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2-02-24
잠을 잘 못자는 것 같다. 중간에 자주 깨거나 하지는 않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 힘든 일을 하고 난 다음날처럼 몸이 무겁다. 아마 목에서 어깨까지가 너무 아파서 그런 것 같은데.



 
2012-02-23


번역한 사람의 주석.
고등학교 문학 참고서에 있을 법한 해설에, 읽으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후로 얼핏만 보고 지나쳤다, 주석들은.





 
2012-02-23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가난.
전후 독일의 가난한 부부는 따로 떨어져 산다.
아내는 세 명의 아이들과 어떤 집의 작은 방에 얹혀 살고 남편은 그 곳에서 사는 것을 견디지 못해 밖으로 나와 떠돌며 버는 돈만 아내에게 가져다 준다. 그리고 둘은 가끔 한 번씩 만나 저녁을 먹고 허름한 호텔에서 잠을 잔다.
가난하고 힘겨운 사람들의 눈에 세상의 풍경과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 그대로 무표정하고 말이 없고 고단하다.
이 부부의 이틀간의 이야기.
둘의 독백 형식의 이야기가 한 챕터씩 반복해서 이어진다.
1953년 작.



 
2012-02-23
"우는 이유가 또 있는데," 나는 말했다. "애들이 너무 조용해요. 애들이 너무 얌전해요, 프레드. 그 애들이 학교에 잘 다니고, 진지하다는 당연한 사실이 두려워요. 애들이 꼼꼼하게 학교 숙제를 잘 해가는 것이 놀라워요. 보통 학생들처럼 학교 시험에 대해 떠들며 바보같이 수다도 떨고, 내가 애들만 한 나이에 썼던 말과 거 의 똑같은 표현도 써요.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프레드. 냄비에 고기 삶는 냄새를 맡으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아침마다 차분하게 책가방을 챙겨 어깨에 메고 빵을 주머니에 넣어요. 이게 애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이에요. 프레드, 나는 가끔 현관에 몰래 나가 창가에 서서 애들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곤 해요. 책의 무게로 조그만 등이 약간 굽어진 아이들은 모퉁이까지 나란히 걸어가요. 클레멘스는 거기서 방향을 바꿔요. 우중충한 모차르트 가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 카를라는 좀 더 오래 보여요. 뜨개질 본이나 카를 대제의 사망 연도 같은 걸 골똘히 생각하기라도 하는지,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걸어가는 모습이 당신과 똑같아요, 프레드. 아이들이 열심히 생활하는 걸 보면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열심히 생활한다고 미워한 아이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나곤 해요. 그 애들은 아기 예수들 같아요. 성가정 성화들 속에서 성 요셉의 대패 옆에서 노는 고운 고수머리 아이들. 열 살이나 열한살쯤 되어 보이는, 심심해서인지 길고 곱슬곱슬한 대팻밥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내보내는 아이들 말이에요. 대팻밥은 그 애들의 고수머리와 꼭 닮았죠."
(중략)
"아뇨, 아니에요. 하지만 애들이 그렇게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말이죠, 애들한테서 절망스럽고도 무의미한 겸손함이 느껴져요. 그럼 난 억울하고 두려워서 눈물이 절로 나와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2012-02-20
'갑자기 현기증이 났고, 나는 행진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내 시야는 오므라든 것처럼 좁아졌고, 나는 희미한 빛을 발하는 회색에 둘러싸인 채 내 두 아이 클레멘스와 카를라의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몹시 창백해 보이는 남자애는 푸른 옷을 입고, 첫 영성체를 할 때 그러듯이 단춧구명에 초록색 가지를 꽂은 채, 손에 초를 들고 있었다. 진지하고도 사랑스러운 그 아이는 창백한 얼굴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나처럼 검은 머리에 둥그스름한 얼굴과 아리따운 몸매를 지닌 여자애는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애들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나는 내게 지워진 낯선 삶을 들여다보듯 내 삶의 그러한 일부분을 들여다보았다. 손에 초를 들고 천천히 엄숙하게 내 좁은 시야를 지나고 있는 내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알게 된 사실, 즉 우리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2012-02-20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Und sagre kein einziges wort> 하인리히 뵐, 홍성광 옮김,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편집한 이런 전집의 장점은 들어본 적 없고 읽을 생각 없던 책을, 전에 읽었던 책과 같은 전집에 있다는 이유로 읽게 되는 기회를 준다는 점인 것 같다.




 
2012-02-15


개는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한다고 한다.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고. 산책도 언제나 같은 길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도 한다.

나는 짧은 코스와 긴 코스 두 가지를 정해놓고 둘 중 하나로 같은 시간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개와 산책을 한다. 개는 정말 매일 가는 길을 매번 새로운 호기심과 흥분으로 냄새 맡고 구경한다.
그런 개를 보면서 조금도 변하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남들은 절대 알아채지 못할 미묘한 결을 느끼며 사는 사람을 상상하곤 한다.

개가 산책하면서 언제나 하는 행동 중 내가 보기에 가장 재미있는 것은 어느 단독주택 대문 앞에 가서 마당 안 대문 바로 옆에 묶여 있는 커다란 개를 보는 것이다. 그 개는 비교도 안 되게 큰 개인데 겁도 많고 소심하며 거의 짖지도 않는 이 개는 빠뜨리지 않고 그 대문 앞에 가서 대문의 쇠창살 사이로 들여다보며 안에 있는 개가 짖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다가 개가 짖기 시작하면 이제 됐다는 듯이 자신은 짖지도 않고 곧바로 뒤돌아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그 집 개는 그때마다 조금 약이 오를까?


 
2012-02-15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애러비 Araby'를 원작으로 만든 단편애니메이션이 있다. 김성길 감독의 '애러비'
소설은 아일랜드의 도시 더블린 이야기이지만 애니메이션은 부산의 어느 오래된 동네를 그리고 있다. 소년의 좌절된 첫사랑, 그리고 실체를 알고 난 뒤 환멸을 느끼게 될 모든 것들에 대한 감정이, 구체적인 풍경들에 그대로 담겨있다. 컴퓨터3d로 만든 공간이 세밀하게 그려낸 회화작품처럼 말 없이 쓸쓸하고 애잔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에서 처음 느꼈다.
움직임이 적고 인물 대신 공간을 가만히 보여주는 이 작품이 정말 좋았다. 이 작품을, 소설을 읽기 전에 한 번 보고 소설을 읽고 난 직후에 다시 보았는데 소설을 읽기 전 공간의 느낌을 고스란히 볼 수 있을 때가 더 좋았다. 소설을 읽고 난 후에는 글로 된 이야기의 기억이 오히려 이미지를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작품 이미지를 같이 올리고 싶었지만 감독님이 블로그 이미지 저장을 막아놓았는데 굳이 올리는 건 실례 같아서.


 
2012-02-11
작가가 처음부터 한국어로 쓴 글은 단어 하나하나가 형식이자 내용이고 목적지가 되지만 번역된 글을 읽을 때는 그 단어 너머에 내가 모르는 언어로 된 원래의 형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어차피 원문을 읽고 비교하거나 번역이 잘 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글 너머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언어로 되어있지 않은 추상적인 모습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조금 이상하지. 예술 작품은 그 너머에 있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재료로 쓰인 색, 형태, 소리 자체가 바로 그 작품이 되어 변형되거나 번역될 수 없는 것인데 언어로 된 글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예술가가 심혈을 기울여 선택하고 쌓아올린 단어들을 모조리 다른 것으로 바꿔버린 상태로 읽어야하니 말이다.
번역된 소설들을 읽으며 그 감상의 얼마만큼을 번역자의 몫으로 아니면 탓으로 돌려야 할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원문과 비교하여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번역된 글을 읽을 필요가 없고 읽더라도 번역된 글은 부차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일 테니까. 게다가 가끔 기회가 되어 하나의 소설을 번역한 다른 책들을 모아놓고 한 문장씩 비교해보다보면 어감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작은 부분에서는 내용까지도 다른 경우가 많아, 도대체 어느 것을 믿고 읽어야 하나 아득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어색하고 서툰 번역이 원래 글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면을 없앨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번역서를 읽는다. 실제로 비문도 많고 호칭이며 존대가 뒤죽박죽인 채로 출판된 책도 장애물을 건너듯이 짐작하고 머릿속으로 수정하며 읽고 난 뒤 그 책을 좋아한 경우도 꽤 있었다. 어쩌면 번역된 책을 읽을 때 이미 번역한 사람의 글쏨씨에 따르는 여러가지 변수들을 감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어로 씌여진 글과 달리.

 
2012-02-08
새벽 1시부터 3시, FM 93.1, 밤의 실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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