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2-03-30
Nr.118
1912년 12월 29일에서 30일
그대는 내 사진을 좋아하지 않듯이 내 책(<관찰>)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 단지 그대는 그 이야기에 익숙지가 않은 것뿐이니까요. 그 책은 정말 터무니없는 혼란, 아니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끝없는 혼돈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무언가 보기 위해선 바짝 다가가야만 합니다. ...... 어쨌든 아무도 그 책에 대해서는 어찌하 바를 모릅니다. 그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씀씀이가 큰 발행인이 나를 위해 희생했지만 완전히 허비한 수고와 돈이 나를 괴롭힙니다. 그것은 아주 우연한 출판이었지요.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2012-03-29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찍은 사진을 보면 요즘엔 이 사람은 언제부터 주름 가득한 자신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졌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20대 때의 얼굴이 진짜 자신의 얼굴인 것만 같아, 사진을 보면서 예전의 흔적을 찾을까?



 
2012-03-18
셋째, 저는 극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전반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곧 그대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슨 요일이었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극장 가기 전이나 후에 저녁 식사를 했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기분이 그런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지 등등 생각할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을 알지 못한다면 그대가 극장을 방문했다는 걸 아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저에게 그 모든 것에 대해 다 쓰는 것인 불가능하겠지요. 그렇다면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합니다.
Nr. 7 1912년 10월 24일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2012-03-16
새 애니메이션 준비 중.
어느 날은 이미 손에 잡힌 듯 선명해서 기분이 한없이 올라갔다가 다음날이 되면 허깨비처럼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서 우울하고 울고 싶다.

아, 사실은 단편이라는 형식으로는 안 만들고 싶었는데, 당분간은. 그래서 꼭 맞는 걸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꾸 틀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


 
2012-03-15
5. "가난은 수치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한 자를 욕보인다. 그들은 예전에는 타당했을지 모르나 이미 효력을 상실한 속담으로 그를 위로한다. 그러한 속담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가혹한 속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일거리가 있었던 때에는 흉작이나 그밖의 불운 때문에 닥친 가난은 모욕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짊어진, 수십만의 사람들을 얽어맨 지금의 이러한 궁핍은 모욕적인 것이다. 더러움과 구차함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만들어진 벽처럼 그들 위로 높이 솟아 있다. 누구나 자기 혼자서는 많은 것을 참아낼 수 있지만, 만약 짐을 짊어진 모습을 자신의 부인이 보거나 혹은 부인이 이를 감당하는 모습을 보면 수치심을 느낀다. 혼자 있는 사람은 많은 것을 참아도 무방하고 숨길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참아도 된다. 그러나 그 가난이 거대한 그림자처럼 그의 민족과 가정 위에 드리우는 경우에는 결코 가난과 평화협정을 맺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들 모두에게 가해진 모든 굴욕에 대해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이 더 이상 원한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반란의 오르막길을 닦게 되는 그날까지 자기 자신을 단련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극도로 두렵고 어두운 운명적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매일, 아니 매시간 신문의 논쟁거리로서 그럴싸한 온갖 원인과 결과를 들어 분석하는 데 그친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예속하고 있는 저 어두운 힘들을 그 안에서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사정이 이런 한 아무런 희망도 없다.
<일방통행로> 독일의 인플레이션을 가로지르는 여행

아, 지금 이야기인 것 같다.


 
2012-03-13
'무엇이 해결되었는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든 문제들은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는 벌채구역처럼 우리 뒤에 남겨진 게 아닌가? 우리는 그것을 아예 없애버리거나 아니면 잎을 쳐내 시야를 트이게 할 생각조차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서 그 벌채구역을 뒤에 남겨놓는다. 그래서 그곳은 멀리서도 보이긴 하지만 불분명하고 흐릿하게, 그만큼 더 불가사의하게 얽히고설킨 모습이다.'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2012-03-13


카프카의 편지.




 
2012-03-11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사랑하는 책.
대부분의 책은 새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할 때나 작업이 바쁠 때는 읽기가 힘든데 이 책은 그런 때 읽으면 마음 속 어딘가로 희미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다.
두고두고 펴볼 책.
처음 읽은 것은 2008년이다.

책 앞머리에,
'이 거리는 엔지니어로서
작가 속에 이 거리를 뚫은
아샤 라치스(Asja Lacis)의 이름을 따
아샤 라치스 거리로 불린다'





 
2012-03-11
KBS 1FM <밤의 실내악>도, <명연주 명음반>도 다시듣기가 된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2012-03-10
Nr.31
1912년 11월 15일
사랑하는 이여,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그대는 오늘, 토요일에도 편지 한 통 없이 나를 내버려두는군요. 바로 오늘,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 편지가 오리라 생각한 날입니다. 누가 완전한 편지를 원했나요. 그저 두 줄, 하나의 인사말, 하나의 봉투, 엽서 하나를 원했지요. 네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도(이 편지가 다섯번째입니다) 그대한테 단 한 줄의 편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어떻게 내가 그 긴 하루를 보내고, 일을 하고, 말하고, 또 사람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

Nr.34
1912년 11월 17일
그대가 보내는 모든 편지는 아무리 짧아도 나에게는 무한히 깁니다(맙소사, 언뜻 보기에 모든 것을 다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그대의 편지는 짧지 않습니다. 내가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 만 배나 깁니다). 그 편지를 서명까지 다 읽고 난 뒤 다시 처음부터 읽습니다. 그렇게 계속 반복합니다. 그러나 결국 편지에 종지부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때는 스스로 머리를 한 대 치고 싶습니다.
......

Nr.37
1912년 11월 18일
......
드디어 종소리가 나고 우편집배원이! 아, 집배원은 얼마나 친절하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요! 전보엔 그 어떤 나쁜 소식도 씌어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물론 아니었습니다. 사랑과 호의만이 담겨 있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진 채 내 앞에 놓여 있는 전보는 지금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격렬한 고통에서 행복으로 날아오를 때 사람들은 어디서 그 힘을 조달하고 어떻게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

Nr. 38
1912년 11월 19일
사랑하는 이여, 이것은 결코 비난이 아닙니다. 단지 설명에 대한 부탁입니다. 잘 알지 못해 슬픕니다. 수없이 편지를 보내는 우리의 이 미친 짓을 그만두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어제 그 일에 관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대에겐 내일 보내겠습니다. 편지 날짜를 변경하는 것은 서로 동의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전에 의논하고 통지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미칠 겁니다. 그대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그대는 나의 지난번 등기 편지를 금요일 오전에 받았고, 아니면 적어도 그 편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나 자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그런데도 그대는 토요일에야 그 편지에 답했고, 토요일 편지에서 그날 편지를 하나 더 쓰겠다고 하고는 하지 않았으며, 월요일에는 약속했던 두 통의 편지 대신 하나도 받지 못한 사실은요? 또 그대는 일요일이 지나는 동안 한 마디도 쓰지 않고 있다가 저녁에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편지를 쓰셨지요. 내가 아직도 행복해할 수 있는 정도에 한해서 말입니다. 내가 전보를 보내지 않았다면 월요일에도 편지를 하지 않았을 거고 결국 아무 편지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월요일 날자가 적힌 그대의 속달 편지가 내가 받은 유일한 편지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고 놀라운 것은 다음 사실입니다. 그대는 반나절이나 아팠는데도 한 주일 내내 연습 공연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그대는 아파도 토요일 밤에 춤추러 가고 아침 일곱시경 집에 돌아와 새벽 한시까지 안 자고 있다가 월요일 저녁엔 개인 무도회에 가시나요. 세상에, 무슨 삶이 그러합니까! 사랑하는 이여, 부디 설명을, 설명을 해주세요. 꽃과 책들은 잊어버리세요. 그것은 그저 나의 무력함일 뿐입니다.
프란츠

Nr.39
1912년 11월 20일
사랑하는 이여, 내가 그대에게 어떻게 했다고 나를 그렇게 괴롭히십니까? 오늘도 편지가 없습니다. 첫번째 우편 배달 때도, 두번째 배달 때도. 정말로 나를 괴롭히시는군요! 반면에 그대의 편지 한 통은 나를 무척 행복하게 할 텐데요. 그대는 나에게 싫증이 났습니다. 그 밖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대가 내게 편지하지 않는 게 놀라운 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내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선 지난날처럼 헛되이, 끝없이 그대의 소식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대의 소식을 들이리라는 희망 또한 없군요. 그대가 침묵으로 보내는 이별을 나 자신에게 반복해 표현해야겠군요. 나는 이 편지를 얼굴에 던지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 편지를 보내지 못하겠지요. 그래도 편지는 보내야 합니다. 이제 더 편지를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프란츠

Nr.40
1912년 11월 20일에서 21일로 가는 밤으로 추정
사랑하는 이여, 새벽 한시 반입니다. 오전 편지가 그대의 마음을 상하게 했나요? 그대가 친척과 친구들에게 갖고 있는 의무가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대는 수고하고 있는데 나는 그대의 수고를 비난하면서 괴롭히고 있습니다. 제발, 사랑하는 그대여, 나를 용서하십시오. 용서한다는 표시로 장미 한 송이를 보내주십시오. 나는 사실 피곤한 게 아니라 무감각하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제발 내 곁에 머물러달라는 것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내게서 그 어떤 적의가 나와 그대에게 어제 오전 편지 같은 그런 편지를 쓰더라도 믿지 마세요. 그 편지를 무시하고 내 마음을 보십시오. 삶은 정말 힘들고 슬픕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화내지 마세요!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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