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2-05-14


Nr. 156
1913년 1월 29일에서 30일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감기에 민감해진 것은 지난 여름 이래의 새로운 경험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피부를 단련하려고 천 번이나 마사지를 했는데도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감기에 걸립니다. (물론 이 감기에 대한 척도가 될 수는 없지만) 그대가 즐기는 뜨거운 차를 마시지 않은 탓일까요? 그대는 모르겠지만 한때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없는 것을 급작스러운 파멸을 예고하는 중대한 징조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급작스러운 파멸을 항상 확신했지요. 그런 식으로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은 수많은 징조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점점 인간 공동체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였지요. 단지 사소한 것들이 앞뒤가 맞지 않았고 모든 두려움이 증명된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희망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누군가가 잠시 옆을 쳐다보면 벌써 배척받은 듯한 느낌이 들고 상대방의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그러한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막스에게 그것이 나를 화나게 만들며, 나를 사랑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 누구도 내 곁에 앉지 않고, 내 눈을 쳐다보며 용기를 북돋아주려고도 하지 않으며, 나를 껴안지도 않고(사랑 때문이라기보다는 절망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나를 구원해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두 사람은 프라하 근교의 아름다운 지역인 도브리코비크로 소풍을 가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오후 내내 비가 내려서 막스의 방에 있는 소파에 누워(우리는 방 두 개를 빌렸습니다. 저는 방을 따로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이것을 용기라고 여기겠지만 소심함에 불과합니다. 바닥에서 자는 사람은  밑으로 떨어질 수 없듯이 혼자 자는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멍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막스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눈을 뜨고 싶지도 않았지요.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노벨레 <체코 여인>을(이 작품을 그대는 아마도 나중에 <베를리너 타게스블라트>에서 읽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하릴없이 나무 지붕과 베란다에 요란하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었지요. 마침내 막스는 독서를 끝냈고(덧붙이자면 그는 펜이 종이 위에서 저절로 움직일 정도로 글도 빨리 썼습니다) 나는 일어나 몸을 약간 폈습니다. 다시 긴 의자에 누워 멍한 상태로 있기 위한 준비 운동에 지나지 않았지만요. 몇 년을, 아니 더 정확히 회상해보면 끝없이 많은 날들을 그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대여, 이와는 정반대로 아름다운 나날들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그대의 손을 내밀어주세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대의 손을 잡을 엄두가 나지 않지만.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프란츠 카프카, 변난수, 권세훈 옮김, 솔











 
2012-05-14

카프카의 편지




 
2012-05-13


1권 다시 읽고 새 번역본 읽기 시작해야지 하고 무심히 꺼냈는데,
아, 다시 두근두근하며 읽고 있다.




 
2012-05-13
다만 이해가 간 것은, 르그랑댕이 서당, 달밤과 젊음 밖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성관을 소유한 사람들을 매우 좋아하였고, 그래서 그들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언짢게 하지나 않을까, 자신의 친구 중에 속물이나 공증인 또는 증권거래소 직원의 아들 따위가 있는 것이 발각되지나 않을까 겁내어, 그런 사실이 어차피 발각될 것 같으면, 자기가 없는 때, 귀에 들리지 않는 곳, '결석 재판'이기를 바라 마지 않았다. 그는 속물이었던 것이다.
(중략)
이제 집에서는, 르그랑댕 씨가 어떤 위인인지를 잘 알게 되어, 우리와 그와의 교제는 몹시 소원해지고 말았다. 르그랑댕이 실토하지 않았던 죄로, 그가 끊임없이 용서 못 할 죄라고 부르고 있던 속물 근성을, 현행범으로서 목격할 때마다 어머니는 재미있어했다.
(중략)
"내가 말씀드리려고 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하고 수목처럼 고집 세게, 하늘처럼 무자비하게, 아버지는 가로막았다. "내가 여쭈어 본 것은, 집의 장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경우라든가, 쓸쓸한 고장에서 허전한 느낌이 드시지 않게 해드리는 경우를 위하여, 혹시나 그곳에 아시는 분이 있나 여쭈어 본 건데요?"
"어디나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나는 다들하고 아는 사이이고, 동시에 아무하고도 아는 사이가 아닙니다"하고 르그랑댕은 호락호락 항복하지 않고 대답했다. "사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모릅니다. 한데 그곳에서는 사물 자체가 인간과 비슷하죠. 드문 인간, 미묘한 본질을 가진, 삶에 배신당한 인간과 비슷합니다. 해안의 벌벽 위, 길 가장자리에서 당신이 맞부딪치는 것은 어쩌면 때로는 성, 아직 장밋빛 황혼, 때마침 금빛에 달이 떠오르고 몇몇의 쪽배가 얼룩덜룩한 수면에 물무늬를 그으면서 돛대에 신호기를 울리고 고물에 국기를 달고 돌아오고 있는 황혼에, 그 성은 자기의 고민을 하소연하려고 멈추고 있는 거죠. 또 때로는 그것이 간소한, 오히려 지저분한 외딴집, 행복과 환멸의 영구히 풀리지 않는 어떤 비밀을 온 인간의 눈에 숨기고 있는 듯한 소심한 모양이지만 소설적으로 보이는 외딴집일 때도 있겠지요. 이 진실성 없는 지방은" 하고 그는 마키아벨리적인 교활성과 더불어 덧붙였다.
(중략)
아버지는 그 후 서너 번 그와 만나, 이야기를 다시 꺼내, 그를 질문으로 괴롭혔지만 결국 헛수고였다. 박식한 사기꾼이 양피지 고문서를 위조하기 위해, 수고와 지식을 기울이면서도, 그 100분의 1의 수고만으로도 좀더 돈벌이가 되는, 그리고 명예로운 지위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듯이 르그랑댕 씨는 우리가 더욱 집요하게 질문했다면 마침내는, 라 바스 노르망디 지방 풍경의 온 윤리학과 천공의 온 지리학을 구성하고 말았을 테지만, 발베크에서 5리 가량 떨어진 곳에 그의 누이동생이 살고 있다고 실토하는 것도, 소개장을 써 주는 데 불과한 의무도 아꼈을 것이다. 그런 소개장을 우리가 이용할 리가 만무하다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다면 - 할머니의 성격을 알고 있는 그의 경험상으로 보아 당연히 그것이 있었을 텐데 - 소개장 하나를 그처럼 겁내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김창석 옮김, 국일미디어



 
2012-05-12
우리는 역전의 큰 거리를 통해서 귀로에 오르곤 하였는데, 이 근방에서 이 시가에서 가장 쾌적한 별장이 즐비하였다. 뜰마다 달빛이 화가 위베르 로베르처럼, 그 흰 대리석의 부서진 계단, 분수, 방긋이 열려 있는 철책에 빛을 뿌리고 있었다. 달빛은 전신국을 어둠 속에 담그고, 거기에 이제는 반쯤 부서진 기둥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 기둥에 영원한 폐허미가 간직되어 있었다. 나는 다리를 끌고 있었다. 졸려 쓰러질 것 같았다. 주위에서 풍기는 보리수 향기가, 큰 노고 끝에만 차지할 수 있으면서도 수고할 값어치가 없는 상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철책에서, 우리의 적막한 발소리에 깨어난 개들이 번갈아 짖어 댔는데, 지금도 이따금 저녁 무렵에 그 소리가 들리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역전의 큰 거리가(그 자리에 콩브레 공원을 만들었을 때) 물러났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어디에서나,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오고, 그것이 서로 답하기 시작하면, 그 역전 큰 거리가, 그 보리수나, 달빛에 환한 그 보도와 함께 생각나기 때문이다.
갑자기 아버지는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어머니에게 묻는다. "여기는 어딜까?" 걷느라 지쳤으나, 아버지가 자랑인 어머니는, 어딘지 전혀 모르겠다고 상냥하게 실토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하고 웃는다. 그때, 아버지는 저고리 주머니에서 그 열쇠와 함께 꺼내기라도 한 듯이 우리 앞에 서 있는 우리 집 뜰의 뒷문을 가리킨다, 생테스프리 거리의 한 모퉁이와 더불어, 모르는 여러 길의 끝에 우리를 맞이하러 와 있는 뒷문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감탄조로 말한다. "당신은 비상하세요!" 그리고 이 순간부터, 나는 한 걸음도 걷지 않아도 된다. 이 뜰에서는 지면이 대신 걸어 준다, 오래 전부터 나의 행위에 의식적인 주의를 동반하지 않게 된 이 뜰에서는. '습관'이 나를 그 팔 안에 안아 주고, 그리고 나를 갓난애처럼 침대까지 옮겨 주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김창석 옮김, 국일미디어




 
2012-04-23

그리고,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옆 방에 세들어 살던 사람들이 나가고 그 방을 여동생과 내가 쓰게 되었다.  미닫이 문으로 두 칸으로 나누어지는 방이었는데 미닫이문을 떼내 길쭉한 하나의 방이 되었다. 세를 줄 수도, 방으로 쓸 수도 있게 하려고 그랬는지 거실로도 문이 있고 밖으로 나가는 문도 따로 있었고 연탄 아궁이가 있는 작은 부엌도 딸려 있었다. 우리가 쓰게 되면서 밖으로 나가는 문과 부엌으로 나가는 문은 막아서 벽으로 만들었다. 이 방의 크기는 물론 집의 전체적인 크기도 지금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 때부터 우리집은 언제나 방이 세 개였고 이 방에서부터 몇 년 전 내가 나와서 살 때까지 내내 여동생과 나는 같은 방을 썼다.


 
2012-04-22
때문에 글을 쓸 때 혼자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글을 쓸 때 주위가 조용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밤이 너무 짧아 맘껏 쓸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습니다. 갈 길은 먼데 쉽게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더욱 두려움을 - 어떤 강요나 꾐이 없어도 - 느끼며 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그런 마음은 나중에 심하게 벌을 받습니다)이 들지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입맞춤을 받는다면 얼마다 더 그렇겠습니까! 자주 생각해보았는데 내게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은 글쓰는 도구와 램프를 갖고 밀폐된 넓은 지하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갖다주는데, 내 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 지하실 밖 가장 먼 방에다 내려놓습니다. 잠옷을 입고 음식 있는 데로 가는, 아치형의 천장이 있는 복도가 유일한 산책길이지요. 그러고는 천천히 책상으로 돌아와, 찬찬히 먹고 나서 곧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무엇을 써야 하지요! 얼마나 싶은 곳에서부터 밖으로 낚아챌까요. 힘들이지 않고! 극도로 집중하면 힘이 든다는 것도 잊어버리지요. 문제는 내가 그것을 오래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실수라도 한 번 일어난다면 나는 대단한 광기를 부릴 것입니다.

Nr. 137 1913년 1월 14일에서 15일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2012-04-22
조금 더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2012-04-20

방 이야기.
내가 살았던 방 중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방은 광주 중흥동 집의 부엌 옆에 있던 작은 방이다. 그 방에서, 얼마동안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간, 삼남매가 같이 지냈다. 방에서 어떻게 지내고 어떻게 누워서 잠을 잤는지의 기억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마 국민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그 방을 썼던 것 같다. 오빠는 의자가 있는 큰 책상이 있었지만 나와 여동생은 그 방에서 작은 앉은뱅이 책상을 쓴 것이 기억나니까.
그 집은 찻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서 두 번째 있던 작은 이층집이었는데 내 기억이 시작되는 때부터 나는 그 집에 살고 있었다. 그 이전에 살던 집들은 엄마의 이야기속에만 존재한다. 중학교 2학년 말 서울로 이사올 때까지 살던 그 집은 우리가 이사한 후 바로 헐리고 삼사층짜리 상가건물이 들어섰다.



 
2012-04-01
"그것은 끝없는 혼돈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무언가 보기 위해선 바짝 다가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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