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2-02-20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Und sagre kein einziges wort> 하인리히 뵐, 홍성광 옮김,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편집한 이런 전집의 장점은 들어본 적 없고 읽을 생각 없던 책을, 전에 읽었던 책과 같은 전집에 있다는 이유로 읽게 되는 기회를 준다는 점인 것 같다.




 
2012-02-15


개는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한다고 한다.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고. 산책도 언제나 같은 길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도 한다.

나는 짧은 코스와 긴 코스 두 가지를 정해놓고 둘 중 하나로 같은 시간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개와 산책을 한다. 개는 정말 매일 가는 길을 매번 새로운 호기심과 흥분으로 냄새 맡고 구경한다.
그런 개를 보면서 조금도 변하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남들은 절대 알아채지 못할 미묘한 결을 느끼며 사는 사람을 상상하곤 한다.

개가 산책하면서 언제나 하는 행동 중 내가 보기에 가장 재미있는 것은 어느 단독주택 대문 앞에 가서 마당 안 대문 바로 옆에 묶여 있는 커다란 개를 보는 것이다. 그 개는 비교도 안 되게 큰 개인데 겁도 많고 소심하며 거의 짖지도 않는 이 개는 빠뜨리지 않고 그 대문 앞에 가서 대문의 쇠창살 사이로 들여다보며 안에 있는 개가 짖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다가 개가 짖기 시작하면 이제 됐다는 듯이 자신은 짖지도 않고 곧바로 뒤돌아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그 집 개는 그때마다 조금 약이 오를까?


 
2012-02-15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애러비 Araby'를 원작으로 만든 단편애니메이션이 있다. 김성길 감독의 '애러비'
소설은 아일랜드의 도시 더블린 이야기이지만 애니메이션은 부산의 어느 오래된 동네를 그리고 있다. 소년의 좌절된 첫사랑, 그리고 실체를 알고 난 뒤 환멸을 느끼게 될 모든 것들에 대한 감정이, 구체적인 풍경들에 그대로 담겨있다. 컴퓨터3d로 만든 공간이 세밀하게 그려낸 회화작품처럼 말 없이 쓸쓸하고 애잔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에서 처음 느꼈다.
움직임이 적고 인물 대신 공간을 가만히 보여주는 이 작품이 정말 좋았다. 이 작품을, 소설을 읽기 전에 한 번 보고 소설을 읽고 난 직후에 다시 보았는데 소설을 읽기 전 공간의 느낌을 고스란히 볼 수 있을 때가 더 좋았다. 소설을 읽고 난 후에는 글로 된 이야기의 기억이 오히려 이미지를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작품 이미지를 같이 올리고 싶었지만 감독님이 블로그 이미지 저장을 막아놓았는데 굳이 올리는 건 실례 같아서.


 
2012-02-11
작가가 처음부터 한국어로 쓴 글은 단어 하나하나가 형식이자 내용이고 목적지가 되지만 번역된 글을 읽을 때는 그 단어 너머에 내가 모르는 언어로 된 원래의 형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어차피 원문을 읽고 비교하거나 번역이 잘 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글 너머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언어로 되어있지 않은 추상적인 모습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조금 이상하지. 예술 작품은 그 너머에 있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재료로 쓰인 색, 형태, 소리 자체가 바로 그 작품이 되어 변형되거나 번역될 수 없는 것인데 언어로 된 글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예술가가 심혈을 기울여 선택하고 쌓아올린 단어들을 모조리 다른 것으로 바꿔버린 상태로 읽어야하니 말이다.
번역된 소설들을 읽으며 그 감상의 얼마만큼을 번역자의 몫으로 아니면 탓으로 돌려야 할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원문과 비교하여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번역된 글을 읽을 필요가 없고 읽더라도 번역된 글은 부차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일 테니까. 게다가 가끔 기회가 되어 하나의 소설을 번역한 다른 책들을 모아놓고 한 문장씩 비교해보다보면 어감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작은 부분에서는 내용까지도 다른 경우가 많아, 도대체 어느 것을 믿고 읽어야 하나 아득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어색하고 서툰 번역이 원래 글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면을 없앨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번역서를 읽는다. 실제로 비문도 많고 호칭이며 존대가 뒤죽박죽인 채로 출판된 책도 장애물을 건너듯이 짐작하고 머릿속으로 수정하며 읽고 난 뒤 그 책을 좋아한 경우도 꽤 있었다. 어쩌면 번역된 책을 읽을 때 이미 번역한 사람의 글쏨씨에 따르는 여러가지 변수들을 감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어로 씌여진 글과 달리.

 
2012-02-08
새벽 1시부터 3시, FM 93.1, 밤의 실내악



 
2012-02-08

<율리시즈의 눈물> 로제 그르니에, 바크 거리로의 산책

로맹 가리 Romain Gary, 소설가.



 
2012-02-07

<율리시즈의 눈물 Les Larmes d'Ulysse - 세계 문호들의 개 이야기>
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로제 그르니에는 까뮈의 친구,
율리시즈는 로제 그르니에가 키우던 개.

 
2012-02-01
'그런데 조이스가 죽었다. 나보다 2주 가량 어렸던 조이스. 위버 양이 양털 장갑을 끼고, <율리시즈>의 타자 친 원고를 가지고 와서, 호가스 하우스의 우리 차 탁자 위에 올려놓던 생각이 난다. 로저가 그녀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찍는데 우리 생활을 바쳐야 하는가? 그 품위 없는 쪽들은 위버 양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목까지 단추를 채운 위버 양은 노처녀다워보였다. 그리고 책은 쪽마다 음란스러웠다. 나는 상감 조각이 된 장식장 서랍 안에 그 원고를 넣어 두었다. 어느 날 캐서린 맨스필드가 와서 내가 그 원고를 꺼내 보였다. 캐서린은 비웃으면서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말했다. 여기엔 뭔가가 있어요, 영문학사에 남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광경이. 조이스는 우리 주변에 있었으나,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다. 나는 가싱턴에 있는 오토라인의 방에서 톰이(그때 조이스의 책이 출판되었다.) 마지막 장의 그 엄청난 기적을 이룬 뒤, 뉘라서 다시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던 일이 생각난다. 톰은 내가 아는 한 처음으로 넋을 잃고 열광했다. 나는 파란 표지의 책을 한 권 사서, 여기서 한여름 동안 놀라움과 발견의 경련을 느끼면서, 그러고는 다시 지겹게 긴 지루함을 느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선사시대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신사 분들이 모두 그들의 의견을 새로이 가다듬었고, 책은 긴 행렬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작가의 일기> 버지니아 울프 1941년 1월 15일

톰은 T.S 엘리어트



 
2012-01-28
'마지막 마차다. 여윈 갈색 말도 그것을 아는지 맑은 밤하늘에 경고하듯이 방울을 울렸다. 차장이 마차꾼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둘 다 램프의 초록 불빛 속에서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의 빈 좌석에는 채색한 차표들이 몇 장 흩어져 있었다. 길에서는 오고 가는 발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윈 갈색 말들이 서로 코를 비비대며 방울을 울릴 때 외에는 어떤 소리도 밤의 고요를 깨지는 않았다.
둘은 귀를 기울여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윗단에서, 그녀는 아랫단에서. 그녀는 말을 주고받는 동안 여러 차례 그가 있는 윗단으로 올라왔다 제자리로 내려갔다. 또 한두 번은 내려가기를 잊은 채 한참 동안 윗단의 그의 바로 뒤에 서 있다가 내려가기도 했다. 그의 심장은 물 위에 둥둥 뜬 부표처럼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춤추었다. 고깔 밑에서 소녀의 눈길이 그에게 전해오는 말을 들으면서 그는 언젠가 어렴풋한 과거에 꿈에선지 생시에선지 그 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소녀가 허영심을 돋우어 의복이며 허리띠며 검은 긴 양말을 과시하는 것을 보며 그는 자기가 이미 천 번이고 그들 앞에 굴복했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내심의 소리가 춤추는 심장의 고동 소리 너머로 들려오며 그에게 묻는 것이었다. 너는 손을 뻗치기만 하며 잡을 수 있는 이 소녀의 선물을 받겠느냐고. 그러자 그는 언젠가 아일린과 호텔 정원을 들여다보던 날 웨이터가 깃대에 길다린 기를 끌어올리고 양지바른 잔디에서 폭스테리어가 이리저리 뛰놀던 일, 그리고 갑자기 아일린이 깔깔 웃어대며 구불거리는 언덕길을 달려 내려가던 일을 상기했다. 그때처럼 지금도 그는 제자리에 멍청히 선 채 겉으로는 침착한 듯이 눈앞의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저 여자도 내가 자길 포옹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거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하고 같이 마차를 타러 온 거지. 이 윗단으로 올라왔을 때 쉽사리 껴안을 수 있었어.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으니까. 껴안고 키스를 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는 그 어느 쪽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내린 빈 마차에 혼자 않아 차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우툴두툴한 마차 발판을 침울하게 응시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man> 제임스 조이스, 정성국 옮김, 흥신문화사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는 지금 1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나이인 것 같다.




 
2012-01-27

버지니아 울프는 1915년부터 1941년 자살로 죽기 직전까지 일기를 썼다고 한다. 그 일기를 울프가 죽은 후 남편인 레너드가 내용을 골라서 1953년에 <A writer's diary>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그리고 레너드도 죽고 일기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인 1977년에 이 일기 전체를 담은 다섯 권짜리 책이 나왔다. 울프의 조카 퀜틴의 부인 앤이 편집한 이 책의 제목은 <The diary of Virginia Woolf>.

<어느 작가의 일기>는 글쓰기 작업에 대한 부분만을 모은 레너드의 편집본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고, <그래도 나는 쐐기풀 같은 고통을 뽑지 않을 것이다>는 <The diary of Virginia Woolf>에서 번역자가 편집했는데 작업에 대한 것 뿐 아니라 사적인 일에 대한 기록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 <어느 작가의 일기>보다 훨씬 얇다.

<그래도 나는 쐐기풀 같은 고통을 뽑지 않을 것이다>는 1996년에 나왔는데 지금은 절판, 품절. 나는 몇 년 전에 헌책방에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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