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2-05-12
우리는 역전의 큰 거리를 통해서 귀로에 오르곤 하였는데, 이 근방에서 이 시가에서 가장 쾌적한 별장이 즐비하였다. 뜰마다 달빛이 화가 위베르 로베르처럼, 그 흰 대리석의 부서진 계단, 분수, 방긋이 열려 있는 철책에 빛을 뿌리고 있었다. 달빛은 전신국을 어둠 속에 담그고, 거기에 이제는 반쯤 부서진 기둥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 기둥에 영원한 폐허미가 간직되어 있었다. 나는 다리를 끌고 있었다. 졸려 쓰러질 것 같았다. 주위에서 풍기는 보리수 향기가, 큰 노고 끝에만 차지할 수 있으면서도 수고할 값어치가 없는 상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철책에서, 우리의 적막한 발소리에 깨어난 개들이 번갈아 짖어 댔는데, 지금도 이따금 저녁 무렵에 그 소리가 들리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역전의 큰 거리가(그 자리에 콩브레 공원을 만들었을 때) 물러났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어디에서나,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오고, 그것이 서로 답하기 시작하면, 그 역전 큰 거리가, 그 보리수나, 달빛에 환한 그 보도와 함께 생각나기 때문이다.
갑자기 아버지는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어머니에게 묻는다. "여기는 어딜까?" 걷느라 지쳤으나, 아버지가 자랑인 어머니는, 어딘지 전혀 모르겠다고 상냥하게 실토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하고 웃는다. 그때, 아버지는 저고리 주머니에서 그 열쇠와 함께 꺼내기라도 한 듯이 우리 앞에 서 있는 우리 집 뜰의 뒷문을 가리킨다, 생테스프리 거리의 한 모퉁이와 더불어, 모르는 여러 길의 끝에 우리를 맞이하러 와 있는 뒷문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감탄조로 말한다. "당신은 비상하세요!" 그리고 이 순간부터, 나는 한 걸음도 걷지 않아도 된다. 이 뜰에서는 지면이 대신 걸어 준다, 오래 전부터 나의 행위에 의식적인 주의를 동반하지 않게 된 이 뜰에서는. '습관'이 나를 그 팔 안에 안아 주고, 그리고 나를 갓난애처럼 침대까지 옮겨 주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김창석 옮김, 국일미디어




 
2012-04-23

그리고,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옆 방에 세들어 살던 사람들이 나가고 그 방을 여동생과 내가 쓰게 되었다.  미닫이 문으로 두 칸으로 나누어지는 방이었는데 미닫이문을 떼내 길쭉한 하나의 방이 되었다. 세를 줄 수도, 방으로 쓸 수도 있게 하려고 그랬는지 거실로도 문이 있고 밖으로 나가는 문도 따로 있었고 연탄 아궁이가 있는 작은 부엌도 딸려 있었다. 우리가 쓰게 되면서 밖으로 나가는 문과 부엌으로 나가는 문은 막아서 벽으로 만들었다. 이 방의 크기는 물론 집의 전체적인 크기도 지금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 때부터 우리집은 언제나 방이 세 개였고 이 방에서부터 몇 년 전 내가 나와서 살 때까지 내내 여동생과 나는 같은 방을 썼다.


 
2012-04-22
때문에 글을 쓸 때 혼자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글을 쓸 때 주위가 조용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밤이 너무 짧아 맘껏 쓸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습니다. 갈 길은 먼데 쉽게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더욱 두려움을 - 어떤 강요나 꾐이 없어도 - 느끼며 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그런 마음은 나중에 심하게 벌을 받습니다)이 들지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입맞춤을 받는다면 얼마다 더 그렇겠습니까! 자주 생각해보았는데 내게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은 글쓰는 도구와 램프를 갖고 밀폐된 넓은 지하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갖다주는데, 내 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 지하실 밖 가장 먼 방에다 내려놓습니다. 잠옷을 입고 음식 있는 데로 가는, 아치형의 천장이 있는 복도가 유일한 산책길이지요. 그러고는 천천히 책상으로 돌아와, 찬찬히 먹고 나서 곧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무엇을 써야 하지요! 얼마나 싶은 곳에서부터 밖으로 낚아챌까요. 힘들이지 않고! 극도로 집중하면 힘이 든다는 것도 잊어버리지요. 문제는 내가 그것을 오래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실수라도 한 번 일어난다면 나는 대단한 광기를 부릴 것입니다.

Nr. 137 1913년 1월 14일에서 15일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2012-04-22
조금 더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2012-04-20

방 이야기.
내가 살았던 방 중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방은 광주 중흥동 집의 부엌 옆에 있던 작은 방이다. 그 방에서, 얼마동안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간, 삼남매가 같이 지냈다. 방에서 어떻게 지내고 어떻게 누워서 잠을 잤는지의 기억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마 국민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그 방을 썼던 것 같다. 오빠는 의자가 있는 큰 책상이 있었지만 나와 여동생은 그 방에서 작은 앉은뱅이 책상을 쓴 것이 기억나니까.
그 집은 찻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서 두 번째 있던 작은 이층집이었는데 내 기억이 시작되는 때부터 나는 그 집에 살고 있었다. 그 이전에 살던 집들은 엄마의 이야기속에만 존재한다. 중학교 2학년 말 서울로 이사올 때까지 살던 그 집은 우리가 이사한 후 바로 헐리고 삼사층짜리 상가건물이 들어섰다.



 
2012-04-01
"그것은 끝없는 혼돈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무언가 보기 위해선 바짝 다가가야만 합니다."




 
2012-03-30
Nr.118
1912년 12월 29일에서 30일
그대는 내 사진을 좋아하지 않듯이 내 책(<관찰>)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 단지 그대는 그 이야기에 익숙지가 않은 것뿐이니까요. 그 책은 정말 터무니없는 혼란, 아니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끝없는 혼돈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무언가 보기 위해선 바짝 다가가야만 합니다. ...... 어쨌든 아무도 그 책에 대해서는 어찌하 바를 모릅니다. 그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씀씀이가 큰 발행인이 나를 위해 희생했지만 완전히 허비한 수고와 돈이 나를 괴롭힙니다. 그것은 아주 우연한 출판이었지요.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2012-03-29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찍은 사진을 보면 요즘엔 이 사람은 언제부터 주름 가득한 자신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졌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20대 때의 얼굴이 진짜 자신의 얼굴인 것만 같아, 사진을 보면서 예전의 흔적을 찾을까?



 
2012-03-18
셋째, 저는 극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전반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곧 그대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슨 요일이었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극장 가기 전이나 후에 저녁 식사를 했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기분이 그런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지 등등 생각할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을 알지 못한다면 그대가 극장을 방문했다는 걸 아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저에게 그 모든 것에 대해 다 쓰는 것인 불가능하겠지요. 그렇다면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합니다.
Nr. 7 1912년 10월 24일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2012-03-16
새 애니메이션 준비 중.
어느 날은 이미 손에 잡힌 듯 선명해서 기분이 한없이 올라갔다가 다음날이 되면 허깨비처럼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서 우울하고 울고 싶다.

아, 사실은 단편이라는 형식으로는 안 만들고 싶었는데, 당분간은. 그래서 꼭 맞는 걸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꾸 틀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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