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2-06-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스완네 집 쪽으로 2
마르셀 프루스트
김창석 옮김
국일미디어



 
2012-06-09
김목인의, 음악가 자신의 노래,처럼
애니메이터 자신의 애니메이션.



 
2012-06-09
자꾸 뭔가 나타났다가 자세히 보려고 하면 사라진다. 손을 뻗으려고 하면 없고 스케치북을 펴면 그릴게 없다. 그것이 가장 자주 나타나는 건 얼핏 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진이나 그림, 책이나 웹페이지를 넘기다가 이리저리 조합을 뒤섞어 잘못 이해한 글 속.




 
2012-06-08
노래는 참.
영상을 본다고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는데
불을 끄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면
노래하는 사람이랑 개인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 같다.
목소리,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그림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2012-06-06
저의 생활 방식은 단지 글 쓰는 일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변화를 겪게 된다면 오직 글 쓰는 일에 가능한 한 좀더 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시간은 짧고, 저의 힘은 미약하여 사무실은 끔찍하고, 집은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름답고 반듯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면 요령있게 헤쳐나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시간을 성공적으로 잘 분할하는 요령에 대해 느끼는 만족감은, 원래 쓰려고 했던 것보다 씌여진 글에서 피로감이 훨씬 더 분명히 드러날 때 느끼는 영원한 비참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참기 어려운 허약함 때문에 지난 며칠 동안 중단되기는 했지만 한 달 반 전부터 저의 시간표는 이렇습니다. 여덟시부터 두시 아니면 두시 삼십분까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세시나 세시 반까지 점심, 그때부터 일곱시 반까지 침대에서 잠자기(대부분 시도일 뿐입니다. 일주일 내내 잠 속에서 유고 연방인 몬테네그로 거주민만 보았습니다. 그 꿈은 아주 복잡한 의상을 세세하고 명료하게 보여주어 불쾌한 두통만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십 분 간 창문을 열어놓고 벌거벗은 채 체조하기, 한 시간 동안 산책하는데 혼자서 하거나 막스와 함께 아니면 다른 친구들과 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가족들과 저녁 식사(저는  세 명의 누이동생이 있는데 하나는 결혼했고 다른 하나는 약혼을 했습니다. 미혼인 누이동생은 다른 누이동생들에 대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가장 사랑하는 누이동생입니다) 그리고 열시 반까지(그러나 흔히 열한시 반까지) 앉아 글을 씁니다. 체력과 의욕과 행운에 따라 한시, 두시, 세시까지 쓴 적도 있고 한 번은 아침 여섯시까지 쓴 적도 있습니다. 다시 모든 긴장을 피하려고 위에서처럼 체조를 한 뒤 몸을 씻고는 가벼운 가슴의 통증과 경련하는 배의 근육과 함께 잠자리에 듭니다. 잠들려고 모든 시도를 해보지만 불가능합니다. 잠들 수가 없습니다(K씨는 꿈을 꾸지 않는 잠을 원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일을 생각하고 다음 날 그대의 편지가 올 것인지, 몇 시에 올 것인지 명확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밤은 깨어 있거나 아니면 잠들지 못하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일 제가 이런 상황에 대해 그대에게 상세히 쓴다 해도 또 그대가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저는 결코 이야기를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아침에 사무실에서 기진맥진한 채 일을 시작하려는 것이 특별히 놀랄 일도 아닙니다. 타자수에게 가기 위해 늘 지나가는 복도에 서류와 인쇄물 같은 것들을 나르는 들것이 있습니다.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들것이 유독 나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Nr.12 1912년 11월 1일
카프카의 편지


 
2012-05-31
Nr.181
1913년 2월 18일에서 19일
도와주세요. 내가 지난 며칠 동안 저지른 것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아 주세요. 별다른 일은 일어니지 않았습니다. 내 외침을 듣지 못한 그대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의식 속에 자리잡은 이 불안이 나를 헤매게 합니다. 저는 무책임한 것을 쓰거나 아니면 언젠가 그러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문장들이 펜 주위에 숨어 있다가 그 끝을 휘감아 편지 속으로 이끌려 들어옵니다. 말하거나 쓰고 싶은 것을 그대로 표현할 힘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어의 허약함에 대해 암시한다거나 말의 한계와 감정의 무한성을 비교하는 작업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무한한 감정은 가슴 속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에서도 무한합니다. 내면에서 명확한 것은 말에서도 거부하기 힘듭니다. 때문에 결코 언어를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말을 마주하고 보면 자주 걱정이 앞섭니다. 말이 어떤 방식으로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이처럼 격정적이고 이리저리 뒤얽히고 무감각한 내면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지만 말이 우리 내면에서 솟아 나올 때의 비밀스러운 과정에서 자기 인식이 빛을 보게 됩니다. 자기 인식이 여전히 숨겨져 있다 할지라도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그것은 멋지고도 놀라운 광경입니다.
내가 지난 시절 내뱉었던 혐오스러운 말에서 나를 지켜주세요. 그대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으며 어쨌든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세요. 지난번에 라스커-쉴러와 슈니츨러를 모욕하는 글을 적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옳았던가요!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내가 바닥에 누워 있는 심연 위를 천사가 되어 날아다닙니다. 막스가 칭찬하더군요! 그가 원래부터 내 책을 칭찬한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내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판단은 누군가가 그럴 마음이 있다면 검증해보아야겠지요. 막스는 누구보다도 나를 칭찬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누가 나를 검증할 수 있겠습니까? 내 자신을 의미하는 지리멸렬한 상태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강력한 손을 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 때 말하는 것은 정확한 의견도 아닐 뿐더라 순간적인 의견도 아닙니다. 내 자신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불명확한 것들이 뒤엉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한 거부감을 정확히 규명할 수도 없고, 완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대여, 만일 그대가 이러한 혼란을 겪는다면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직접 체험하는 사람보다 구경꾼에게 더 슬프고 거북한 일이 아닐까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슬프고 거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한지 상상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고백하건대, 내가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적고 있는 동안 말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2012-05-23
단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 받았다.
결과 기다리며 초조해했던 것과 달리 의외로 뭔가 밍밍하고 김빠지는 기분.
아무튼, 다시 시작.
그것도, 다른 애니메이션도.



 
2012-05-18
그리운 마음이 있어 너를 볼 때면
허전한 마음이 있어 그 곳에 서면

언니네이발관을 다시 듣고 있다.
주로 듣는 것은 1,2집.
언니네이발관과 작업을 하기로 하고 이석원씨를 만나고 할 때는 어쩐지 음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중간에 나왔던 5집 말고는. 사실 예전 음반들을 별로 안 듣게 된 시점이기도 했지만, 가수 개인을 만나는 것이 음악에서는 좀 멀어지게 하는 일인가보다 했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음악이 들리는구나.
최근에 만든 것보다 예전 것이 좋다는 건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게 하는 말일까? 내 경우를 생각하면 그렇지는 않은데.
아무튼, 1,2집.



 
2012-05-18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

(그런데 모파상의 글이 인용된 부분 번역이 어색하고 모호하다)

 
2012-05-17
오후에 시골길을 헤매지 돌아다니지 않았더라면 책상에 앉아 심연에 가라앉은 나의 의식을 단숨에 정점으로 솟아오르게 할 만한 글을 썼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평소대로 잠자리에 들 것입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아 내 자신과 그대에게, 그리고 세계에 짐이 될 것입니다.
Nr.169 1913년 2월 9일에서 10일
카프카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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