 틀이 있다.'
로드멜 1926년, Virginia Wo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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